구속으로 말미암아 가능해졌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3:23-24).
본문은 크게 둘로 나누어집니다.
㉠ 23절은 하나님의 의가 왜 필요하게 되었는가를 말씀하고 있고,
㉡ 24절은 하나님께서 의롭지도 못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를 주신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여졌는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나타난 의는 오직 믿음으로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온 인류에게 왜 하나님의 의가 필요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의롭지도 못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를 주신다는 이 엄청난 일이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는가? 본문은 이점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의가 인류에게 왜 필요하게 되었는가를 상고해 보겠습니다.
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榮光)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래서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모든 사람이 죄(罪)를 범하였으매” 하고, 과거형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죄는 다윗이,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 한 “원죄”(原罪) 하에 태어남을 의미합니다. 아담 하와는 범죄 하자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되었습니다. 그 후손들은 태어날 때부터 분리된 상태에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원죄라고 부릅니다.
㉡ 5:12절에서도,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罪)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하고 말씀합니다. 아담의 범죄는 개인 자격으로가 아니라, 온 인류의 대표자로서의 범죄였던 것입니다. 아담 이후로 온 인류는 “죄 아래” 있게 된 것입니다(3:9). 물론 자기 자신의 행위로도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얻을 자는 없습니다.
② “하나님의 영광(榮光)에 이르지 못하더니” 합니다.
㉠ 첫째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주신 영광스러운 지위를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 둘째로 하나님이 계신 영광에도 이르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영광에 이르지 못하면 흑암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 인류에게 “하나님의 의”는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의 뜻입니다.
③ 다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인간들에게 주신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可能)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라고 말씀합니다.
㉠ “구속”(救贖)이란, 원래 노예의 몸값을 지불하고 자유하게 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 절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23) 한 대로, 아담의 후예들은 다 죄 값으로 팔린 노예와 같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고”(히 2:15) 있는 처지입니다. 인간 편에서는 절망적입니다.
㉡ 하나님께서 구원의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죄 값으로 대신 내어 주신 것입니다. 디모데 전서 2:6절에서는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속전(贖錢)으로 주셨으니”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냥 “내가 너희에게 의의 옷을 줄 터이니 받아 입으라” 하신 것이 아닙니다.
㉢ 첫 창조 때에는 말씀만으로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재창조시에는 말씀만으로는 불가능 합니다. 이미 저질러놓은 죄 값을 누군가가 청산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습니다. 그래서 “구속”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④ 그러면 “구속”, 즉 죄 값을 누구에게 지불하였단 말인가? 태초에 하나님은 인류의 시조에게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 하셨습니다. 이것이 법이요, 호세아서에서는 “언약”(호 6:7)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이 “법, 언약”을 철회하실 수가 없으신 것입니다.
㉠ 이에 대한 좋은 예가 다니엘서에 있습니다. 다리오 왕은 충신 다니엘을 사랑했습니다. 그리하여 사자의 밥이 되게 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왕이 세운 금령과 법도는 변개”(단 6:15) 할 수가 없어서 법대로 집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금령”(禁令)을 변개(變改)하실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의를 주시기 원하셔도 하나님의 공의(公義)가 용납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 또한 호세아서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지극하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이 얼마나 은혜로우신가 하는 것을 예표적으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선지자 호세아의 아내 고멜이 음부가 되어 팔려간 것을,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값을 지불하고(호 3:1-2) 다시 아내로 맞아들이라고 명하십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의 뜻입니다.
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구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습니다. 그리스도 밖에는 없습니다.
㉠ 예표로 보여주신 유월절의 밤을 상기해보시기 바랍니다.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밖에 나가지 말라”(출 12:22) 하십니다. 피가 뿌려진 대문 안에만 구원이 있었습니다. 밖에는 없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주어질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⑥ “하나님의 은혜”(恩惠)라고 말씀합니다. “은혜”란 무가치한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호의입니다.
㉠ 그러므로 성도들이 은혜 받기를 원하십니까? 구약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통해서 행해주실 일들이 “언약, 예언, 예표, 모형” 등으로 계시되어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언약하신 대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되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을 먼저, 그리고 더 많이 증거하시기 바랍니다. 이를 듣고 믿으면 은혜, 곧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행해야 할 일은 윤리요, 교훈이지 은혜가 아닙니다.
⑦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24하), 즉 “하나님의 의”는 값없이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값을 다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값을 지불해야만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의”라면, 받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지구가 몽땅 내 것이라 해도 그 값을 지불하기에는 부족할 것입니다. “값없이”란 말이 무엇과 짝을 이루고 있는가? “구속”입니다. 우리는 값없이 받는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자기 독생자를 대속제물로 내어 주신 “구속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값없이 받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는 것입니다.
㉡ 이점을 에베소서 1:7절에서도,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은혜의 영광”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곧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 내어 주시고야 가능했다는 말씀입니다. 이곳에서도 “거저주심과,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가 결부가 되어 있습니다.
㉢ 이에 대한 예언적인 말씀이 시편에는 있습니다. “자기의 재물(財物)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자는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시 49:6-8) 하십니다.
⑧ 끝으로 중요한 요점을 하나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23절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榮光)에 이르지 못하더니” 했으면,
㉠ 다음절에서는 이렇게 해서 “영광(榮光)에 이르게 되었다” 하고 말씀해야만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까? 우리도 그것을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24절에는 “영광에 이르게 되었다”는 말씀 대신에,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 되었느니라” 하고 말씀합니다. 왜 그러한지 형제는 아시겠습니까?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즉 “하나님의 의”의 옷을 입은 자만이 하나님의 영광(榮光)에 나아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 오 주님! 그 의의 옷을 입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 앞에 담대함과 당당히 나아갈 수 있는 의의 옷을 우리에게 입혀주심을 찬양하나이다. 감사하나이다.
⑨ 다시 상기시킵니다. “하나님의 의”를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습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입니다. 모든 복음은, 이 “말미암아”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를 놓치게 되면,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갈 5:4)가 된다는 점을 명심하십시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23-2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