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연군 묘 도굴사건 (1868년 4월, 고종6년)
풍수인 최선일
남연군 묘를 이용한 일본의 음모와 계략을 간파한 풍수인이 있었으니, 그는 최선일(일명 최지혁, 세례명 요한)이라는 당시 60세의 독실한 천주교신자였다.
천주교 신자 이전부터 풍수인이었던 최선일은 외화내빈의 남연군 묘로 인한 엄청난 비극을 예감하고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리하여 목숨을 걸고 흥선대원군을 찾아가 덕산의 묘 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며 왕실과 조선이 위태롭다고 말하지만, 최선일의 말은 일언지하 무시당하고 만다. 하지만 그는 남연군 묘로 인한 조선의 비극적 운명을 예감하고 포기하지 않는다.
궁리 끝에 극단적인 방법을 쓰기로 하고 프랑스 선교사 페롱을 찾아가 대원군의 쇄국정책과 2년 전 병인박해와 같은 천주교 탄압을 중단시킬 방책이 있으니, 남연군 묘를 도굴할 것을 제의한다.
(페롱을 통역관으로 삼은 오페르트는 남연군의 체백을 이용해서 조선과의 통상교섭을 통해 다른 열강들에 비해 우위를 선점하려는 계획이었다.)
최선일은 개인적 윤리보다는 조선의 흥망이 걸린 것이기에 엄청난 도박을 결행한다. 자신의 행위는 용서받지 못할 짓이지만, 그것만이 조선과 만백성을 구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확고한 믿음과 신념이 있었다.
그러나 그 도굴은 수천포의 강회와 쇳물로 철옹성같이 굳어있었기 때문에 실패하고 만다.
최선일은 조선의 국운이 다했음을 절감하며 통분의 눈물을 뿌리며 발길을 돌린다.
“천주님! 부디 나의 예상이 틀리도록 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만약 내가 잡혀죽지 않는다면 이 모든 사실을 후세에 전하여 삼가 지극히 경계토록 할 것입니다”
격노한 대원군은 천주교 풍수인의 짓이라 판단하고 그를 빌미로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탄압을 더욱 혹독하게 하였다.

崔善一[ 1809~1878] : 일명 崔智爀, 세례명 요한
1808년 충청남도 공주에서 출생하였다. 천주교 신자였던 부친에게서 교리를 배웠고 1846년 다블뤼 주교에게서 세례를 받고 가톨릭교에 입교했다. 세례명은 요한이다. 1868년 대원군의 부친인 남연군 묘를 도굴하는데 안내인 역할을 하였다. 이후 중국에 머물면서 리델 신부를 보좌하였고《한불자전(韓佛字典)》 및 《한어문전(韓語文典)》을 편찬하는데 참여하였다. 1874년 은밀히 귀국하여 선교사들이 조선으로 입국하여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1878년 북경외방전교회와의 연락을 위해 만주로 가던 밀사가 체포됨으로써 붙잡혀 투옥되었다가 옥사하였다.[백과사전]

한글로 간행된 최초의 성경인 성경직해를 최지혁의 글자본으로 1886년 간행되었다.
을미사변
1895년 순조롭게 진행되던 조선침략의 시나리오가 명성황후에 의해 주춤거리자 일본국공사 미우라가 고용한 낭인들이 궁궐까지 침입하여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시신까지 불사르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른다. 이일을 총지휘한 자는 당시 일본국 총리대신이었던 이토 히로부미였다. 세상 어느 하늘아래 그와 같은 극악무도한 일이 또 있겠는가?
그런데도 고작 고종황제가 한 일은 죽은 황후를 서인으로 폐위시키는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일을 하고 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수모와 모욕 피를 토할 것 같은 분함에도 대궐에서는 누구하나 칼을 들고 저항은커녕 꽁무니를 빼며 자신들의 자리보전에만 눈치를 살피고 있다.
그저 힘없는 백성들만 낫과 몽둥이로 무장하고 국모의 죽음에 분연히 봉기할 따름이었다.

통한의 을사조약
1898년 마지막 걸림돌이었던 흥선 대원군이 79세를 일기로 사망하자 거칠 것 없던 일본은 최후의 일격을 조선에 가하기로 한다. 당시 조선의 국내정세는 극도의 혼란에 빠져있었고, 일본은 대 청나라(1894년), 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1904년) 승리하여 조선에서 절대적 우위를 지키고 있었다. 이에 자신감을 가진 일본은 60년간 지속된 길고긴 작전의 마지막 절차인 남연군 묘소의 그 알량한 용맥조차 끊어버리기로 한다.
몇 안 되는 상가리 주민들을 위해서 저수지를 만든다는 명분으로 묘소까지 이어지는 고갯마루의 능선을 무참하게 파헤쳐서 둑을 쌓는데 써버린다.
마치 마지막 숨통을 끊어 놓듯이·····

그 이듬해 고종황제는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고 통한의 을사조약에 굴욕적인 서명을 하고 만다.(1905. 11. 18)
“도대체 무엇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 되었는가?”
“대원군의 권력에 대한 집착이었을까?”
“고종황제가 유약했던 것인가?”
“명성황후가 지나쳤던 것인가?”
“아니면 이 나라 조정 대신들이 무능했던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이 나라 백성들의 우국충정이 부족했던 것인가?”
그러나 조선이라는 배는 스스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정해진 수순에 의해 폭풍 속의 난파선이 되어가고 있었다.
단 한사람 천주교 풍수인 최선일만이 모든 것을 예측하고 있었을 뿐이다.

명성황후 뮤직비디오
첫댓글 교수님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선일 이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해군 해병들의 海路 안내를 하였던 사람이지요
나라의 기밀을 적에게 알리고 우리나라의 지세의 허함과 강함을 아는 풍수인이
나라를 망하게 하는 일에 앞장 섰다는 사실에 주목 해야 합니다 풍수사는 義 로워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많이 배우겠읍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