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더 좋아!
맹 광 호
“딸이 더 좋아!”
며칠 전, 아내가 아파트 현관문 앞에서 아들을 배웅하고 거실로 들어서며 한 말이다. 혼잣말로 한 것이지만 무슨 말이 됐건 나도 한마디 거들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그날, 아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면서 나눈 얘기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요즘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저녁에 아들이 우리 집에 와서 잠을 잔다. 서울 서남쪽 변두리에 사는 아들이 목요일과 금요일 아침 일찍부터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강남의 한 직업전문학교에 가서 강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침 출근 시간에 콩나물시루처럼 사람들이 붐비는 전철을 두 번 갈아타며 한 시간 이상 시달리고 나면 강의를 시작할 때는 거의 녹초가 된다고 했다. 그런 아들을 보는 엄마의 마음이 아플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서울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아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6년 간 힘들게 공부를 하고 박사가 되어 돌아왔지만 최근 국내 대학에 전임자리를 구하기가 말 그대로 하늘에서 별 따기여서 3년째 보따리 장사로 지내는 형편이다. 이번 학기동안 아들은 무려 주당 20시간이 넘게 이곳저곳을 다니며 강의를 하고 있다. 어디건 전임으로 근무를 한다면 직장 부근 가깝게 집을 옮기면 될 일인데 그러지 못 하고 있는 아들을 보며 아내가 안쓰러워서 그러는 것이 분명했다.
아내 말인즉슨, 우리 아들이 차라리 딸이었으면 그런 고생은 하지 않아도 될 거라는 것이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가사를 맡아 하는 여자와 달리 남자들은 직장을 가지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책임이 있어서 그런 고생을 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딸이 더 좋다는 것이다. 고생하는 아들을 곁에서 함께 지켜보는 나로서도 아내의 말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자들과 똑 같이 직장에 나가 일을 해야 하는 요즘 젊은 세대 여자들이 들으면 크게 비난 받을 소리니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어제 저녁, 여러 연령대의 부부가 만나는 한 모임에 가서 기어코 아내가 그 얘기를 했고, 내가 예상했던 대로 모임에 참석한 젊은 부인들로부터 혼이 났다. 특히 여성학을 전공한 교수와 전문직에 종사하는 몇 명 부인들로부터는 집중 포화를 당했다. 아들 걱정하는 마음에서 한 말인 것이 이해는 가지만, 결혼한 여자의 역할이 집에서 아이나 보고 가사를 도맡아 해야 된다는 취지로 들리는 그 말은 역시 이성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점에 대해 평소 남자들에게도 할 말이 많았다는 것을 시위라도 하듯 애꿎게 우리 남편들한테까지 공격을 해 왔다. 우리나라 대부분 남자들이 아직도 육아나 가사 일은 여자들이 맡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이런 생각은 맞벌이를 하는 부부들 사이에서도 흔히 남자들이 갖고 있는 ‘구시대적’ 사고라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요즘 여성들이 출산과 육아의 책임을 그대로 진채, 남편들과 함께 직장에 나가 돈을 벌지 않으면 생활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아는 우리 남자들이 그 자리에서 딱히 대꾸할 말이 있었을 리 없다.
동서양이 별로 다르지 않지만,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오랜 세월 남성 우월주의와 가부장적 전통 사회에서 여성들이 많은 차별적 대우를 받아온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을 꼭 남성들의 책임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조금 따져볼 필요도 없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여자보다 힘이 센 남자들이 하루 종일 논밭에 나가 일을 해야 했던 농경사회에서는 여자들이 집에서 삼시세끼 밥을 짓고 가사를 맡아 했던 것이 나름대로의 역할 분담을 위해 불가피한 현상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농사일을 해야 하는 아들을 딸보다 더 선호했던 것도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이해가 되는 일이다. 문제는 이런 남아선호 사상이나 남성우월주의가 도를 지나쳐 아들을 못 낳는 여자들을 ‘칠거지악’ 이라는 이름으로 학대하고,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말로 여자들의 발언권을 무시해 온 나쁜 전통과 관습에 있다고 봐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늘고 가정 안에서의 발언권도 존중되는 현상은 무엇보다 인권차원에서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여성의 지위 향상이 그동안 사회와 남성들에게서 받은 차별대우에 대한 복수(?) 차원에서 그 세력을 확장해 간다면 그것은 또 다른 성차별 전통을 만드는 것은 아닐지 걱정도 된다. 요즘 등장하고 있는 ‘신 모계사회 도래’ 라는 말이 다소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이 시대의 지성 이어령 선생의 최근 에세이집 《지성에서 영성으로》에 <아버지 없는 사회>라는 글 한편이 있다. 여성의 지위와 역할 증대로 사회적으로는 물론 가정 안에서도 요즘 아버지들의 존재감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과, 이런 현상이 자칫 우리 사회를 ‘아버지 없는 사회’로 만드는 것 같다는 현실진단의 글이다. 그러면서 동물에게는 ‘무리’(群)만 있을 뿐이지만 사람에게는 ‘가족’이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이것은 출산능력을 지닌 어머니가 다분히 ‘사(私)적, 자연적 존재’라면 아버지는 법이나 제도에 의해서 그 지위가 보장된 ‘공(公)적, 문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성의 지위 향상과 발언권 확장이 여성 특유의 감성적 능력과 유연함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 준다는 측면에서 가정과 우리 사회를 한결 살맛나는 환경으로 만드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발전적인 현상이기 위해서는 역시 공적, 사회적 존재로서 남자들의 지위가 확보되는 일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굳이 아내를 편들고 싶어서 하는 소리는 아니지만, “딸이 더 좋다”라고 한 아내의 말도 따지고 보면 아들이 하루 빨리 남자로서의 공적, 사회적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기 바라는 마음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 아들을 전임교원으로 뽑아 줄 대학은 어디 없을까?
첫댓글 잘 읽고 공감합니다.
아직도 조금 남는 아버지의 권위를 붙잡고 애원해야 할까요?
두 분의 아드님 사랑이 깊게 전해오네요
그렇게 애를 쓰고 강의를 나가니 좋은 소식이 전해오리라 믿습니다
부지런히 글을 쓰시는 회장님 모습 참 존경스럽습니다
지난번 합평회때 토의한 내용이 도움이 되셨는지요?
저는 그 이후로 작품을 영 못쓰고 말것 같아서요.....^^
저도 요즘 최대 고민에 빠져있습니다. 수필인구와 수필잡지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수필평론가와 수필을 대상으로 석,박사 학위를 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그러다보니 수필에 대한 견해가 변화하고 있는 듯 해서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무엇보다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다는 수필의 기원에 대한 견해가 흔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품에 작가가 들어나는 것이 아니라 작가는 작품 뒤에 숨어 버리는 모양새 입니다. 이제 수필은 작가의 주관적 체험을 '이야기로 말 하는 것' 보다 사물에 대한 '낯 선' 관찰과 '심미적 묘사'를 잘 해야 좋은 수필로 인정이 되는 듯 합니다. 이런 변화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계속)
수필에 대한 열정이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것을 '문학적 수필'이라고 한다면 인정을 해야겠지요. 문제는 우리 의사들의 수필쓰기 입니다. 우리도 그런 방향으로 가면 되지 않느냐고 할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저는 우리가 '의사이면서 수필가인가, 수필가이면서 의사인가?'라는 질문을 해 보게 됩니다. 의학교육이나 의료 활동에 최선을 다 해야 하는 의사 입장에서 좀 더 서정성이 짙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은 해야 겠지만 글쓰기를 전업으로 하는 사람들과 경쟁(?)을 하는 것은 불필요한 노력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여기서 저는 우리 <의수협>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이에 관해 지금 글을 하나 준비중입니다. 우리 홈페이지를 통해 회원들의 의견을 들을 생각입니다.
기다리겠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