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프랭클린 자서전]
배의 속도를 빠르게 하려면 다양한 실험이 필요하다
우리 우편선의 선장은 출항하기 전부터 그 배의 속도가 굉장하다며 자랑을 해댔다. 그런데 딱하게도 바다에 나가자 우리 배는 96척의 배 중에서 제일 느려 선장을 망신스럽게 했다. 우리 배만큼이나 느린 배가 또 한 척 있었는데 그것마저 우리 배를 앞질러 가자 선장은 원인을 이리저리 생각해보더니 모두들 배 뒤쪽으로 가서 돛대에 가능한 한 바짝 붙어 서라고 했다. 배에 있던 사람들은 승객을 포함해 40명 정도 되었다. 우리가 돛대 옆에 서자 배의 속도가 높아지더니 근처에 있던 배를 금세 따돌리고 앞으로 나갔다. 선장의 짐작대로 뱃머리에 짐을 너무 많이 실은 것이 원인이었다. 물통들이 전부 배 앞쪽에 놓여 있었다. 선장은 물통들을 모두 뒤로 옮기라고 지시했다. 그제야 배는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 빠르게 물살을 헤치며 나아갔다.
선장은 그 배가 한때는 13노트, 그러니까 한 시간에 15마일 속도를 냈다고 했다. 우리 배에는 케네디라는 해군 대령이 타고 있었는데, 그는 배가 그렇게 빠른 속도로 달릴 수는 없으며 분명 측정기의 눈금이 잘못되었거나 속도를 잘못 측정했을 거라고 선장의 말을 반박했다. 두 사람은 내기를 했고 바람이 충분히 불 때 속도를 재보기로 했다. 케네디 대령은 측정기를 꼼꼼하게 점검해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자기가 직접 측정하겠다고 했다. 며칠 뒤 날이 맑게 개고 순풍이 불었다. 러트위지 선장은 배가 13노트의 속도로 달리고 있노라고 했고 케네디 대령이 속도를 측정했다. 결과는 케네디 대령의 패배였다.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내 나름대로 느낀 점이 있어서다. 배를 새로 만들면 그 배가 바다에서 잘 달릴지 아닐지를 타보기 전에는 알 수 없기 때문에 건조 기술은 불완전한 거라고들 한다. 잘 달리는 배의 모양을 똑같이 본떠서 새 배를 만들어도 나중에 보면 굉장히 느린 경우가 있다. 선원에 따라 화물 적재와 정비와 항해 방법이 다른 것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각자 방식이 다 다르다. 그리고 같은 배라 하더라도 어떤 선장이 어떤 판단과 지시를 내리는가에 따라서도 속도가 차이가 난다. 한 사람이 배를 만들고 배를 바다에 띄우고 항해까지 하는 일은 거의 없다. 한 사람이 선체를 만들면, 다른 사람이 장비를 갖추고, 또 다른 사람이 짐을 싣고 항해를 한다. 이들 중 누구도 다른 사람의 생각과 경험을 다 알 수 없으므로 전체를 종합해 결론을 이끌어낼 수가 없다.
항해 중에 돛을 조작하는 간단한 일에서도 같은 풍향 조건에서 항해사마다 다른 판단을 내리고 선원들에게 다른 명령을 내리는 것을 나는 여러 번 보았다. 어떤 사람은 팽팽하게 조이고 어떤 사람은 느슨하게 조정하는 걸로 봐서 정해진 규칙은 없는 듯했다. 그래도 나는 일련의 실험을 통해 몇 가지를 결정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가장 빠른 속도를 내는 선체의 모양을 결정한다. 둘째, 돛대의 가장 이상적인 크기와 위치를 결정한다. 셋째, 돛의 모양과 수를 정하고 바람에 따른 위치를 결정한다. 마지막으로, 짐을 싣는 위치와 방법을 결정한다.
지금은 실험의 시대다. 다양한 실험을 정확하게 수행하고 그 결과를 종합해 정리한다면 굉장히 유용하게 쓰일 거라 생각한다. 머지않아 유능한 과학자가 이 실험을 해줄 것이라 믿으며 그가 꼭 성공하기를 바란다.
난파 위험을 통해 절감한 등대의 필요성
우리 배는 항해 중 여러 번 적함의 추격을 받았지만 매번 잘 따돌리면서 30일 만에 드디어 바다 바닥까지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곳에 이르렀다. 선장은 주위를 관찰해보더니 배가 팔머스 항구 근처까지 왔다고 판단하고 밤새 순조롭게 항해를 하면 아침에는 항구에 닿을 거라고 했다. 밤에 항해를 하는 편이 민간 선박으로 위장하고 해협 입구에 종종 나타나는 적함을 피하기에 좋을 거라도고 했다. 우리 배는 돛을 있는 대로 다 올리고 순풍을 타고 빠른 속도로 달렸다. 선장은 세세하게 관측을 하더니 실리 군도에서는 암초를 피해 멀리 돌아가도록 해로를 잡았다. 세인트 조지 해협에서는 때때로 강한 조류가 일어 뱃사람들을 삼켰는데, 클로드슬리 쇼블 경의 함대도 바로 이곳에서 침몰되었다. 우리가 당한 일도 아마 이 조류 때문인 것 같았다.
선원 한 명이 뱃머리에 서서 망을 보고 있었고 다른 선원들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그에게 “앞을 잘 살펴!”라고 소리쳤다. 그러면 망보는 선원은 “알았어, 알았다니까”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날은 눈을 감고 졸았는던 것 같다. 망보는 사람들은 가끔씩 졸면서 대답만 기계적으로 한다고들 하는데 그 선원도 그랬던 모양이다. 그는 우리 배 바로 앞에 있는 불빛을 보지 못했다. 조타수나 다른 선원들 역시 보조돛에 가려 그 불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 배가 잠깐 흔들리는 바람에 불빛을 보게 되었고 갑판에는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불빛이 배와 거의 닿을 듯 있어서 내 눈에는 수레바퀴만큼 커 보였다. 자정이 다 된 시간이어서 선장은 깊이 잠들어 있었다. 그때 케네디 대령이 갑판으로 뛰어나오더니 위험 상황임을 확인하고는 돛은 모두 그대로 두고 뱃머리가 바람이 부는 쪽으로 돌아가도록 하라고 명령했다. 돛대가 위험해질 수 있는 조치였지만 그 덕에 난파당하지 않고 무사할 수 있었다. 그때 우리 배는 등대가 서 있는 바위로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일을 겪으면서 나는 등대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래서 살아서 돌아간다면 아메리카에 등대가 많이 세워지도록 힘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다음 날 아침, 수심을 재어보고 항구 가까이 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짙은 안개 때문에 육지는 보이지 않았다. 아홉시쯤 되니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마치 극장에서 커튼이 올라가듯 안개가 물 위로 올라가더니 그 밑으로 팔머스 시, 항구의 배들, 도시 주번의 들판이 드러났다. 오랫동안 망망대해에서 단조로운 모습밖에 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는 황홀하리만치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특히 전쟁 상황이 주는 긴장감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무엇보다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