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년 전만 해도 물을 사먹는 세상이 올 줄 몰랐다. 좋은 샘물과 우물이 곳곳에 있어 먹는 물 걱정이 없었다. 이제는 수돗물도 끓이지 않고 그냥 먹기는 싫다.
“언젠가 미래에는 물과 공기도 팔고 사는 세상이 올 것이다.”라고 어린 시절 과학 시간에 선생님께서 들려주던 말씀이 기억에 새롭다.
우리가 가장 신경 쓰는 일은 먹는 물 문제가 되었다. 생수를 사려면 1리터에 천원은 주어야 한다. 외국여행을 하다 보면 외국에서도 물값이 보통 1리터에 1달러 아니면 2달러를 주어야 살 수 있었다.
나는 일주일에 한두 번, 5분 거리의 뒷산 잣 절터에 약수를 길러간다. 세 개의 수도가랑에서 펑펑 쏟아지는 시원한 약수는 물맛이 아주 좋다.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근방의 많은 사람이 공원에서 갖가지 운동을 하고, 또는 등산을 하고 내려오다가 이 물로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한다.
장마가 계속되는 날이면 구청에서 수질검사를 해서 “부적합” 표지판이 걸린다. “적합” 표지판이 걸리면 약수터는 쉼 없이 크고 작은 물통을 싣고 몰려드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우물가 아닌 산 중턱 약수터의 신풍속도이다.
나는 오늘도 빈 플라스틱 물통을 싣고 약수터에 손수레를 끌고 간다. 작은 손수레로 빈 물통을 싣고 덜덜거리며 물 길러 갈 때, “빈 수레가 요란하다.”라는 말을 실감한다.
나는 어린 시절에는 우물물을 두레박으로 길어 물동이로 이어 날랐고 처녀 시절에는 물 지게로 우물물을 길어 날랐다. 결혼 후에는 주방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을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는데 십여 년 전부터는 물을 사먹거나 약수를 길어다 먹어야 안심이 되었다.
고향마을 입구 대추나무 아래에는 일곱 가구의 식수원(食水源)인 샘니마 샘물이 있었다. 언제나 철철 넘쳐흐르던 커다란 바가지 샘물이었다. 우리 마을 앞을 지나는 길손들의 갈증을 풀어주고 온 마을 사람들이 아끼며 애용하던 바가지 샘물이었다. 물맛 좋은 바가지 샘물은 여름이면 놀랄 정도로 차가웠고 겨울 아침이면 모락모락 김이 서리고 따뜻했다. 특히 빨래가 깨끗이 잘 되던 연수(軟水)였었다.
동네 아낙들이 둥근 샘가에 빙 둘러앉아 콘크리트 바닥에 빨래를 비벼 빨며 빨래터로 이용하던 곳이기도 하였다. 많은 빨래로 푹 줄어든 물이 금방금방 가득 채워질 정도로 펑펑 솟아나는 샘물이었다. 그러나 어린이들에게는 위험한 샘이기도 했다. 소금쟁이와 물방개와 지름챙이도 많이 노닐어 어린이들이 물방개를 잡으려다 그만 “풍덩!” 빠져 허우적거려서 어른들이 놀라 얼른 건져내던 모습이 눈에 선연하다.
고향마을이 도시화하면서부터 이 바가지 샘물이 물 한 방울 없이 쓰레기통으로 쓰이는 것을 보고 통탄했는데 고층아파트가 빽빽하게 들어서더니 그것마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고향마을 한가운데의 깊은 큰우물은 오십여 가구의 식수를 제공하는 생명수였었다. 동네 여인들 옹기자배기에 보리쌀을 씻고 감자와 채소를 씻기도 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생활중심지 역할을 하던 곳이기도 했다.
내가 일곱 살 때 6.25 전쟁으로 피난(避難)갔다 돌아오니 신기하게도 바가지로 뜰 수 있도록 철철 넘쳐흐르고 있었다. 밀을 많이 씻어 말리는 여름날은 박박 긁어 길어 올려도 반 두레박도 안 되고 모래가 섞여서 가라앉혀 마시던 물이었다. 그러나 하룻밤만 지나면 물이 많이 고여 충분하게 필요한 양을 제공하던 우물이었다.
어느 해 여름날 어둠이 내리는 저녁때, 우물에 물이 동나 까치발을 들고 두레박질하던 여덟 살 동생이 그 깊은 우물에 “아!” 하는 비명과 함께 딸려 들어갔다. 동네 종이 요란스럽게 울고 왁자지껄한 소동 끝에 용왕님이 보살펴 주셨는지, 동생은 아무 상처 없이 구해내졌다.
동네 어른들은 가끔 우물물을 모두 퍼내어 깨끗이 하고 마을 사람들이 마음 놓고 먹을 수 있게 하였다. 우리 사 남매도 그 물 덕분에 잘 자라서 모두 건강한 사람 구실을 하는데 가정마다 수도가 시설되더니 이제는 메워져 채소밭이 되었다.
고향마을에 가면 가장 먼저 눈에 뜨이던 샘물과 우물을 볼 수 없어 마음이 아프다. 샘물과 우물은 이제 전설로만 전해질 것 같다.
우물
향나무 옆 큰 우물가 두레박
물 긷던 댕기머리 꽃분이
옹기자배기에 보리쌀 씻던
쪽진머리 아낙들 그립다
첨단도시 된 고향마을
땅속 깊이 숨어버린 우물
흔적찾아 서성이는 발길
그리움 달랜다
첫댓글 '우물가 정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여인들이 우물가에 모여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참 아름답습니다. 내 은사님은 비너스의 탄생을 보는 것 같은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한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물'이란 단어만으로도 마냥 어린날의 향수를 불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