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조약(乙巳條約, 1905년 11월 17일)은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로 체결한 조약이다.[2] 대한제국의 외부대신 박제순과 일본 제국의 주한 공사 하야시 곤스케에 의해 체결되었다. 불평등 조약임을 강조하기 위해 을사늑약(乙巳勒約)으로도 불린다.[3][1]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905년 7월 가쓰라태프트밀약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일본의 한국에 대한 종주권을 인정받았으며, 8월에는 제2차 영일동맹조약을 통해 영국으로부터도 한국에 대한 지도 감리 및 보호의 권리를 인정받은후,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이 조약을 강제하여 체결하였다.[2][1] 1965년에 박정희 정부와 일본 정부는 한일 국교를 정상화하는 한일기본조약의 제29조를 통해 이 조약이 '이미 무효'임을 상호 확인하였다.
체결 당시에는 아무런 명칭이 정해지지 않았으며 대한제국이 멸망한 후 조선총독부에 의해 편찬된 고종실록에는 한일협상조약(韓日協商條約)이라고 기재되었다. 을사년(1905년)에 체결되었기 때문에 을사협약(乙巳協約), 을사5조약(乙巳五條約), 또는 불평등 조약임을 강조하는 목적으로는 을사늑약(乙巳勒約)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일본어로는 보통 제2차 일한 협약(일본어: 第二次日韓協約 다이니지닛칸쿄야쿠[*]) 또는 일한보호협약(일본어: 日韓保護条約 닛칸호고조야쿠[*])이라고 부른다.
복등화는 음밀히 행하여지는 복심 즉 밀약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갑진년에 러일 전쟁 승리에 자신감 조건이 완성 되었다면
조약은 한발 더 나아간 실질적인 결과로 볼 수 있다
다시 60년뒤 계묘 금박금의 소생인 박정희가
을사년에 조약 무효를 확인했던 것 또한 같은 이치다
을사 오적 또한 같은 이치로 해석합니다
일본이 을사조약으로 자국의 영향력을 확장하려 했다면
을사 오적 또한 그 목적이 자국에 있었다면
을사 오적이 아닌 을사 영웅으로 불리웠겠습니다
권한이 큰 자리에 있는 사람일 수록 그 뜻 또한 그릇의 크기에 따라서
나라를 팔수도 구할 수도 있습니다
글로리, glory
명사
- 그림자광륜.
더 글로리라고 송해교 주연 드라마가 요새 인기입니다
첫 장면에서 내 꿈은 이제 너야 라고 발언하는 것이 복등화와 비슷하다고도 생각했습니다
드라마속 주인공의 상처가 바로 서로를 연결하는 계기로도 볼 수 있겠죠
모든 역사도 명리도 모두 상대가 존재합니다
사주가 스스로 홀로 작동하는 법은 없습니다
2024~25년에 또 복등화가 찾아옴니다
물론 지나난 긴 세월을 거쳐야만 현실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겠지만
올해 卯에서 癸가 생하듯 무엇과 연결되는지 살피고
이듬해에 어떤 뜻을 품는지 살피고 결정되는지
재미있게 구경합시다
첫댓글 명리학도 음양오행도 알록달록한 세상과 같습니다 그 맛을 모르면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학문이기도 합니다
더글로리에서 명대사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