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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짜유기박물관 |
못난 님들
애인 없는 사람은 앞으로 진입금지
ㅎㅎ
20여분 걸어 보세요
넘어 가지 않은 여자 인간이 아닙니다요.
저?
물론 경험 있슴다.
북지장사
노스님. 노보살님이 참 좋으신 분이었는데.
팔공산에 산재한 수많은 사찰들은 각기 나름의 개성을 지니며 불자들과 관람객들이 찾고 있다. 예를 들자면 동화사는 많은 산내암자를 거느린 교구본사로서의 위상, 파계사는 조선시대까지 대표적 왕실의 원찰이었다는 점, 부인사는 고려시대 초조대장경을 봉안했던 점, 관암사는 갓바위부처님과 가까이 있으면서 관련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 등 다양한 모습으로 불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팔공산의 사찰들은 그 명성에 걸맞게 기도처를 뛰어넘어 문화유산이자 관광자원으로까지 활용되고 있다. 팔공산이 팔공산이라는 이름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바로 이러한 불교문화유산이 온전히 맥을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팔공산의 유명한 지장기도처인 북지장사는 팔공산의 여타 전통사찰과 달리 비교적 작은 사세로 밖으로 뻗어나가기 보다 안으로 갈무리하듯 내실을 기하며 맥을 이어온 사찰이다.
북지장사는 팔공산의 여러 고찰로 향하는 쭉쭉 뻗은 도로가 아니라, 아직도 승용차 1대가 겨우 다닐 만한 굽이굽이 거친 길의 끝에 자리하고 있어 선뜻 걸음을 내딛기가 힘이 들다. 그러나 그러한 어려운 교통편 덕분에 한 때 폐사지였던 북지장사가 수려한 자연경관과 아울러 오롯한 사격을 그나마 유지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대구의 달성 가찰의 남지장사와는 단지‘지장사’라는 사명이 같아 구분하기 위해 이름이 지어졌을 뿐 두 사찰과의 관계는 특별한 것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지장사에는 보물 제805호인 대웅전과 더불어 대구광역시유형문화재 제6호인 삼층석탑 2기과 제15호인 석조지장보살좌상이 자리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또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북지장사 지장보살도‘ 역시 사격을 더해주는 귀중한 성보이다.
한때 여러 부속 암자를 거느리기도 했던 북지장사는 안타깝게도 19세기 초 동화사의 부속암자로 편입될 만큼 사세가 기울기도 했다. 그러나 끊임없는 중창불사의 노력과 함께 불법 홍포의 의지가 지금의 북지장사를 존재케 했으며 곧 옛 대웅전 자리에 대웅전 불사를 시작해 삼국유사에 기록됐던‘공산 지장사’의 명성을 이어갈 계획을 앞당길 예정이다.
무릇 ‘지장(地藏)’이란 땅에 숨겨지고 감추어진 보물과 같은 모체와 같아서 어떠한 탁한 것이라도 한번 이 땅의 품 속을 거치면 새로이 청정한 생명을 잉태하는 법이므로 지장보살과 인연이 지중한 북지장사 역시 이제 새로운 기운과 복덕이 넘쳐 흐를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관람 포인트]
1.원래는 지장전이었던 현재 대웅전의 내부가 정자의 가구수법과 유사해 매우 특이하다. 또한 대웅전 내에 모셔진 석조지장보살좌상은 약 50여년 전 경내에서 출토된 것으로 거의 완전 형태의 고려시대 불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2.또 하나의 성보인 3층 석탑 2기는 동탑과 서탑으로 불리워지고 있는데 도굴꾼에 의해 무너진 것을 복원해 놓은 것으로 신라시대 유행했던 쌍탑의 형식을 띠고 있어 눈길을 모은다.
3.북지장사는 찾아들기가 쉽지 않은 만큼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리하고 있다. 특히 비탈진 길로 오르는 계곡이 팔공산에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오염되지 않은 청정수를 자랑하고 있으며 한여름에는 입 소문에 의해 이 곳을 찾아 쉬어 가는 관광객이 더러 있을 정도다. 또한 산령각 주변의 대숲과 수령 300년의 감나무, 수중생물이 살고 있는 작은 연못 역시 좋은 휴식처이다.
대구광역시유형문화재 제6호 북지장사 삼층석탑은 구 대웅전 터를 바라보고 서있는 쌍탑으로 도굴꾼에 의해 무너져 있던 것을 1981년에 복원한 것이다. 동서 쌍탑의 형식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북지장사가 신라시대에 유행했던 쌍탑식의 가람배치를 하고 있었음을 짐작 할 수 있다. 동서 두 탑이 동일한 수법이지만, 규모는 동탑이 조금 크고 서탑이 동탑 보다 마모가 심하다. 1996년 발굴조사 때 탑 지대석 부근에서 사리공양구인 소탑편(小塔片)이 소량 출토됐다.
이 석탑은 지대석을 갖춘 석탑으로 상대 면석까지 여러 장의 석재로 구성되다가 상대 갑석부터 1장의 석재로 부재를 구성하고 있다. 하대석 부분은 하대석과 하대 면석이 각 1장의 돌로 구성되어 있다. 하대 갑석은 2장의 돌로 구성됐으며 상면에 면석을 받기 위한 2단의 받침이 있고, 모서리에는 부연이 모각되어 있다. 탑신석은 모두 양 우주(隅柱)만을 모각한 형태이다. 옥개석은 5단으로 되어 있으며 상면에는 탑신석을 받기 위한 2단의 받침이 표현되어 있고, 전각부는 날렵한 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상층으로 가면서 크기가 급격히 체감되고 있으며 낙수면의 경사가 급하여 경쾌한 느낌을 보이고 끝부분의 반전이 탄력적이다.
석탑은 옥개석의 전각부가 날렵한 점과 각층의 비례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점에서 9세기대의 작품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상대 갑석의 하부 부연이 곡선을 이루는 점 등으로 보면 통일기 신라시대의 탑을 모방한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화강암으로 된 북지장사 석조지장보살좌상은 대구광역시유형문화재 제15호로 대웅전 뒤쪽 땅 속에 묻혀 있었는데 약 50년 전에 폭우로 인해 발견됐다고 전한다. 대웅전으로 옮겨놓을 때부터 대좌 및 광배석 등은 없다고 하고, 오랜 세월동안 땅속에 묻혀 있었기 때문에 파손된 부분이 거의 없고 색깔도 순백에 가까우며 조각상태 또한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현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이 불상은 머리는 민머리이며 왼손은 가슴 앞까지 들어올려 보주를 얹고 있고, 오른손은 촉지인 형태로 내려놓은 전형적인 지장보살의 모습이다. 얼굴은 계란형인데 초승달처럼 표현된 눈썹의 선은 아래로 그대로 이어져 코와 연결되었으며 눈은 반개(半開)하였고 입은 작게 표현되었다. 귀가 크며 전체적으로 온화한 표정을 하고 있다. 짧은 목에는 삼도가 있고 통견의 법의는 두껍게 표현되었으며 법의의 옷주름은 가늘고 약하게 조각되었다.
가슴에는 내의의 선이 보이고 상체는 당당한 편이다. 결가부좌한 하체는 양 무릎이 넓고 높게 표현되어 안정감이 있어 보이고 양 무릎 사이에서 부채골 모양으로 퍼진 옷주름의 표현은 형식화되었다. 경직된 손, 발의 표현이나 형식화된 옷주름 등으로 볼 때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스님을 종처럼 부려먹었던 기록.
잊지 말자고. 다짐에 다짐을 ... |
뒷 모습이 참 아름답지 않나요?
14명이 동참 했거든요.
아 ~~
이제 총무 물러 나도 되겠슴다.
숨 한 번 다잡고,
아득히 염불암이 보입니다.
예전에 제가 올린 염불암 글이 있군요.
능선에서 바라본 염불암
동화사 마애불 답사기는 여러번 올려 문화재청과 전통사찰정보로 대신한다.
거대한 화강암(花崗岩)의 서쪽면에 위치한 이 불상(佛像)은 높이 4m의 선각(線刻)으로 된 여래좌상이다. 천상세계(天上世界)에 있음을 나타내는 운문(雲紋) 위의 앙련연화좌(仰蓮蓮華座)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하고 있고 머리는 소발(素髮)에 육계(肉계)는 작은 편이다.
두 눈은 선각으로 가늘게 뜨고 있으며 코와 입은 두툼하게 나타내고 입가에는 약간의 미소를 띄고 있다. 얼굴의 둔중함과 기형적인 조각수법 등으로 이례적(異例的)인 보살상이며 깊게 팬 옷주름이 양무릎을 덮어 좌우 연화좌의 선각과 잘 어울리는 조각수법은 희귀한 예라 할 수 있다.
또한 미간(眉間)은 뚜렷하지 못하여 남쪽 불상과는 다른 인상을 주고 있다. 연화좌의 높이에 비해 양무릎이 넓어 균형은 잡히지 않고 있으나 안정감을 보이고 있고, 특이하게도 반나형(半裸形)의 형식화된 선각이라도 연화좌의 정교한 수법과 도식화된 조각수법이 주목되는 작품이다.
보살상은 높이가 4.5m이며 법의는 하부로 길게 흘러내려 양무릎이 노출되지 않고 있다. 부채꼴의 보관(寶冠)을 쓰고 두 볼과 턱은 퉁퉁하여 둔중감을 나타낸다. 입과 코 사이의 인중이 붙어 있는 듯하여 기형적인 인상을 주고 있다. 오른손은 복부(腹部)에 평행으로 들어 엄지와 약지로 보상화(寶相化)를 잡았는데 꽃잎은 그 위의 보관까지 광벽(光璧)에 뚜렷이 조각했다.
보살좌상은 4.5m에 달하는데 보살좌상의 법의가 눈길을 끈다. 대개의 보살상들은 천의와 군의를 몸에 걸치는데 반해 이곳의 보살상은 법의를 우견편단으로 걸치고 있기 때문이다.
얼굴의 둔중함과 기형적인 조각수법 등으로 이례적(異例的)인 보살상이며 깊게 팬 옷주름이 양무릎을 덮어 좌우 연화좌의 선각과 잘 어울리는 조각수법은 희귀한 예라 할 수 있다
동화사에 딸린 암자인 염불암 안마당에 서 있는 탑으로, 원래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청석탑이란 벼루를 만들던 점판암을 이용해 만든 탑인데, 이 탑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바닥돌 이외에는 모두 이 재질의 돌이 쓰였다. 탑은 3단의 바닥돌 위에 쌓아 놓았는데, 세울 당시에는 기단(基壇)과 탑신부(塔身部)의 몸돌들이 있었을 것이나 지금은 10개의 지붕돌만이 포개진 상태이다.
지붕돌은 파손이 심하여 곳곳에 작은 돌을 괴어 놓았는데 그 모습이 안쓰럽다. 지붕돌은 밑면에 2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윗면에 느린 경사가 흐른다. 또한 두께가 얇고, 네 귀퉁이에서 곡선을 그리듯 한껏 들려 있어 경쾌한 멋을 이끌어낸다. 지붕돌의 비례는 그리 아름답지 않으나, 넓다란 바닥돌 위에 세워 놓은 작은 규모의 탑으로서 안정감이 느껴진다. 청석탑이 널리 유행하던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측된다.
높직한 절벽에 새겨진 이 마애불상은 하늘에서 막 내려오는 듯 나는 구름을 탄 개성있는 모습이다. 얼굴은 부피감을 느낄 수 있는 비교적 풍만한 모습이며, 이목구비(耳目口鼻)도 뚜렷한 편이다. 안정된 비례, 양감(量感)있는 체구, 다소 굴곡있는 신체표현,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두 손, 조밀한 통견(通肩)의 불의(佛衣) 등은 무척 세련된 양식을 보여주고 있어서 8세기 불상의 면모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화려한 연꽃대좌나 광배(光背)의 번잡한 불꽃무늬, 밀집의 옷주름이나 신체형태에 나타난 약간의 형식화(形式化) 등에서 9세기 이후의 통일신라(統一新羅) 하대(下代)의 양식적(樣式的) 특징도 엿보이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이 불상은 오른쪽 발을 쑥 내민 유희좌적(遊戱坐的)인 대담한 자세, 활활 타오르는 듯한 불꽃무늬, 힘차게 비상(飛翔)하고 있는 구름 등의 표현에서 활기차고 생동감 넘치는 뛰어난 불상으로 당대(當代)를 대표하고 있다.
2009.11.21 |
오늘은 텅 빈 팔공 CC
도인 도병기
오늘도 맨발로.
동화사도 아련하고.
그래도
하심下心
하심입니다요.
늘 비우는...
주대장도 즐겁고
영희는
간만에 뒷동산 산보 코스라네요
ㅎㅎ
옥자
태어나서 첨 산행이라는 군요
옥희
언제나 곁에 있는 동반자.
노적봉
이제 멀지 않을 듯
시산제.
유세차 신묘 2011년 2월 26일...
올 한해도
무사한 산행과 우리들의 건강을 빌며
아름다운 산하를 즐겁고 유쾌하게 산행할 수 있도록
산신령님
저희들이 마련한 작은 정성이오니 맛 나게 드시고
굽어 샆펴주시옵소서
음복
그래야지요 복은 나누어 가져야 되겠지요
노적봉
문필봉
그리고
성주에서는...
갓바위가 손에 잡힙니다.
선본사
갓바위를 뒤로하고
월항산 참외
달콤하기 그지 없더군요
여기서
도병기. 이재길은 다시 북지장사로 하산
참 든든한 친구
경상북도 경산시 팔공산 남쪽 관봉(冠峰)의 정상에 병풍처럼 둘러 쳐진 암벽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좌불상이다. 관봉을 ‘갓바위’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것은 이 불상의 머리에 마치 갓을 쓴 듯한 넓적한 돌이 올려져 있어서 유래한 것이다.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뚜렷하다. 얼굴은 둥글고 풍만하며 탄력이 있지만, 눈꼬리가 약간 치켜 올라가 있다. 귀는 어깨까지 길게 내려오고 굵고 짧은 목에는 3줄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표시되어 있다. 다소 올라간 어깨는 넓고 반듯해서 당당하고 건장하지만 가슴은 평판적이고 신체의 형태는 둔중해진 듯하다. 투박하지만 정교한 두 손은 무릎 위에 올려놓았는데, 오른손 끝이 땅을 향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과 유사한 손모양은 석굴암의 본존불과 닮았다. 그러나 불상의 왼손바닥 안에 조그만 약합을 들고 있는 것이 확실해서 약사여래불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는 4각형인데 앞면과 옆면으로 옷자락이 내려와 대좌를 덮고 있다. 불상의 뒷면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암벽이 광배의 구실을 하고 있으나, 뒷면의 바위하고는 떨어져 따로 존재하고 있다.
풍만하지만 경직된 얼굴, 형식화된 옷주름, 평판적인 신체는 탄력성이 배제되어 8세기의 불상과는 구별되는 9세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천년을 지켜왔다.
오랜
아주 오랜 그날 부터
지금까지.
잊지 말자
할머니, 어머니의 신심을
우린
그 곳으로부터 시작했으니까.
하산
용수동 미나리 밭
우아한 파뤼!!!
사실은 힘들게 자리했답니다.
웰빙의 물결은 이제 한적한 산골을 저자거리로 변모시켰답니다.
창숙이가 준비한 쇠고기
고기도 맛났지만
창숙이 맘이 더 이뻣지요
재길이가 가져온
김치.
금삼첨화였답니다.
없어서
못 파는 미나리
우리나라 좋은 나라.
비빕니다.
요렇게
우리
오래 함께 하자.
많은 부분을 공유하는 우리들
지켜주는, 동행하는
바라지 않고
베풀 수 있는. 그런 친구로
옥희표 비빕밥
어찌
저리 이뿐지.
어라 사진이 왜이래?
정겹기도 하지.
고향 참외. 사과로 후식을 즐기고
친구야
바로 여기란다.
내려다보면
삶
인생
그렇지 않나요?
용수동 당산
늘
의지하고픈
우리는 나약한 존재 잖아요.
대구의 뒷골목
울컥~~~
어쩌면
우리 모두의 심성 아닐까요?
이제는
돌아보아야 하는......
퐁당퐁당 3부 돌림 노래처럼
2011.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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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아!!!
3월 산행은 영덕 칠보산 이란다
하산 후
축산항 대게도 맛보고
함께 하자!!
첫댓글 두서 없이 순식간에 올렸다. 종구 멜 오면 사진 추가 할게!!
고단할텐데, 이시간에....
눈물의 산행후기를 언제쯤 쓸까나??
나 그날 넘 힘들어서 울고 싶었거든....
시산제 사진 몇 장 추가하엿습니다.
미나리.삼겹살.소주.맥주.막걸리. 산행후 먹는맛 지금 입에서 군침이돈다.
꼭~ 함께 산에가고 싶어는데. 작은딸 고려대 기숙사 입실시키려고 서울가느라.
우와~~ 고려대라?? 축하드리고요.
거기를 백번 먼저 가셔야죠...고러나, 고날의 미나리는 다시 몬 묵어 볼끼야요..ㅎㅎㅎ
중채야, 축하한다. 똑똑한 딸 뒷바라지 잘 하거래이
매월 읽는 산행후기지만 병기의 산행기는 정말 재밌다.
호젓한 소나무 숲길에 마음이 간다.
한번 걸어보고 싶은 데 같이 갈 사람이 없구나.
2월에는 미나리 3월에는 대게 28산악회가 테마가 있는 산행으로 나날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3월에는 팔각산으로 변경 할것을 제안합니다. 팔각산에 대해서는 자료를 올리겠습니다
참 멋진 산행입니다. 아! 그 곳에 가고 싶다.
초청할까요? 그럼 아마도 모두가 좋아라할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