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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Mom)
치강(齒腔)
2011년, 난 처음으로 치강(齒腔)을 잃었다. 치강은 이빨 안에 물렁한 마그마처럼 존재하는 신경 덩어리로서 腔자는 ‘빈고기 강자’다. ‘이빨 안의 빈고기’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치강은 이빨 안의 또 다른 이빨인 셈이다. 흔히 이빨을 씌우기 전에 신경을 파내는 것을 신경치료라고 하지만, 면밀히 따지자면 이빨 안의 다른 이빨인 신경을 몽땅 발라내는 것이 신경치료다. 신경말살이다. 지인이었던 치과원장이 점심식사에 걸친 반주(飯酒) 탓인지 내 오른쪽 윗어금니의 치강을 덧 건드려 터지게 했고(이 때 그 즉시 그 원장 놈을 떠났어야 했다), 끝내는 약간의 충치가 있어서 때우기만 하면 될 어금니를 금으로 씌우게 되었다. 신경치료는 치료가 아니라 신경 자체를 말살하는 것이라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 신경을 긁어내며 그 놈은 감탄했다.
“저는요. 신경을 다른 의사들처럼 남기지 않고 잇몸 속까지 뿌리 채 긁어냅니다. 절대 재발이 없습니다.”
“김선생님의 이빨신경(齒腔, 腔 : 빈 고기, 강)이 복숭아 빛으로 이십대 같습니다.”
그 놈은 그렇게 나의 치강을 칭송하고 달래면서 어느덧 의료과실을 얼버무렸고, 착한 나는 잘 이해하고 순응했다. 그런데 치료가 끝나갈 무렵 그놈이 갑자기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자기가 미안하니 그 대신 오른쪽 윗니 사랑니를 공짜로 뽑아주겠다고 제안했다. 속으로 의구심이 일었지만 서울대 치의대를 졸업한 그놈의 실력을 의심하는 것이 죄악 같아서 그만 사랑니 발치 무료 서비스를 허락했다(이럴수가). 미끈한 무다리처럼 잘빠진 멀쩡한 사랑니가 금세 발치되었다. 그 놈이 또 칭찬했다.
“김선생님의 사랑니는, 정말이지 이렇게 매끈하고 반듯할 수가…. 잘 생겼습니다.”
며칠 새 두 대의 생 이빨을 잃은 나는 정신이 없었다. 그 건강했던 사랑니는 불균형을 이룬 내 볼을 균형있게 보완하는 등 큰 역할을 했던 것이라는 다른 의사의 설명을 듣자마자 나는 혼절하고 절망했다. 가족들이 정신병자로 여기든 말든 나는 냉장고에 얼음을 얼려서 보관해두었던 사랑니를(2개월 만에 실종되었다) 꺼내서 마주보고 자주 눈물을 흘리며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또 가슴 아파했다. 누구를 탓하랴! 약 2개월을 심하게 우울증을 앓았다. 그 때 결심했다. 지금부터 내 몸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몸이 납득하고 동의하고 찬성해야만 치료하는 것이다. 내가 내 몸과 맹약한 후 발생한 첫 사건이 오른쪽 다리 골절이었다.
골절(骨折)
2013년 1월 9일 설 전날 밤에 난 다리가 부러졌다. 친구 의사와 진탕 술을 먹고 헤어진 길에 대리 기사를 불렀고, 주차장 인도에서 눈얼음이 눌러 붙은 대게 껍질을 밟고 지끈 미끄러지면서 낙상했다. 날카로운 통증보다 먼저 터져나온 찌~익! 소리가 골절을 의심케 했다. 대리기사는 다리를 부여잡고 신음하는 나를 뒷좌석에 처박아 놓고 외곽순환도로를 질주하여 평촌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 부려놓았다. 앳된 인턴들이 여러 장의 영상사진을 판독하고 골절인 것 ‘같다’고 진단했다. 전문의는 설 연휴에 출근하지 않기 때문에 3일후에 오든지 입원하든지 맘대로 하란다. 집에 가라는 얘기로 들렸다. 임시로 붕대를 감고 곧바로 귀가했다.
이튿날 설날 아침부터 뼈 병원 투어가 시작되었다. 꽤 유명한 정형외과 병원 3곳을 돌았다. 2명의 과장과 1명의 병원장이 수술을 전제로 한 입원을 권유하였다. 단순골절인지 분쇄골절인지 병자(病者)의 용어로 묻는 환자에게 그들은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1명의 마음 약한 과장님이 사진을 들여다보고 감탄을 했다. “어떻게 이렇게 골절될 수 있지?” 난 그 말끝을 재빨리 채트렸다. “골절선이 어떤 상태인가요?”. 순간 의사는 침묵했고 더 이상 말을 잇지는 않았지만 직감적으로 골절 상태가 경미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병원장은 수술과 입원을 거부하는 나를 진단도 하지 않은 채 내쫓다 시피 했다. 수술을 미루고 미적대며 결정을 못하다가 기어이 3일이 지났다. 난 여전히 기브스도 못한 채 임시방편 붕대로 감은 다리를 끌고 처음 응급실을 찾았던 대학병원의 정형외과 과장을 만났다. 그는 역시 서둘러 수술을 해야 한다며 입원을 강권했다. 골절선의 유무와 골절의 종류를 묻는 내게 그는 신경질을 냈다. 복숭아 뼈를 열고 안쪽으로 들어가 골절된 부위를 찾아야 한다고 꾸짖었다. 분쇄 복합 골절이란 뜻인가? 낙담스러웠다. 그리고 냉정해졌다. 고맙지만 다른 큰 병원으로 갈 테니 진료확인서를 써 달라고 했다. 대학병원이지만 2차진료기관인 그 병원의 과장은 절대로 써주지 않을 기세였고, 그런 그를 달래고 얼러서 진료추천서를 받아냈다.
낙담한 나는 큰 병원에 가기 전 잠깐 떠오른 얼굴이 있었다. 이수역 근처의 고석주 정형외과 의원 원장님이었다. 칠순에 가까운 나이지만 침착하고 꾸밈없는 그에게 한번 들러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는 평소 슬관절점액낭염으로 고생하던 나에게 수술보다는 그냥 그 물 덩어리를 매단 채 달래면서 평생 살라며 가끔씩 주사기로 물을 빼주던 분이었다. 수술하려면 전신 마취하고 무릎 관절을 뜯고 들어가 인대를 꿰매야 하는데 그래도 재발을 막기는 어렵기 때문이란다. 정형외과 전문의 고석주는 4만원짜리 진료비가 나오는 초음파를 통해 내 골절 상태를 진단했다. 골절을 당한 이후 처음으로 촉진을 받았다. 앞서의 의사들은 단 한사람도 내 골절부위를 관찰하거나 촉진한 바가 없다. 사진판독만으로 수술을 권했던 것이다. 고석주는 내 상태를 간단하고 명징하게 설명했다.
“뼈가 부러져서 어긋난 흔적은 없고 단순하게 사선으로 부러지면서 붙어있는 상태이니 기브스를 하고 3, 4주 정도 통원치료를 받으면 될 것 같다.”(고석주의 진단은 며칠 후 지인의 친절한 강권으로 어느 대학병원 정형외과를 찾아 진단받은 내용과 동일했다.)
수술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설연휴를 전후하여 일어났던 불운의 병원투어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난 마침내 안도했고 고석주 원장이 너무 고마워 바로 그 자리에서 특실 입원 신청을 하여 한 달간 입원치료를 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사실 나는 욕을 많이 먹었다.
“의사가 환자를 선택하는 것이지 어떻게 환자가 의사를 선택하느냐.”
“지가 뭘 안다고 수술을 거부하고 수술 안하는 의사를 찾느냐.”
그랬다. 난 정말 간절히 수술하지 않을 의사를 찾고 있었다. 내 몸이 그것을 원하고 있었고 나에게 자신의 상태를 필사적으로 알려줬던 것이다. 치강을 잃은 후 몸과 맹약한 것을 지키고 싶었다. 나는 대한민국 의료를 무조건 불신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내 몸에 대하여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 싶었을 뿐이다. 내 몸이 정말로 수술을 원했다면 거부할 이유가 없다. 2015년 지금 내 다리는 잘 치유되었다. 골절 전보다 더 튼튼해졌다. 요즘의 젊은 의사들은 촉진을 안한다. 고석주처럼 손으로 잡아 틀어서 어긋난 뼈를 맞추는 기술도 없다. 사진을 판독할 뿐 환자의 몸을 만지려들지 않는다. 오직 메스로 만지고 싶어할 뿐이다. 전국민이 수술대에 누워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슬관절점액낭염(Brusitis)
슬관절점액낭염은 슬관절 주위의 점액낭이 급성 외상이나 만성적인 외상, 급성 감염, 만성 감염 등에 의하여 염증반응을 일으키는 병이다. 급성 외상성 점액낭염은 압박붕대로 압박하며 초기에는 얼음찜질, 더운물 찜질 등으로 종창을 완화시킬 수 있지만, 만성적인 것은 수술적 제거술이나 항생제를 투여해야 치료가 된다. 이 병을 수년간 앓아 온 나는 후자에 속하지만 정형외과 전문의들은 수술을 권할 뿐 백약이 무효였다. 무릎 안쪽에 밤톨 만하게 생성된 낭종은 항생제를 투여해도 주사기로 뽑아내도 전혀 소용이 없었다. 낭종으로 인해 무릎을 꿇지도 못하고 가끔 통증을 일으키며 스트레스를 유발했다.
다리 골절이 치유된 후 난 이 낭종을 어떻게 할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어느 한 날 왼쪽 무릎에 박힌 낭종에게 말을 걸었다. 대화를 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 무릎아 미안하다. 네가 아픈 것은 내 탓이다. 그런데 네가 수술을 받기 싫어하니 당장 수술을 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무한정 기다릴 수는 없다. 낭종, 너에게 말한다. 앞으로 10년의 시간을 줄게. 10년 동안 차도가 없으면 그 때는 수술을 각오해라.”
그 날부터 다리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잘 펴지지 않는 무릎을 하루 스무 번씩 이완시켰다. 1년 만에 하루 100번으로 늘렸고, 2년째는 300번으로 늘어났다. 2015년 현재 내 무릎의 슬관절점액낭염은 일단 완치되었다. 의사 진단도 그러했다. 2명의 전문의가 수술하지 않으면 평생 달고 살아야만 할 것 같다고 진단한 낭종이 없어졌다. 물론 지금도 스트레칭은 계속되고 있다. 그저 10년을 기약했지만 2년 만에 스스로 치유한 내 무릎에 존경과 사랑을 보낼 뿐이다. 내가 어떻게 한 것이 아니고 몸이 저 스스로 이겨낸 것이다.
몸(MOM)
영월의 동강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상옥리 섭새강변 길을 따라 두어 시간 가면 동강 폭 65Km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어라연(魚羅淵)을 만난다. 물고기가 그물처럼 많은 연못이란 뜻의 어라연 일대는 급류가 U자로 꺾이면서 잦아들고, 그 품새로 기암괴석과 소나무 숲이 잦아든다. 그 아름다운 어라연이 동감댐 추진으로 수몰의 위기를 겪다가 김대중 대통령 때 국민과 시민단체의 반대로 겨우 수몰을 면했다. 어라연을 지나 물살을 타고 내려가면 옛날 떼꾼들의 애환이 담긴 ‘전산옥 주막 터’와 맞닥트리고, 물살이 거친 황새여울을 지나고 나면 매끈한 절벽과 신령스런 바위들을 마주 대하게 된다. 이곳이 예전 동강댐 예정지였다. 높이 98미터, 저수용량 7억 톤의 거대한 댐은 영월과 평창 일부와 정선을 수몰시키는 엄청난 규모였다.
영월 동강댐이 백지화된 이유는 비단 수려한 자연환경 때문만은 아니었다. 댐의 거대한 물줄기를 감당하기 어려운 지반의 특성이 변수였다. 바로 ‘동굴’ 때문이다. 영월에서 제천에 이르는 물길 산길에는 석회석 동굴이 산재해있고, 갇힌 물이 동굴로 스며들면 지반침하는 물론이고 어디로 물이 새는지 알 길이 없다. 강물 바닥에 퍼진 동굴을 따라 생성된 지하의 또 다른 거대한 동굴호수를 만나는 일은 댐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영월 동강댐은 국민과 언론과 그 마을 사람들이 결사적으로 저항하여 겨우 막아냈다. 그렇다. 동굴 얘기다. 동강댐에 비유할 수는 없지만 우리 몸에는 수없이 많은 동굴이 퍼져있다. 몸은 몸(BODY)이 아니고 몸(MOM)이라고 도올 김용옥은 강변했다. 그는 사람의 몸이 등심과 안심, 삼겹살과 팔다리 살로 단순 분류되는 것을 못견뎌했다. 몸의 수모를 참아내지 못한 김용옥은 50세가 넘어 한의학과에 입학하여 한의사가 되었다. 양의학에서 몸은 BODY이고 한의학에서 몸은 MOM인 것이다. 동서의학의 갈등과 엇갈린 시선은 몸의 동굴에 이르면 마침내 폭발하고야 만다. 양의는 동굴에 병이 들면 동굴 자체를 들어내거나 틀어막는 것을 치료로 여기고, 한의학에서는 죽어버린 동굴 전체의 기능을 천천히 회복시키는 것을 치유의 길로 여긴다. 몸에는 숱한 동굴이 있다. 간의 동굴에 물이 차면 간염이 되고, 폐의 동굴에 물이 차면 폐렴이 된다. 이빨의 동굴(齒腔)에 상처가 나면 치통이 발생하며, 슬관절의 굽어진 여울에 물이 차면 슬관절 낭종이 되고, 항문샘이 상하면 치루가 된다. 지방샘으로 가득한 피하지방의 동굴이 막히면 양성종양이 생긴다. 다리가 골절되면 가장 먼저 발목에서 발바닥으로 퍼져있는 정맥의 동굴이 죽은 피로 가득 차오른다.
현대 의학과 한의학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든 내 상관할 바 아니지만, 이제 겨우 무너져 가는 내 몸의 동굴들을 발견했고, 그 동굴이 무너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몸을 하늘처럼 섬겨야 할 것은 틀림이 없다. 그렇다고 산속에 들어가 솔잎을 먹으며 공중부양을 하려고 애면글면 떼쓸 생각은 또한 없다. 몸과 대화하고 하는데 까지 하고 그러다 안되면 수술대에도 눕고 그마저도 안되면 죽음을 받아들일 마음이 지금 가슴에 충일(充溢)하다. 내 나이 知天命을 훌쩍 넘은지 오래다. 노랫말 가사처럼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失戀)의 달콤함을 맛볼 수 있는 것도 아니요. 그저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돌아볼 뿐, 별 얘기해도 많이 부끄럽지는 않을 것 같아서 그 동안 탈나고 무너진 내 몸의 동굴얘기를 했다. “사람이 오거든 사람이 온다고 하지 말고 한울님이 온다고 하라.” 해월 최시형의 유언이다.
2015.12. 永泉
첫댓글 읽다보니 참 웃음이 터져나오면서 눈물이 찜끔 솟아납니다.
산업주의의 노예가 되어보는 우리 시대의 의료 산업을 새
삼 절실히 느낍니다. 소중한 생명이 한낱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
한 우리 시대 슬픈 초상을 다시 확인합니다.
글을 읽다보니 병원에는 요즘 웬만하면
수술 한다는 후두암 신문 기사가 생각나지만
영천님 그 뚝심도 대단합니다 변함 없는 끈기로 좋은글 계속부탁합니다
올해도 저물어갑니다 아름다운 마무리 잘 하시고
새해 좋은글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