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나
김 진 영
“진영아, 머리카락 좀 잘라!”
어머니는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들고 한숨을 내쉬신다.
내겐 긴 모발에 대한 선망이 있다. 수술을 위해 구레나룻과 뒷머리를 조금 밀었어야 했는데, 머리카락이 자라는 동안 마음에 내키지 않는 짧은 머리로 있어야 했다.
머리카락 일부가 짧은 것이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시간이 흘러 애써 길이를 맞춘 이후론 긴 머리 모양에 대한 집착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장발에 굵은 웨이브 파마해서 우아하게 다니는 것을 상상했다. 현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돌돌이 테이프를 굴리며 방과 거실을 바쁘게 다녔지만 말이다.
목표하는 길이만큼 머리카락을 길렀으니 인제 미용실 가는 것만 남았다며 달뜬 마음을 에둘러 가라앉히고 있던 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유튜브에서 어떤 남자아이가 모발 기부를 위해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을 자르는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 아이의 모습 속에 밝은 햇살이 비치는 것 같았다. 문득 본 거울 속 내 모습은 달랐다. 힘없이 축 처진 머리카락, 그걸 바라보는 나는 너무 못난이 같았다.
분명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의미 없는 집착,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긴 머리카락에 집착하며 놓치고 있던 것들이 하나둘 생각이 난다.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다고 걱정하는 부모님에게 투덜댔던 일, 짧은 헤어스타일이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언니에게 긴 머리가 더 어울린다며 우긴 일, 머리 좀 자르라는 친구의 말에 왜 길러야 하는지 단호하게 말했던 일이 떠오른다. 이 모든 게 다 관심이고 사랑이었는데 이걸 참견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모발을 기부하기로 하고 어머나 운동본부 홈페이지를 통해 소개 글을 봤다. 소개 글을 보는 순간 마음이 찡해졌다. 어머나 운동본부의 ‘어머나’란 ‘어린 암 환자를 위한 머리카락 나눔’의 줄임말로, 20세 미만 어린 암 환자의 심리적 치유를 도우려고 맞춤형 가발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문득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나도 머리카락을 일부분 밀었을 때 얼마나 신경이 쓰이고 스트레스를 받았던가. 커가는 아이들이라면 위축감과 충격으로 인해 더 마음이 아프진 않을까?
비닐봉지와 고무줄을 챙겨서 미용실로 향했다. 모발 기부를 할 거라서 25cm 이상 잘라 달라고 했다. 디자이너가 고무줄로 머리를 묶는다. 가위질하는 소리에 묶여있던 내 집착도 잘려나간 듯하다. 디자이너는 지금껏 일하며 모발 기부하는 건 정말 오랜만에 본다며 내게 좋은 일을 한다고 말해준다. 오히려 디자이너 본인이 설레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보물을 품은 것처럼 소중히 건네는 손길에 마음이 푸근함으로 차올랐다.
머리카락을 택배로 부친 후 홈페이지에 가입해서 모발 기부 사연을 읽어 보았다. 여러 사연이 있었다. 항암치료를 앞두고 모발을 기부한 사람, 입대하기 전에 모발을 기부한 사람, 아내와 아이와의 약속을 위해 끝까지 모발을 길러 기부한 직장인, 태어나서 지금까지 모든 모발을 기부한 어린이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따듯함을 보내고 있었다.
그날 저녁 부모님 앞에서 짧아진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어때요?”라고 하니 “훨씬 더 낫네!”라고 손뼉을 치신다. 그렇게 자르라고 노래를 불렀는데 안 자르더니 어떻게 자를 마음을 먹었냐는 말씀에 ‘어머나 운동’에 대해 알려 드렸더니 “어머나 좋네!”라고 하신다.
어머나! 제 헤어 스타일 잘 어울리죠? 다음에도 ‘어머나’ 하려고요! 의미 없는 집착이 아닌 나눔을 위해서 머리카락을 길러보려 합니다.
아이야, 네가 낫길 바라는 사람들이 많이 있단다.
조금만 더 힘내렴! 앞으로도 응원할게!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건강하길 바라며…….
첫댓글 진영 선생 잘 지내지요?
늘 따뜻하고 아기자기한 좋은 글 따뜻한 마음을 심어주네요. 빠른 쾌유를 빕니다. 어머나! 건강한 모습으로 뵙기를 바랍니다. 건강하세오.
닉네임이라서 누구신지 모르겠어요ㅎㅎ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요!!
이남순 선생님:) 우리 건강하게 만나요!!!
진영! 빨리 건강해지기를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