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기산 케른B리지○
-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독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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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고난이나 역경은 필수조건일지도 모른다. 어렵게 올라서는 길에 만나는 시원한 바람 한 줄기 만으로도 우리에겐 충분한 보상이 된다. |
자유를 꿈꾸는 많은 사람들은 길을 떠난다. 삶의 활력소를 얻기 위해 짧고 경쾌한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모든 일상을 접고 기약 없이 떠나기도 한다. 더러 고타마 싯다르타처럼 어리석은 중생의 업을 대신해 고행의 길을 자처하는 경우도 있다. 자유를 꿈꾸는 사람들은 새로운 길을 찾는다.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길에는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끊임없이 새 길을 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절대자유를 고집하는 사람은 고뇌하느라 오히려 자유롭지 못하다. 더 큰 자유를 꿈꿀수록 무언가에 얽매이게 되고 되려 고독해진다.절대자유와 절대고독, 어쩌면 그 둘은 태초부터 같은 몸뚱이를 지닌 샴쌍둥이였는지도 모른다.
- 같은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쌍둥이였으면 했다. 고교 시절 한 반 친구가 쌍둥이 언니랑 같이 아픈 걸 보면서 그게 그렇게 배 아플 수가 없었다. 엄마 뱃속의 열 달 시간까지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하나쯤 존재한다면 사는 동안 더없이 든든하고 행복할 것만 같았다. “우리 어떤 사이처럼 보이나요?”이경아(35세·케른산악회)·김정하(38세·매산악회)씨. 이름도 성도 나이도 생김새도 달라 비슷한 구석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운데 만나자마자 아옹다옹하는 둘의 모습은 쌍둥이처럼 보였다. “빨리빨리 하고 나 사무실로 들어가야 해.” “알어알어. 걱정하지 마. 얼마 안 걸린다니까.”
갈기산관광농원에서 1시간 넘게 죽치고 앉아 아침 봄볕과 노닐고 있을 무렵 나타난 두 사람은 불쑥 한 마디 던져놓고는 숨 돌릴 새도 없이 배낭을 챙긴다.멀쩡하게 출근해서 일하려는 사람을 전화로 꼬드겼다는 경아씨나 기다렸다는 듯 겨우 아침 조례만 마치고 몰래 빠져나왔다는 정하씨나 만만한 사람들은 아니다.여기 한 사람이 더 가세했는데, 24시간의 긴 근무를 마치고 아침 9시에 퇴근하자마자 한걸음에 산으로 달려 나온 김성인(31세·충북클라이밍연합회)씨. 그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북청주소방서 119대원이다. “어, 그러고 보니 다 누님들이네.”
서열정리 후 잠시 절망했지만 이내 “오늘 하루 막내가 잘 모시겠습니다” 씩씩하게 말하며 그는 방금 퇴근한 사람이라곤 도무지 믿기지 않을 만치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활짝 웃는다. 이 세 사람을 인도하기 위해 충북 청주에서 영동 갈기산까지 1시간 남짓 운전사 노릇을 자처한 김웅식씨가 관광농원 뒤 계곡길을 따라 올라가는 내내 한 피치 한 피치 케른B리지 코스를 설명한다. 성인씨에게 선등을 맡겨 놓고 도로 내려가면서도 그는 걱정스러운 듯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다. “괜찮아요. 이미 나 있는 코스라 해서 반드시 그 길만 고집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조금씩 다른 방법으로 간다 해서 나쁠 건 없잖아요.
” “맞아. 같은 바윗길이라 해도 손이나 발이 닿는 부분까지 같을 수는 없잖아. 사람마다, 갈 때마다 다 다른 길인 셈이지.”대기를 두텁게 짓누르던 황사가 살짝 벗겨지고 드러난 푸른 하늘은, 간만에 자연으로 소풍 나온 사람들의 기분을 한층 고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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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른B리지 종료지점에 선 삼십대 등반대. 왼쪽부터 기자·이정하·김경아·김성인씨. |
- 서른, 잔치는 지금부터다
취재진까지 포함해 30대 만으로 엮어진 다섯 명의 등반대는 더없이 경쾌한 기분으로 장비를 착용했다. “누나, 오랜만에 선등 한 번 해보지 그류?” “아냐, 오늘은 특별히 양보할 테니 마음껏 해보시지.” 암묵적으로 선등과 그 다음 순서까지 이미 정해진 상황인데 괜히 한번씩 더 주고받는 말은 불편하지 않은 사이에서만 가능한 의사소통법이다. 괜한 소리를 해가면서도 성인씨는 경아씨가 확보 준비를 마치기도 전에 벌써 로프 두 동을 앞뒤로 매달고 바위에 가 붙는다. “그냥 프리등반을 해도 무방할 것 같다”면서도 안전을 위해 철저하게 확보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119 대원의 습관이 돼버린 소임이다.
늘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는 직업을 가지고서도 여가를 틈타 다시 위험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정신세계 깊숙한 곳에는 자유에 대한 갈망이 또아리를 틀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 면에선 경아·정하씨도 못지않다. “그렇게 산에만 다니면 도대체 시집은 언제 갈 거냐?”는 부모님의 잔소리를 웃음으로 넘길 수 있는 것은 아직 그들에게 자유가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서른을 훌쩍 넘긴 두 사람 모두 딸 부잣집의 둘째딸, 독하기로 소문난 둘째딸들의 집요한 성격은 바위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첫 피치는 홀드가 좋은 슬랩이다. 왼쪽으로 살짝 감아 도는 10m 남짓 루트에 올라서니 판상의 홀드가 비스듬히 한쪽 방향으로 치우치며 흘러 손이 약간씩 미끄러진다.
손에 의지하지 말고 발끝을 확실히 디디고 서는 편이 낫다. 가뿐하게 종료지점 볼트에 모든 일행이 확보를 마치자마자 두 번째 피치 앞에서 양 갈래로 난 크랙을 사이에 두고 잠시 멈춰 고민하던 성인씨. 오른쪽 반침니 안쪽으로 박힌 하켄과 낡은 슬링을 발견하고서야 방향을 잡는다.“엄마야, 이거 어떻게 가라는 거야?” 약간의 오버행에서 소리를 빽 지르던 정하씨가 악바리 기질을 발휘하다 결국 슬링을 잡고 올라 마지막으로 소나무에 확보를 마치기까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촬영을 위한 고정로프 한 동을 빼고 나머지 한 동으로 네 사람이 등반을 하자니 지체되는 시간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아이고, 이러다 사무실 들어갈 수 있을라나 모르겠네.” 첫 고빗사위를 넘기고 여유가 생기자 잊고 있던 직장 생각이 난 정하씨. 그러면서도 우회하거나 되돌아갈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인다. 그렇게 더디 오던 봄은 어찌 그리 쉽게 자취를 감춰버리는지, 20도를 웃도는 더운 날씨를 탓하며 물만 벌컥벌컥 들이킬 뿐이다. 그냥 가도 괜찮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쳤지만 세 번째 피치 가벼운 페이스 등반 구간에서도 역시 119 대원 성인씨의 강력한 주장으로 로프가 설치되었다.첫 번째 봉우리를 무사히 넘고 일반 등산로가 횡으로 가로지르는 30여m를 걸어 마지막 고빗사위에 이를 즈음 목덜미를 스치는 바람 한 줄기. 남향의 루트를 오르는 동안 등 뒤로 내리쬐는 따가운 햇볕에 벌써 시원한 바람이 그리운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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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웃음 한 조각. 어리석은 중생이 누리는 찰나의 쾌락일지라도 우리는 기꺼이 받아들이려 한다. 5피치 종료지점의 경아씨와 정하씨. |
- 달콤한 인생을 위한 독배
얼핏 봐도 40m는 족히 넘을 큰 바위 앞에 섰다. 네 번째 피치는 케른B리지의 백미가 되는 침니와 크랙이 혼재된 구간이다. 직등으로 침니에 들어서지 않고 성인씨는 오른쪽 크랙으로 에둘러 7m쯤 위 소나무를 1차 확보 지점으로 삼았다. 거기서 잠시 루트를 살피더니 후등자를 직등으로 올릴 요량으로 소나무 너머로 로프를 던지려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자 혼자서 한참 실랑이를 벌인다. “누님, 자꾸 안으로 파고들지 말고 밖으로 나와 보도록 해요.”정작 본인도 처음이면서 성인씨는 후등자를 위해 꼼꼼하게 구간별로 체크했다가 적당한 등반 방법을 일러준다. 침니 안쪽의 홀드들이 괜찮은 편이었지만 긴 피치를 오르면서 이미 기운이 다 빠진 통에 잠시 숨을 고른 후 백앤풋(등과 발을 양쪽으로 떠받치는 자세)으로 올라섰다.
정하씨는 스테밍 자세를 유지하면서, 경아씨는 왼쪽 벽의 홀드만을 이용해 제각각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내 마지막 구간을 통과한다. 어렵게 해낸 등반일수록 뿌듯함도 커지는 법. 아껴 마시는 물은 더 시원하고, 초콜릿 바 하나로도 뱃속이 그득해진다. “도대체 어디에 걸린 거야? 다시 한번 던져봐.” “뭐라고? 잘 안 들려.” 다섯 번째 피치는 연등으로 쉽게 올라설 수 있는 구간이건만 정작 구간 길이가 긴데다 중간에 바위가 가로막아 로프 유통에 문제가 생겨 애를 먹었다. 등반이 끝나는 지점, 무덤 한 기를 지나 능선을 올라서니 푸른 금강 줄기와 시리게 마주 선다.언젠가 무시무시한 그림 한 컷을 본 적이 있다.
우물 아래로 뻗은 나무뿌리 중간쯤에 한 사람이 매달려 있고 우물 아래 바닥엔 독룡(毒龍)이 입을 벌리고 사람이 떨어지길 기다린다. 사방에는 네 마리 독사가 혀를 날름대며, 쥐 두 마리가 나무뿌리를 갉아먹고 있다. 우물 밖에는 코끼리가 날뛰는데 들판엔 불이 나 나무를 태우기 시작하고 나무에선 벌 떼가 쏟아진다. 그런데 정작 거기 매달린 사람은 머리 위에서 떨어진 다섯 방울의 달콤한 꿀을 받아먹으며 황홀한 표정이다. 불교의 ‘불설비유경(佛說譬喩經)’에 나오는 구절로 어리석은 중생의 상황을 빗대어 인생의 무상함을 이르는 가르침이다. 싯다르타처럼 중생의 업을 대신해 고행의 길로 들어설 마음가짐이 아닌 이상 우리는 행복한 중생이길 자처한다.
‘불설비유경’의 극한상황에서도 오욕(五慾)에 빗대어진 다섯 방울의 달콤한 꿀을 받아 마실 수 있다는 기쁨으로 산다. 바위를 오르며 만난 시원한 바람 한 줄기, 햇빛 한 움큼, 바위틈에 붙어있는 노란 꽃이 핀 작은 들풀 한 포기. 마른입에 털어 넣는 시원한 물 한 모금과 좋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웃음 한 조각.
어리석은 중생이 누리는 찰나의 쾌락일지라도 우리는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등반을 마치고 서둘러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그제야 “아 지금 사무실 들어가서 뭐라고 둘러대지?” 하던 정하씨의 걱정은 명멸하기 직전 가장 붉게 타오르는 저녁 해와 함께 침몰한다. 영혼이 자유롭고 싶은 사람들은 길을 떠난다. 돌아오게 될 걸 뻔히 알면서도 끝없이 떠남을 되풀이한다. 길을 떠나 또 다른 새로운 길을 찾고, 찾아내는 걸로 만족하지 못하면 새로운 길을 낸다. 달콤한 인생, 자유로운 영혼을 위해서라면 잔 그득 독배(毒杯)라도 채울지어다.
- 갈기산 케른리지 길잡이
충북 영동군 양산면 지내리에 자리 잡은 갈기산(585m)은 정상부에서 일렬로 보이는 바위모양이 말갈기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높지 않은 바위산 정상에 서면 북쪽으로 금강이 펼쳐져 있고 남쪽으로 무주까지 조망된다. 케른리지는 중부권에 리지 코스가 적은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충북 청주의 케른산악회 서병난·윤태동·윤칠용·김창호씨 등을 중심으로 개척했다. 개척 당시 첫 볼트 하나만 박고 인공확보물을 거의 쓰지 않았으나 스포츠클라이밍이 보급되면서 볼트 의존도가 높아지자 등반자의 위험을 생각해 다시 볼트작업을 했다. 초급자를 위한 A코스와 초·중급자용 B코스는 등반 완료지점에서 만난다. 산행 들머리가 되는 갈기산관광농원(대표 김태헌)에서 케른리지 개념도와 산행 안내도를 받아볼 수 있으며, 무료 야영도 가능하다. 갈기산관광농원 043-744-7600
- 등반 상세정보
케른B리지는 프렌드나 너트를 적절히 사용하면서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등반할 수 있도록 고정볼트 설치를 자제한 비교적 자유로운 루트다. 총 6피치로 되어 있으며 세 개의 암봉을 오르면 7피치의 케른A리지와 만난다. 2피치와 4피치를 제외하면 걷는 구간이 많고 어렵지 않은 페이스·슬랩 등반이 주를 이룬다.
- 1피치는 10m 슬랩으로 홀드가 양호하여 쉽게 통과할 수 있다. 1피치 완료지점 확보용 볼트 위에서 약간의 오버행으로 시작되는
- 2피치는 반침니로 5m 직벽을 올라 소나무에 확보한다. 50m 가벼운 페이스 등반 구간인
- 3피치를 지나 30여m 걸어가면 45m의 침니와 크랙이 혼재된 4피치에 다다른다.
- 4피치 중간에 볼트와 하켄이 하나씩 박혀 있으며 스테밍이나 백앤풋 자세로 올라 종료 지점의 쌍볼트에 확보한다.
- 5피치 중간 부분인 2봉의 낙석이 가장 심하니 주의해야 하며, 등반 라인이 휘기 때문에 로프 유통에도 신경 써야 한다. 15m 걷는 구간을 지나면
- 6피치가 종료된 지점에서 일반등산로를 오르면 무덤 한 기가 나온다. 무덤 바로 윗 능선에 올라서면 북쪽으로 금강줄기가 펼쳐지고 오른쪽으로 하산로 표식기가 서 있다.
케른B리지는 2인 1조 등반시 50m 이상의 로프 1동, 프렌드와 너트 1조가 필요하다. 특히 프렌드는 3, 4호 정도의 큰 사이즈가 있어야 하며 확보용 긴 슬링도 필요하다. 식수는 계곡물이 말라있는 경우 중간에 구하기 어려우므로 갈기산관광농원에서 미리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교통
경부·중부고속도로를 이용해 회덕분기점을 지나 비룡분기점에서 대전~통영고속도로를 탄다. 금산IC를 빠져나와 68번 지방도를 타고 영동방향으로 15분쯤 가면 양산팔경주유소가 나온다. 거기서 무주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501번 지방도를 타고 5분만 가면 오른쪽으로 갈기산관광농원이 있다. 갈기산 케른리지는 갈기산 관광농원 왼쪽으로 난 산길을 300m쯤 오르다 두 갈래 등산로 사이 계곡을 따라 가면 된다. 물이 없는 계곡을 10여 분 오르면 샘터가 있던 자리를 시멘트로 메워놓은 동굴이 있고 거기 케른리지 150m를 알리는 표식기가 있다. 30m 오르면 케른A리지 시작지점이고 120m 더 가서 막다른 바위에서 케른B리지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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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1,몽 2,문주 ~~
잘 댕기 오시고 재미난 이야기 많이 들려주이소..ㅋ 아 나도 가고 잡은데 ^^
잘 아물어 가고 있나?..^^~
아!~ 나도 가고지픈데,,,,,델꼬가세요. 심심해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