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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은 칠곡군 장날이라서 그곳으로 가려고 하였는데 몇 가지 일들로 발이 묶여서 칠곡에는 가지 못하고
경산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집을 나서기 전에 한통의 전화가 걸려 왔는데 청도에서 아내가 전도지를 받아
와서 연락을 했다고 하면서 아내와 지금 경산 중앙교회를 다니고 있는데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다며 신앙상담을
해오셨습니다. 그래서 상담을 잠시 해주었는데 답변을 해주셔서 감사하다며 고민하였던 문제가 해결 되었다는 듯이
연이어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번 계기로 전도를 할때에 더욱 전도지를 많이 사람들에게 줘야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전에 잠을 잤다가 오후에 집을 나와서 집에서 멀지 않은 번화가를 다니며 차량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곳에 중앙길 옆에는 낡은 아파트가 있고 팬스 밑으로는 할머니들이 채소를 팔고 계셨는데 그곳에서 말씀을
거의다 전할 즈음에 할머니 한분이 오시더니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궁금하셨는지 본네트 쪽을 유심히 쳐다보셨습니다.
원래는 스피커를 자동차 위에 설치를 하려고 하였는데 보기도 흉하고 관리하기도 힘들 것 같아서 스피커를
자동차 운전석 바로 아래에 좌측 우측으로 하나는 전면으로 하나는 뒤로 향하게 설치를 하였습니다.
예전에 타고 다녔던 소나타3 승용차는 차체가 낮아서 스피커를 아래에 설치할 수가 없어서 헤드라이트 밑에 있는
휀더 안쪽에다가 스피커를 설치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엔진소리와 휀더가 스피커를 감싸고 있었기 때문에 소리가
선명하지 않고 소리가 멀리까지 퍼지지 않았었는데 금년 초에 자동차 구입비로 후원받아 구입한 카니발 2 자동차는
차체가 높아서 자동차 아래에 스피커를 설치를 할 수 있었고 소리도 선명하고 멀리까지 들립니다.
그리고 무더운 날씨와 추운 겨울에 에어컨과 히터도 잘 나와서 복음을 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동차를 볼때마다 기쁜 마음이 들고 하나님의 응답 하심을 날마다 보고 체험하면서 자동차를 후원해 주신
동역자분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번화가를 지나서 아파트 단지와 주택가를 돌면서 복음을 전하는데 경북테크노파크 건물이 보이는데 건물과 터가
굉장히 컸습니다.
삼풍동을 지나서 이번에는 영남대학교 정문 앞으로 가서 주위에 많은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학교 앞
번화가와 원룸촌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는데 소리가 커서 그런지 내용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였습니다.
사실 영남대학교 원룸촌에는 직장의 회장이 사업을 하는 공인중개사 사무실이 있고 이번에 들어간 집을 소개해준
부동산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곳에는 고대 압독국의 고분이 현재도 남아 있어서 그곳에 간김에 조영동 고분군의 잠시 들렀습니다.
몇 개의 큰 고분이 보이고 앞으로는 경산시 평야가 보이고 저 멀리서 KTX 기차가 지나가는데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예전에는 경주와 다른 지역에서 커다란 무덤인 고분을 볼때에 옛날 사람들은 왜 저렇게 큰 무덤이 만들었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였는데 최근에 알게된 사실은 가야시대 때에 고분들은 기독교 종교와 관련이 있고
심지어 고분군의 일부는 그 당시에 목회자의 무덤이라는 가설이 있습니다.
고분군을 나와서 압량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이번에는 가까운 곳에 위치하는 화랑 훈련장으로 갔습니다.
사실 경산과 화랑 훈련장은 아주 의미있는 장소인데 이해를 돕기 위해서 신문기사 내용을 여기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경산시는 역사적으로 고대 오목천, 남천 등을 유역으로 형성된 압독국의 터전이자 신라시대에는 삼국통일의
전초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곳이다." - 대구신문 -
"압량유적(화랑 훈련장)은 깅유신장군이 압량주 군주로 있을 당시 백제를 공략하고 나아가 삼국통일을 달성하기 위한
전초기지이자 군사를 모아 심신을 연마하고 무술을 훈련시키던 군사훈련장이었다." - 압량유적 표지판 -
(경산=연합뉴스) 영남대 군사학과 신입생들이 처음으로 제복을 입고 학교 주변에 있는 '김유신 화랑훈련장'
(경북 경산시 압량면)에 섰다. 이들은 (중략..) 삼국통일의 과업을 이룬 신라 화랑의
훈련장 김유신 화랑훈련장을 찾아 4년 후 김유신과 같은 훌륭한 육군 지휘관이 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중략..)
삼국유사 등은 김유신이 638년을 전후해 지금의 경산시 압량면에 해당하는 압량주의 군주로 파견돼 군사를 훈련
시켰다고 전한다.(글 = 이강일 기자, 사진 = 영남대)
임당동 고분에서 자동차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압량면 압량리 179번지엔 신라 때 김유신 장군이
연무 훈련장으로 사용했다는 터가 있다. 대로변에서 골목으로 접어들어 폐업한 공장들을 여러개 지나면 김유신 장군 연무 훈련장에 도착할 수 있다. 경주가 아닌 경산에 김유신 장군의 흔적이 있다는 것에 놀랐지만, 이곳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없다는 게 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김유신 장군 연무훈련장은 인위적으로 흙을 쌓아 주변 지역보다 높게 했다. 병사들이 훈련했던 곳이라고 했다. 앞쪽은 더 높게 쌓았는데, 장군이 군사훈련을 지휘했던 곳이라고 사학자들은 추정했다.
흙을 쌓지 않은 주변지역까지 포함하면 연무훈련장이 4천여평에 이른다. - 사도 도마 성지순례 -
화랑 훈련장에 도착해서 주차를 하고 훈련장 언덕을 올라 갔는데 화랑 훈련장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니
수키로까지 바라볼 수 있었고 그곳에서 받은 인상은 구약시대에 높은 곳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것 처럼
그곳에서 야외 예배나 기도회를 가지면 좋겠다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정말 하늘과 맞닿은 느낌이였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기회가 되면 산에서 기도하는 대신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이곳에서 기도를 했으면 합니다.
화랑 훈련장 중앙에서 잠시 기도를 드리고 큰 길로 나와서 근처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대학생으로 보이는 주유원 청년에게 제가 만든 전도지와 동역자에게 받은 마지막때와 베리칩이 나오는 전도지를
주고 물티슈가 필요하냐고 물었더니 달라고 하여서 이형제님에게 받은 전도 물티슈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다니냐고 물었더니 그 지역에 있는 교회를 다니고 있다고 하여서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화랑 훈련장
조영동 고분군
그리고 오늘 충격적이고 간담이 녹아내리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장화진 선교사님에게 오랜만에 연락이 왔었는데 연락을 하게된 이유는 저번에 서울 전도여행을 갔다가
만남을 가졌을 때에 제가 다음날 간다고 한시간 이라도 빨리 연락을 주었다면 약을 먹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면서 지금
약 부작용 때문에 몸이 더욱 악화되어서 몸의 마비가 더 심해졌고 화장실도 못갈 정도가 되어서 암투병 중이신 70세가
넘으신 어머니가 오셔서 병간호를 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선교사님을 찾아 뵈려고 연락을 했을 때에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갈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는 가기전에 연락을 드리겠다고 말씀을 드렸던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선교사님 말로는 제가 금요일 아니면
토요일에 가는데 금요일에 갈 것 같다고 하면서 가기전에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7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하여서 호전된 모습으로 저를 만나려고 한동안 끊었던 약을 먹었는데 그것이 부작용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가 다음 날에 간다고 연락을 조금 이라도 일찍 하였다면 약을 먹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면서
4개월 동안 말도 못하고 혼자서 많이 서운했다고 하면서 그래서 연락도 자주 안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서울 전도를 위해서 목요일에 김해에서 출발을 하여서 대전에서 잠을 자고 금요일에 대전 전도를 했다가
금요일 저녁에 선교사님을 만나고 토요일에 서울 전도를 하려고 하였는데 그 당시에 아내와 떨어져 지냈기에 서울전도
여행을 가는 길에 아내와 자식들을 보려고 처갓집에 갔었습니다. 그래서 목요일에 처갓집에서 잠을 자게 되었고
금요일에 대구에서 전도를 하고 금요일 저녁이나 토요일 새벽에 서울로 가려고 하였는데 금요일에 뇌졸증으로 몸이
불편한 장모님이 아내와 헤어져 지내는 제가 갑자기 와서 충격을 받았는지 우리가 떠나고 혼자 계시다가 그만 넘어지는 바람의 팔이 부러졌습니다. 그래서 장모님을 모시고 처남댁과 병원을 다닌다고 정신이 없었고 병원에 입원을
시켜드리고 급하게 대구 전도를 하게 되어서 경황이 없었으며 저는 건망증이 심한데 그날 바쁘게 움직이느라 정신이
없어서 토요일에 간다고 일찍 연락을 드려야 되는데 그만 깜빡하고 그날 못간다고 6시에 연락을 드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선교사님 건강이 많이 악화되어서 일분 일초가 힘이 들어서 글도 많이 못올리고 댓글을 달기도
힘이 든다고 하시면서 10년 동안 인터넷 사역을 감당해 왔는데 아마도 올해를 넘기기 어렵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동안 저에게 많이 서운하고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선교사님은 저의 가정이 깨진 이유가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고 제가 노방전도를 열심히 하여서 특별하게 생각하였기에 약을 먹어서라도 만났던 것인데 그것으로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선교사님이 척추 측망증 질병만 가지고 있어서 걸어다니고 생활을 하는데 크게
어려움이 없는 것으로 알았기에 만자고 하였던 것인데 만약 선교사님의 몸 상태를 알았다면 만나자고 연락을 드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분별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글들을 올리는 선교사님을 보면서 조금 실망을 하였기에 만날 의향이
없었는데 서울전도를 가는데 찜질방이나 모텔에서 자기가 좀 그래서 교제도 나눌겸 해서 잠을 재워달라는
차원에서 처음에 연락을 드렸습니다. 그러다가 방도 없고 여조카가 있다며 안된다고 하셔서 그럼, 식사나 하자고
했던 거였습니다. 제가 선교사님을 무시하고 무례하게 행동하였던 것 같습니다. 선교사님은 이부분도 많이
서운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화중에 나를 더욱 힘들게 하였던 것은 지금 선교사님의 수입으로 집세를 내고 가족들이 생활을 하고 있는데
자신이 일찍 죽으면 가족들의 생계가 걱정이 되고 만약에 죽지 않고 온 몸이 마비가 되어서 앓아 누워 버리면 누가
자신의 똥,오줌을 받아줄 것인지 걱정을 하고 계셨습니다.
선교사님은 이 사실을 제가 알고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4개월 동안 혼자서 마음 고생을 하다가 이제야 연락을 한다고
하셨고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저는 상처는 받지 않았는데 너무 충격적인 현실에 어안이 벙벙하여서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리고는 연이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선교사님을 도와 줄 수 있는
중보기도를 하고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시는 성경구절을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너무 충격적인 일이라서 당황스럽고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지금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저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선교사님은 자신이 잘못 되면 제가 카페 관리를 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장화진 선교사가 없이 저 혼자서 카페를 운영을 하게 되면 카페는 어떻게 관리를 해야 되는지 고민과 구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많이 부족한 사람인데 현재 회원이 5300명이나 되고 회원은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이 거대한
카페를 저 혼자서 관리를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빛과 흑암의 역사 카페에 더욱 애착을 가지고 글도 올리고 댓글도 쓰려고 하는데 워낙 사람들 앞에서
나서는 것을 싫어해서 잘할 수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그리고 전도일기도 저의 카페에서만 올리려고 하였는데 앞으로는
빛,흑암에도 글을 간혹 올릴면 어떨까 합니다.
지난밤 주위 사람들과 특히 장화진선교사를 위해서 간절히 중보기도를 하였는데 마음이 괴롭고 슬프고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기는 장화진 선교사가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중보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주님, 저의 죄와 실수를 용서해 주옵소서.. 장화진선교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첫댓글 전도사님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형제님이 있어서 많은 힘이 됩니다.
빛과 흑암의 역사 운영을 위해서는 형제님 같은 인터넷 사역자의 도움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