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 인천항만공사 방문기
우수가 지난 이튿날 기회가 닿아 친구들과 한국의 하늘과 바다의 관문인 인천국제공항과 인천항을 둘러 볼 수 있었다. 대동강 물이 미처 풀리 지 않았는가? 2월 바람은 아직 끝이 매웠다. 그러나 햇살은 조금 도타웠고 윤기를 띄었다. 나는 두 관문의 가운데로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 그곳이 들려주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두 기관이 갖는 의미를 새겨 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내게는 유익한 나들이였고 소중한 체험이었다.
공항과 항구는 내게 언제나 약간의 설렘과 기대를 안겨 주는 곳이다. 그곳에 가면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피어오르기도 한다. 출국장문이 열리면 내가 보고 싶었던 사람이라도 불쑥 나타날 것만도 같다.
공항과 항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자리 잡고 있을까. 떠남과 돌아옴, 만남과 헤어짐이 있는, 그래서 늘 설렘과 아쉬움, 만남의 기쁨과 이별의 슬픔이 교차하는 곳이 아닌가. 공항 송영대에서, 비행기 트랩을 오르며 손 흔들던 시절은 이제 옛 추억이 된지 오래다. 부두의 이별도 마찬가지다. 항구를 서서히 떠나는 배를 한동안 바라보며 손수건 흔들며 뱃고동 소리에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별리의 장면도 이제는 모두 추억의 풍속도이다. 잠시 나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이런 저런 감상에 빠져들다 안내를 맡은 공항직원의 인사에 정신을 차렸다.
공항관계자로 부터 듣는 공항의 현황은 놀랍다. 언론보도를 통해 낯설지 않은 사실이기도 하지만 현장에서 직접 듣는 인천공항의 위상은 참으로 자랑스럽다. ‘세계의 관문, 한국의 자랑’이라는 평가는 허튼소리가 아님을 확인 하는 기분은 삽상하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 공항”(USA Today), "공항이란 바로 이런 것“(일본 산께이 신문)이란 해외언론의 평가는 6년 연속 세계최우수공항으로 선정된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국민이 자랑스러워하는 공항 *세계 공항이 배우고 싶은 공항 *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은 공항이 ‘인천공항의 꿈’이라는 설명에 가슴이 뿌듯해진다.
영종도 오성산 중턱에 있는 인천국제공항 전망대에 섰다. 국제화물운송 세계2위, 여객운송 9위라는 공항전경이 한 눈에 다 잡히지 않는다. 여의도 면적의 18배나 된다는 공항이 어찌 한눈에 다 들어오겠는가. 세계 84개 항공사 176개 노선의 항공기가 쉴 사이 없이 뜨고 내리는 세계적 공항이 지금 내 눈앞에 펼쳐져 있다니!
나는 전망대에서 뜨고 내리는 비행기를 보며 ‘여행의 기술’의 작가 ‘알랭드 보통’이 쓴 ‘공항에서의 일주일을’이란 에세이의 한 대목을 떠올린다. “혼돈과 불규칙성이 가득한 세계에서 공항 터미널은 우아함과 논리가 지배하는 훌륭하고 흥미로운 피난처로 보인다. 이곳은 현대문화의 상상력이 넘쳐나는 중심이다.” “만약 화성인을 데리고 우리 문명을 관통하는 다양한 주제들--테크놀로지에 대한 우리의 신앙에서부터 여행을 로맨틱하게 대하는 태도에 이르기 까지--을 깔끔하게 포착한 단 하나의 장소에 데려가야 한다면, 우리가 당연히 가야 할 곳은 공항의 출발과 도착라운지 밖에 없을 것 이다.”
작가는 1946년 설립된 영국 히드로 공항 <터미널 5>의 소유주로부터 초청을 받고 일주일간 공항에 머물면서 쓴 에세이집에서 이렇게 말했는데 만일 지금 인천공항에서 일주일을 머문 다면 과연 어떤 에세이를 쓸까 궁금해진다. 그는 “공항 터미널은 현대문화의 상상력이 넘쳐나는 중심이다.”고도 했는데 지금 내가 내려다보고 있는 저 인천공항이야말로 바로 그런 곳이 아니겠는가.
공항에서는 수많은 만남과 이별이 이루어진다. 공항은 여행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이기도 하다. 약간의 불안도 드러나고 어떤 기대와 희망도 묻어나는 현대건축의 백미인 공간이다. 나는 인천공항진입대로 중앙잔디광장에 설치돼있는 상징 조형물 ‘미래로의 비상’ Flying to the Future옆을 지나며 공항을 새로운 문화예술공간으로 만들어 여객에 감동을 선사하려는 <문화공항, Cultureport>을 지향하는 공항관계자의 의지를 읽는다.
어느 날 섬은 육지가 되었고, 개펄은 이제 하늘과 땅을 잇는 꿈의 공간이 되었다. 바다위에 세워진 공항, 세계적 명성을 얻은 공항을 내려다보며 갖는 감회가 어찌 예사롭겠는가.
을왕리 해수욕장 가는 길목의 식당 ‘기와집 담’의 점심, ‘버섯해물탕’은 특미였다. 식사를 마치고 나는 인천공항을 뒤로 하고 인천항으로 발길을 옮기면서 바다와 개펄위에 세계가 주목하며 놀라는 세계적인 공항을 건설한 관계자에게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국제여객터미널과 연안여객터미널, 8개부두, 바다수위를 조절하는 갑문, 컨테이너 전용인 남항등 인천항을 관리 운영하는 인천항만공사에 들어섰다. 인천이 어떤 곳인가. 6.25 한국전쟁. 풍전등화의 이 땅을 건져낸 불씨를 지핀 인천상륙작전이 펼쳐졌던 역사의 현장이 아닌가. 맥아더 장군이 내려다보고 있는 인천 앞바다에 다가서며 우리의 비극적 근대사가 가슴을 누른다. 극심한 조수 간만의 차이로 상륙작전이 불가능하다는, 그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 세계 전사에 남긴 가록의 현장은 이제 수출과 약동하는 한국의 세계로 뻗는 관문이 되어 일행을 맞이했다.
인천항만공사는 5대양 6대주의 나들목의 꿈을 실현시키는 ‘아암물류 1단지’를 운영하고 있다. 인천 신항이 완공되면 인천항은 환 황해권을 넘어 세계의 허브항으로 거듭 태어 날 것이다. 산업 원자재 물류단지. 컨테이너 전용 터미널등 8개 부두가 수출입의 전진기지의 역할을 밤낮없이 수행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대한민국 경제, 산업의 중심 항으로 기능을 다하고 있는 인천항에 들어서며 잔잔한 감동을 느낀다. 인천항만공사는 물류중심국가를 건설하는 모두의 나침반이 될 것임을 우리에게 약속 하고 있는 것이다.
쌓여있는 철재와 잡화, 수출용 중고차와 신차, 너무 잘 먹어 고도비만에 잘 날지도 못한다는 비둘기가 살고 있다는 양곡창고와 컨테이너 그리고 크고 작은 화물선은 수도권 물류중심기지 인천항의 분위기를 물씬 풍겨 주고 있다. 중국 칭따오를 오가는 카페리 ‘뉴 골든 브리지’호도 보인다. 제 8부두의 갑문 운영소와 갑문 홍보관, 갑문타워에서 갑문을 통해 입출항하는 선박을 보는 것은 처음 보는 광경이다. 갑문의 작동원리와 입출항 시뮬레이션은 갑문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인간은 자연에 순응하며 때로는 이를 극복하며 인류 문명사를 써 오고 있다. 조수간만 10미터라는 엄청난 자연의 장애를 갑문이라는 지혜로 극복하여 거대한 배를 연안 부두에 접안 시키는 현장을 보는 것은 놀랍다. 물은 항상 수평을 유지하고 바닷물은 달의 인력 따라 밀려 왔다 빠져 나가는 자연현상에 순응하며 이를 갑문으로 극복한 슬기로움의 현장에서 나는 무한히 작아진 자신을 만난다. 그것은 내게 깨달음의 선물이기도 하다.
바다와 항구!
내 쓸모없는 생각들이 모두/ 겨울 바다 속으로 침몰해 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도 용서 할 수 없는 마음일 때/ 바다를 본다/ 누구도 사랑하기 어려운 마음일 때/ 기도가 되지 않는 답답한 때/ 아무도 이해 못 받는/ 혼자임을 느낄 때/ 나는 바다를 본다/ 참 아름다운 바다 빛/ 하늘 빛/ 하느님의 빛/ 그 푸르디푸른 빛을 보면/ 누군가에게 꼭 편지를 쓰고 싶다/ 사랑이 길게 물 흐르는 바다에/ 나는 모든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다. <이해인의 겨울 바다>
“세상은 바다를 닮았다. 헤엄치지 못하는 자는 물에 빠진다.(스페인 속담)
“바다가 광할 할 수 있는 것은 하천의 물도 모두 받아들였기 때문이고 산이 높을 수 있는 것은 한 삽의 흙이라도 거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다와 같이 넓은 마음에는 복수심이 깃들일 수 없다.”(중국 속담)
누가 인생을 항해와 같다고 했을까. 갑문 조망대에서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인생을 생각해 본다. 내 쓸데없는 생각의 찌꺼기들을 던져 버린다. 나는 세상의 바다를 허우적거리며 목숨만 겨우 부지한 인생은 아니었는가. ‘한 삽의 흙’을 우습게 여겨 나는 이렇게 낮은 키가 되었는가. 산은커녕 언덕도 아니, 둔덕도 아닌 맨땅 그대로인가. 생각은 꼬리를 물고 상념은 깊어간다. 겨울 해풍에 정신을 차린다. 바다를 생활의 반려자로 삼아 바다와 더불어 살고 바다의 숨소리로 아기를 재우고 파도의 맥박으로 사랑을 이어온 사람들이 있는데 이 무슨 얄팍한 감정의 유희란 말인가. 갑문으로 들어오는 2만톤짜리 화물선이 내 감상을 덮쳐 버린다.
여객선부두에 가보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쉽다. 바다에서 밀려오는 것이 어찌 파도와 바람뿐이겠는가. 막연한 그리움 같은 것도 있으리라. 연안부두에서면 70년대 초 히트곡 ‘키 보이스’의 <정든 배>와 <바닷가의 추억>이 들릴 것도 같았는데. “달그림자 어리면서 정든 배는 떠나간다. 보내는 내 마음이 야속 하더냐. 멀어져 가네 사라져 가네 쌍고동 울리면서 떠나간다.” “바닷가에 모래알처럼 수많은 삶 중에 만난 그 사람 파도위에 물거품처럼 왔다가 사라져간 못 잊을 그대여...”
바다의 터미널 항구, 그것도 연안부두에 서면 저마다의 추억이 하나 둘 쯤 떠오를 수도 있었을 것을.
갑문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일몰광경이 끝내준다는 직원의 설명이다. 서해로 툭 떨어지는 태양을 보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일정이 못내 아쉽다. 그러나 어쩌랴! “인생에는 머물 항구가 없고 시간에는 기댈 연안이 없다. 시간은 지나가고 우리는 떠난다. 서둘러 이 짧은 시간을 즐기자.”는 ‘라마르틴’의 시도 있지 않은가. 나는 친구들과 인천의 명소, ‘차이나 타운’으로 발길을 돌렸다. 만찬이 기다리고 있지 않는가. 오늘의 마지막 짧은 시간을 마음껏 즐길 일이다. 위하여! 잔 높이 들어 삼킨 고량주의 감촉이 겨울 바다 바람을 닮았다. “항구는 인생의 투쟁으로 피곤해진 영혼에게 기분 좋은 거처다.”는 ‘보들레르’의 명언을 안주로 보태며 식당, 만다복(萬多福)에서 우리는 지친 심신을 달랬다. 바다와 하늘을 조금은 닮은 듯 한 친구들의 얼굴을 보며 오늘 하늘이 내려준 하루를 감사하며 헤어졌다. 어둠이 짙게 내린 인천역의 겨울바람이 발톱을 내밀기 시작했다.
첫댓글 "남자는배 여자는항구"문득 심수봉의 노래가 떠오르는것은 왠일이까 ?
남편은 왜 마누라 있는 집으로 잊지 않고 찾아 가는가? 라는 물음에 누군가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니까"라고 말해 그날 한바탕 웃은 일이 생각납니다.
'공항에서의 일주일을' 읽어보셨네요. 까치출판 사모님이 하는 청미래에서 나온 책이죠. 좋은 책 만드는 출판사!
미처 몰랐는데 좋은 책 만드는 출판사라니 관심 갖고 성원 해야겠네요.
인천공항을 드나들때마다 자긍심을 갖는건 우리 국민 모두의 마음일 것입니다. 인천공항 개항후 강동석 당시 사장의 자신있는 브리핑이 기억납니다. 요즘 한류 스타들처럼 인천공항은 분명 한국의 자랑입니다. 우보의 역작 잘 읽었습니다. 감동을 가지면서 --
역작이라니 듣기 민망합니다. 카페지기 미전을 응원(?)하는 일은 부실한 글이라도 카페에 많이 올리는것이 좋겠다 싶어 이것 저것 마구 올리고 있습니다. 잘 읽었다니 고마울따름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