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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세상 밖 어디로 나갈까 | |
⑪ 정재은 <고양이를 부탁해>: 스무살의 이유, ‘그 이상의 이유’
1. 영화의 제목에 의탁해서 헐겁게 총평하자면, 이 영화는 고양이를 부탁하고 세속 속으로 길을 떠나는 스무살짜리 여자애들의 방황과 희망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고양이’는 무엇일까요? 물론 이런 식의 자의적 해석은 조충소기(雕蟲小技: 서툰 솜씨로 남의 글에서 토막 글귀를 따다가 뜯어 맞추는 짓)에 그칠 위험이 크지요. 그러나 지영의 할머니가 내뱉은 말(“고양이는 영물(靈物)이야”)에 기대면 그들이 집을 나와 길을 떠나기 전에, 세파에 몸을 던져 그 통과의례를 완성하기 전에 맡겨둔 그것이 무엇일지 짐작되지 않을까요? 2. 1993년경에 정재은이 내 스터디 모임에 참석해서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이 남아 있습니다. 그 흑백 사진 속의 정 감독은 눈만 반짝이면서 한쪽 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영판 고양이군요! 3. 다음주에는 박찬욱의 <복수는 나의 것>(2002)을 같이 풀어보겠습니다.
태희는 아버지의 법에 등을 돌리고 부모의 집에서 나오려는 행위에 대한 ‘그 이상의 이유’를 구하려고 하지만, 그 이유를 구체화시킬 삶의 방향은 “가면서 생각”하려 할 뿐이다. 그는 분명하고 당당하게 반항하면서도, 그 반항에서조차 바로 그 스무살의 고비처럼 여전한 불안을 감출 수는 없다
청소년의 성장이란 ‘아버지의 법’(Loi du p<00E8>re)으로 대변되는 전통적 지배와의 갈등을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전통은 죄다 이데올로기와 도덕의 빗장을 걸어 그 내부의 허상(=빈 중심)을 볼 수 없도록 제도화되어 있지만, 우상파괴적 재치와 탈주적 호기심으로 희번덕거리게 마련인 청소년들은 세월을 기다리지 않고 전통을 무시하려고 한다. 어느 시대건 통으로 생략할 수는 없는 나름의 무게를 지니는 법이니 필경 ‘법고창신’(法古創新)하는 게 성장과 성숙의 이치이긴 하지만, 핵가족화한 개인들로서 시장 속에 떠밀려 다니는 시대에 여전한 아버지의 법으로 아이들을 잡아둘 수는 없다. 집을 하나의 세계, 심지어 우주로 표상하는 종교학자와 인류학자들이 적지 않듯이, 스무살의 성장기는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집을 나가는 일로,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집을 지으려는 고민과 방황으로 집약된다. 쌍둥이라는 콤비네이션으로 집을 지키는 비류와 온조나 자본주의적 도시의 코드에 온전히 올인하면서 세속적 성공을 노리는 혜주와 달리, 태희와 지영이가 집을 떠나는 장면으로 영화가 끝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실은 갓 스무살에 이른 이 여자들은 모두 제 나름대로 삶의 과도기를 ‘통과’하는 중이며, 또 어디론가를 향해 ‘이동’하고 있는 중이다.
이와 관련해서 태희의 대사는 각별히 새겨들을 만하다. “엄마 아빠 싫다고 울면서 집 나가는 것은 10대 때나 하는 짓이지. 건 너무 시시하잖아. 난, 그 이상의 이유를 찾겠다는 거지.” 다시 지영이가 “어디 갈 건데?”라고 묻자, 태희는 답한다. “가면서 생각하지 뭐.” 태희는 아버지의 법에 등을 돌리고 부모의 집에서 나오려는 행위에 대한 ‘그 이상의 이유’를 구하려고 하지만, 그 이유를 구체화시킬 삶의 방향은 “가면서 생각”하려 할 뿐이다. 그는 분명하고 당당하게 반항하면서도, 그 반항에서조차 바로 그 스무살의 고비처럼 여전한 불안을 감출 수는 없다. 그렇기에 영화 속에서 포착된 이들의 일상은 인과가 분명한 서사보다 오히려 그 불안과 호기심의 착종이 빚은 젊은 순간들 속에서 더 아름답다. 그래서일까, 정재은은 이렇게 변명해준다. “그 어떤 순간이 되더라도 그 아이들한테는 그 순간이 숭고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한편 어느 평론가도 스치듯이 지적했지만, 다섯명이나 되는 스무살 여자들의 성장통을 비교적 골고루 묘사하면서도 영화의 어느 구석에서도 성애(性愛)가 주제화되지 않는다는 점은 오히려 이 영화의 비평적 주제가 되기에 충분해 보인다.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한창 나이의 처녀들의 대화와 상호작용 속에서 성적 관심과 실천이 소재에도 오르지 않는 것은 대체 무슨 연유일까? 그 흔하던 얼치기 하이틴 영화들을 단번에 무색하게 만드는 완성도 높은 리얼리즘 속에서 성애적 갈등이 통째로 빠져버린 일은 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굳이 프로이트나 라이히 등의 지론에 동조할 필요조차 없이 청소년의 성장이 우선적으로 성적 형태를 띤다는 것은 상식이다. 통속적인 인성위상학에 의지해서 분별하더라도, 그 성장은 아버지의 법(초아자)에 대한 반항과 갈등, 그리고 현실(자아) 속의 순응과 자리매김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가장 두드러진 성장통은 자신의 성적 욕망(이드)을 둘러싼 신경증적 불안의 항상성에서 유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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