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금
첫 경험이다. 이렇게 큰 가방을 메어 보는 것도, 2박 3일 동안 산행을 가는 것도. 대학생이 되어 새로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설렜다. 처음에는 혼자 어택을 매는 것이 버거웠다. 나는 메는 것도 힘든데 한 손으로 드는 형들이 신기했다. 석남사에 도착해 마시면 미인이 된다는 물을 뜨고 본격적으로 출발했다. 로드 트래킹을 할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하지만 산 속에 들어와 가파른 곳을 걸으니 천식이 있는 것처럼 숨이 쉬어졌다. 웃으며 이야기를 하는 형들의 폐활량에 감탄했다. 처음으로 가진 휴식시간에 먹은 촉촉한 초코칩은 정말 맛있었다. 같이 출발했지만 바위를 오르는 게 쉽지 않아 뒤처져버렸다. 그때 난 천사를 보았다. 가방을 살짝살짝 들어주시고 잘 하고 있다며 격려해주셨다. 정말 감사했다. 가느다란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안개가 스며들어 있는 길을 걸으니 기분이 좋았다. 쉬면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예쁘게 펴 있는 꽃들 사이를 걸으니 꽃길을 걷는 기분이었다. 계속 비가 오고 종아리 근육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종아리가 괜찮아지니 그 다음은 허벅지였다. 순간 군대에서 훈련을 받다가 근육이 파열 됐다는 사람이 생각났다. 다행히 20분쯤 지나자 괜찮아졌다. 드디어 가지산 정상에 도착! 마치 태풍 속 독도에 있는 것 같았다. 비바람이 불고 추웠지만 해냈다는 사실에 뿌듯했다. 헤드랜턴을 켜고 내려오는데 미끄러져 발이 삐었다. 아프다는 생각보다 빨리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더 컸다. 한참을 내려와 저 멀리서 보이는 빛 한줄기에 벅차올랐다. 12시가 다 되어 늦은 저녁을 먹고 잘 준비를 했다. 침낭이 젖어 있었다. 세옥이형이 말려주셨다. 형 덕분에 포근하게 잠이 들 수 있었다.
5.6.토
개운하게 아침을 맞이했다. 간단한 아침식사 후 능동산으로 출발했다. 어제 삔 발이 아팠지만 일찍 도착하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걸었다. 대장형이 “어제 내려왔던 길이랑 같은 길이야”라고 말씀하셨다. 여유를 갖고 둘러보니 어두워서 못 본 연분홍 꽃들이 가득 피어있었다. 파란 하늘 아래 푸른 잎들과 활짝 핀 꽃들. 정말 아름다웠다.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새들까지 지저귀니 이게 바로 산의 매력이구나 싶었다. 산은 정말 신기하다. 가파른 길만 나오다가 숨이 차 힘들어질 때면 평지가 나와 숨을 고를 수 있게 해주고 진정이 되면 다시 가파른 길이 나온다. 나 자신도 신기했다. 대장형의 뒷모습을 보며 저기까지 어떻게 가..라고 생각 했는데 어느 순간 내가 그 자리에 와 있다. 천황산으로 가는 길에 어제 삐었던 발이 또 삐어버렸다. 대장형이 압박붕대를 감아 주셨다. 폐가 된 것 같아 죄송했다. 발이 자동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음대로 멈춰지지도 않았다. 억새가 잔뜩 자라 있는 탁 트인 공간이 나왔다. 영화 속에서 보던 장면이었다. 정말 예뻤다. 천황산 정상에 도착하니 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이런 풍경을 내 눈에 담을 수 있어 기뻤다. 내려오는 길, 드는 생각은 딱 하나였다. 내 관절은 안녕할까? 계단이 총 몇 개인지 궁금하다. 지칠 대로 지쳤고, 배가 고팠지만 행동식을 먹는 것보다 어택을 벗는 순간이 더 좋았다. 내 생에 가장 긴 1.8km를 내려와 텐트를 치고 밥을 먹었다. 11학번 여자 형들이 맛있는 것들을 사 오셨다. 11학번 형들 모두 친해보였다. 동기들끼리 졸업 후에도 서로를 챙겨주는 모습이 부러웠다.
5.7.일
발이 아파 잠을 설쳤다. 어깨와 다리는 물론이고 돌 때문에 등까지 아팠다. 어택 무게는 더 무거워진 것 같았지만 버스를 타러 가는 발걸음은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터미널로 가는 길, 주위 시선 강탈이 대단했다. 춘계 한번 다녀왔다고 나름 산악회 자부심이 생겼다. OB형이 오셔서 밥을 사주셨다. 산악회가 아니었다면 경험해보지 못했을 특별한 순간들이 많았다. 비 오는 날 야간산행, 끝없이 펼쳐진 길, 내려앉을 것같은 어깨. ‘무엇을 위해 걷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힘듦의 연속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좋은 기억들만 남았다. 자긍심이 생겼고 강인해진 것 같다. 세심하게 챙겨준 형들께 감사하다. 첫 춘계 산행은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우승희 춘계산행기.hwp
첫댓글 웃으며 이야기를 하는 형들의 폐활량에 감탄했니ㅋㅋㅋㅋ수고했다 승희야ㅎㅎ
나 말고도 천사가 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