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애굽 초기 경로와 지명 톺아보기
-믹돌, 바알스본, 비하히롯-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출 14:2)
1. 여는 글
성서에 언급된 지명을 성서지도에서 찾아 비교해보면 어떤 참고서를 활 용해야 하는지 난감할 때가 더러 있다. 왜냐하면 학자마다 자신의 이론을 앞세워 지명을 설명하고 표기하고 있지만 지도마다 그 위치가 다른 데다가 심지어는 같은 이름을 두 곳에다 표기한 경우도 발견되기 때문이다.1)
아하 로니(Yohanan Aharoni)는 구약성서에 언급된 지명들을 확인하기 위하여 여 러 방법을 동원하고 있으나 모든 위치를 찾아내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2)그럼에도 일부 성서지도를 보면 성서에 언급된 지명들을 어떤 식으로든 표 식하려는 경향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출애굽 경로에 나타난 지명들 은 대부분 정확한 좌표를 파악하기 어려운데도 마치 현장을 동행한 듯 지 명들이 촘촘히 표시되어 있다. 특히 출애굽기 14:2에 언급된 믹돌, 비하히 롯, 그리고 바알스본 등 세 지역은 경우에 따라서 두 세 곳의 후보지가 추정 되기도 한다. 이 지역들은 출애굽 초기의 일정과 경로를 파악할 수 있는 중 요한 공간이기 때문에 많은 학자들이 면밀하게 검토하며 관련 정보를 추적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몇몇 예상 지역이 거론되고 있을 뿐 연구자들 마다 다른 견해를 제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이 출애굽 초기의 경로를 파악할 수 있는 출애굽기 14:2의 지명의 위치를 알아내기 어렵다면 지명의 음역에 가려진 사전적 의의를 찾아보면 어떨까? 성서 지명은 대부분 음역으로 옮길 뿐 본래적인 뜻을 헤아리지 않 았던 것이 사실이다. 더 상세히 들여다보겠지만 우리가 관심하는 세 지명 은 거의 모든 성서가 단순히 소리 나는 대로 번역하고 있다. 이 글은 출애굽 여정과 관련한 세 지명을 지도에서 확인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 지정학적인 위치보다 해석학적 의미를 살펴보자는 제안이다. 왜냐하면 지명은 항상 음 역으로 옮겨져 사전적인 의미를 간과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현재 까지 연구로 보아 지도상에서 그 지명을 확증할 수 없다는 물리적인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1) 앤손F.레이니,R.스티븐나틀리, 성경역사,지리학,고고학아틀라스 ,강성열역(서울:이레서원, 2010); Anson F. Rainey and R. Steven Motley, The Sacred Bridge: Carta's Atlas of the Biblical World (Jerusalem: Carta, 2005); A. LaCocque, The International Bible Atlas(Carta: Israel Map & Publishing Company, 1999).
2) 미카엘 아비요나, 요하난 아하로니, 아가페 성서지도 , 편집부 역 (서울: 아가페출판사, 1988), 40.
2. 이집트 탈출의 초기 경로
2.1. 라암셋에서 비하히롯까지
바로의 장자로부터 가축의 처음 난 것들의 죽음으로 인하여 이집트는 걷 잡을 수 없는 혼란에 휩싸인다. 급기야 바로는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스라 엘 백성을 데리고 나가라고 명령한다(출 12:29-33). 이제 어느 길로 갈 것인 지 새로운 선택이 모세에게 주어진다. 모세는 광야에서 줄곧 양치기 생활 을 하였기 때문에 바로의 추격을 예상하면서 어떤 경로를 통하여 이집트를 벗어날 수 있을지 미리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허겁지겁 라암 셋(Rameses)을 떠났기 때문에 숙곳(Sukkot)에 머물 때 전열을 가다듬었다(출 12:37이하). 이윽고 고센 땅에 묻혀 있던 요셉의 해골을 수습한 후에야 이스라엘은 본격적인 행로를 시작한다. 모세와 이스라엘이 라암셋을 출발 하여 숙곳에 다다른 경로는 나일 강 하류에서 남동쪽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모세가 선택한 길은 다소 이해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고센 지방에서 가 나안으로 곧바로 연결되는 지름길이 있기 때문이다. 즉 모세와 이스라엘은 가까운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출 13:17)3), 또는 해변길 대신에 돌아가는‘홍해의 광야 길’(18절)로 행진하였던 것이다. 물론 출애굽기 13:17의 설명 처럼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이 가나안에 이르는 빠른 길이지만 이집트 군대의 추격에 직면한다면 다시 이집트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염려하 였기 때문에 그 지름길을 의도적으로 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다른 설명 은 요셉의 유골을 수습하기 위한 경로라고 해석할 수 있다. 어쨌거나 육십 만의 출애굽 행렬을 생각하면 무모한 여정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한편 출애굽 여정을 간추려서 소개한 민수기 33장에 따르면 ‘숙곳’은 이 스라엘이 라암셋을 출발한 후 처음 장막을 친 곳임을 확인할 수 있다(민33:5; 출 12:37).
숙곳을 떠나 광야 끝 에담에 진을 치고,
에담을 떠나 바알스본 앞 비 하히롯으로 돌아가서 믹돌 앞에 진을 치고(민 33:6-7)4)
그러나 민수기의 기록과 달리 출애굽기에서는 에담 이후 어디에 장막을 쳤는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순차적으로 보면 에담에 장막을 쳤고(출13:20), 가던 길을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 은편 바닷가’(출 14:2)에서 하룻밤을 묵은 것으로 파악된다. 한 순간에 여러 지명이 언급되기 때문에 오히려 그 지점을 콕 집어 말하기 어렵지만 이 야 영지가 이집트 영역에서 이스라엘의 마지막 진영임을 알 수 있다. 이후 이 스라엘은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출 14:16)을 지나 시내 광야로 진입한다.아래 그림은 이해를 돕기 위하여 본문을 근거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 히롯 앞 바알스본 맞은편에 설치되었을 야영지와 주변을 이미지로 표현한 것이다. 편의상 이스라엘의 출발지가 이집트의 고센 땅 서쪽이므로 이 점 을 고려하려 동쪽을 향하여 행진한 것으로 그렸다.
이집트 탈출 초 기의 경로는 라암 셋에서 숙곳까지,숙곳에서 에담까 지, 그리고 에담에 서 비하히롯으로 이어진다. 첫 번째 야영지 숙곳은 히 브리어로 ‘텐트’라 는 뜻으로, 탈출한 이스라엘이 ‘맨 처음’ 야영한 장소를 가리킨다(출 12:37; 민 33:5). 에담은 출애굽기 13:20에서 이 집트 쪽의 ‘광야 끝’으로 소개되어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마지 막 밤을 믹돌과 비하히롯 앞의 야영지에서 보낸다. 마침내 이스라엘은 이집트 영역을 떠나 자유인으로서 본격적인 광야 유랑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3) 출애굽기에서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이라고 부른 이 길이 당시 군사도로로 알려진 일명‘호루스의 길’이다. 투트모스 3세의 군대가 이 길을 따라 가자(Gaza)까지 가는데 열흘 걸렸 다고 한다. Nahum M. Sarna, The JPS Torah Commentary Exodus (Philadelphia: Jewish Publication Society, 1991), 68.
4) 본고에서 제시하는 본문은 전반적으로 개역개정판 을 따르면서 필요에 따라 사역했다.
2.2. 바다와 믹돌 사이 비하히롯 앞 바알스본 맞은편?
이집트에서의 최종 야영지를 소개하는데 세 지명이 어지럽게 나온다. 라 암셋을 출발하여 홍해를 건너기 직전이다(민 33:7-8). 처음 한 동안, 즉 라암 셋에서 숙곳, 숙곳에서 에담까지 탈출 행로는 순탄하게 계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에담에서 다음 야영지로 가는 길은 갑자기 돌이켜 오던 방 향으로 선회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문점이 제기된다. 하나는 왜 이스라 엘은 이집트를 탈출하여 남동쪽으로 향하던 길을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 이의 비하히롯으로 갔는지 어느 누구도 설득력 있는 주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5)
가까운 해변길을 택하지 않은 것도 예상되는 바로의 추격을 따돌리 기 위한 전략일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나일 강 하류의 촘촘한 경비를 뚫고 나갈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 점은 다음 장에서‘믹돌’을 다룰 때 확인된다. 그러나 모세 일행이 가던 길을 다시 돌이킨다는 것은 바로에게 투항하거나 탈출을 포기한다는 의미다. 그만큼 위험 부담이 큰 모험이다. 그럼에도 오던 길로 돌이킨 것은 추격 군을 교란시키려는 고 도의 전술이 아닌지 생각해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일단 가나안으로 가는 지 름길을 택하지 않고 남동쪽 경로로 택한 것은 일반적인 예상 도주로를 피 한 것이었는데 모세는 그와 반대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제3의 길, 예컨대 가데스 바네아와 신 광야로 이어지는 ‘수르 광야’ 길을 염두 하고 있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왜 한 장소를 설명하는데 여러 지명이 집중적으로 등장하는 것일까? 출애굽기 저자가 이렇듯 세밀하게 소개한 것은 그 공간의 지리적 특징을 숙지하고 있거나 중요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더햄(John I. Durham)은 저자가 적어도 네 곳 이상의 장소를 거명하며 정확한 위치를 제시하려 는 것은 출애굽 경로에 대한 역사적인 근거를 보여준다고 주장한다.6)
따라서 저자에게 이 장소는 세밀화를 그리듯 자세하게 설명해야 할 만큼 중요 한 공간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출애굽기 14:9에는 바로의 추격 군 이 같은 장소에 당도한 장면이 소개된다.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과 그 군대가 그들[이스 라엘]의 뒤를 따라 바알스본 맞은편 비하히롯 곁 해변 그들이 장막 친 데에 미치니라. (출 14:9)
앞선 2절과 달리 믹돌은 빠지고 바알스본과 비하히롯만 언급되어 있다.모세가 끈질기게 바로를 설득하고 협박하여 마침내 이스라엘의 이집트 탈 출을 감행하였으나 라암셋을 떠난 이후 숙곳에서 에담으로 다시 돌아가는 등 갈팡질팡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장면에서 등장하는 세 지명과 더불 어 ‘바다’는 숙곳 남쪽 비터 호수인지, 북쪽의 발라 호수인지, 지중해를 가 리키는지 경로가 더욱 아리송해진다.
지금까지 논의한 바와 같이 지도상으로 확인하기 쉽지 않은 믹돌, 비하 히롯, 바알스본, 그리고 바다처럼 자세하고 반복적으로 소개된 성서 구절 을 찾아보기 힘들다. 여하간 세 지명이 등장하는 이 공간이 학대와 종살이 를 마감하는 이집트에서의 마지막 여정이며, 자유의 세상으로 나아가는‘얌 수프’(@Ws-~y:)를 지나 가나안에 진입하기 직전에 머문 장소가 된다. 그렇 다면 여기에 특별한 해석학적 장치가 암시된 것은 아닐까? 이 질문에 대하 여 다음 장에서 세 지명을 분석하면서 출애굽의 지정학적, 혹은 신학적 의 미를 모색해보고자 한다.
5) James K. Hoffmeier, “Out of Egypt: The Archaeological Context of the Exodus”, Margaret Warker, ed., Ancient Israel in Egypt and the Exodus (Washington: Biblical Archaeological Society, 2012), 14.
6) 존 더햄, 출애굽기 , 손석태, 채천석 역 (서울: 솔로몬, 2000), 327-328; John I. Durham,Exodus, Word Biblical Commentary, vol. 3 (Waco: Word Books, 1987).
3. 믹돌(lDog>mi)
3.1. 지리적인 위치
우선 가장 먼저 나오는 ‘믹돌’의 위치를 살펴보자. 출애굽기 14:2에 언급 되는 세 지명 중에서 믹돌의 위치는 비교적 라암셋에서 가까운 현재의 펠 라시움 방향으로 나일 강 하류 삼각지대로 추정된다. 최근 믹돌의 지리적 위치를 확보할 수 있는 고고학적 성과가 있었다. 지난 2008년 5월 자히 하 와스(Zahi Hawass) 이집트 문화재 최고위원회 사무총장은 고고학자들이 현 재의 라파(Rafah) 지구에서 가로 500m, 세로 250m 규모의 성곽 도시를 발굴했다고 밝혔다.7)
고대 이집트 라므세스 2세(B.C.E. 1304-1237) 당시 이집트 와 팔레스타인을 연결하는 도로 ‘호루스 길’을 탐사하던 중 이 지역에서 진 흙 벽돌로 축성된 성읍을 발견한 것이다. 이 성곽에 포함된 높이 4m 정도의 망루가 여러 개 확인되었다. 특히 이 일대에서 투트모세 2세(B.C.E. 1516–1504)를 새긴 부조가 발견돼 투트모세 2세 역시 이곳에 성곽을 지었을 가능 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 이전에도 나일 강 하류 지역의 경비가 삼엄한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즉 ‘사자의 은신처’(The Dwelling of the Lion)와 ‘세티의 요새’(the Fortress of Seti)라고 명명한 ‘멘마아트레의 믹돌’(Migdol of Men-maat-re) 등이 가나안 으로 진입하는 호루스 길에서 발굴된 것이다.8) 이 성곽에 포진된 망루들은 대부분 라므세스 2세 아버지 세티와 라므세스 2세 통치 시기에 축성된 것 으로 판명되고 있다. 가장 육중하고 압도적인 것은 길이 790m, 너비 393m짜리 요새이다. 호프마이어(James K. Hoffmeier)에 따르면 이집트 19-20 왕 조(B.C.E. 1295-1069) 사이에 이집트와 가나안 경계에 많은 군사 시설물과 요새를 설치하여 선대의 이름으로 불렀다. 이를 테면 세티의 이름을 따서‘멘 마아트레의 망루’, 라므세스 2세의 이름으로 ‘라므세스 2세의 망루’ 등 이 그것이다.9)
오렌(Eliezer D. Oren) 역시 성서에 몇 차례 나오는 믹돌의 위치를 고고학 적 발굴을 통하여 확인하고자 하였다. 그는 논문 제목에서 암시하듯 카르 낙 부조와 아나스타시 파피루스 등을 근거로 믹돌의 위치가 나일 강 삼각 주의 동쪽 경계로서 시내 광야를 건너면 곧바로 만나게 되는 이집트의 변 방 경계 지역으로 본다.10) 한편 후대의 일이긴 하지만 예레미야서에서 믹 돌은 유대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나온다.
애굽 땅에 사는 모든 유다 사람
곧 믹돌과 다바네스와 놉과 바드로스 지방에 사는 자에 대하여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 (렘 44:1)
오렌의 주장에 의하면 이 구절은 이집트의 식민지 혹은 외래인 거주지를 동북쪽(northeast)부터 남쪽 순으로 기록한 것이다. 믹돌은 가장 동쪽에 위 치하고 바드로스는 최남단이다. 마찬가지로 예레미야 46장에 믹돌이 다시 언급되는데 역시 가장 먼저 기록된다(렘 46:14). 예언자 에스겔은 ‘애굽 땅 믹돌에서부터 수에네 곧 구스 지경까지’(겔 29:10; 30:6)라는 관용적인 어법 을 사용함으로써 믹돌이 바로 이집트의 동쪽 경계선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하우트만(Cornelius Houtman)의 주장은 사뭇 다르다. 즉 믹돌이 나일 강 하 류 동북쪽이 아니라 출애굽기 14장과 반대로 비터 호수 남쪽으로 에담보다 훨씬 아래쪽인 현재의 텔 엘 헤르(Tell el-Her) 지역의 국경선일 것으로 추측 한다.11)
최근 스콜니크(Benjamin E. Scolnic)는 앞에서 논의한 ‘사자의 은신처’가 호루스의 길에 있는 요새일 것으로 보고, 그렇다면 믹돌은 현재의 ‘텔 엘 보 르그’의 남동쪽 3-5km 부근이라고 제안한다.12) 지금까지 논의를 종합할 때 믹돌의 위치가 정확히 한 지점으로 일치되지는 않으나 나일 강 하류에서 이집트의 동쪽 국경선과 시내 반도의 서쪽 습지의 경계선에 해당하는 지역 으로 높은 망대 혹은 성곽에 포함된 경계 초소를 가리키는 용어로 볼 수 있 다.
7) Maamoun Youssef, “Archaeologists Find Ancient Fortified City in Sinai”, Associated Press, 2008. 5. 28.
www.nbcnews.com/id/24860550/ns/technology_and_science-science/t/archaeologists-find-ancient-fortified-city/#.U9AGx63Nupo.
8) James K. Hoffmeier, “Out of Egypt: The Archaeological Context of the Exodus”, 15.
9) 이뿐 아니라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도 믹돌과 합성된 지명, 즉 Migdol-El, Migdol-Gad,Migdol- Eder 등이 발견된다. E. L. Curtis, “Early Cities of Palestine”, The Biblical World 7(1896), 411-424.
10) Eliezer D. Oren, “Migdol: A New Fortress on the Edge of the Eastern Nile Delta”, Bulletin of
the American School of Oriental Research 256 (1984), 32. 한편 오렌은 후대에 믹돌은 변방을 떠도는 부랑자와 용병의 수용소 등으로 활용되었을 가능성도 제시한다.
11) Cornelius Houtmann, Exodus, vol. 1 (Leuven: Peeters, 1993), 112.
12) Benjamin E. Scolnic, “A New Working Hypothesis for the Identification of Migdol”, J. K.Hoffmeier and A. R. Millard, eds., The Future of Biblical Archaeology: Reassessing Methodologies and Assumptions (Grand Rapids: Eerdmans, 2004), 91-120.
3.2. 어원적인 의미
믹돌은 이스라엘이 광야 유랑 초기에 지나갔던 곳으로 구약성서에 지명 으로 몇 차례(출 14:2; 민 33:7; 렘 44:1; 46:14; 겔 29:10; 30:6) 나온다. 사전적 인 의미는 ‘높은 탑’이나 국경선 근처에 세워진 ‘망루, 요새’를 가리키는 순 수 셈어로 보인다.13) 실제로 나일 강 하류의 동쪽 델타 지역에서 ‘믹돌’이라 는 지명이 가끔 확인되기도 한다. 일단 이스라엘이 숙곳을 떠나 에담에서 하루를 묵었다(출 13:20). 다음 일정은 본문에서 확인하듯 그들의 행진을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된다.
여기서 잠깐 복음서에 등장하는 마리아 중 ‘막달라 마리아’의 막달라를 살펴보는 것이 믹돌의 어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막달라 마리아는 글자 그대로 ‘막달라 출신 마리아’라는 뜻이다(막 15:40; 눅 8:2). 막달라(aldgm)는 높은 탑이나 요새를 가리키는 아람어이지만 그 뿌리 말은 히브리 어 ‘가달’과 어원적으로 관련된다. 히브리어와 아람어는 ‘사촌 언어’(cousin language)라고 불릴 만큼 글자의 형태는 물론 문법적으로 유사한 점이 많을 뿐 아니라 심지어 단어도 같은 경우가 허다하다. 즉 히브리어 믹돌과 아람 어 막달라는 ‘크다’, ‘위대하다’는 동사 가달(ldg)에서 파생되어 동일한 의 미를 가리킨다.
막달라는 지리적으로 보면 갈릴리 호수 서편에 위치하며 북으로 게네사 렛과 남으로 디베랴 사이에 있는 성읍이다. 이곳이 ‘막달라’라고 불리는 까 닭이 있다.14)
막달라는 요세푸스(F. Josephus)가 ‘생선 절임’이라는 뜻의‘Taricheia’라고 일렀을 정도로 어업과 가공 산업이 번창한 곳이었다. 갈릴 리 호수의 어획량 중 상당 부분이 막달라로 모여들었으며 이차적인 가공과 중개상이 이루어졌다. 생선의 신선도를 잘 유지하며 소비하는 방법은 현장 에서 회로 먹거나 구이로 요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래 보관해야 할 경우 생선을 소금에 절이거나, 혹은 말리기도 한다. 또 다른 방식으로는 증기로 물고기를 익히는 훈제 요리가 개발되었다. 이렇듯 소금 간 생선과 훈제로 가공된 생선은 예루살렘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 팔렸고 심지어 로마에 유대 인의 진상품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특히 막달라 지역은 풍부한 땔감을 이용한 훈제 가공업이 발달한 곳이 다. 훈제는 불의 효과적 이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생선을 잘 익히려면 자연히 굴뚝을 높이 세워 바람과 불의 강도를 적절히 활용해야 했다. 이리 하여 훈제를 위한 가공 공장이 이곳저곳에 세워졌고 이렇듯 높이 솟은 굴 뚝은 이 지역의 상징이자 별명이 된 것이다. 그렇게 붙여진 이름이 신약시 대 통용되던 아람어로 ‘막달레나’(h` Magdalhna.)가 되고, 히브리어로 ‘믹달 누니에’(생선의 망대)이다.15)
그러므로 구약의 믹돌과 복음서의 막달라는 높은 탑과 키 큰 굴뚝을 가리키는 유사한 의미, 다른 발음이다. 복음서에서 막달라는 오직 마리아의 출신 지역만을 가리키는 뜻으로 알려진 것이다.그렇다고 믹돌과 막달라가 동일한 공간이라는 주장은 더욱 아니다. 둘은 의미상으로는 서로 관련 있지만 실제 시간과 공간적으로는 전혀 다른 두 지역이기 때문이다.
오렌은 믹돌이 사전적으로 ‘높은 탑’, ‘성곽’, 또는 ‘군사 훈련장’ 등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다양한 정착지를 가리킬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16)
막달라가 높은 굴뚝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면 믹돌은 주변을 정찰 하기 용이한 높은 요새나 성곽이다. 그러나 공통점은 높이 솟은 탑이나 망 루처럼 한 눈에 간파된다는 점이다. 국경선의 출입을 경계하던 나일 강 하 류의 망대이거나 갈릴리 호수에 솟아오른 굴뚝이거나 믹돌과 막달라는 주 변의 경관에 비해 크고 높은 인공 구조물인 것은 분명하다.
13) Nahum M. Sarna, The JPS Torah Commentary Exodus, 70.
14) 복음서에는 ‘막달라’가 달마누다(Dalmanouqa,막 8:10), 마가단(Magada,n, 마 15:39) 등으로 표기되지만 히브리어 ‘가달’과 연관이 있다.
15) James F. Strange, “Magdala”, The Anchor Bible Dictionary, vol. 4, 464-65; 이요엘, 이스라 엘 12지파 탐사 리포트 (서울: 평단문화사, 2010), 257에서 재인용.
16) Eliezer D. Oren, “Migdol: A New Fortress on the Edge of the Eastern Nile Delta”, 31.
3.3. 믹돌의 상징적인 의미
출애굽 경로에서 믹돌의 역할은 분명하다. 즉 주변을 두루 살필 수 있는 지역으로서 내부적으로 이집트 백성과 노예들을 통제할 수 있는 위치이며 동시에 외부적으로는 적군의 움직임을 잘 포착할 수 있는 지리적인 이점이 요구되는 곳이다. 따라서 믹돌은 높은 탑과 관련이 있다. ‘높은 망대’, 즉‘망루’나 ‘요새’를 의미하는 지명이라면 필연코 이집트의 국경지역일 가능 성이 높고, 노예 노동자들이 밀집한 곳이라면 나일 강 하류의 어느 지점으 로 추측할 수 있다. 그렇지만 위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믹돌’의 어원론적인 설명과 지리적 특징, 그리고 지정학적 현상을 통하여 그 지점을 유추할 수 있지만 지도상에서 그 지점을 구체적으로 적시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따 라서 믹돌의 위치는 출애굽 여정에 포함된 특정 지점을 기술하기 위한 지 점으로 국한하기보다는 믹돌의 지정학적이며 상징적인 의미를 살펴보자 고 제안하는 것이다.
모세가 이와 같은 국경선 부근의 삼엄한 정찰과 빈틈없는 경비를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왜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의 땅의 길’을 경유 하지 않았는지에 관한 답은 자명해진다. 물론 이상의 고고학적 발굴물들이 출애굽기의 믹돌과 일치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출애굽 사건이 라므 세스 2세 치하에 일어난 일이라면 믹돌은 이스라엘의 탈출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은 훨씬 커진다.
이와 같은 분석에 따르면 ‘믹돌’은 출애굽 행로와 관련하여 지리적인 위 치를 가리키는 하나의 좌표인 것은 확실하나 동시에 출애굽의 신학적 의미 를 제고하려는 수사적 장치라고 읽을 수도 있다.17)
다시 말해서 믹돌은 이스라엘을 압제하며 종살이를 강요하던 이집트를 표상하는 상징물로서 국 경에 배치된 제국의 표식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막달라가 갈릴리 호수변 에 자리한 훈제 공장의 많은 굴뚝을 가리키듯, 출애굽기의 믹돌은 당시 세 상의 최고 지배 세력이던 이집트의 폭력적인 통치를 공간적인 상징으로 풀 어내어 출애굽의 지정학적 의미를 풀어낸 것이다.
17) 한편으로 믹돌은 일종의 보통 명사로 경계표가 되는 건축물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쓰인다.그러나 하나님을 통칭하는 일반 명사로도 활용된 예도 볼 수 있다. 사무엘하 22:51(lyDIg>m;)과 시편 18:50(lADIg>m;)에서는 모음이 약간 다른 형태를 취한다. 쿰란 공동체에서는 ‘하나님은 구원의 요새(lDIgm> ;)’라고 노래한다.
4. 바알스본(!poc.l[;B;)
바알스본은 믹돌보다 그 위치를 추정하기가 훨씬 어렵다. 노트(Martin Noth)는 바알스본의 위치를 확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나일 강 하류 동편 지중해 연안 지역으로 본다.18)
연구자들이 몇몇 후보 지역을 추정하고 있 지만 역시 일치된 견해가 없다. 성서지도가 더러는 바알스본을 전혀 표기 하지 않는 경우도 있으며 같은 지도라도 두 곳을 지정하는 예도 가끔 눈의 띈다.19) 바알스본은 문자적으로 ‘북방의 터줏대감’, 또는 ‘북쪽의 실력자’정도로 옮길 수 있다. 한 단어처럼 보이지만 히브리어 두 낱말이 결합된 합 성어이기 때문에 ‘바알’과 ‘스본’, 그리고 ‘바알스본’ 등 각각의 단어에 대 한 분석과 해설이 요구된다.
18) Martin Noth, 출애굽기 , 국제성서주석 제2권, 박재순 외 3인 공역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1), 129-131; Das zweite Buch Mose: Exodus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73).
19) 성서와함께, 성경지도 개정판 (서울: 성서와함께, 2009), 지도 4.
4.1. 바알
구약성서에서 바알은 동사로는 ‘결혼하다’, ‘다스리다’가 되고, 명사로는‘주인’, ‘남편’ 또는 ‘지배자’를 뜻하는데 가나안 지역에서는 그들의 대표 신(Baal)을 가리켰다. 이스라엘에서 바알은 본래 가나안 종교를 대표하는 이름을 넘어 우상의 상징처럼 사용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신앙적으로 가 나안의 종교를 비롯한 이교도와 끊임없이 대결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바알 은 또한 ‘바알스본’처럼 인명이나 지명 등에서 합성어를 포함하여 빈번하 게 언급되는데 그만큼 이스라엘에게는 한편으로 친숙한 이름이면서도 다 른 한편으로 경계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이미 기원전 2천년 시기에 바알은 우가릿 산신의 고유명사로 잘 알려졌 으며 바알브릿(삿 8:33), 바알세붑(왕하 1:2), 바알브올(민 25:3; 호 9:10) 등과 같이 지역적인 특성을 합성어로 표시하고 있었다. 가나안과 시리아에서 바알은 일반적인 신으로 지칭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가나안의 으뜸 신이 다. 흔히 남편(출 21:22; 삼하 11:26)이나 상급자(사 16:8) 등을 부르는 관직 명으로도 사용되었다. 바알은 특히 유목민이던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 하는 과정에서 만난 곡식과 비의 신, 풍요와 다산의 농경 신으로서 곧잘 유 혹의 대상이 되었으며, 자연히 이스라엘의 사제들과 예언자들에게 불편한 존재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 바알은 이스라엘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받았다(삿 2:11-15, 3:8-11; 왕상 16-18).
지역적으로 지중해 연안을 따라 수많은 산당들이 바알의 이름으로 세워 졌으며 그 영향력은 심지어 나일 강 하류까지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여하간 바알은 그리스의 제우스나 바빌론의 마르둑에 상당하는 가나안 최고 의 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과 바알의 불편한 관계 는 사사 시대를 넘어서도 이어지다가 남북왕조 시대 아합 왕 때에 이르러 최고조에 달한다(왕상 18장). 엘리야가 갈멜 산정에서 바알 선지자를 물리 치고 야웨의 승리를 선포하였지만(왕상 18:39) 그 뒤로도 바알의 질긴 유혹 은 근절되지 않고 계속되었다. 그리하여 바알은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의 야웨 신앙을 흔드는 위협적인 대상으로서 가까이 할수록 분쟁을 일으키는 갈등의 신, 이른 바 우상으로 간주되는 대표 주자였던 것이다.
4.2. 사폰(스본, 사본)
히브리어 ‘사폰’(!Apc')은 북쪽을 가리키는데 개역개정 은 ‘북극’, ‘북쪽 끝’, 또는 ‘북방’으로 옮긴다(사 14:13; 겔 38:6, 15; 39:2; 시 48:2; 89:12; 욥26:7). 동사로는 ‘숨어 있다, 간직하다’라는 뜻인데 은밀하게 감추어진 상태 라는 의미가 된다. 그러니까 ‘사폰’은 본거지, 또는 은거지를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고대 근동에서 ‘사폰’은 가나안의 주신 ‘바알’과 그의 거처와 예배 중심지로 알려진 ‘사폰’( 개역개정 은 ‘사본’, 수 13:27), 혹은 사폰(Zaphon)산 등과 관련이 깊은 낱말이라고 할 수 있다. ‘사폰’은 구약성서에 152차례 나온다. 리핀스키(E. Lipiński)는 ‘사폰’의 지리적 위치를 비롯한 신화적인 의미 등을 다양한 용례를 통하여 검토한 바 있다.20)
본래 ‘사폰’은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의 경계에 있는 거룩한 산을 가리키는 지명이며 가장 오래된 언 급은 우가릿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편 구약성서에는 사폰 산은 시온과 동일하거나 같은 의미로 신화적으로 쓰이기도 한다. 즉 시편 48:2에 ‘사폰의 꼭대기, 시온 산’이라는 표현이 나온다.한글성서 개역개정 은‘큰왕의성곧북방에있는시온산’으로 옮기고 있다(겔 38:6, 15, 39:2). 에스겔은 또한 ‘사폰’을 폭풍우와 관련된 자 연 현상으로 묘사하기도 한다(겔 1:4). 이와 유사한 표현이 잠언에도 나온 다. ‘사폰의 바람이 비를 일으킴 같이’(잠 25:23). 이와 같은 사본의 상징성 은 바람, 비, 천둥 번개 등의 표상되는 바알 신앙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사폰(스본, 사본)의 일차적인 뜻은 바알과 그의 하급 신들의 거처하는 거 룩한 산, 또는 본거지이며 바알의 왕좌가 있는 곳으로서 그리스의 올림푸 스 산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앞으로 사폰은 이스라엘이 건조한 광야를 유랑하는 동안 바람과 비의 신 바알을 끊임없이 맞닥뜨리게 되며, 특히 가 나안에 정착한 후에도 풍요의 신을 자처하는 바알과 더불어 이스라엘을 유 혹하는 우상이며, 바알 신앙의 본 고장을 이르는 뜻으로 확대된다.
20) E. Lipiński, “!Apc'”, Theological Dictionary of Old Testament, vol. 12, 435-443.
4.3. 바알스본
그렇다면 바알스본은 어디쯤일까? 시내 산이 야웨 하나님의 산이듯 바알 스본은 가나안의 최고 신 바알이 사는 거룩한 산으로 묘사된다. 바알 신앙 의 본거지가 곧 우가릿 북쪽의 사폰 산이었으며 바알 신전이 그곳에 있었 다. 올브라이트(W. F. Albright)는 기원전 6세기경 페니키아의 문헌을 제시 하며 바알스본을 나일 강 하류의 다바네스(Tahpanhes), 현재 지명 사이드(Said) 항 인근일 가능성을 제시한다(렘 44:1).21)
그의 주장대로라면 가나안 신앙이 이집트까지 퍼져 있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실제로 나일 강 하류 의 풍부한 물산과 식량은 가까운 지역의 사람들을 끌어들였을 것이고 그들 의 신앙도 자연히 따라 갔을 것이다. 가나안의 바알은 이집트의 셋(Seth)과 동일하게 예배의 대상이 되었고, 기원전 6세기로 추정되는 한 편지에는“바알스본과 다바네스의 모든 신들의 축복을 빈다”는 구절 등에서 서로의 왕래를 확인할 수 있다.22)
근자에 호프마이어는 바알스본을 발라 호수 부근의 ‘바알의 바다’일 가 능성을 타진하고 있다.23) 그렇게 되면 ‘바알스본’은 나일 강 하류, 지중해 연안의 어느 지점, 곧 현재의 사이드와 펠루시움 사이일 가능성이 높다. 지 금까지 바알스본에 대한 어원과 지리적인 연구를 통해서 의미와 위치를 살 펴보았다. 안타깝게도 바알스본으로 예상되는 몇몇 지점을 확인할 뿐 더 이상 논의가 진척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바알스본이 출애굽 여정 초기, 즉 바다를 통과하기 직전에 언급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왜냐하면 야웨가 이스라엘을 바다에서 구원한 것은 거 대한 혼돈의 세계를 장악함으로써 그 자신이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 문이다. 여기에서 바알스본은 바다의 신, 혹은 폭풍의 신으로 바다 사람들 과 연관되었을 개연성을 보여준다.24)
이렇듯 바알스본은 바다의 신, 혹은 바닷사람들의 생활과 연관되었기 때문에 바다를 통한 출애굽 여정에 의도 적으로 포함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야웨가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을 탈출 시킨 것은 바다의 신과 이집트 제국으로부터 출애굽을 암시하기 때문이다.이 점에서 이스라엘과 바알의 갈등도 뿌리 깊은 역사가 있었음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보인다. 따라서 바알스본의 지리적 위치를 출애굽 경로에서 확인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노예에서 자유인으로 거듭난 이스라엘을 또 다 른 방식으로 예속시키려는 우상이라는 점에서 바알스본의 상징적 의미를 새겨보는 것이다.
21) W. F. Albright, “Baal Zaphon”, Walter Baumgartner, ed., Festschrift Alfred Bertholet zum 80 Geburtstag (Tübingen: Mohr, 1950), 1-14.
22) 나훔 M. 사르나, 출애굽기 탐험 , 박영호 역 (서울: 솔로몬, 2004), 213; Nahum M. Sarna,The JPS Torah Commentary Exodus (Philadelphia: Jewish Publication Society, 1991), 71; Nahum M. Sarna, Exploring Exodus: The Heritage of Biblical Israel (New York: Schocken, 1986), 109.
23) Barbara J. Sivertsen, The Parting of the Sea: How Volcanoes, Earthquakes, and Plagues Shaped the Story of Exodus (Princeton: PUP, 2009), 130.
24) Cornelius Houtman, Exodus, vol. 1, 105-106.
5. 비하히롯(troyxih;yPi)
바하히롯은 지금까지 어디인지 정확하게 알려진 바도 없고, 앞의 믹돌과 바알스본보다도 더 복잡하다. 더구나 이집트나 그리스 등의 문헌에도 이와 유사한 지명이 나오지 않는 실정이다. 이 단어는 ‘피’와 ‘하히롯’ 두 개의 단 어가 연계형처럼 합성되어 있기 때문에 ‘피’, ‘하히롯’ 그리고 ‘비하히롯’세 가지 경우를 고려하며 분석해야 한다.
5.1. 피
우선 우리말로 음역된 ‘비’는 본래 이집트어 ‘피’(Pi)에 해당한다. 구약성 서에서 ‘비돔’, ‘비라암셋’, ‘비하솔’, ‘비베셋’ 등도 ‘비’와 고유명사의 결합 을 보인다. 흔히 이집트 왕으로 불리는 ‘바로’의 본래 발음은 ‘파라오’(Pharaoh)이다. 이 칭호는 이집트의 최고 통치자를 일컫는 표현으로 알 고 있지만 본래는 ‘큰 집’ 또는 태양신 ‘라(Ra)의 신전’이라는 뜻이다. 특히 이집트 19왕조(B.C.E. 1306-1200)의 ‘파라오’는 통치 왕조를 가리키는 용어 로 쓰였고 점차 오늘날의 청와대나 백악관처럼 당시 통치자를 상징하게 되 었다.25) ‘하히롯’은 이집트의 여신 ‘하솔’(Hathhor)이다. 따라서 비하히롯은‘여신 하솔의 신전’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장소와 이름’이 결합된 고유명 사는 고대 이집트 문서에 빈번하게 쓰인 것으로 확인된다. 즉 비돔(Pithom)은 아툼 신전(House of Atum)을, 비라암셋(Pi-Rameses)은 라암셋의 궁전(House of Rameses) 등을 뜻한다.26)
한편 ‘피’를 히브리어로 읽으면 본래 ‘입’( )을 가리키는 낱말이 축약되 어 뒤에 오는 단어와 결합된 형태로 읽을 수 있다. 비하히롯이 민수기에는‘피’가 생략되어 나온다(민 33:8). 칠십인역(LXX)은 비하히롯을 지명처럼 음역하지 않고 테스 에파우레오스(th/j evpau,lewj)로 옮긴다. 칠십인역이 ‘농 장’(farmstead), 또는 ‘개척지’, ‘거주지’를 의미하는 단어로 번역한 것으로 보아 번역자들은 비하히롯이 목초지를 뜻하는 하체롯(trcx)으로 읽었을 가능성이 있다. 하우트만은 ‘피’가 입을 가리키는 것은 분명하나 비톰에서 와 같이 이집트어를 히브리어로 채용한 것으로 이해한다.27) 그렇다면 ‘하 히롯’을 풀어야 ‘비’의 의미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
25) 동양에서도 최고 통치자를 지칭하는 왕이나 대통령 등 고위 관리를 전하(殿下), 폐하(陛 下), 각하(閣下) 등으로 일컬으며 ‘파라오’와 같이 유사한 경로를 거쳤다고 볼 수 있다. 이 를 테면 ‘전하’는 본래 궁궐이나 대궐의 계단 아래 있는 이를 가리키는 뜻이었지만 최고 관 직을 가리키는 칭호가 된 것이다.
26) 본래 ‘비라암셋’은 타니스였는데 라므세스 2세가 재건함으로써 붙여진 이름이다. H. H. Rowley, 聖書地圖 Student's Bible Atlas , 대한기독교서회 편집부 역 (서울: 대한기독교서 회, 1995), 6.
27) Cornelius Houtman, Exodus, vol. 1, 124.
5.2. 하히롯
‘하히롯’의 기본 자음은 ḥ-r-t로 ‘새기다’, ‘파다’라는 뜻이다. 이 독법이 옳다면 비하히롯의 지리적 위치를 가늠하는 데 단서를 찾은 셈이 된다. 왜 냐하면 히브리인, 혹은 이집트 노예들이 토성을 쌓거나 힘든 운하를 건설 하였다면 그 지역이 후보지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의 2장에서 제시한 믹돌, 바알스본, 비하히롯의 그림을 예시한 대로 믹돌과 바알스본 사이에 바다가 있다. 비하히롯은 아마도 나일 강 하류에 있었을 운하와 관 련하여 ‘운하의 입구’를 가리키거나 칠십인역의 번역을 살린다면 노동자들의집단거주지를암시할수있다. 또한가지믹돌과연관지어해석할수 있는 이론은 적군의 침입에 대비하는 해자(moat)로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해자(垓字)는 보통 동서양을 막론하고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곽 주변 에 강을 끌어들이거나 연못을 파서 물을 채워 놓은 방어선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비하히롯은 히브리들이 이집트의 노예 노동자로 강요된 삶을 살았던 이스라엘의 고통과 거대한 제국의 착취를 동시적으로 보여주는 지 역을추정할수있게된다.28) 그러므로믹돌이이집트제국의통치아래있 는 소수 민족과 하층민들을 감시하는 높은 망루라면, ‘비하히롯’은 히브리 등과 같은 ‘중다한 잡족’(출 12:38)의 울부짖는 고달픈 현실을 반영하는 것 으로 볼 수 있다.
28) Y. Aharoni, The Land of the Bible (Philadelphia: Westminster, 1979), 196.
5.3. 바하히롯
비하히롯은 ‘비’와 ‘하히롯’ 두 개의 단어가 나란히 연결된 형태로서 뒤 에 오는 자음에 따라 Pe, Pa, 또는 Pi 등으로 변화된다. 학자들은 이집트어로 읽을 때와 히브리어로 읽을 때의 차이점을 들어 비하히롯을 풀이한다.29)지난 20세기 초에 야블론스키(Bryant Jablonsky)는 비하히롯이 콥틱어Pi-Achirot, 곧 ‘사초풀이 자라는 장소’라고 풀이한 바 있다. 즉 나일 강 하류 의 습지와 연관된 현재 지명 라스 아타카(Ras Atakah)라고 제안하였다.30)
그러나 유대교 랍비들의 비하히롯 해석은 과거의 사실로 고정시키기보 다 미래 지향적인 설명을 내놓는다. 즉 ‘운하 입구’로 번역할 수 있는 이집 트어 ‘비하히롯’을 히브리어 ‘자유’(ḥerut)에 정관사가 포함된 ‘그̇자유의 입 구’로 새긴다. 중세 유대교 학자 라시(Rashi)는 ‘히롯’을 자유라고 풀이하면 서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바로 거기서 자유인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다.31)
이렇듯 일반명사에 정관사를 더한 형태로 읽으면 하나님이 인도하여 낸 그리하여 절대적 자유가 부여되어 그 자유의 의미가 한층 강조된다. 이 집트어 비하히롯은 고통스럽게 노역을 하던 운하의 현장을 반영하지만, 히 브리어는 자유인으로서 새로운 여정을 눈앞에 둔 ‘자유의 광장’으로 읽을 수 있는 중의적인 의미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32)
한편 나본(Mois A. Navon)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출애굽기 14:2과9절에 똑같이 나오는 비하히롯의 세밀한 차이점을 찾아내어 그 의미를 부 각시킨다.33) 즉 2절은 ‘비하히롯 앞’(troyxih;yPi ynEp.li)이고 9절은 ‘비하히롯 위’(troyxih;yPi-l[;)로 수식하는 전치사가 다르다.34)
그러니까 앞 절은 아직 바 다를 건너지 않고 천막을 친 상황이기 때문에 ‘자유의 입구 앞’으로 묘사되 었지만, 바로의 군대가 추격해온 9절에는 이미 ‘비하히롯 위’를 걷고 있는 자유의 실행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전치사 ‘l[;’을 쓴 것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에게 비하히롯은 이집트 제국의 종살이 하던 치욕과 압 제의 자리가 아니라 당당하게 자유의 헌장을 선포하는 자유인의 현장으로 바뀌게 된다. 이스라엘에게 비하히롯은 과거 제국의 명예를 유지하기 위해 운하를 파내야 했던 이집트에서의 탈출이며 이제는 종의 멍에로부터 벗어 나 자유인으로 새로이 출발하는 출정식장과 같다고 할 수 있다.
29) Nahum M. Sarna, The JPS Torah Commentary Exodus, 70.
30) Max Seligson, “Pi-Hahiroth”, The Jewish Encyclopedia, vol. 10, 34.
31) A. Cohen, The Soncino Chumash: The Five Books of Moses with Haphtaroth (Jerusalem: Soncino, 1993), 409.
32) TargumOnkelos,Rashi등유대교의저작들을참조.
33) Mois A. Navon, “Pi-Hahiroth – The Mouth of Freedom”, Jewish Bible Quarterly 27:4 (1999), 261.
34) 대부분 번역들이 ‘비하히롯 위’를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 ‘비하히롯 곁’(개역개정), ‘비하히 롯 근처’(새번역), ‘near Pi-Hahiroth’(NIV), ‘by Pi-Hahiroth’(NRSV) 등을 참조하라.
6. 맺는글
출애굽기 14:2처럼 한 곳을 설명하기 위해 지명이 집중적으로 언급된 예 는 좀처럼 보기 어렵다. 이것은 저자에게 매우 친숙한 지역이고 중요한 지 역이었음을 반영한다. 이스라엘은 라암셋(?)에서 숙곳, 에담을 지나 남동쪽 으로 가다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 비하히롯 앞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친다. 민수기에서는 이곳이 셋째 날이지만 출애굽기에서는 몇 번째 밤인지 명확하지 않다.
여기에는 시간의 일정을 명시하지 않은 출애 굽기 저자의 특별한 의도가 있을 것이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이 세 지명이 어디인지 지도상에서 확인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왜 성서 기자 는 얼른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지명을 한꺼번에 소개하고 있는 것 일까? 그 이유는 위에서 토의한 대로 믹돌, 비하히롯, 그리고 바알스본에 숨겨진 출애굽의 신학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메소포타미아가 ‘두 강 사이’를 의미하듯 출애굽은 ‘믹돌과 바알스본 사 이’에 위치한다.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사이에서 찬란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태어난 것처럼 이스라엘은 믹돌과 바알스본 사이에서 야웨 신앙을 꽃 피웠다. 그 공간은 다름 아닌 자유의 광장, ‘비하히롯’이다. 그러나 출애굽 공동체 이스라엘이 자유인으로서 거듭났지만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자유는 무제한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왼쪽으로 한 발자국만 나가면‘믹돌’이 그들을 착취하며 유린할 것이고, 오른쪽으로 한 손을 뻗으면 ‘바 알스본’이 그들의 자유를 유혹하며 예속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바로는 이와 같은 사실을 알았을까? 그는 이집트를 탈출하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이렇게 소리친다. ‘(이스라엘은) 광야에 갇힌 바 되었다’(출 14:3).그렇다. 이집트를 벗어날 마지막 관문이 믹돌이며, 자유인으로서 광야를 유랑할 수 있는 공간이 비하히롯이고, 여전히 경계해야 할 ‘바알’의 영향력 을 의식적으로 알아차려야 할 지역으로서 바알스본에서 머물렀던 것이다.이스라엘이 향유할 수 있는 자유의 공간은 오직 믹돌과 바알스본, 곧 ‘제국 의 압제와 바알의 유혹’ 사이의 광야일 뿐이다.
<참고문헌>(References)
나훔 M. 사르나, 출애굽기 탐험 , 박영호 역, 서울: 솔로몬, 2004.
미카엘 아비요나, 요하난 아하로니, 아가페 성서지도 , 편집부 역, 서울: 아가페출판사, 1988; Y. Aharoni, and Michael Avi-yonah, The Carta Bible Atlas,Jerusalem: Carta, 2002.
성서와함께, 성경지도 개정판, 서울: 성서와함께, 2009.
앤손 F. 레이니, R. 스티븐 나틀리, 성경 역사, 지리학, 고고학 아틀라스 , 강성열 역, 서울: 이레서원, 2010; Anson F. Rainey and R. Steven Notley, The Sacred Bridge: Carta's Atlas of the Biblical World, Jerusalem: Carta, 2005.
이원희,포토 성경지명사전 , 서울: 하늘기획, 2010.
이요엘,이스라엘 12지파 탐사 리포트 , 서울: 평단문화사, 2010.
존 더햄,출애굽기 , 손석태, 채천석 역, 서울: 솔로몬, 2000
홍순화,GPS 성경지명사전 , 서울: 한국성서지리연구원, 2012
Brisco, Thomas V., 두란노성서지도 , 강사문 외 역, 서울: 두란노서원, 2008;
Holman Bible Atlas: A Complete Guide to the Expansive Geography of
Biblical Histo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8.
Noth, Martin, 출애굽기 , 국제성서주석 제2권, 박재순 외 3인 공역,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1.
Rowley, H. H., 聖書地圖, Student's Bible Atlas , 대한기독교서회 편집부 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5.
Albright, W. F., “Baal Zephon”, Walter Baumgartner, ed., Festschrift Alfred
Bertholet zum 80 Geburtstag, Tübingen: Mohr, 1950, 1-14.
Barett, David P., ESV Concise Bible Atlas, Wheaton: Crossway, 2012.
Cassuto, Umberto, A Commentary on the Book of Exodus, Jerusalem: Magnes Press,1951, 1982.
Curtis, E. L., “Early Cities of Palestine”, The Biblical World 7 (1896), 411-424. Gurtner, Daniel M., Exodu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of Codex Vaticanus,Leiden; Boston: Brill, 2013.
Hoffmeier, James K., “The Search for Migdol of the New Kingdom and Exodus 14:2: An Update”, Buried History 44 (2008), 3-12.
Hoffmeier, James K., “Out of Egypt: The Archaeological Context of the Exodus”,Margaret Warker, ed., Ancient Israel in Egypt and the Exodus,Washington: Biblical Archaeological Society, 2012, 1-20.
Houtmann, Cornelius, Exodus, vol. 2, Leuven: Peeters, 1993.
Durham, John I. Exodus, Word Biblical Commentary, vol. 3, Waco: Word Books,1987.
LaCocque, A., The International Bible Atlas, Carta: Israel Map & Publishing Company, 1999.
Lamdin, T, O., “Migdol”, The Interpreter’s Dictionary of the Bible, vol. III, 377. Lipiński, E., “!Apc'”, Theological Dictionary of Old Testament, vol. 12, 435-443. Lott, Jeffrey., “Migdol”, The Anchor Bible Dictionary, vol. IV, 822.Navon, Mois A., “Pi-Hahiroth – The Mouth of Freedom”, Jewish Bible Quarterly,27:4 (1999), 259-264.
Noth, Martin, Das zweite Buch Mose: Exodus, Göttingen: Vandenhoeck &Ruprecht, 1973.
Oren, Eliezer D., “Migdol: A New Fortress on the Edge of the Eastern Nile Delta”,Bulletin of the American School of Oriental Research 256 (1984), 7-44.
Propp, William H., Exodus 1-18: A New Translation with Notes and Comments,New York: Anchor Bible, 2008.
Sarna, Nahum M., Exploring Exodus: The Heritage of Biblical Israel, New York:Schocken, 1986.
Sarna, Nahum M., The JPS Torah Commentary Exodus, Philadelphia: JewishPublication Society, 1991.
Scolnic, Benjamin E., “A New Working Hypothesis for the Identification ofMigdol”, J. K. Hoffmeier and A. R. Millard, eds., The Future of Biblical Archaeology: Reassessing Methodologies and Assumptions, Grand Rapid: Eerdmans, 2004, 91-120.
Seligson, Max, “Pi-Hahiroth”, The Jewish Encyclopedia, vol. 10, 34.
Sivertsen, Barbara J., The Parting of the Sea: How Volcanoes, Earthquakes, and Plagues Shaped the Story of Exodus,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9.
Strange, James, “Magdala”, The Anchor Bible Dictionary, vol. IV, 464-465. Youssef, Maamoun, “Archaeologists Find Ancient Fortified City in Sinai”,Associated Press, 2008. 5. 28.
김창주 박사(한신대학교 신학과 교수)
첫댓글 후원참여가 전혀 안되고 있습니다
공과금.지병'치료비.먹거리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6번의 인슐린과 혈당체크 하루에 내몸을 10번을
찌르며 살다보니 많이 지치고 저혈당 쇼크등으로
머리도 이젠 예전같지 않고 어눌해지고 있어요...
카페운영을 계속하도록 도와주십시요
매일 이걸 해야하나 갈팡질팡하고 갈등합니다
주님께서 하라고 하신 사명인데 요즘은 너무힘드네요
카페운영을 위해 작은 성금을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카페에 후원을 하신분은 사랑회원(최우수)이 되십니다...
카페지기의 생활이 어렵습니다 매달 정기 후원으로
도와주시면 카페 운영에 큰힘이 됩니다
카페지기는 지병.때문에 매달 치료비가 많이듭니다
매월 공과금과 LH.주거임대 임대료 관리비 마련이 어렵습니다
건강이 않좋아 병원을 다니며 살아가는데 지병과 장애 나이도
들다보니 수입이 전혀 없습니다 어려우시더라도 회원님께서는
작은 사랑으로 카페지기에게 용기를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카페지기 전화입니다 010.2261~9301
국민은행 229101-04-170848 예금주.황종구
농협 233012-51-024388 예금주.황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