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기억속의 땅, 대구를 찾아서/전성훈
아침 날씨가 제법 선선하다. 평소에는 간편한 등산복차림이었으나 오늘은 아내의 말을 듣고 평상복차림이다. 회색빛 바지와 베이지색 반팔 티에 얇은 군청색 잠바를 걸쳐 입고 작은 멋을 부렸다. 가을이 익어가는 9월 중순, 가물가물한 기억 속의 대구를 찾아가는 인문학 기행, 오전 7시 정각 도봉문화원을 떠난 관광버스는 아침 출근길에 맞물려 거북이걸음이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가는 둥 마는 둥, 한 시간 정도 걸려 구리 톨게이트를 간신히 벗어났다. 휴게소에서 하늘을 쳐다보니 동해 바닷물처럼 눈부시도록 하늘이 새파랗다. 새파란 하늘 여기저기 작고 앙증맞은 구름 조각과 그보다는 조금 더 큰 구름 덩어리가 서로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며 뭉게뭉게 피어있다. 달리는 관광버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들녘에는 누런 빛을 띤 벼이삭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황금들판으로 익어가는 모습에서 농부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봄에 힘들게 모내기를 하고 혹독한 여름을 이겨내고 가을의 초입까지 마음조이며 땀을 흘린 사람, 풍성한 결실을 위해 무한한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사람, 그 분들의 노고 덕분에 집에서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관광버스 뒷자리에 앉은 여성들은 버스를 탄 이후 아이들처럼 종알종알 수다를 떤다. 잠시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재잘재잘 거리는 모습이 경이롭다. 평소 얼마나 말을 하고 싶었으면 옆자리 길동무에게 그렇게 수다로 스트레스를 푸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수다를 떠는 것도 체력이 밑바탕이 되어야 가능하다. “체력이 실력이다”는 글쓰기 선생님 말씀이 옳은 것 같다. 수다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해보니 저절로 눈이 감긴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잠을 잔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깊은 잠에 빠지지 못해 선잠 속에서 비몽사몽 헤맨다.
대구에 도착하여 첫 번째 방문한 곳은 고 김광석을 기리는 ‘김광석 길’이다. 대구출신의 30대 젊은 나이에 요절한 가수 김광석을 기리기 위해 대구시에서 조성한 문화공간이다. 방천시장 옆 방천둑 350여 미터에 김광석의 삶과 음악을 테마로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을 조성하였다. 스토리 벽화, 조형물, 음향시설 등 80여 점의 다양한 작품을 설치하여 전통시장과 예술이 함께하는 특별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유감이지만 ‘김광석’이라는 가수에 대해서 또 그가 일찍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처음 대하는 이름일 뿐 관심을 두지 않은 특별한 이유는 없다. 대학 졸업 이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유행가나 포크송에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은 영향 때문인 것 같다. 얼마 전 상속재산을 둘러싼 불미스러운 기사를 보면서 김광석이라는 가수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죽은 김광석이 산 사람을 불러 모은다. 방천둑에서 다시 살아난 김광석을 만나 그의 노래를 듣는다. “ 바람이 불어오는 곳, 햇살이 웃고 있는 곳, 그 곳으로 가네, 바람에 내 몸 맡기고 그 곳으로 가네 ” 전설이 되어가는 김광석과 신화를 꾸미는 사람들이 함께 숨 쉬는 골목이 방천둑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이다.
10년 가까이 인문학 기행을 다니면서 한 번도 체험하지 못했던 즐거운 경험을 대구에서 맛보았다. 점심식사를 포함하여 약 3시간 가량 자유 관람 시간이 있었다. 한양 시전, 평양장과 함께 조선 시대 3대 전통시장의 하나로 알려진 ‘서문시장’을 비롯하여 대구 시내 속살을 구경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수많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서문시장 먹자골목을 지나면서 무얼 먹으면 좋을까 행복한 고민을 했다. 길거리 좌판에서 파는 음식은 대부분 순대, 순대국밥, 머리고기, 칼국수, 잔치국수, 콩국수, 떡볶이, 김밥 등이었다. 서문시장에 가면 ‘장국밥’을 꼭 먹어보라는 권유가 있어서 국밥을 전문으로 하는 집을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가니 식당은 의외로 한산했다. 국밥정식을 주문하자 밑반찬이 먼저 나왔다. 빨간 고춧가루에 버무린 콩나물무침과 잘게 썬 깍두기를 한 점 집어 먹어보았다. 간이 맞아 입맛을 당긴다. 따로 국밥처럼 허연 멀국의 뚝배기에 공기 밥을 한꺼번에 쏟아 붓고 부추를 듬뿍 넣은 다음 휘휘저어서 국물을 마셔보니 정갈한 맛이 마음이 들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천주교 대구대교구 주교좌성당인 ‘계산 성당’을 찾았다. 미사를 드리지 않는 한가한 시간이라서 성당은 고즈넉하였다. 유럽이나 남미의 성당처럼 우아하고 거창한 실내 장식은 없으나 소박한 성당 내부가 마음에 들었다. 몇몇 여성 신자 분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바치는 모습이 눈에 띠었다. 조용한 실내 분위기에 젖으며 기도를 드렸다. 기도를 마치고 성당 내부를 둘러보면서 주님의 현존하심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제대 중앙 뒤 스테인드글라스에는 사도들의 모습을 형상화해 놓았다. 가운데에는 다른 성당에서 찾아보기 힘든 모습의 성모 마리아상을 모셔놓았다. 제대에서 바라보는 성당 2층 정면에는 제법 커다란 파이프오르간이 놓여있다. 계산 성당을 나와서 청라언덕을 찾았다. 청라언덕에는 ‘동무 생각’시비가 있었다.
“ 봄의 고향악이 울러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나는 흰나리 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 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 ‘이은상’이 짓고 ‘박태준’이 곡을 붙인 ‘동무 생각’은 어린 시절에 자주 불렀던 노래다. 동무 생각의 노랫말은 박태준의 아련한 짝사랑 이야기를 전해 듣고 이은상이 지었다고 한다. 첫사랑이나 짝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아야 제 맛이 난다. 간절한 마음을 담은 감성의 노래나 시가 되어 동시대인이나 후대에 짧은 슬픔과 긴 아쉬움을 전해주고 입으로 입으로 전해 내려오면 추억의 명곡으로 되살아난다.
청라언덕의 ‘동무 생각’시비를 보다가 젊은 시절의 한 때가 떠올랐다. 벌써 40년도 넘은 아주 오래된 일이다. 1977년 여름 제대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군대 동기생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대구에 갔다. 결혼식 전날 저녁에 코가 삐뚤어지도록 술을 마셨고 동기생이 마련해 준 여관에서 잠을 잤다. 다음 날 결혼식에도 술이 덜 깬 상태로 참석하였다. 신부들러리들과 함께 어울려 어딘가로 놀러갔다가 저녁 늦게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세월이 흐르고 그 때 일을 생각해보니 결혼식 주인공도 함께 내려갔던 동기생도 누구였는지 전혀 기억이 없다. 눈을 감고 아무리 그때 일을 쥐어짜보아도 생각나는 건 이것이 전부다. 남은 건 희미한 기억 속에 그림자뿐이다. 지난 날 20대 팔팔한 시절 객기를 부리며 젊음을 만끽했던 한 순간의 편린만 기억 저편 깊숙이 똬리를 잡고 있다.
과거의 사실이 머릿속에 단순히 저장된 것이 기억이라면, 과거의 일에 감정이 실려 마음과 몸에 쌓이고 쌓여서 자신의 삶에 긍정적 또는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추억이다. 과거 어느 순간의 일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생각하거나 쓰라린 아픔으로 기억하는가는 지금 이 자리에 어떤 마음과 감정을 가지고 서 있느냐에 따라 사람마다 다르다. (2018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