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 김인겸 ◙작품 해제 일본의 관백(關白) 원가중이 물러나고 그 아들인 원가치가 관백의 자리를 계승하고 수교를 요청하였다. 조정에서 이를 허락하여 영조 39년 8월에 통신사를 차출하였다. 이 때 통신사 조 엄을 수 행하면서 쓴 글이 8청 여구에 달하는 장편 기행 가사인 이 작품이다. ◙ 핵심 정리 ▮지은이 : 김인겸(金仁謙, 1707-1772) 57세 때인 영조 39년(1763)에 조엄(趙嚴)을 정사(正使)로 한 일본 통신사의 삼방서기(三房書記)로 수행 ▮갈래 : 가사. ▮연대 : 영조 40년(1764) ▮형식 : 3.4(4.4)조. 4음보의 연속체 ▮성격 : 기행가사. 장편가사(가사 중 최장편임) ▮구성 : 추보식 구성 ▮표현 : 대구법. 직유법. 과장법. 설의법 ▮주제 : 일본 여행에서 얻은 일본의 풍속, 제도, 인정, 인습 등의 견문 ▮출전 : <가람 문고본(文庫本)>
◘ 해설과 감상 ‘일동장유가’에서는 김인겸이 1763년 8월 3일부터 1764년 7월 8일까지 약 11개월 동안 일본에 체류하면서 보고 느낀 일본의 문물, 제도, 인물, 풍속 등을 개인적인 판단을 삽입하면서 실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이렇게 이 작품은 작자의 공정한 비판, 기발한 위트, 흐믓한 해학, 정확한 노정(路程)과 일시(日時)의 기록, 상세한 기상(氣象) 보고와 자연 환경의 묘사 등이 잘 나타나 있어서 기행문의 모범이라 할 만하다. 또한, 작가의 예리한 관찰과 비평을 통하여 당시의 외교상의 미묘한 갈등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귀중한 외교사적(外交史的) 자료이기도 하다. 그리고 문명 비평적 시각이 잘 드러나 있는데, 이는 당시의 시대적 정신인 사실적(事實的) 사고(思考)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관백(關白) 원가중(源家重)이 퇴휴(退休)하고 그 아들인 원가치(源家治)가 관백의 자리를 계승하자 일본 측에서 구호(舊好)를 또 수교하자는 요청이 왔으므로, 조정에서 이를 허락하여 영조 39년 계미 8월에 통신사를 차출하였다. 이 때 통신사 조엄(趙嚴)을 수행하면서 쓴 글이 ‘일동장유가’로 4책 8천여 구에 달하는 장편의 기행 가사이다. 이 작품은 홍순학(洪淳學)의 ‘연행가(燕行歌)’와 쌍벽을 이루며, 순 국문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데 의의가 크다. 장편 기행가사로 일반적인 문학 양식의 개념으로 보면 기행문의 성격을 지닌 광의(廣義-넓은 의미)의 수필문학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심화 학습 자료 ▰‘일동장유가’의 구성 ☞제 1권 : 일본에서 친선 사절을 청하여, 여러 수속 끝에 1763년 8월 3일 서울을 떠나 용인, 충주, 문경, 예천, 안동, 경주, 울산, 동래를 거쳐 부산에 이름 ☞제 2권 : 10월 6일 부산에서 승선하여 발선(發船)하는 장면에서부터 대마도, 일기도(壹岐島), 축전주(築前州), 남도(藍島)를 거쳐 적간관(赤間關[下關])에 도착하여 머묾 ☞제 3권 : 이듬해 정월 초하루 적간관의 명절 이야기로부터 오사카(大阪), 교토(京都), 와다와라(小田原), 시나카와(品川) 거쳐 에도(江戶)에 들어가 사행(使行)의 임무를 마침 ☞제 4권 : 3월 11일 귀로에 올라, 6월 22일 부산에 귀환. 7월 8일 서울에 와서 영조께 복명(復命)함 ▰노정 - 영조 39년 8월 3일 서울을 출발하여 부산항, 대마도를 거쳐 일본 본토를 가로 질러 이듬해 1월 20일 오오사카에 도착, 목적지인 에도(지금의 동경)에는 2월 16일에 도착하였다. 돌아오는 길도 이와 같아 7월 8일에 도찯하였으니, 11개월에 걸친 수륙 만여 리의 장거리 여행이었다. ▰ 성격 - 형식은 가사이지만 내용은 광의의 수필 문학인 기행문에 속한다. ▰의의 - 정확한 노정과 일시 기록, 상세한 기상 보고와 자연 환경의 묘사 등은 물론, 여행 중의 생활, 일본과의 외교 관계, 문물, 제도, 인물, 풍속 등을 개인적인 판단을 삽입하면서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행문으르서의 요건을 훌륭히 갖추었다고 하겠다. 이와 같은 성격의 작품 으로는 홍순학이 청나라 연경에 다녀 와서 지은 <연행가>가 있다. 또한, 순 국문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