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주일연합예배설교
본문 : 요한 9:1~7 제목 : 장애인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
1. 장애는 삶의 불편함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보시기에 좋았다 - 하나님 스스로 만족하신 세상이었다. 모든 피조물들이 생명을 마음껏 누렸고, 삶에 불편함이 없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삶이 불편해졌다. 그토록 자연스럽게 뵙고 즐겁던 하나님 만남이 불편해졌다, 그래서 숨었다.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로 가득차고, 고통스런 삶으로 바뀌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 먹고 살고, 서로 관계를 맺고, 해산하고 하는 삶의 기본적인 모습들이 매끄럽지 못하고 불편해졌다. 생명의 삶 전체가 장애를 지니게 되었다. 우리는 사실 모두가 장애인이다. 이 땅의 모든 생명과 역사는 장애 상태로 악화되었다.
|
|
|
▲ 우리는 오해와 불신, 갈등으로 점철되어 행복해지지 못하고 불편해진 창조세계를 ‘에덴의 동쪽’이라고 부른다. |
2.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을 고치신 예수
1) 날 때부터 앞을 못 보는 사람은 얼마나 답답하고 불편하고 한스런 삶인가? 지금부터라도 앞으로는 평생 눈이 먼 상태로 살아야 한다 해도 절망적인데, 날 때부터 눈 먼 사람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것만 아니면 떳떳하게 살 수 있었던 한 사람의 삶이 완전히 뒤틀렸다. 그는 스스로는 살아갈 수 없어서 결국 남의 동정에 자신의 삶을 맡기는 거지로서 살았다.
|
|
|
|
이것도 삶이냐? 하고 수없이 물었을 것이고, 평생 삶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에 시달렸을 것이다. 끔찍한 고난과 불행에 대해서 이유를 잘 알지 못할 때, 사람들은 악마의 소행이거나 죄의 대가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이 밖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의 불행을 직접 보면서 당시 일반적 사고방식대로 묻는다. 그의 불행은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2) 예수님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본인의 죄도 아니고 부모의 죄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그를 통해 드러내시려는 것이다. 밤이 되기 전에 우리는 이 일을 부지런히 해야 한다. 그리고는 그의 눈을 깨끗하게 치료해 주셨다. 흙을 발랐네, 침을 뱉어서 했네, 이런 것들을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향해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하는 것인데 그것은 곧 세상을 불편하게 하는 장애를 치유하는 것이었다. 치유는 처음 창조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 땅의 모든 생명체들이 처음 창조의 모습을 상실하고 삶을 누리기에 불편한 것을 해소하고 마음껏 자유롭게 생명을 누리게 하는 것 - 그것이 선하신 하나님의 뜻이고 그리스도의 사역이다. 주님은 이일을 위해 부지런히 활동하셨고, 마침내 육체적 장애뿐만 아니라 세상의 본원적인 장애를 치유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이 세상 전체의 장애를 짊어지신 은총이다. 그리고 그는 부활하셨다.
3.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의 사명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목격하면서 제자 공동체는 완전히 해체되었다. 꿈도 의욕도 용기도 전망도,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예루살렘에서 정점을 맞은 예수 운동은 그렇게 찻잔속의 태풍처럼 보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흩어졌던 제자들이 놀랍게도 다시 결집하기 시작했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이 다시 공포의 심장부인 예루살렘으로 다시 모여들어서 목숨을 걸고 복음을 선포했다. 제자공동체의 해체와 재 결집 사이에, 그리스도의 부활이 놓여 있다.
|
|
|
|
따라서 교회는 주님의 부활의 결정체이며, 교회는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몸이다. 그래서 교회는 본질적으로 거룩하다. 교회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조직이 아니다. 교회는 웃고 즐기고 친분을 쌓는 것이 본질이 아니기에 친목회나 인터넷 동호회가 아니다. 교회는 이해관계가 맞는 사람들이 모인 이익집단이 아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가 행하셨던 사역을 부활 승천 후, 역사의 종말 때까지 이어서 감당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영원한 몸이다. 따라서 교회는 세상을 치유하며 창조의 첫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 존재한다. 인간의 탐욕과 이기적 심성, 그릇된 사회의 구조, 권력의 오만과 횡포 등에 맞서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언하고 때로는 투쟁한다. 동시에 교회가 놓치지 말아야 할 사역은 우리 시대 가장 연약한 이들인 장애인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다. 이 세상 전체가 불편하고 근본적으로는 모두가 장애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게 극단적으로 불편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장애인이다.
4. 우리 사회의 장애인 실태
1) 장애인은 크게 신체적장애인과 정신적장애인으로 나눈다. 신체적장애인은 다시 시각, 청각, 언어, 지체, 뇌변병, 안면 장애 등 외부 신체장애와 신장, 심장, 간, 호흡기, 간질 등 내부 신체장애로 구분한다. (참고 ; 뇌변병장애란 중추신경의 손상으로 인한 복합적인 장애로 뇌성마비, 외상성뇌손상, 뇌졸중 등 뇌의 기질적 병변으로 인해 보행 또는 일상생활동작에 제한을 받는 것을 의미) 정신적장애인은 IQ 70 이하의 지적 장애인과 정신분열증 등의 정신장애인, 그리고 자폐증과 발달장애를 포함하는 자폐성 장애인으로 세분하고 있다.
2) 2010년 말 우리나라 장애인 인구는 252만 명으로서 인구의 5%를 차지하고 있다.
|
|
|
|
이것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우리 주변에 20명 당 1명은 장애인이다. 더울 놀라운 것은 이 중에 90%는 각종 질병, 자동차 사고 등 후천적으로 발생한 장애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 특별한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계속 그렇게 살 수 있다는 보장은 없으며, 우리는 누구나 신체적, 정신적 장애인이 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2월부터 3월까지 KBS 인간극장에서 앞날 창창한 공학 석학 부부가 행복하게 살았는데 35세에 중국 출장 가서 뇌출혈로 쓰러져 몸 오른쪽이 마비되고 3살 정도의 지능만 갖게되었다. 여러번 가르쳐 주어도 두 아들이 아들인지 딸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이 작품의 제목을 ‘두 번째 사랑’이라고 했다. 아내가 처음에는 남편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는데 이제는 자기가 남편을 사랑하는 것이기에 그렇게 불렀다. 날벼락 같은 고통 속에서 30대 아내가 헌신적으로 돌보는 내용이 가슴 아프게 방영되었는데, 그런 일들이 남의 일일까? 우리는, 그리고 우리 부모와 자식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얼마나 안전지대에 살고 있는 것일까?
5. 장애인이 원하는 것
1) 장애인이 원하는 것은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지극히 ‘평범한 생활’이다. 혼자 걸어 다니는 것, 목숨 걸지 않고도 버스타기, 어떤 직장이라도 다녀서 남에게 업혀 살지 않기, 결혼하기, 아이 낳기 등이다. 우리 중에 당신의 희망이 무엇이냐 물으면 이렇게 답하는 사람 있는가?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간절한 소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2) 다행히 우리나라도 2008년 4월 11일부터 장애인 차별 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고 있다.
어떤 이유로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소외시키거나 괴롭히는 직접 차별을 해서는 안 되고, 나아가 건물, 교통, 프로그램 등에 장애인들을 배려하지 않는 간접 차별을 행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법제화한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내용이 법제화는 되었지만 아직 온전히 실행되는 단계는 아니다. 좀 더 시간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법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바로 그렇게 사회가 변화되고 실행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법제화와 함께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 사회 구성원들이 마음으로 그 법을 긍정하고 동감하는 것이다.
6. 교회는 장애인 선교에 앞장서야 한다.
1) 우리의 머리와 마음에서부터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해야 한다. 장애인은 죄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드러내는 사람이다. 내 곁의 장애인은 귀찮고 거북한 존재가 아니라 내가 진정한 사람되도록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장애인을 바라볼 때 따뜻한 시선으로 보아야 하고, 우선적으로 배려해야 한다.
2) 교회는 장애인을 첫 번째로 전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예수님은 장애인들에게 관심이 제일 많았는데,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는 교회는 장애인들에 관심이 없으며 전도도 별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장애인은 교회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도와줘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메리트가 떨어지는 손님인 것이다. 솔직히 오늘의 교회는 장애인을 귀찮아한다. 오는 것을 굳이 막지는 않지만 적극적으로 오라고도 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업적 풍조 자체가 교회가 본질을 상실하고 타락한 가장 분명한 증거다.
3) 교회가 우선 할 일 장애인이 교회에 쉽게 올수 있도록 건물부터 배려해야 한다. 대부분의 교회는 건물에서부터 장애인이 없다.
앞으로 신축하는 모든 교회건물은 승강기를 설치하고 그것이 어려우면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계단으로 바꿔야한다. 길의 턱 없애기, 장애인을 배려한 화장실, 장애인 주차구역을 설치 등이다. 보통은 주착 구역 폭이 2.3m 이지만 장애인은 3.3m 되어야 내리고 탈 수 있다. 어느 지방자치단체 주차장에 설치한 장애인 주차 구역 - 현실고려 않은 형식적이다. 또 예배 시간에 장애인 돕는 자원봉사자를 배치하고, 우리의 일상 언어에서부터 장애인을 무시하거나 비하하는 언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
|
|
▲ 장애인 고용 만족도가 점차 상승하고 있다. | 나아가서는 장애인에게 일할 기회를 줘야한다. 단지 그대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채용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와 같이 살 수 없다는 잔인한 행위다. 그런데 이 비인간적 사회를 넘어서야 할 교회가 이 행위에 동참하고 있다. 장애인으로서 담임목사가 되는 것은 자기가 개척하지 않고는 꿈도 못 꾸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정말 진보적인 교회가 되려면, 정말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이 되려면, 교회가 어떤 형식으로든지 장애인 목회자, 장애인 사무원 등 장애인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하면서, 사회를 향해 장애인 고용을 외쳐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교회는 그렇게 해야 한다. 그것이 부활하신 주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장애인들이 마지막으로 찾아와 득실대는 곳이어야 한다. 장애인이 없는 교회, 장애인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교회는 엄밀하게 말해서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닌 것이다.
7.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것
1) 2013 평창 세계 스페셜올림픽대회 : 2013년 1월 26일부터 2월 6일까지 열린다.
|
|
|
▲ 2011년 하계 스페셜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아테네로 떠나는 선수들 | 스페셜올림픽이란 세계의 지적 장애인들의 올림픽이다. 올림픽이지만 전혀 세간의 관심도 끌지 못하고, 잘 알려져 있지도 않다. 장애인 올림픽이 신체장애인 올림픽이라면 스페셜올림픽은 만 8세 이상으로 IQ 20~70 사이의 장애인들이 모여 함께 어울리는 축제다. 이런 행사를 통해서 사회 한 구석에 방치되고 투명인간 취급받던 이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우리 사회 전체가 연대하며 격려하고 손잡아주는 의미가 있다.
2) 약 한달 전, 한국 스페셜올림픽 준비위원회 담당자들이 NCC를 찾아왔다. 전 세계 3300명이 평창에서 올림픽을 여는데, 본 행사 전 3박 4일 동안 한국의 종교계와 대학, 기업 등이 숙식과 관광을 담당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주로 사회의 제도와 정책 등에 대해 발언하는 NCC에게 장애인 행사 협력은 좀 생소하다. 더군다나 일도 많고… 그러나 최선을 다해 협력하려고 한다. 한국 교회를 상대로 후원자를 찾고, 교회와 연결시키고, 또 행사 때 아무도 찾지 않는 경기장에 기독교인들이 응원가서 격려하도록 도우려고 한다. 한국교회가 이를 위해 기도해 주시면 좋겠다.
3) 한국교회가 생명 평화 정의를 말하는 한, 아니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말하는 이상 우리 곁의 장애인들이 외치는 간절한 소원을 외면할 수 없다. 이들을 외면한 채 선언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어떤 이유로도 공허하기 때문이다.
4)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한국교회! 주님이 평생 연약한 장애인들을 치유하고 새 삶을 주셨듯이, 오늘 우리 시대에 그리스도의 사역을 계승하는 교회라면, 장애인을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사랑하는 교회가 될 때 진정 교회가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