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꽃 사왔다고 먹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하고 쓰지도 못하는 것을 왜 돈 주고 사왔냐고 호통치시던 어머니, 생신날 식당에 가서 점심먹자 한다고 크게 노하시며 단식으로 시위하던 어머니, 박스 몇 개 내어놓은 것 고물상회 들고 가 몇 백원 받아오던 어머니, 전깃세 나온다고 전기장판도 난로도 불도 안 켜던 어머니, 전기밥솥 보온으로 해놓으면 전기든다고 밥 다 퍼 놓고 찬밥 드시던 어머니, 문명의 모든 것은 돈이 든다고 불떼서 구들장 데우는 것을 고집 하셨죠? 그렇게도 아까운 것 어찌 두고 떠나셨는지요?
붉으레 열꽃을 띄우고 가뿐숨을 몰아쉬며 저승에 입문하는 길,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그곳은 금식하고 오라 하던가요? 손가락하나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라 하던가요? 마지막 가는 길에 몸은 어찌그리 따뜻하신지 지금도 그 체온 숨소리 귓전을 맴돕니다.
어머니 숨 거두시니 영정사진 가운데 두고 먹지도 쓰지도 못하는 꽃이 온통 천지네요, 영안실 복도에 국화화한이 가득하구요, 아흔다섯 돌을 머리맡에 두시고 그 높고 좁은 외통길 장벽을 넘으셨군요,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지도실 그곳 고향집에 어머님 혼백모시고 한 바퀴 돌았습니다. 눈자위 붉히며 코끝이 찡한 자식들 모두 하나같이 어머니의 마지막 길을 모셨습니다. 어느구석 어느자리 하나 어머님 손이 안 간 곳이 없지요,
부천에 오시고 오년동안 거의 와병에 계셨으니 가슴 아플 뿐입니다. 가난지팡이로 일구어 오신 아흔다섯 해, 그 정신 이어받아 아들 딸 며느리 손자 손녀 증손까지 엇나가지 않고 사회의 일원으로 한 목 톡톡히 자리잡고 있습니다. 당신 위해서는 고기 한 근 사드시지 않으시고 모은 돈 어머니 원하시는 대로 능호스님이 계신 예천 절에다 사십구제 신청 해 놓았습니다. 내년 일월 십일에는 어머니가 배출하신 오남매에서 뻗어나간 자식들 사십 팔 명이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사십구 제 차릴 예정입니다. 오 남매 한 마디 불평없이 어머니의 가시는 길을 엄숙하게 배웅하겠습니다. 평소 검소한 모습에서 자식들 모두 근검 절약이 아랫물되어 내려오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당신 장례식 모습 보셨지요? 얼마나 화려하고 축복이던가요, 아버님 옆에 누우시니 참 따뜻하시죠? 얼마나 그 품이 그리우셨을까요, 무려 삼십육년 만의 재회,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으니 반갑게 쓰다듬고 포옹하십시오, 부디 저 세상에서는 싸우지 마시고 고분고분 예쁜 새색시로 다시 한 세상 극락왕생 하시기를 빌겠습니다. 아버님 봉분도 다시 깔았습니다. 멋지게 리모델링 된 집에서 혼자 살아보니 외롭더라 이르시고 다독이고 어르시며 못다한 사랑이야기 마음껏 하십시요
그동안 자식들에게 말못할 사연도 많았을 것이고 서운한 일도 많았겠지요, 이 불효한 저는 그 싸고 흔한 막걸리도 자주 사드리지 못하고 사방팔방 트인 길에 여행 한번 함께하지 못한것이 못내 마음에 걸립니다. 지나고 보니 몰라서 못한 적이 참 많았고 또 알면서도 때로는 힘들고 귀찮아서 못 한적이 있었습니다. 이제 저희도 차근차근 어머니의 뒤를 따를 것입니다. 그래도 말년에 큰 집에 오셔서 이십개월을 계셨으니 요즘세상 맏며느리에게 크게 효도 받은 것입니다. 살아생전 사랑한번 주시지 못한 맏며느리, 고마웠노라 등 토닥여주십시오.
당신의 사돈은 다 떠나시고 자식의 사돈들이 한 분도 빠짐없이 오셨어요, 그것도 내외분 함께 나란히 절 올리고 향 피우셨습니다. 어머님을 보살피던 보호사 아줌마도 몇 분이나 다녀가셨습니다. 참 장례식날 장지에 큰 사위 여주 허서방이 오셨습니다. 놀라셨지요 이만하면 어머니 잘 사셨습니다.
감자가 유난히 잘 되던 샘골 다락논이 어떤 외지인이 사서 아주 큰 한 뙈기 밭으로 밀어 놨구요 건너 외삼촌 논도 한 뙈기로 되어 완전 딴 나라가 되었습니다. 저 건너 고종시 밭은 팔았고 개발을 하지 않아 묵전이 되었습니다. 어머님 아버님 손 잡고 정원에 나오셔서 내려다 보시면 세상 참 많이 변했구나 하실겁니다. 더러 외삼촌 댁도 들리시고 전에 살던 집에 오셔서 쉬어 가시고 쓰러지는 빈집에 새사람 들어오게 하소서.
어머니 천사의 날개를 달고 아버님과 손잡고 부천으로 서울로 여주로 대구로 인천으로 당진으로 예천으로 두루 다니시며 행여 자식들 어디가 아픈지 어디가 슬픈지 살피시고 어루만지는 약손이 되어 주십시오, 이제 어머님이 하실수 있는 일은 그것 뿐입니다. 양열이 정열이에게 건강한 증손주도 점지해 주시구요, 어머니 돌아가시니 상열이 대열이가 가장 섧게 울데요 부디 이 손자들 잘 살게 도와 주세요,무엇이 불편하시면 꿈에라도 현몽하소서 최대한 어머님의 소원은 다 들어 드릴려고 하나같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시집오니 어머니 쉰 한 살이셨습니다. 잘 해드린 건 없지만 무려 사십사년을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으로 눈물바람 일구며 안타깝고 억울해서 속울음 삼킨 적 많지만 사람되라 이르신 어머니인 줄 압니다.
막내따님이 사다 준 폭신한 분홍 털 쉐타, 당진 아드님이 사준 융으로 된 예쁜바지, 그리도 많이 만들어 놓은 이불과 베게, 시골에 두고 온 된장 간장, 둘째 아드님이 해 놓은 그 많은 장작이며 나무, 온갖 살림살이, 그거 다 어떻게 할까요?
다시 아버님과 새살림 차리셔서 장작 많이해서 쌓아놓고 쌀 한 독 방아 찧어놓고 뜨뜻하게 군불 지피고 동동주 담아서 마주 앉아 한 잔씩 권하시며 고구마도 굽고 감자도 구워드세요, 개도 키우고 닭도 키우며 장도 담그고 텃밭도 가꾸며 그렇게 사십시오,
어머니 언젠가 말씀하셨지요, 상열이 대열이 밥 해주고 살 때가 제일 좋았다고, 다시 되돌리고 싶다고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머니 덕택에 도시락 싸지 않고 아들 중 고등학교 오년을 마쳤으니 저 참 많이 편했습니다. 저희도 그렇습니다. 이것도 나이라고 지난날이 그립고 되돌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아이들 아침마다 돈달라 조를때가 지나고 보니 좋았네요
산비들기 목쉰 울음 들리고 콩밭에 장끼 숨어서 홰치면 콩 대가리 따 먹을까 노심초사 하셨죠? 이제 모든 시름 다 잊으시고 전에 못 만났던 지인들 만나셔서 막걸리 한 잔 내셔서 정담도 나누세요, 저희도 바쁘게 살다가 어머니 그리우면 내려갈 것입니다.그리고 열심히 잘 살겠습니다.
2015년 12월 10일 둘째 며느리가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