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해만큼 짧은 방학을 맞아 딸네집에 가는 중이다. 운전도 70까지만 하라는 딸들에게 굿모닝으로 가겠다고 하니 이제는 대중교통으로 편하게 오는것이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임을 강조한다. '그래 느그들이 어렸을때 엄마말을 잘 들었으니 이제는 엄마가 느그들 말을 잘 들어야지' 깨갱 하면서 완행열차를 타고 가는 중이다.
집 근처에 있는 일로역은 제일 빠른 기차는 그냥 통과하고 하루에 두번 새마을호와 무궁화호가 정차하면서 일로주변에 사는 사람들에게 서울쪽으로가는 고마운 대중교통이다.
안개가 자욱해서 아직도 어둑어둑한 시간에 일로역에서 출발하는 첫 기차 무궁화호를 타고 가는데 40년전 비둘기호라는 완행열차를 타고 서울에 있던 친정집에 가던 생각이 났다.
지금은 그냥 손가락만 까딱하면 언제 어디서든지 때와장소를 가리지않고 기차표를 예매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지만 그 시절에는 무조건 기차역으로 가야만 했던 시절이라 그저살기 바빴던 내게 미리 기차표를 구한다는 것은 꿈에 떡 먹는 일이었다.
어린 두 딸을 데리고
서울 외갓집에 갈 때마다 좌석도 없이 이좌석 저좌석으로 옮겨다니면서 입석으로 다녔던 기억을 떠올린 딸들이 그때는 엄마가 돈이 없어서 좌석표를 사지못하는줄 알았단다.
그래도 맛난거는 많이 사줘서 기뻤다나 어쨌다나 딸들의 추억도 떠오른다.
입석으로 가득찬 손님들 사이를 요리조리 잘도 빠져 다니면서 김밥이나 계란을 길게 외치면서 애들이 제일 좋아했던 열두시에 만나요ㅇㅇ콘도 팔았던 승무원들도 없어지고 돈만 넣으면 뚝딱 해결되는 자판기가 있어서 편리하기는 하지만 얼어죽어도 좋을 낭만이 없어졌다.
우리나라 새마을호 비슷한 속력으로 달리는 라오스 고속철도를 타기위해서는 공항 입국장처럼 여권을 보이고 짐 검사를 마친 다음에야 역 안으로 들어갈수가 있었다.
깨끗한 열차안에 현지인들과 관광객들에게 음료와 간단한 스넥종류를 파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도 그시절이 있었다고 하면서 다들 옛 추억 한가지씩 꺼내본 시간이었다.
기차를 탈 때마다 꽃단장을 하고 옆자리에 누가 앉을까 은근 설레임으로 가득인데 매번 꽝이다.
그래도 오늘은 틀이 근사한 중후한 남자가 탔길래 기분이 좋았는데 한참 이어지는 통화내용을 들어보니 이건 완전히 다단계사기꾼이다. 백발백중 틀림없다.
아무래도 이래저래 옆자리 복은 없지싶다.
완행열차 입석손님들에게 최고 명당자리였던 화장실옆 세면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