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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로호와 그 주변
산악인의 기본자세를 가장 잘 표현한 단어를 하나 고르라면 나는 지체없이 헬프를 선택하겠
다. 도전, 진취적 기상, 고난 극복 같은 남성적인 어휘들도 여성적인 힘이 담겨있는 이 단어
앞에서는 빛을 잃고 만다.
--- 산악인 박영석
▶ 산행일시 : 2011년 11월 5일(토), 흐림
▶ 산행인원 : 15명
▶ 산행시간 : 8시간 47분(휴식과 중식시간 포함)
▶ 산행거리 : 도상 17.6㎞
▶ 교 통 편 : 25인승 버스 대절
▶ 시간별 구간
06 : 32 - 동서울종합터미널 출발
08 : 53 - 춘천시 북산면 청평리(淸平里), 화천군 간동면 간척리(看尺里) 백치고개, 산행시작
09 : 34 - 부용산(芙蓉山, △881m)
09 : 57 - Y자 갈림길
10 : 35 - 건천령(乾川嶺), 안부, 임도 삼거리
11 : 27 - 783m봉, 묵은 헬기장
12 : 07 ~ 12 : 34 - 추곡령(楸谷嶺), 안부, 임도 삼거리, 중식
13 : 10 - 회곡령(灰谷嶺), ┼자 갈림길 안부
13 : 45 - 죽엽산(竹葉山, △859.2m)
14 : 28 - 임도
15 : 09 - 설안재봉(說案哉峰, 600.2m), 헬기장
15 : 54 - 김부터(金富岱)
16 : 20 - 임도
17 : 06 - 병풍산(屛楓山, △796.7m)
17 : 40 - 화천군 간동면 오음리(梧陰里) 에네미고개(於南峴), 산행종료
18 : 37 ~ 20 : 30 - 남춘천역, 목욕, 석식
21 : 55 - 동서울 강변역 도착
1. 죽엽산
▶ 부용산(芙蓉山, △881m)
수일 전부터 오늘 비가 내린다 하는데도 오히려 산행인원이 느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한편 기
상청의 일기예보를 아주 뻘로 본다는 증좌다. 비 내린 후 추울 거라던 일기예보를 존중하여
비옷 겉옷 등등 싸가지고 왔는데 우중충하니 덥기만 하다.
백치고개. 해발 552m. 춘천시 북산면 청평리와 화천군 간동면 간척리의 경계다. 배치고개라
고도 한다. 작은 배후령(背後嶺) 격의 背峙가 아닐까?
옛날 간척리에 사는 사람들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바로 지척에 있는 춘천을 (배후령과 백치
고개가 높아) 구경 한 번 못하고 죽는 경우가 많다고 해서 당시 노인들이 볼 간(看)자와 자 척
(尺)자를 따서 간척(看尺)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월간 산, 1996년 4월호). 안타까운 일이
었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길다는 5.1㎞의 배후령 터널까지 뚫고 있으니 상전벽
해일 터.
첫발자국부터 가파르게 올라간다. 새벽에 약간 내렸다는 비는 이슬 수준이다. 여러 산행표지
기 달린 등로는 촉촉하니 걷기 좋다. 백치고개에서 부용산 정상까지 도상 1.2㎞. 이쯤이야 하
고 나는 듯 줄달음 하는 이가 속출한다. 뇌동하여 뒤따르기 경계한다.
아무쪼록 내 걸음으로 갈 일. 저 멀리 운해 한가운데 떠있는 고도가 죽엽산이려니 등로 벗어
나 잡목 젖히고 감상한다.
가파름이 멈칫하는 공터가 나오고 잠시 평탄하게 진행하다 한 피치 바짝 오르면 교통호 넘어
부용산 정상인 헬기장이다. 월간 산의 설명이다. “소양호 북쪽에 마치 갓 피어난 아름다운 연
꽃인양 자리매김하고 있는 산이다. 이 산에는 예부터 유난히 산목련나무가 많아 산 이름이 연
꽃이라는 뜻인 부용산이라 불리어 왔다고 전해진다.”
삼각점은 내평 302, 2005 재설. ┣자로 능선이 분기한다. 오른쪽은 하우고개 지나 봉화산
(736m)으로 간다. 한때 수자원공사 소양댐관리단 사택 뒤로 소양댐 방류 전망대를 지나 마적
산을 오르고 오봉산 연봉을 넘어 부용산, 봉화산으로 종주하는 코스가 성행했었다. 나도 그
유행에 휩쓸려 2003년 8월 장맛비 세차게 내리던 날 혼자 갔다가 막판에 봉화산을 찾지 못하
고 헤맸었다. 그때가 그립다.
2. 부용산 가는 길에서
3. 오지산행의 신예인 승연 님과 제임스 님(오른쪽), 부용산 정상에서
4. 건천령
5. 건천령 지나 783m봉 가는 길
6. 죽엽산
7. 노란 잎은 자작나무
▶ 죽엽산(竹葉山, △859.2m)
직진은 도솔기맥 죽엽산으로 간다. 오름 길과는 딴판으로 다르게 완만하게 내린다. 양쪽 사면
또한 넙데데하다. 사면 쓸어 해찰하며 내린다. Y자 갈림길. 오른쪽 길이 더 탄탄하고 실하다.
죽엽산의 원경도 그 길로 들 것을 유혹한다. 그러나 오른쪽은 732m봉 지나 골로 가고, 죽엽산
은 왼쪽의 나지막한 능선인 면계 따라 크게 돌아가야 한다.
선두 4명이 오른쪽으로 갔다가 되돌아온다. 산행진행 속도가 평준화된다. 길 좋다. 579m봉
돌아 임도 가까이 접근했다가 이내 임도로 내린다. 안부인 건천령이다.
휴식. 배낭 벗어놓고 쉰다. 날이 더워 탁주가 제격이다. 사실 엊그제 또 생어금니를 뽑았는데
술을 먹어도 괜찮을까가 크나큰 걱정거리였다. 여러 고견을 구한 바 김전무 님은 절대불가.
의사의 말씀 그대로다.
통사정하였다. 탁주 한두 잔이 무에 그리 독주(毒酒)이냐고. 우격다짐으로 긍정적인 답변을
듣자마자 한잔 쭉 들이켰다. 뒷맛이 쓰다. ‘살면 얼마나 산다고 ….’ 부언이 따라서다.
낙엽송 숲 간벌한 능선을 오른다. 짧지만 황금비늘 같은 낙엽송의 낙엽이 깔린 길이다. 차차
인적이 희미해진다. 아마 햇낙엽이 이리 수북이 덮여있어서일 게다.
무덤 지나고 꽤 가팔라진다. 그래도 이삭 줍는 식이나마 더덕향의 힘 받는다. 783m봉. 묵은
헬기장이다. 이 783m봉에서 남쪽으로 450m 떨어져 있는 종류산(810m)을 미처 알아보지 못
한 것은 결과적으로 참 다행이다. 가도 후회, 안 가도 후회할 뻔했다. 쭉쭉 내린다. 608m봉에
서 신가이버 님이 후미와 진행속도를 맞춘다고 주춤거린다.
모두 추곡령에서 점심 먹을 것이라며 충동하여 앞세운다. 참호 지나고 교통호 넘어 절개지 절
벽 피해 오른쪽 사면으로 내린다. 추곡령이다. 임도 삼거리인 안부다. 별일이다. 11월에 그늘
찾아 점심자리 편다. 건천령에서 간식한 만복이 아직 그대로인데 끼니는 지켜야 한다. 내 입
맛이 없어 여러 사람의 입맛 빌어 먹는다.
죽엽산 가는 등로는 높은 절개지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임도가 앞서간다. SK 텔레콤 북산기지
국 중계탑이 길 막고 철조망을 둘렀다. 왼쪽 산비탈로 비켜간다. ┼자 갈림길 얕은 안부인 회
곡령까지는 사뭇 부드러웠다. 무덤 지나고부터 아연 달라진다. 거의 수직으로 가파르다. 그저
헥헥거린다. 입가에 버캐 인다.
앞사람의 먼 자취가 부럽다. 암벽 왼쪽 사면으로 돌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음마 한다. 그래도
전망바위에 들려 지나온 길 자세히 살펴본다. 굴참나무숲 낙엽이 미끄럽다. 뜻밖에 내 눈이
번쩍 뜨이는 희소식(?). 오지산행의 신예인 제임스 님이 배탈이 났다며 매우 힘들어한다. 오
늘 나를 살리는구나 싶었다. 엉금엉금 동행한다. 바위 턱 올라 지능선 갈아탈 무렵 나더러 앞
서 가란다. 제임스 님이 반상(盤床)의 돌을 던져버린다. 죽엽산에서 에네미재로 빠지는 대열
로 합류한 것이다.
드디어 죽엽산. 사지 축 늘어진다. 눈 감아버린다. 한참 있다 정신 수습하고 삼각점을 찾는다.
┼자 방위표시만 보인다.
8. 멀리는 사명산
9. 낙엽송
10. 추곡령 근처
11. 낙엽송
12. 자작나무숲
13. 병풍산
14. 자작나무, 김부터에서
▶ 설안재봉(說案哉峰, 600.2m), 병풍산(屛楓山, △796.7m)
┣자 능선 분기. 오른쪽은 산행표지기 몰고 도솔지맥 사명산(四明山, 1,198.6m)으로 간다. 우
리는 직진하여 설안재봉을 향한다. 죽엽산 정상 아래 너른 헬기장을 지나고 비로소 우리의 길
이 시작된다. 더킹모션이 재빨라야 하는 잡목 숲이다. 잡목 성긴 곳 찾다보면 엉뚱한 데로 간
다. 잣나무를 조림하였으나 내버려두어 지하고 낮은 관목으로 자랐다.
가은 님이 교통정리하고 있다. 등로 한복판에 말벌집이 있는 것이다. 아슬아슬했다. 무찔러
나아갈 뻔했다. 자작나무숲 지나 임도 나오고 노송 사열한다. 581m봉, 577m봉 넘고 여태 납
작하던 설안재봉이 기지개를 펴고 일어선다. 그예 주눅 들어 고개 숙인다. 완만하지만 길고
긴 오름의 끝이 설안재봉이다.
설안재봉 정상은 좁은 헬기장이다. 사방 나무숲 둘러 아무 조망 없다. 나뭇가지 사이로 얼핏
보이는 병풍산이 주장한다. 쉽게 보지 말라고. 우선 물이 부족하다. 에네미재에서 우리 오기
기다리고 있을 두메 님에게 설안재봉 아래 도로로 물 가득 싣고 오시라 부탁한다. 왼쪽 지능
선 잡아 내리 쏟는다. 1급 슬로프다. 마른 낙엽은 눈만큼이나 미끄럽다.
497m봉에서 왼쪽으로 코너링 하여 낙하한다. 뚝 떨어져 삼거리. 두메 님이 물 싣고 먼저 왔
다. 흔한 것이 가장 귀한 것이라고 했다. 물맛이 최고다. 차 본 김에 요령이 생겼다. 김부터로
차로 이동하여 거기서 병풍산을 오르기로 한다. 표고 500m중 150m를 차로 오르는 셈이다.
배추밭 지나 농로 따르다 능선 갈아타려고 지계곡으로 내렸다가 생사면을 올려친다. 발걸음
이 무겁다.
병풍산의 겨우 밑자락일 임도에 이르러서 너도나도 널브러진다. 모름지기 대장의 위용은 이
런 때 한층 빛나는 법. 대간거사 님은 임도를 못 본 체하고 곧바로 가파른 사면을 보란 듯이
치고 올라 그대로 병풍산까지 단숨에 빼버렸으니 나머지는 멍히 야코죽을 수밖에. 잡석 부슬
거리는 절개지 기어오른다.
쉬운 산이 없다. 병풍산이 오르기도 가파르려니와 지나온 산들의 심한 굴곡으로 이미 기진했
던 터라 맥진하기 직전이다. 적이 위안이 되는 건 세상에 솔개가 지친다는 사실이다. 신화가
사라지는 순간이다. 이런 동네 산에서 말이다.
이따금 서늘한 바람 불어 그나마 떠밀린다.
공제선 775m봉 오르면 바로 옆이 병풍산 정상인 줄로만 알았다. 멀다. 봉우리 3개를 더 넘어
야 한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레드의 경우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레드가 세상으로 나
가고자 했던 열망이 충만했던 때는 그의 가석방을 불승인 하더니 체념하여 40년을 복역하고
세상에 나가는 것이 도리어 두려울 때 가석방을 승인하였다. 체념한 레드의 심정으로 체념하
여 걷는다.
벙커 지나고 다시 벙커 지나고 교통호 넘어 또 벙커 지나고 헬기장 지나 마침내 병풍산 정상
이다. 삼각점은 2등 삼각점이다. 양구 25, 2003 복구. 2등 삼각점에 걸맞게 조망 좋다.
날이 어두워진다. 금방이라도 비 올 것처럼 바람이 분다. 그러나 그 뿐. 우리는 줄달음하여 병
풍산을 내린다. 낙엽이 발에 채여 우수수 흩날린다.
군부대 정문 앞이다. 마루금 진행을 고수하자면 철문 잠근 군부대를 통과해야 하는데 이번만
은 어두우니 일탈하고자 한다. 마루금 비킨 군사도로로 내린다. 산모롱이 돌고 돈다.
군사도로는 왼쪽 사면으로 돌아가고 우리는 오른쪽 사면으로 트래버스 하여 마루금을 잡는
다. 이윽고 에네미고개. 반갑게 하이파이브 한다. 멀리 동네 가로등은 불 밝혔다.
추기. 에네미고개(‘어네미고개’라고도 한다)가 이 근방이 6.25때 격전지이어서 군사용어인
enemy의 서툰 음독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화천문화원홈페이지의 이 고장 지명유
래에 “어남현(於南峴)【고개】에네미고개”로 적시한 것을 보고, ‘에네미’ 또는 ‘어네미’가 ‘어
남’의 변성이라고 판단한다. 그럴듯하지 않은가?
15. 병풍산을 향하여
16. 낙엽송
17. 왼쪽은 죽엽산, 가운데는 783m봉
18. 멀리는 수리봉(?), 그 너머에 흰바우산이 있다
19. 파로호
20. 파로호 주변
21. 가까운 산이 죽엽산
22. 가운데 능선은 도솔지맥, 병풍산에서 조망
첫댓글 항상 기대되는 선배님산행기 오늘도 변함없이 감탄하며 잘 보고 갑니다.. 입니다...^^
산행기를 읽다보면 어느새 마음은 산행에 동참하고 잇는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