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미주현대불교 원문보기 글쓴이: 파란연꽃
사사나스님&악가삿도스님 인터뷰
취재 | 전현자
기자: 먼저 두 분 스님께서 이렇게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특히 악가사또 스님께서 흔쾌히 응해주시고 사사나 스님까지 동의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먼저 사사나 스님께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듣기로는 스님께서는 가정을 갖고 계셨다가 출가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스님께서 그 때의 출가의 의미는 무엇이었는지요?
사사나 스님: 솔직히 말하면 저에게는 이미 불교의 성향이 좀 들어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 집안이 그 쪽 가풍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불교를 알고 출가를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출가하기 전 지방대학에 교직으로 머물고 있었을 때 공황장애를 한 7년가량 앓았었고 편도암 수술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신적으로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게 되어서 다 내려놓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처음에 말한 불교의 성향이 발현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몸과 마음이 너무 고통스럽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한 상태가 되자 막연하게나마 불교에 귀의해서 수행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스님을 찾아뵙고 그 얘기를 했더니 재가 수행처를 알려줘서 그때부터 수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한국에서 수행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제가 미얀마에 가서 수행하게 된 계기는 암과 정신적 공황장애를 이겨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참 힘든 거거든요.
어쨌든 미얀마로 건너가서 수행을 하고 있지만 출가할 생각이 없었어요. 그렇게 수행을 하면서 2년 정도 지나고 나서야 출가할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그때도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가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정을 내리는 것이 쉽지 않아서 잠시 인도 4대 성지순례를 하기도 마음먹고 그곳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도착하여 부처님 성지를 돌아보면서 부처님에 대한 존경심과 신심이 월장하는 거여요. 아주 강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확고하게 출가의 의지를 굳히고 한국으로 들어오지 않고 미얀마로 다시 건너가 출가를 하였습니다.
기자: 예, 출가를 하시게 된 그런 내용을 잘 설명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제가 다시한번 여쭈어보자면 스님께 출가란 무엇인지요?
사사나 스님: 지금은 이렇게 매일 수행하고 계율 잘 지키며 지혜로서 생활해야 된다고 가닥을 잡을 수도 있지만, 그 당시에는 워낙 몸과 마음이 역경에 처한지라 그냥 막연하게 수행을 하면서 이대로 부처님 품안에서 눈을 감아도 되겠지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런 마음뿐이었어요. 그런 마음으로 출가를 했던 거예요. 뭐 깨달음이랄지, 법을 체득하여 설법을 한다든지, 누굴 지도한다든지 그런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기자: 그러시다면 외람되지만 스님은 매우 이기적이셨다고 생각이 됩니다. 가정을 이루고 있는 상태에서 집을 떠나시는 것, 그것이 출가라는 아름다운 여정을 시작하는 것에서의 스님께 가족은 무엇이었는지요.
사사나 스님: 처음에 저도 그러한 생각을 했습니다. 세간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가족을 버리고 너 혼자 그 길로 가면 다냐? 한국에선 그런 얘기들을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거기서 출가를 하고 스님으로서 생활을 해보니까 그게 아니었던 겁니다. 테라와다불교 국가에서의 가족과 스님과의 관계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거기서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도 그런 생각이 서서히 벗겨지면서 이제 내가 가족에게 해줘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그때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출가생활을 여법히 잘하고 담마(법)를 이해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힘으로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나와 인연이 된 모든 사람들한테도 유익하고 이익이 있을 것이며 자식에게 있어서 아버지를 보는 입장이 더욱 진정성 있는 아버지로 매김할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족과 떨어져 살아도 저는 사실 편안하게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기자: 예, 그러시다면, 너무 구체적인 질문이 되는 것 같습니다만, 가족들한테 동의를 구하셨습니까?
사사나 스님: 동의는 안 구했습니다. 제가 갑자기 가사 입고 한국에 나타났거든요. 김포공항에 마중 나온 보살님이 많이 황당해했던 것 같습니다.
기자: 조금 아까 도사라는 표현은 빨리어 도사(dosa/진심/화)라는 의미로 하신 겁니까? 무슨 의미로 하신 겁니까?
사사나 스님: 아~ 네, 너무 갑작스런 모습에 황당하니까 화가 난 모양입니다.
기자: 제게 있어서 이런 특별한 인터뷰는 그동안 없었던 것 같고,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더우기 한 수행공간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같이 살고 계시는데, 스님께서 생각하셨던 것처럼 진정한 아버지가 되어가고 계신다고 스님 스스로는 생각하고 계십니까?
사사나 스님: 그렇게 생각한지는 오래되었어요. 부처님 제자로서 한 수행자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에 다 함축되어 있지 않을까요? 굳이 진정한 아버지다, 뭐다 할 것 없이 말입니다. 법으로서 대하고 법을 이야기하고 행하고 이런 거니까 세간적인 부자관계가 아니라 법관계라서 마음이 아주 편안하고 평온하기 그지없습니다. 아마 세간에서도 자식자녀들의 교육에 이러한 점을 적용시킨다면 참 좋겠다 싶어요.
기자: 아 훌륭하십니다. 이 특별한 인터뷰에 제가 톡톡 튄다라는 그런 외람된 발상인데요, 아버지인 스님께서 아버지의 역할을 진실하게 충분히 잘 하고 계신다고 그것이 벌써 오래 전이라 그러시는데 아드님 스님께서도 동의하십니까?
악가삿도 스님: 동의하지 않았으면 출가를 하지 않았겠죠. 그런데 사실 동의라는 것이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인데요, 거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어머니가 제 교육을 참 잘 시키셨다고 생각됩니다. 사실 저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오래 떨어져서 살아왔었습니다. 그 당시에 아버지한테 어디가 아프셔서 어떻게 힘들다는 상황 같은 걸 어머니께서는 일절 내색을 안 하셨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제가 충격을 받을까봐 그러지 않으셨나 싶습니다. 제가 어린 나이기도 하였습니다만, 그래서 그런지 아무런 얘기를 안 하시고 그냥 출가를 하셨다는 말만 들었어요. 그렇게만 알고 살아온지가 5년~6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다가 한국에 들어와 그런 상황을 보게 되니까 나이를 좀 먹어서 그런지 이해가 되더라구요. 그런데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더라도 완전하게 이해된 상태는 아니었고 제가 스스로 수행을 해보니까 ‘아~ 이 길이 참 좋은 길이구나’ 그런 마음이 들었기 때문에 출가의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아버지 스님께서는 이미 출가를 하셨고 먼저 그 길을 가시는 분으로서 그것도 큰 영향을 끼쳤으며 내면에 더 큰 영향으로 다가온 것은, 어머니의 영향이 참 컸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교육을 그렇게 시키셨거든요.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말고 스님이라고 불러라, 항상 어릴 때부터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래도 어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서인지 어머니의 영향력이 매우 컸던 것 같습니다. 만약 어머니께서 내색을 하시고 불평불만을 터트리셨다면 제가 반감을 많이 샀겠죠. 그런데 아무 말씀 안하시니까 제 스스로 궁금해지는 거예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그 길의 도랑을 어머니께서 파시지 않았나싶습니다.
기자: 아, 네~ 설명을 듣는데 아주 감동이 일어납니다. 어쨌든 그래도 세상에는 많은 스승들이 계시고 여러 국가적 문화적 차이와 불교 수행이나 문화, 전통들이 있습니다. 불교 수행자로서 현재 같은 수행처에서 머물고 계시는 정도로도 그런 확실한 스승으로서의 먼저 수행의 길을 가신 분으로서의 존경감, 그런 것이 구체적으로 딱 드러났다면 혹시 어떤 계기가 있으신지요?
악가삿도 스님: 수행이죠. 사실 저는 아버지를 만났을 때도 다 커서 만났고 이미 아버지는 출가 스님으로 만났기 때문에 속가의 아버지라는 느낌은 없었어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어머니께서 이미 다 그렇게 교육을 시키셨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그냥 스님이라는 느낌으로 만났었고 지금도 스님이라는 느낌으로 대하고 있으며 제가 처음 수행을 접했을 때도 스님으로 만났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법으로 시작해서 법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자: 예, 그러시군요. 그러한 특별한 어머니의 자랑스러운 교육이 뒷받침이 되어서 스님이 아닌 형태의 견해가 없었던 것이 오히려 제대로 법을 통해서 아버님을 스승으로 만날 수 있는 통로가 되셨군요? 그러니까 아까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버님과 오랫동안 떨어져 계셨다고 그러셨는데 아들스님께서는 어디에서 사셨기에 아니면 아버님께서 아들스님을 멀리 떠나 버리셨나요? 어떤 일로 그렇게 떨어져 살게 되셨는지 설명 좀 해주시겠습니까?
악가삿도 스님: 제가 어렸을 때 초등학교 졸업을 하고 프랑스로 떠나서 그것에서 공부를 했거든요. 어머니께서 보내셨는데 프랑스에 제 고모가 살고 계십니다. 그래서 저는 고모랑 프랑스에 있으면서 공부를 하고 사사나 스님께서는 미얀마에서 출가를 해서 수행을 하시고 사실 알고 보면 저하고 사사나 스님만 오래 떨어져 산 게 아니라 저희 가족 모두가 다 서로 떨어져 살았어요.
기자: 그럼 스님은 불어를 잘하시겠네요?
악가삿도 스님: 지금은 사용하지 않으니까 자꾸 잊어버리더군요.
기자: 그럼 이 기회에 스님께서는 한국어, 불어, 태국어에다 또 다른 언어를 배우시거나 익히실 계획이 있으신지요?
악가삿도 스님: 지금으로서는 가장 중요한 게 부처님의 언어인 빨리어를 배우려고 합니다. 그 공부를 하려면 아무래도 남방국가에 가서 해야 되는데 조만간에 미안마에 들어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미안마어를 책을 통해 조금씩 배우는 단계이며 그러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려면 빨리어를 익혀둬야 할 것 같습니다.
기자: 그래서 지금 그 두 가지를 배우실 계획이신가요?
악가삿도 스님: 네.
기자: 그러면 빨리어나 미얀마어는 미얀마에서도 가능하고 특히 이제 빨리어는 스리랑카나 그런 데서 꽤 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만, 혹시 그쪽으로 가셔서 그쪽의 불교나 언어, 나아가 수행까지 배우실 계획이 있으신지요.
악가삿도 스님: 예, 이번 우안거 끝나고 테라와다불교에서 가장 큰 축제인 까티나가사축제가 있거든요. 그 까티나가사 축제 이후 미안마로 들어갈 계획입니다.
기자: 아, 그러시군요. 그럼 이제 사사나 스님께서는 오랫동안 떨어져 살아왔던 아들과 법으로서 만난 제자이면서 스님으로 보는 감회랄까 먼저 그 길을 걸어가신 스승으로서 아들스님의 어떤 수행의 길을 시작한 것에 대해서 소감이 있으신지요?
사사나 스님: 사실 커서 만나서 뭐 달리 말할 필요가 없고 그냥 보면 통하지 않나 싶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만난 게 법으로서 만난 게 너무도 좋은 인연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이전에도 아들하고 얘기도 나눠보기도 했지만 사실 아들이다, 딸이다 자녀들에 대한 집착보다는 그냥 무심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딸이 하나 있는데 딸한테도 그래요. 수능시험 그냥 잘 보고 아는 데로 써라. 편안하게 치루어라. 안 되는 것 억지로 하지 말라. 시험기간에도 그런 얘기를 많이 해줬거든요. 부처님의 법을 배우면서 가르침을 수행을 하면서 집착하는 마음이 참으로 많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아마 법연으로 만나려고 그러지 않았나 싶습니다.
기자: 그리고 아들스님이 이 길에 들어서서 지금까지 스님생활을 하는 걸 보시고 만족하십니까?
악가삿도 스님: 아들로서도 그렇지만 아들이 아니더라도 부처님 진정한 제자가 되어야 한다, 이전에도 그런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기자: 아 예, 대단한 만족이시군요?
사사나 스님: 이렇게 가능성이 있고, 유능하고 앞으로 잠재력이 있는 젊은 청년들이 부처님 제자가 되어서 전법을 세계적으로 퍼뜨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과거와는 달리 요즘은 스님으로서 갖춰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아주 높게 빅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정말 부처님 제자가 되어야 되지 않겠느냐 겁니다. 그건 지극히 당연하고 매우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됩니다.
기자: 제가 듣기로는 사사나 스님께서 대학에서 강의를 하셨다고요? 혹시 전공이 무엇이었는지요.
사사나 스님: 인더스트리얼, 산업디자인입니다.
기자: 아, 그러셨어요? 그러면 뭐 아트하고 불교하고 연계점이라도 혹시 애써서 찾으신다고 하면 있을 수 있을까요, 스님?
사사나 스님: 저는 그 생각이 수행 시작하고 3년 정도 지나서 생각이 났어요. 과연 수행과 디자인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그 당시에 비교를 해보니까 정반대더라고요. 이건 전적으로 저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러나 정반대지만 세간에서 적용하는 분야로서는 부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은 수행을 오래 하고 나서 알게 되었죠. 아무튼 이 세상에서 자신의 마음으로 경험되는 것은 부정할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겁니다. 다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됩니다. 알아차림 수행도 여기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자: 대학에서 강의하다가 공황장애가 온 가장 큰 원인을 찾아보신다면 무엇이었는지 좀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사사나 스님: 결론부터 말하자면 스트레스입니다. 수행으로 보면 스트레스가 상대방이나 타인, 대인관계에 의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자신의 마음이 자신의 마음한테 스트레스를 받는 거예요. 그래서 저의 공황장애는 제 스스로 임상실험을 다 했다고나 할까요? 맨 처음 미안마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수행으로서 공황장애를 낫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수행을 하면서는 그 생각을 안했어요. 낫으려는 생각을 안했습니다. 그냥 수행만 하게 되었는데 그때 수행체험이 계속 되는 거예요. 그 체험이 너무 재밌어서 인터뷰(수행점검)하려고 그 시간이 기다려지기까지 하였습니다. 인터뷰하고 또 체험하고 인터뷰하고 그런 과정 속에 공황장애가 언제 물러갔는지도 몰랐습니다.
기자: 그럼 만약 어떤 공황장애나 심한 우울증 같은 것, 더 나아가 정신분열증을 보이는 사람이나 일반적인 정신질환자가 스님께 와서 수행을 통해서든 불교를 통해서든 좀 가르침을 받고 회복되길 원한다고 할 경우에 스님은 무엇을 제일 핵심적으로 가르치실 예정입니까? 아니면 그렇게 가르쳐 오셨습니까?
사사나 스님: 그 사람과 먼저 상담을 하고서 그 사람의 의지력을 보겠습니다. 그런 정신적인 질환을 가진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절대적으로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수행으로 분명히 뿌리를 뽑을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믿지 못해서 못하는 겁니다. 믿고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는데도 그렇게 못하는 거여요.
기자: 우선은 수행에 대한 믿음이 가장 최우선적이군요.
사사나 스님: 수행에 관심을 두고 재밌게 하면 상관없지만 그걸 나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기자: 예, 그렇군요.
사사나 스님: 수행을 재밌게 하고 부처님께 귀의해서 시작하면 더욱 좋죠.
기자: 그때의 부처님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거죠?
사사나 스님: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고 의지한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올인을 하고 시작을 하면 아무래도 그런 의지력이 강하지 않을까요? 수행적 측면이나 믿음(신심)으로나 말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그게 약해요. 믿지를 못하니까 전부 의심밖에 할 수가 없어요. 우울증 환자라든가 그런 정신적인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을 좋은 것이 없다고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아주 강합니다. 부정하는 마음이 굉장히 강해서 모든 게 다 싫다는 거예요. 그러니 정말로 수행하는데 얼마나 강한 의지력이 필요하겠습니까? 다 내려놓는다, 비운다 하는 말이 아마도 여기에 적용이 되지 않을까싶네요. 그마저 그것도 잘 안 되는 게 또 문제입니다.
기자: 네, 그렇군요. 그러면 이제 선배이거나 스승님과 같은 그런 분을 모시고 살면서 혹시 악가삿도 스님께서도 사사나 스님처럼 수행 위주의 길을 가고 싶으신 건지 물론 교학도 하시고 빨리어나 미안마어나 그런 것이 교학의 의미라고 제가 해석을 해버렸습니다만 어쨌든 어떤 길을 가시려고 하는지 방향점을 정하셨는지요?
악가삿도 스님: 궁극적으로는 수행입니다. 지금도 사실 수행이 더 재밌기는 해요. 처음 출가를 태국으로 갔던 것이 두루두루 배워보려고 갔던 거고, 지금은 교학을 어느 정도 배워놓고 그 이후에 수행을 배우려고 합니다. 계획을 그렇게 잡고 있습니다.
기자: 실례가 될지 모르지만 지금 세간 나이는 몇이신지요?
악가삿도 스님: 85년생입니다.
기자: 사사나 스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앞으로 불교계의 아주 큰 역할을 하실 수 있는 나이로서 때로는 나이도 중요한 면이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정말 매우 젊으신 분께서 이런 길에 들어섰고 성취하여 훗날 멋지게 회향하는 그런 것에 저의 기대가 아주 큽니다. 스님께서는 한국불교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악가삿도 스님: 한국불교 저희 집안 자체가 어렸을 때부터 한국불교하고도 인연이 컸어요. 저희 어머니 따라 한국 절에 많이 다녔었고 편안하잖아요. 어릴 때의 좋은 기억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성인이 돼서 출가한 이후에도 정말 한국불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한국불교는 한국불교대로 사람들에게 힐링을 주기도 하며 선한 길을 제시해 주고 있거든요. 그래서 한국불교는 한국불교대로 가는 길이 있고 테라와다불교는 테라와다불교 대로 그 역할을 충분히 하는 것이 서로 간에 소통과 화합이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자신들의 역할을 제대로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교류도 일어날 것이며 그렇게 해서 서로가 같이 상생하고 부처님 법을 알려야 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기자: 예, 훌륭한 생각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시다면 지금 테라와다불교로 비구스님이 되셨는데 수행을 하신 다음에 예를 들면 의도적 노력을 통해서라도 서로 교류를 해보시려고 하시나요?
악가삿도 스님: 사실 저는 의도적이라기보다도 이미 타의적으로 그렇게 교류를 하고 있어요. 3년전에 태국의 담마까야라는 사원으로 출가를 하게 되었는데 한국의 마하야나 스님들이 많이 오십니다. 초청을 많이 해서 그렇기도 한데요, 그분들하고 얘기도 많이 나누고 정보도 많이 주고받는 편입니다. 아무래도 한국 분들이 태국에 오시면 가장 필요한 게 통역이잖아요. 그래서 통역해 드리고 안내해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는 마음으로 다가서게 되면 교류는 아주 자연스럽게 될 것입니다.
기자: 아주 정말 훌륭하십니다. 제가 훌륭 훌륭하다는 소리가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 같습니다.
사사나 스님: 아껴가면서 하십시오. 하하하...
기자: 네, 스님. 오늘 정말 인터뷰를 안 했더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사사나 스님께서는 지금 이곳 마하보디 선원장을 하고 계시는데요. 초대 선원장이신 냐냐로까 스님께서 입적 후 우여곡절 끝에 스님께서 본 선원을 이끌고 계시는데 한국에 자리 잡고 있는 한국 테라와다불교가 창립된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사사나 스님: 상가 교단으로 7년째입니다.
기자: 교단을 창립한 것이 7년이군요. 그런 연유로 인하여 본 선원을 어떻게 이끌어 나가실 계획이신지요?
사사나 스님: 제가 수행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제게는 매우 독특한 성격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선원의 장단기 발전계획은 생각하고 있지만 뭘 이끌어간다, 뭐한다 그런 것보다는 자연스럽고 원만하게 진행되어가는 것을 선호합니다. 뭐든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 그것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사실 본 선원을 맡아서 운영을 하게 되지만 여력도 없는 상태에서 불사해서 크게 늘리고 그런 게 아닙니다.
사실 솔직하게 말하면 저도 여기 수행하러 왔어요. 수행하기엔 너무 좋아요. 수행처로서는 아주 적합한 곳입니다. 처음 이곳을 둘러볼 때 저기 법당을 보고 반했습니다. 매일 새벽마다 법당에 들르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새벽예불, 아침, 점심 법당에서의 좌선뿐만 아니라 선원 도량 모두가 다 수행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너무 좋습니다. 제 수행에 꼭 적합한 수행처입니다.
그래서 그런 마음의 그런 뜻을 알고 있는 수행자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고, 담마를 익혀가고, 배우고 하는 저는 그런 스타일이에요. 어떤 형식만을 거창하게 만들어가고 그런 게 아닙니다. 불법을 수행하면서 깨닫게 된 것이 어떤 문제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더라고요. 저는 그걸 수행의 힘으로 믿는 겁니다. 그러니까 크게 당황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뭔가 걱정하는 그런 것이 별로 없어요. 저기 야외 부처님 보셨죠? 미얀마에서 배로 공수되어 온지 3년 만에 저기 저 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작년 붓다의 날에 자연스럽게 점안을 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순조롭게 해결되었습니다. 너무 좋죠?
기자: 스님의 그런 수행에 관한 견해를 실천하시는 마음결을 듣고 보니까 제가 외람됩니다만, 저도 미얀마 몇 군데 가서 수행을 해본 것이 기억 되어서인데요. 스님의 핵심적인 수행방법은 혹시 쉐우민 위빠사나 수행센터의 그런 영향인가요?
사사나 스님: 제 개인적으로 말을 한다면 쉐우민 수행법이 아니고 부처님 수행법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이에요. 저는 그것을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부처님 가르침은 통찰지 수행에 포인트가 있거든요. 그것이 중점이 있기 때문에 그 통찰이라는 것을 저희 스승님으로부터 수행을 배우면서 보다 충분히 이해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스승님이라면 누구를 지칭하시는 건가요?
사사나 스님: 우.떼자니아 사야도입니다. 그 수행을 하면서 부처님의 수행법에 대해서 정말로 많이 이해했다고 생각됩니다. 통찰이라는 것이 주 포인트가 됩니다. 마음이 마음을 대상으로 보는 수행법입니다. 그것의 가치가 아주 대단하다고 여겨질 뿐입니다. 마음이 일하는 것을 많이많이 봄으로서 그 부분이 포인트가 되고 법의 조사로서 이해를 하고 배우게 되어 법문과 티칭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자: 소중한 가르침까지 주시니까 더욱 고맙습니다. 이제 마무리 하는 의미에서 이러한 것은 미국에 있는 교포 불자님들께 꼭 알려드리고 싶다는 것이 있으면 한분씩 말씀을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사사나 스님: 지금 인터뷰한 것이 미주현대불교에 들어갈 만한 내용으로서 다인 것 같습니다. 첨가한다면 부처님의 법은 확실합니다. 너무 분명하고 명확합니다. 통찰이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직접 수행을 해서 자신의 마음을 보고 지혜를 계발하여 지혜로서 그런 법들을 볼 수 있다면 아주 명확하고 확실하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부처님의 법과 가르침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니 언제나 불/법/승 삼보 안에서 생활하도록 하시는데 그럴려면 항상 사띠와 지혜로서 생활을 하셔야 됩니다.
기자: 예, 고맙습니다.
악가삿도 스님: 우리가 사실 태어났다고 하는 게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보자면 태어난 그 이유는 무명과 갈애, 집착 이런 것이기도 하지만 태어난 목적을 공덕을 쌓기 위해서 태어난 것으로 둔다면 더욱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에 계신 불자님들께서도 항상 공덕을 많이 지으시고, 그 공덕대로만 살아가신다면 언젠가 행복한 일이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기자: 또 훌륭하십니다. 여기서 마지막 질문을 드린다면 스님. 스님은 누구십니까?
사사나 스님: 어허허허...
악가삿도 스님: 부처님의 아들입니다.
기자: 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인연공덕으로 두 분께서 부처님 가르침의 크신 길 안에 들어서길 진심으로 발원합니다. 고맙습니다.
경북 경주시 내남면 박달로 369-95
선원장 사사나 스님: 010-6749-1418
첫댓글 감사합니다.
사두
사두
사두 !!!
사두사두사두~~~!!!
스님
참 보기 좋습니다.
사두 사두 사두
숙세의 복덕이십니다.
사두 사두 사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