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생경 개작동화>-277화 우모(羽毛)의 전생이야기
비둘기의 왕
장 경 호
“구구구…꾸욱…(우리 오늘도 재미있게 놀자)…꾸꾸꾸.”
“구우구우…(그래. 오늘은 아이들이 많이 나오겠지)…꾸꾸….”
“꾸우꾸우…(응, 많이 나올 거야)…꾸꾸꾸.”
아기비둘기들은 마냥 즐거운 듯 서로 부리를 맞대며 놀고 있었습니다.
한낮의 따사로운 햇살은 아기비둘기 위로 내려앉았습니다. 아기비둘기들은 꼬리까지 흔들며 가볍게 날갯짓을 하였습니다. 그때마다 작은 풀 조각들이 푸시시 날아올랐습니다.
‘녀석들 잘 놀고 있네.’
아기비둘기들이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비둘기왕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 찼습니다. 비둘기왕은 아기비둘기들이 노는 모습을 늘 지켜보며 많은 생각들을 해왔습니다.
‘우리 비둘기들의 꿈을 너희들이 키워나가야지, 암.’
비둘기왕은 천천히 아기비둘기들이 노는 곳으로 다가갔습니다.
“얘들아, 이제 우리 그만 놀고 선생님 말씀 들으러 가야지….”
비둘기왕은 아기비둘기들이 놀라지 않게 부드럽게 말을 건넸습니다.
“네 알았어요.”
“지금 가면 되지요.”
아기비둘기들은 한마디씩 하며 비둘기왕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 나랑 함께 가자. 그런데 너희들 선생님 말씀이 재미있니?”
“재미있어요. 우리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 같았어요.”
앞에 있던 아기비둘기가 한 발 다가서며 비둘기왕을 쳐다보았습니다.
“저도 좋았어요. 우리 친구들이 모두 좋아해요. 그치!"
“그래그래, 맞아. 어서 가요.”
옆에 있던 아기비둘기가 물어보자, 모두들 고개를 끄떡이며 앞장 서 날았습니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엔 굴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굴 안에는 훌륭한 선생님이 언제나 좋은 말씀을 들려주고 계셨습니다. 아기비둘기들이 날아들자, 굴 안엔 벌써 많은 비둘기들이 자리에 앉아 선생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이제 이곳을 떠나시게 되었대요.…”
바위 위에 앉아있던 비둘기가 속삭이듯 하는 작은 소리가 그때 들려왔습니다.
“뭐라고요?”
곁에 있던 비둘기가 놀란 듯 동그란 눈이 더욱 커졌습니다.
“이제 다른 선생님이 이곳에 오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래요? 정말 좋은 선생님이셨는데…그런데 누가 오신대요?”
모여 있던 비둘기들은 새로 오시는 선생님이 누군지 모두 궁금해 하는 눈치였습니다.
“글쎄요. 오셔봐야 알겠지요.”
말없이 비둘기들의 말을 듣고만 있던 비둘기왕은 슬그머니 밖으로 나갔습니다.
‘좋은 분이 오셔야 할 텐데….’
마을을 내려다보는 비둘기왕은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습니다.
비둘기들의 말대로 며칠 후, 새로운 선생님이 굴 안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비둘기들은 그 선생님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우리 마을을 위해 선생님이 새로 오셨으니 함께 가서 인사를 드리도록 하지요.”
비둘기왕은 말을 마치자마자, 많은 비둘기를 데리고 그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모두들 언제나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우리 곁에서 좋은 말씀 많이 들려주십시오.”
비둘기왕은 새로 온 선생님께 공손히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전에 있던 곳에서 사기꾼이었다는 좋지 않은 소문을 이미 듣고 있는 선생님이라 비둘기왕은 더욱 조심스럽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사기꾼 선생이 온지 50여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선생님 저희가 정성껏 마련한 음식입니다. 맛있게 드세요.”
마을 사람들은 오랫동안 굴에서 생활해온 사기꾼 선생에게 고맙다며 음식을 맛있게 해다 주었습니다.
“아니, 이렇게 맛있는 고기가 다 있다니…도대체 이게 무슨 고기요?”
그 음식을 맛본 사기꾼 선생은 입안에 감도는 고기 맛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기만 하였습니다. 고기 이름을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음, 아무 말도 못하는 걸 보니…여기 이렇게 많은 비둘기 고기가 틀림없겠구나.…’
사기꾼 선생은 입맛을 다시 한 번 다시며 혼자 생각을 굳혔습니다.
‘비둘기 고기가 이렇게 맛있는 줄은 내가 왜 몰랐을까?’
사기꾼 선생은 눈을 껌벅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래에. 한번 맛본 이 고기 맛을 내가 어찌 잊겠나. 저렇게 많은 비둘기들이 있는데 천천히 한 마리씩 잡아서 맛을 좀 봐야지.’
사기꾼 선생은 아무 생각 없이 굴 밖에 모여 있는 비둘기들을 힐끔 쳐다보며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저놈들이 잘 다니는 길목에 맛있는 먹이를 갖다놓으면…히히히…’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은 사기꾼 선생은 얼른 배추씨 등 비둘기가 좋아하는 먹이를 한 곳에 뿌려놓았습니다.
‘비둘기들이 이 먹이를 먹으러 올 때 이 막대기로 내리치면 되겠지.’
사기꾼 선생은 막대기 하나를 들어 보이며 얼른 옷 속에 감췄습니다. 언제든지 비들기가 먹이를 먹으러 오기만을 기다리며 문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다른 비둘기들이 비둘기왕 앞으로 부리나케 날아왔습니다.
“크, 큰일 났어요. 저기 굴 안에 사는 사기꾼 선생이 우리 비둘기를 잡아먹으려고 해요.”
숨이 턱에 차 달려온 비둘기의 말을 들은 비둘기 왕은 차분히 말을 이었습니다.
“걱정 마세요. 그렇지 않아도 나도 이미 눈치를 채고 있어서 어떻게 하나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저, 정말이세요?”
비둘기왕의 말에 달려온 비둘기들은 그래도 불안한 듯 되물었습니다.
“네.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으니 마음 놓고 계셔도 됩니다.”
비둘기왕은 불안해하는 비둘기들을 달래면서, 많은 바람이 불어오는 굴 입구 쪽으로 쏜살같이 날아갔습니다. 함께 있던 비둘기들도 얼른 뒤를 따라 근처에 조심스레 앉았습니다.
“흠! 흠!”
비둘기 왕은 굴 안을 대고 몇 번이고 힘껏 냄새를 맡아보았습니다.
‘음! 저 사기꾼 선생은 우리를 잡아먹고 싶어 안달이 난 게 틀림없어. 모두들 가까이 가지 않도록 해야겠다.’
비둘기왕은 주변에 앉아있는 비둘기들을 둘러보았습니다. 비둘기들도 비둘기왕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자, 여러분. 이제 이 굴 가까이 가지 말고 멀리 떨어져 앉도록 하세요!”
비둘기왕의 외침에 모여 있던 비둘기들이 순간적으로 굴에서 멀리 떨어져 앉았습니다. 그 광경을 몰래 보고 있던 사기꾼 선생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골똘히 생각하는 듯했습니다.
‘저 비둘기들이 내가 잡아먹으려고 하는 것을 눈치 챈 모양이네. 그렇다면 이 맛있는 먹이를 먹으러 빨리 오라고 해봐야지.’
사기꾼 선생은 얼른 자세를 고쳐 앉았습니다. 얼굴 가득 웃음마저 띄었습니다. 그리고 웃음소리로 조용히 말을 시작했습니다.
“내가 50년 동안 이 굴 속에서 살아올 때 너희들은 평온한 마음으로 내 곁으로 오지 않았느냐….”
사기꾼 선생은 잠시 숨을 멈추고 비둘기들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래서 너희들도 알에서 새로 태어나고 또 태어나고 했는데, 왜 지금은 나를 멀리하고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하느냐? 전에처럼 내 곁으로 가까이 오거라. 이 맛좋은 먹이를 너희들에게 먹이게 하려는 나를 알지 못하겠느냐.”
사기꾼 선생은 비둘기들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습니다.
“우리는 당신 생각처럼 어리석지 않다. 당신이 나쁜 사람이라는 걸 우린 모두 알고 있다.…”
비둘기왕의 한마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기꾼 선생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습니다.
‘저놈들이 내 마음을 알아차렸구나.’
비둘기왕은 사기꾼 선생이 안절부절 못하자,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네 마음속에는 나쁜 마음이 가득 차 있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이젠 네가 두렵기만 하다.”
비둘기왕이 계속 맞받아치는 말에 사기꾼 선생은 화가 잔뜩 났습니다.
“뭐라고? 그래, 내가 너희를 잡아먹으려는 게 이제 실패한 줄 안다. 그러니까, 너희들도 꼴 보기 싫으니 어서 가버려!”
사기꾼 선생은 그제야 버럭 소리를 지르며 옷 속에 감춰둔 막대기를 비둘기들한테 힘껏 내던졌습니다. 그러나 비둘기들은 그 막대기에 맞지를 않았습니다.
“당신이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한 것은 이렇게 실패를 하였지만, 앞으로 네 가지의 나쁜 세계로 당신이 떨어지는 것은 틀림없는 일일 것이다.”
비둘기왕은 사기꾼 선생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더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당신이 이 마을에서 그대로 산다면 우리도 가만있지 않겠다. ‘저 사람은 선생이 아니라 도적놈이다’하고 사람들에게 일러주기만 해도 넌 여기서 살 수 없다. 그러니 빨리 여기서 사라져라!”
비둘기왕이 빨리 떠나라고 다그치는 소리에 사기꾼 선생은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주춤주춤 하다가 비둘기왕의 기세에 슬그머니 자리를 뜨고 말았습니다.
“꾸우꾸우…(얘들아 놀자)…꾸꾸꾸.”
“구우구우…(그래. 나도 갈게. 우리 같이 놀자)…꾸꾸….”
얼마 후, 아기비둘기들이 즐겁게 노는 소리가 굴 안에서 다시 쩡쩡 울려나왔습니다.
옛날 범어왕이 바라나시에서 나라를 다스리고 있을 때, 여기에서의 비둘기의 왕은 부처님이시었습니다. *
<생각 키우기>
하나의 좋은 나무를 가꾸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비료도 주고 다듬어도 주고 끊임없이 베풀어주는 보살핌 속에 그 나무는 무럭무럭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은 누구나 다 갖고 있습니다. 남에게 보이지 않는 욕심이나 나쁜 마음은 언젠가는 자신을 망친다는 가르침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과 믿음 속에 함께 살아가는 마음가짐이 행복의 큰 힘이 되고 있음을 이 비둘기들의 생활 속에서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장경호 약력>
한국문인협회 이사, 국제펜 한국본부 이사
한국불교아동문학상, 한국전쟁문학상, 경기펜문학대상 등 수상
지은 책 : 『춤추는 아기별』 『새가 된 돌』 『숲속의 세 과학자』
『잠꾸러기 금붕어』『거울이 없는 나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