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사 강의(B-3-1)
Ⅰ. 사도시대(A.D - 100년) 기독교가 처음 출현하였던 팔레스타인은 오랜 역사를 통하여 고난과 투쟁을 경험하였다.
1. 지리적 요건 주전(B.C.) 4세기경에 알렉산더(Alexander) 대왕이 페르시아 제국을 패망시킴으로 팔레스타인의 주인이 되었다. 알렉산더는 마케도니아의 왕(재위 주전336~주전323년)으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학문을 배웠다. 20세에 왕위에 올라 여러 도시의 반란을 진압하였다. 기원전 334년에 원정에 나서 페르시아, 시리아. 페니키아, 이집트를 차례로 정복하였다. 정복한 곳마다 헬라, 즉 그리스 사람을 옮겨 살게 하여, 그리스 문화와 아시아 문화를 교류 융합시킴으로써 헬레니즘 문화의 기초를 이룩하였다. 알렉산더의 정복은 이념 위에 기초를 하고 있었다. 그는 헬라문명으로 통일을 이루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다. 그가 정복한 각 지역은 헬라적 요소가 매우 강했다. 이는 후에 복음전도에 많은 유익을 주었다 헬라적 이념은 서로 다른 국가들의 신들을 동일시하여 혼합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들은 결국 그 신들은 다 똑같은 신이라고 말했다. 로마가 제국을 형성하고 유대를 지배할 때 헤롯왕 역시 유대를 헬라화 시키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러한 그들의 노력에 대항하였다. 헤롯의 아들 아켈레우스는 이런 유대인들을 진압하기 위해 로마의 군대 개입을 요청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주후 70년에 로마의 디토장군에 의해서 예루살렘은 함락되고 말았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죄의 대가였다.
2. 유대인들 사이의 분파
1) 바리새당(파) * 로마 통치와 헬라문명이 가져다주는 물질적 유익을 누리지 못하였던 일반대중들의 당 * 율법을 확실히 지킴 * 헬라화 하려는 흐름 속에서도 민족 고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 최후의 부활과 천사의 존재를 믿었다
2) 사두개당(파) * 유대 귀족층 * 성전에 관심 집중
3) 열심당(파) * 유대 독립운동에 주추세력 * 민족주의자, 애국자 * 로마제국을 상대로 전쟁을 지속하던 근본주의자들 4) 에센인(파) * 경건주의, 금욕주의 * 분파들의 통일 점 : 윤리적 유일 신앙 , 종말론적 신앙 * 성전 파괴 후에도 계속 생존하며 유지해온 당은 바리새당이다 * 성경연구, 보존, 분리주의
5)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교 예수님 탄생 몇 세기 전부터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 전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이 유대인들은 선조의 조국과 강한 감정적, 종교적 유대감을 간직하고 있었다. 디아스포라에 의해 로마 전국에 새로운 신앙이 전파될 수 있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당시의 헬라어로 히브리성경을 번역해야만 했었다. 그래서 구약이 번역되었는데 바로 70인역(Septuagint)이다. 동방에서는 아람어, 서방에서는 헬라어로 번역되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헬레니즘과 더 이상 대립하는 게 아니라 그들과의 타협을 고려하고 있었다. 특별히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유대인들 사이에 그들의 고유신앙과 헬라문명과 가장 뛰어난 부분이 서로 상응함을 증명하고자 하는 운동이 일었다. 로마제국은 지중해 연안을 통일함으로서 복음전파를 용이하게 해주었다. 로마제국은 보다 완전한 통일을 위해 종교적 통합을 준비하였다.
로마의 종교혼합 ① 여러 종교를 무차별 혼합하는 종교적 혼합 주의 # 로마의 만신전 # 혼합절충주의는 당시에 유행이었다 # 로마정부는 각 지방의 신들이 결국은 같은 존재라고 가르쳤다
② 황제 숭배 # 로마 제국은 이를 통일과 충성의 방법, 수단으로 생각하였다. # 황제 신상을 곳곳에 세우고 경배하도록 강요하였다. # 신상숭배 거부 자는 잔인하게 죽였다
3. 당시의 예루살렘 교회 조상들의 관습과 언어를 고수하는 유대인들을 히브리파라 부르고, 헬라적 영향에 개방적이었던 유대인들을 헬라파라고 불렀다. 이들은 대립했었는데, 일곱 집사는 모두 헬라파였고, 최초의 박해도 주로 헬라파 기독교인들에게 가해졌다. 이는 당시 유대인들이 헬라문화에 대해 반감이 매우 많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헬라파 유대인들은 흩어져 복음을 전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곧 이방인들에의 사역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사도행전이 가르치는 바대로 당시 신자들은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파했기 때문이다. 사도바울도 새 도시에 도착하면 우선 회당과 유대인 공동체를 찾았다.
유대인들은(기독교인들도 역시) 기독교가 새로운 종교가 아니라 유대교 안의 한 이단적 종파라고 보았다. 많은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독립을 상실했던 이유가 조상들의 전통에 충실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에, 이런 이단적 분파로 인해 하나님의 분노가 다시 이스라엘에 임할까 두려워하여 기독교를 핍박하였다. 로마에서도 기독교를 유대교의 한 분파로 보고 유대교 내부의 갈등 문제로 보았다. 그러나 이방인들 사이에 기독교 개종자가 늘어감에 따라 기독교와 유대교 사이에 차이는 점점 명확해 지기 시작했다. 유대교의 민족주의가 열기를 띠기 시작하면서, 이방인 기독교인들로 인해 그 사이는 더욱 멀어져만 갔다. 그 결과 로마도 유대교와 기독교가 판이한 종교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후에 로마의 국교가 기독교가 된 후에 기독교는 유대교를 핍박하게 되었다.
4. 사도시대의 특색 ⑴ 기독교의 각지(各地)전파 ⑵ 신약성경 기록 ⑶ 영적 세력의 충만 ⑷ 세계종교로 발전 ⑸ 기독교와 로마와의 관계
1)판도확대 ① 지중해 중심의 전지역이 로마의 영토 ②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됨(주후 313년에 밀라노칙령을 발표됨) 기독교의 세속화. 수도원 발생 2)교통 편리 편리한 교통망 3)언어통일 헬라어, 라틴어 통용 4)군제통일 5)유대인의 분산 가는 곳마다 회당 세움(유대인 25가구 당 1개) 6) 도덕적 타락 - 기독교 동경의 요인이 됨 노예매매, 잔인한 풍속, 자녀에 대한 살해 권 7)종교상태 잡신, 황제숭배가 성행 8) 철학사상 ① 스토아 학파 - 규칙적 철학 ② 에피쿠로스파 - 쾌락주의 ③ 플라톤, 신플라톤주의 - 범신론, 무신론으로 방황 * 플라톤 주의 고대 신들을 비평하고 완전하고 불변하는 지존의 존재에 관하여 가르쳤다. 플라톤은 이 세상의 모든 유전하는 사물들을 뛰어넘어 영원한 진리의 고상한 세계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처음엔 이러한 철학적 전통들이 자기들의 신앙을 국외자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사용되었는데 결국은 기독교인들이 자기를 스스로의 신앙을 이해하는 방법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3. 사도 바울 1)생애 (1) 길리기아 다소 출생. 순수한 베냐민 지파 (2) 유대인으로 태어나면서 로마 시민권 가짐 (3) 가말리엘 문하에서 바리새주의를 수학 2)사업 (1) 제 1차 전도사업 출발지 - 안디옥 동행자 - 바나바 여행지 - 구브로,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디아, 더베 (2) 예루살렘 회의 동기 - 이방인의 할례문제 결과 - 할례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구원을 얻음 (3) 제2, 3차 전도여행 제2차 - 유럽으로 건너가 빌립보, 데살로니가, 아덴, 고린도 제3차 - 마게도냐, 헬라를 두루 돌아 에베소에서 전도
4. 네로와 도미티아누스의 박해 1) 네로의 박해 (주후 54 - 68년) 원인 - 로마 대 화재 사건 죄명 - 방화 책임을 기독교인에게 지움 네로 - 국민의 신망 잃음. 주후 69년 자살 * 당시 현장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당시의 소문들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타키투스 자신은 기름 창고에서 우연히 화재가 시작되었다고 믿었다. 타키투스는 기독교인 대한 핍박을 로마 방화 때문으로 보지 아니하고 기독교인들의 배덕 행위와 인류를 증오했다는 죄 때문으로 보고 있다. 화재를 모면한 두 구역에는 특히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네로는 자신이 벌인 일이 아님을 말하기 위해 새로운 방화 자들을 만들어 내야 했다. 당시 기독교인들은 국민들에게 비판의 대상이었다(유대교인이 아니고 기독교인)
2) 도미티아누스의 박해 (주후 81 - 96년) 원인 - 황제 예배 불복 죄명 - 기독교도 때문에 모든 신이 노했다는 죄명 카타콤 - 박해를 피해 지하 무덤에서 예배드림 박해 - 로마 제국관리들은 '유대교적 풍습'을 좇는 모든 자들을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유대교 신자와 기독교 신자를 가리지 않는 새로운 박해가 시작되었다. 기독교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예배하였으므로 이교도들은 흔히 신자들을 무신론자들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런 핍박 가운데 요한 계시록이 쓰여졌다고 한다. ◇로마의 10대 기독교 박해◇
1. 연대 == 주후 54-68년 박해 자 == 네로 이유 == 로마시 방화 방법 == 로마시 가로등 대용으로 십자가 화형 결과 == 베드로, 바울 순교 2. 연대 == 주후 81-96년 박해자 == 도마티아누스 이유 == 황제숭배 거부, 불충 방법 == 재산 몰수, 십자가 살해 결과 == 카타콤 생활 3. 연대 == 주후 97-117년 박해자 == 트라야누스 이유 == 집회, 황제동상 숭배 거부 방법 == 맹수에게 먹이고 집회불허함 결과 == 정통 신앙이 성장함 4. 연대 == 주후 117-138 박해자 ==하드리아누스 이유 == 여신상 경배거부 방법 == 국가에 불충과 반란죄 적용 결과 == 교회 잠적 5. 연대 == 주후 161-180년 박해자 == 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이유 == 국가적 질병, 흉년의 책임 방법 == 교회 핍박, 집회불허, 고문 결과 == 저스틴, 폴리캅 순교 6. 연대 == 주후 203-211년 박해자 ==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이유 == 국가 정책 거부, 신상숭배 거부 방법 == 입교금지, 집회금지, 전도금지 결과 == 이레니우스, 오리겐 순교 7. 연대 == 주후 235-288년 박해자 == 막시미아누스 이유 == 지진사고의 원인 방법 == 교회지도자 구속, 금광의 노예로 결과 == 교회의 결속, 지도자 양성 8. 연대 == 주후 240-251년 박해자 == 디키우스 이유 == 국가의 정책 실패, 가난 방법 == 교회 폐쇄 재산몰수, 고문, 살해 결과 == 오리게네스 중형, 키프리아누스 도피 9. 연대 == 주후 257-260년 박해자 == 바렐리아누스 이유 == 질병과 국가 흉년에 대한 책임전가 방법 == 예배금지, 재산몰수, 위반자 처형, 지도자 학살 결과 == 키프리아누스 순교, 식스투스 2세 순교, 키프리안 순교. 기타.. 10. 연대 == 주후 303 -311년 박해자 == 디오클레티안, 갈레리우스 이유 == 성상숭배 거부, 국가 전쟁 책임전가 방법 == 성경압수, 교회 파괴, 기독교인 모든 권리 정지, 이교도 숭배 강요, 화형, 원형경기장 동물 사료, 최악의 박해 결과 == 마우리티우스 순교, 알반 순교. 기타 수많은 기독교인 십자가에 달림
Ⅱ. 사도후 시대(주후 101-313년)
제 2세기부터는 박해에 관한 문제를 다룬 기록들이 증가하며, 순교에 관한 기독교 신자들의 태도가 어떠했는가에 대해서도 보다 구체적으로 기록되기 시작한다.
<플리니>와 <트라잔> 사이의 서신 주후 111년, 플리니(Pliny)는 비시디아(Pisidia) 총독에 임명되었다. 플리니는 로마 법률과 전통을 깊이 숭상하던 인물이었다. 비시디아에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살고 있어서 플리니는 이들의 처리에 대해서 고민을 하였다. 플리니는 기독교인들에게 세 번 개심 할 기회를 준 후에 계속 고집하는 자들은 처형을 하였다. 플리니가 당면했던 문제는 과연 기독교신자들은 뚜렷한 범죄 사실이 있을 때에만 처벌받아야 하는지, 아니면 '기독교신자'라는 사실 자체가 범죄를 구성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랐던 플리니는 일체의 법적 절차를 일단 중지시키고 트라잔(Trajan ;98-117) 황제의 지시를 받기 위해 서신을 띄웠다. 황제의 답변은 간단했다.
그들에 대한 일반적인 규칙은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고 밝히고 신고가 들어오면 그들을 처벌하되 개종하면 용서해 주고, 익명의 신고는 받지 말라고 하였다. 이러한 트라잔의 정책들은 비시디아의 경계를 넘어서, 그리고 트라잔이 죽은 오랜 후에도 계속 성행되었다. 제2세기, 그리고 제3세기 일부에 이르기까지 제국 전체에 걸쳐 기독교 신자들을 솔선하여 색출하지는 않았지만, 일단 당국자들 앞에 소환되었을 때에는 이들을 처벌해야 하는 것이 로마제국의 공식적 정책이었다. 이는 이그나티우스(St. Ignatius)의 일곱 서신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1. 개요
1) 시기 - 사도 요한이 죽은 후부터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하기까지 의 기간 2) 카톨릭 교회 - 보편, 공동의 의미를 지님 3) 사상의 발달
(1) 온갖 박해 중에도 전도활동 완성 (2) 이 시대는 사상의 발효시대이다 (3) 헬라(그리이스 철학), 동방종교, 유대의 율법주의의 이입으로 사상적 혼란이 옴 (4) 그노시스주의(Gnosticism) ,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 등 절충 조화의 사상이 형성
2. 기독교의 전파
1) 성장원인 성령의 역사. 전도열, 왕 상류계급의 입신 구제, 봉사와 상부상조, 인내, 고상한 도덕적 생활
3. 기독교의 박해
1) 원인 가. 유일신 숭배 방해하려는 의도 가. 교리의 오해 기독교인은 부도덕하다 - 동굴 속에서 남녀가 음행 한다 기독교인은 불의한 자 - 자식을 먹음(성찬예식의 포도즙을 피로 오해) 다. 미신
2) 진정한 원인 가. 사상의 부조화 (로마, 기독교) == 국가지상주의 -- 신본주의 나. 사회생활의 부조화 == 사치, 쾌락, 오락 -- 금주, 경건, 금욕 등의 부조화 3) 로마의 정책 가. 황제 예배 강요 -- 다신교 반대, 나. 기독교인 불신 -- 군복무 및 주요직책 박탈
4) 박해의 결과 가.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주임을 확인 나. 하나님의 아들임을 더 확인 다. 신약 정경 촉진, 진리를 세계에 알림 라. 사도, 교부들의 순교로 기독교가 생명의 종교임을 증명 마. 교회와 국가의 구별을 명확히 함
5)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하에서의 박해 주후 161년 황제의 자리에 오르다. 그의 재위기간 초기에는 야만족들의 침략과 홍수와 전염병과 기아 자연 재해들이 그치지 않았다. 곧 신들의 분노를 자극하여 제국에 이러한 재해를 가져다 준 인물들은 다름 아닌 기독교 신자들이라는 설명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때 마르쿠스에 의해서 과부 펠리시타스와 그의 일곱 아들이 순교했으며, 유명한 변증가 져스틴 마터(Justn Martyr)도 이 무렵에 순교했다.
4.사상적 공격 1) 루키아누스(lucianus of samosada) 내용 : 기독교인 생활 풍습 비방. 저서 : '페레그리누스의 죽음' 2) 켈수스(celsus) 내용 : 예수는 마리아와 로마 병사 사이의 사생아라고 말했다 저서 : '참말'로 기독교 공격. 오리게네스가 '켈수스를 반대한다'로 반박 3) 신플라톤 학파 시조 - 암모니아 사카스(ammonius saccas) 중요 학자 - 플로티누스(plotinus), 포르피리우스(perphyrius) 5. 교부(fathers) 1) 정의 가. 속 사도들의 직계 제자(예수님 제자 = 사도, 사도의 제자 = 속사도, 속사도의 제자 = 교부) 나. 교리의 정통성을 가진 자 2) 교리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 자 3) 구분 가. 속사도 교부(apostolic fathers) 나. 변증가(apologists) 다. 헬라교부(greek fathers) 라. 라틴교부(latin fathers)
6.사도교부 1) 이름과 저서가 같이 전해오는 교부 가.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of rome) 일세기말의 로마의 유명한 장로 나. 안디옥의 '하나님의 사자' 이그나티우스(ignatius) 주후107년 맹수의 밥이 됨 이그나티우스는 순교의 자리를 향하여 가면서 일곱 개의 서신들을 남겼는데 이는 초대 기독교역사를 살펴보기 위한 가장 중요한 기록이 되고 있다. (1) 서머나에서의 집필 가. 에베소 - 에베소 감독 오네시모가 보낸 사절단과의 만남 나. 마그네시아 - 마그네시아 교회에서 온 감독과 두 장로 다. 트라리아 - 폴리비우스 감독 라. 로마인에게 (2) 드로아에서의 집필 가. 빌라델비아 - 빌라델비아교회에 보낸 글 나. 서머나 - 서머나 교회에게 다. 폴리캅에게 - 폴리캅에게 다. 폴리캅(polycarp) 라. 파피아스(papias) 2) 저서만 전해지고 저자가 전해지지 않는 교부 (1) 헤르마스의 '목양자' - 천로역정과 비슷 (2) 바나바서 - 히브리서와 비슷 (3) 디오그레투스에게 주는 편지 - 황제를 양해시키려는 변증서 (4) 열두 사도의 교훈 - 신자의 생활과 습관 교훈
7. 변증가 1) 대표적 변증가들 가. 저스틴(justinus) 저스틴은 기독교신자가 되면서 철학자의 직분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기독교 철학"의 과업을 계승한다고 보았다. 그는 이 작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다름 아니라 기독교와 고전적 지혜사이의 관계를 증명하고 설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저스틴은 기독교와 이교 철학 사이에 몇 가지 접촉점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저스틴의 주장에 의하면 비록 이교도들에 의해 생성되었다 할 지라도 고전 문화 속에서 발견되는 모든 선한 것들과 진리들은 기독교에 속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 아리스티데스(aristides) 다. 콰드라투스(quadratus) 라. 타티아누스(tatianues) 마. 아테나고라스(atenagoras) 바. 멜리토(melito)
2) 비방하는 내용들 가. 기독신자는 무신론자이다 -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기에 나. 세상과 별다른 왕국을 세우려 함 - 기독교인은 세상에도 충실하다 다. 부도덕한 자 - 성찬에는 세례교인만 참여, 서로 근친상간 한다. 아기를 먹는다 라. 예수는 요술쟁이 마. 황제숭배를 거부함 바. 최후 부활을 믿는다.
3) 변증하는 내용들 신자들이 불공평한 재판을 받는 억울한 형편을 변호하고 세상에 대하여 기독교의 사상을 알리다. 가. 이교도들이 우상 섬기는 데 비해 신론자라고 할 수 있겠으나 사실 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 나. 신자는 신앙을 위해 순교한다. 이것은 세상 왕국을 세우려 함이 아님을 증명하다 다. 예수의 도덕적 교훈을 이용하여 도덕적 탁월함을 설명 라.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신이다. 마. 하나님 나라의 법에 상치되지 않는 한 신자는 국가 정책에 찬동한다.
8. 헬라교부(greek fathers) 1) 소아시아의 신학자 이 시기는 대략 주후 171년경으로 변증가시대의 끝으로 삼는다 가. 이레니우스(irenaeus;115-119년 출생) 130년경 소아시아지방에서 출생하였다. 폴리캅의 제자며 무엇보다도 목회자였다. 그는 사람들이 아직 해결하지 못한 신비스런 문제에 대해서 사색하기보다는 그의 교인들을 기독교 생활과 신앙 속에 이끌기를 좋아하는 인물이었다. 신학자며 고을지방의 감독이었다(삼위일체의 기독론) 나. 힙폴리투스(hippolitus) 이레니우스의 제자
2) 알렉산드리아 학파(alexandria school) 가. 판테누스(pantaenus) 나. 클레멘스(clemens) 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St. Clement of Alexandria) 클레멘트는 이 세상에 오직 한 가지 진리만이 존재한다고 확신하였으므로 플라토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모든 진리는 다름 아닌 성경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된 바로 그 진리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후 213년 알렉산드리아에서 죽었다. 라.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겐 오리겐의 신학에 쓰는 정신은 그의 스승 클레멘트의 그것과 매우 비슷하다. 즉 당시 알렉산드 리아에서 유행하던 철학사조였던 신플라톤주의와 기독교 신앙을 연결시키고자 하는 시도였다. 데시우스 치하에서 박해를 받았으며, 모진 감옥생활로 출옥 후 죽었다.
9. 라틴 교부 1) 터툴리안(tertullian) 터툴리안은 클레멘트와는 매우 다른 인물이었다. 성경은 교회에 속해져 있는 것이므로 이교도들이 성경에 대해서 논할 자격이 없다고 하였다. 이러한 계승은 형식적 계승뿐만 아니라 교리의 계속성도 포함된다.
2) 시프리안(cyprian) 200년에 칼타고의 부자집에서 출생. 40세쯤 개종. 248년 카르타고의 교회 감독이 됨. 250년 박해로 사막에 피난 가서 서신으로 교회를 격려 - 방대한 서신 왕래를 통해 교인들을 계속 지도하는 것이 자기의 임무라고 생각하였다. 몇 년 후 순교함.
<교회론> 교회 안에만 구원이 있다. 교회를 버린 자는 외인이고, 속인이며 적이다. 교회를 어머니라 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할 수 없다. 노아 방주 밖의 사람이 멸망함 같이 교회 밖의 사람은 멸망당함 교회는 단일, 즉 카톨릭교회 외에 다른 교회는 있을 수 없다.-당시는 이 백년 대이다. 이 시대에는 개혁교회가 없었다. 여기서 카톨릭은 정통 보편교회를 말한다. 교회는 감독에 의해 세워졌으니 감독 없으면 교회도 없다. 분리한 교회나 이단자의 세례는 무효이다
<요약> 교회만이 구원이 있고 감독권을 높임. 교회를 방주 등으로 표현. 최초의 카톨릭 성직제도 계급 지도자
10. 이단과 분파들 1) 유대교적 이단 가. 에비온파(ebionites) 바울 교리 배척 율법 고수 - 할례 금함. 안식일 지킴, 금식, 율법의 문자적 해석 기독관 - 동정녀 탄생 부인, 인성 주장, 수세시 직분 받음을 거부, 예수의 신성부인 나. 엘카이파(elkesai) 예수는 아담이 다시 사람이 되어 나왔고 앞으로도 다시 육신을 입을 수 있다고 주장. 할례를 행함, 안식일 지킴, 금식한다 다. 그노시스파(gnostism) 말뜻 - 헬라어 '지식'에서 나옴. 지식은 초자연적 지식 당시 유행하는 점성, 마술, 페르시아의 이원적 우주론의 혼합체에 기독교 교리를 혼합해서 일 종의 종교철학을 구성하려고 한 것이다. 인간의 삼분 - 물질적 인간, 심령적 인간, 정신적 인간
<그들의 새 교리> * 구약에서 유대교적 요소를 거절할 것 * 예수의 육체적 고난, 부활 등의 실제를 부인 * 금욕과 방랑생활을 시인 * 그들이 해결하려는 문제 ㅇ. 하나님이 창조한 우주에 어떻게 죄가 있고 재해가 있는가? ㅇ. 어떻게 하면 사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ㅇ. 신/구약의 관계에 관한 것
<여기에 대한 이들의 해명> ㅇ .신으로 유출된 아이온(영원히 존재하여 자라는 뜻)이 신에게서 멀어져 최하급에 달함 ㅇ. 우주는 하급신이 창조한 것이므로 불완전한 죄가 있다 ㅇ. 구약성경의 신은 하급신이다 ㅇ. 그리스도는 최고 아이온이며 가현하였다 ㅇ. 구원은 물질을 구속을 해탈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감이니 소수이다 ㅇ. 속죄는 지식을 통해 완수한다
라. 마르시온(Marcion) 시노페 감독의 아들로 출생. 유대교와 물질세계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 의하면 예 수님의 아버지, 즉 성부이신 하나님은 구약의 하나님인 여호와와는 다른 존재라고 했다. 바로 여호와가 이 세상을 창조했다. 그는 무지 혹은 악한 동기로서 이 세계를 만들고 그 속에 인류 를 배치시켰다. 여호와는 모든 인류가운데 특별한 민족만을 선택하였던 독선적인 신이었다. 그 는 또한 자기에게 불순종하는 자들을 기억하고 반드시 복수하고야마는 모진 신이다. 예수님께 서는 진실로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그가 여호와의 영역에 귀속되기 때문이다. 마르시온은 히브리 경전을 부인하였다. 만약 구약이 열등한 신의 말씀이라 면 교회에서 읽어서도 안 되고, 기독교 교육의 기초로 사용되어서도 안 된다. 마르시온은 이러 한 공백을 메우기 위하여 그가 진정한 기독교경전이라고 생각하였던 책들의 목록을 작성하였 다. 이 속에는 마르시온이 보기에 예수님의 메시지를 진정 이해했던 몇 명 안 되는 인물들 가 운데 하나인 바울의 서신들과 누가복음이 들어있다. 그 외의 모든 기독교 경전들은 유대인들의 관점에 의해 훼손되고 오염되었다고 간주하였다. 2) 교회의 분파 가. 몬타누스파(montanism) 교리 - 구교와 일치함 (성경은 전부 정경) 목적 - 원시 기독교의 부흥 지식보다 신앙이 우선 (그노시스 반대) 엄격한 규율. 교회의 계급주의 반대 (만민 제사장주의) 금욕, 고행을 장려. 재혼금지. 금욕주의 나. 노바티아누스파(novatianists) 데카우스황제 (249 - 251)시 박해 때 변절자 처리를 용납 안 함 신앙을 배반한 치명적인 범죄자도 교회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 7세기 자취를 감춤 다. 도나투스파(donatism) 박해 시 성경을 버린 자들 용납 안함 엄격한 교회의 규칙과 교인의 순결 주장 세속적 교직자 배격 감독정치.. 세례 받아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 개인주의로서 편협, 완고, 광신 상태로 흘러감
3) 마니교(Manichaeism) 로마제국 동방에서 3세기에 일어난 종교로서 그노시스파와 비슷한 점이 있으나 그 근원이 동방 이며 서방으로 들어와서 기독교와 접목하고 기독교적 요소를 흡수하였다. 가. 교조는 마니이다 나. 교리 - 인류는 악마가 광명국에 침입하므로 생겼다 - 그러므로 인생이 돌아갈 곳은 해탈이다 - 해탈하기 위해서는 금욕생활을 하여야 한다
11. 성경과 신조 1) 성경 가. 성경의 집성 *. 160년 전후 사복음서 종합 집성 *. 마르키온은 사도서신 (바울의 10서신)을 경전의 일부로 함 *. 터툴리안 시대에는 이미 신약의 집성이 완료됨 나. 무라토비 단편 *. 1740년 무라토비가 밀라노의 도서관에서 발견 *. 2세기 반경 다. 페시토(peshito) *. 2세기 중엽 이전에 만들어진 시리아어역
<정경(正經)에 대하여>
1. 신구약 66권 2. 희랍어 Canon은 곧은 장대, 지팡이의 뜻 3. 성경에는 '규례' '분량'이라는 뜻으로 사용됨 4. 교회가 canon을 정경이란 뜻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이 말이 애초부터 사랑의 신앙행위를 규정하는 원리라는 관념을 갖고 사용함 5. 신약 성경도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까지 쓰여지고 교부들의 서적에도 이 관념을 갖고 사용함 6. Canon은 표준, 근본원리, 근본적인 원리를 기록한 책의 목록이란 뜻 7. 결정 시기 - 동방교회가 382년 로마 전체 회의에서 정경목록 작성, 395년 칼타고 회의에서 27권과 그 목차가 확정됨 8. 결정기준 가. 역사적 기준 - 사도적 권위가 있는가? 나. 내적 기준 - 저자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하였는가? 다. 보편적 기준 - 진리가 보편성을 갖는가?
2) 사도신경 *. 열두 사도가 예루살렘에서 신앙의 표준으로 작성하여 베드로가 로마에 가지고 갔다는 전설에 의하여 사도신경이라 함 *. 당시 수세 후보자의 신앙 고백으로서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다. *. 아리우스 등 이단이 일어남으로 정통교리를 표시할 만한 문자를 넣어 381년에 전문이 완성된 듯 하다 (콘스탄티노플 회의) *. 사도신경의 기본적 골격은 아마도 150년경 로마에서 이루어진 듯하다. 당시 이는 "신앙의 상 징"이라고 불리워졌다. 상징이란, 이를 통하여 기독교 신자들이 당시 유행하고 있던 여러 이단들, 특히 영지주의와 마르시온주의에 대항하여 진정한 신자들을 식별할 수 있는 증거라는 의미였다. 누구든지 이 신경을 고백할 수 있는 신자는 영지주의자나 마르시온주의 자일 수 없었다.
12. 예배와 예전 1) 예배 가. 장소 *. 초기 - 개인 집, 셋집, 회당 *. 200년 후는 특별한 건물에서 예배 나. 예배 내용 가. 찬송 나. 성경봉독 다. 설교 라. 기도 마. 성찬식 바. 헌금 - 빈민 구제
2) 예전 가. 세례 수세전 - 기도하고 자주금식(2년간) 문답시 - 사죄에 관한 원칙을 알게 하고 구하게 함 세례식 - 세 번 침례 세례후 - 일주일간 목욕 안 함 나. 유아 세례 찬성 - 이레니우스 키프리안 반대 - 터툴리안 라틴교회는 전반적으로 행함 다. 부활절 동방 - 유대인의 유월절 (니산월(3-4월) 14일) 서방 - 춘분 후 첫 만월 다음 주일
13. 생활과 풍속 1) 박애와 자선 박해가 심하므로 성도는 단결함 2) 정결한 생활 독신남녀 존경 이혼 후 재혼 불가 교직자는 장립 후 결혼을 피할 것
Ⅲ. 니케아(Nicaea) 회의 시대(주후 313 - 590년)
1. 서론 니케아 회의의 장소는 처음 앙카라로 예정 되었으나 후에 니케아로 바뀌었다. 그 이유는 앙카라가 내륙이어서 참석자들의 여행에 어려움이 있고 황제의 거주지로부터 멀리 있었기에 황제 자신의 회의 참여에 효과적이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회의는 325년 6월 19일 니케아의 황제의 궁에서 콘스탄틴이 참석한 가운데 시작되었고 8월 25일 폐회될 때까지 거의 두 달간 계속되었고 318명의 감독들이 참석했다. 회의에 참석한 감독들은 세 개의 파로 나뉘어져 있었다. 가이샤라 유세비우스를 포함한 대다수의 중도파, 안디옥의 루시안에게서 공부한 아리우스와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가 이끄는 좌파, 그리고 정통 우파인 알렉산더와 아타나시우스 및 기타 소수파로 갈라져 있었다. 이회의는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것이며, 십자가의 표식과 예수의 이름의 깃발을 높이 들고 이단자들인 아리우스주의자들을 제압하는 하나의 승리였던 것이다.
회의에서는 ① 부활절의 날자(봄을 맞아 첫 번째 만월 후 첫 번째 주일 : 폴리캅과 소아시아 지방은 니산월 14월로 주장) ② 20개의 교회 계율 제정 (디오클레티안의 래로운 제국의 구획에 따른 새로운 교회의 조직 즉 교구 관활권 확정 : 로마, 알렉산드리아, 콘스탄티노플을 로마, 알렉산드리아, 안디옥으로 ) ③ 성직자의 직위 ④ 공적인 참회에 대하여 ⑤ 분열 자들과 이단자들의 재 입회에 관하여 ⑥ 예배의식의 규정 등이 다뤄졌고 아리우스의 견해를 누르고 아들과 아버지는 동일 본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1) 기간 313년에서 590년(최초의 세계적 화합인 니케아 회의가 있었으므로 그렇게 부름) 2) 교리 논쟁 아타나시우스와 어거스틴 3) 세계대회 교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소집 4) 교권 증진 정치력이 쇠할수록 교회 지도자의 세력이 강대해 짐 기독교가 국교가 되고 관직까지 소유하게 되었다. 5) 수도원의 발전 관직을 지킬수록 교회는 세속화되었고 반작용으로 금욕주의, 둔세주의가 성행하여 수도원이 생겼 다
2. 콘스탄틴 대제 1) 입신의 동기 가. 막센티우스와 밀위아 다리에서 전쟁할 때 태양 위에 십자가와 '이것으로 이기라'는 글자들을 모든 군사들이 봄 나. 그날 꿈에 예수님이 나타나 십자가를 보이며 이것으로 삼으라 하므로 그대로 하여 승리함 다. 337년 65세 때 유세비우스에게 세례 받고 오순절 날 사망 2) 업적 가. 우상숭배금지 나. 이교 전당을 몰수하여 교회에 줌 다. 관직은 기독교신자라야 함 라. 크게 부패하기 전에 일대 반동이 일어남
4. 기독론 논쟁 1) 제2차 회의 가. 장소 : 콘스탄티노플. 주후 381년 나. 소집자 : 테오도시우스 황제 다. 의장 :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 라. 의제 : 아폴리나리스설 아폴리나리스의 주장은 그리스도의 인성의 제한인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로 고스가 사람의 영에 대치했고 그리스도는 사람의 영이 없으나 인성 제한이라고 주장 마. 결의 : 아폴리나리스 학설을 기각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이며 완전한 인간이다
2) 제3차 회의 가. 장소 : 에베소. 주후 431년. 나. 소집자 : 테오도시우스 2세 다. 의제 : 네스토리우스의 양성론 그리스도는 신이 아니고 로고스가 임하였다(신성과 인성의 구별 주장)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키릴로스가 항의 라. 결의 *. 키릴로스파는 동방 회원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틈을 타서 네스토리우스의 출교 를 결의 *. 네스토리우스파가 도착해서 키릴로스를 이단이라고 결의 *. 435년 네스토리우스를 아라비아로 유배함
3) 제4차 회의 가. 장소 : 칼케톤 주후 451년 나. 소집자 : 마르키아누스황제. 다. 결과 : 칼케톤 신조 작성 <칼케톤 회의 결의 사항>
1.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에도 완전, 인성에도 완전하다(각 성질은 보존) 2. 그리스도는 참 신이며 참 인간으로 이성 있는 영혼과 육체를 소유하였다 3. 신성은 성부와 같고 인성은 우리와 같으나 죄가 없다.(양성은 썩거나 변하거나 떠나지 아니함) 4.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인성으로 동정녀에게 출생하셨다. * 이 회의는 니케아, 에베소 양회의에서 정한 신조를 확인하고 설명을 가하여 교리를 명백히 하였 다
4) 제5차 회의 가. 장소 : 콘스탄티노폴리스 주후 553년 나. 소집자 :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다. 의제 : 일성론자와 화해하려고 삼장령을 발표 라. 결과 : 칼케톤 신조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정통교리를 삼음
5) 제6차 회의 가. 장소 : 콘스탄티노폴리스 주후 680년 나. 소집자 : 콘스탄티누스 4세 다. 의제 : 일의론(양성을 가졌으나 선의만 가졌다) 라. 결과 : 이의론 채택
6) 제7차 회의 가. 장소 : 니케아 주후 787년 나. 소집자 : 콘스탄티누스 6세 다. 의제 : 성화 숭배문제 라. 결과 : 성화 숭배하기로 결정
7) 제8차 회의 가. 장소 : 콘스탄티노폴리스. 주후 869년 - 879년 나. 소집자 : 바실리우스 다. 의제 : 성령의 출처문제
5. 수도원 1) 원인 가. 기독교가 국교가 되자 기독교의 세속화 현상이 일어나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금욕생활, 경 건생활 운동이 일어남 2) 기원 가. 안토니우스 주후 356년 죽음 소유를 팔아 구제하라 라는 말씀에 감동하여 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재산을 다 팔아 구 제하고 굴속에 들어감. 은둔생활의 창시자 나. 규칙 제정의 필요성 *. 극단적 금욕생활을 막기 위해 *. 자유 방종을 방지하고 본래의 임무를 계속하기 위하여
<선지자들에 의해 예언된 교회>
다니엘서 2:44에서 다니엘은 느브갓데살 왕의 꿈 해몽을 통해 교회의 설립을 이미 예언하였다.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단 2:44) 그러나 그때에는 아직 그 나라의 영적 특징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1) 교회 설립을 위한 준비 교회가 설립되기까지는 준비 기간이 있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전도사역을 시작하기 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 3:2)고 가르쳤고 예수님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 4:17)고 선언하셨다. 그의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천국이 가까왔다.??(마 10:7)고 전파하라고 하셨다. 나중에 베드로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의 교회를 언제, 어떻게, 어디에 세우실지를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 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막 9:1)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행 1:8).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예루살렘 성에 유하라.??(눅 24:49) 이와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종합해 보면
① 교회는 사도들이 살아있는 동안에 세워질 것이라는 점 ② 교회는 권능으로 세워진다는 점 ③ 교회는 예루살렘 성에서 세워질 것 등을 알 수 있다.
2) 교회의 완성(설립) 사도행전 1장을 보면 사도들은 예수님이 명하신 대로 예루살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지 열흘 후(유월절 50일 후)에 오순절이 되었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각지로부터 이 명절을 지키기 위해 모였습니다. 아침 9시쯤 사도들이 함께 모였을 때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2~4) 예수님이 약속하신 그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게 된 것이다. 교회는 이미 오래 전부터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고 선지자들도 이것에 대해서 예언하였는데 하나님의 때에 완성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