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엉
김화
1 육류공장을 갈까 야채공장을 갈까 고민 중이다. 고민 끝에 육류공장에 전화를 걸었으나 사람을 뽑았단다. 할 수 없이 야채공장을 선택했다. 다행히 우엉공장에 자리가 있었다. 우엉공장 면접을 봤다. 사장이 말하길 남자들은 한 시간 일하면 그만둔다고 했다. 출근하기로 했으나 그는 별 기대 안하는 눈치였다. 우엉공장으로 첫 출근을 했다. 출근하기 전에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 영양순대국을 먹었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공원을 가로질러 우엉공장에 도착했다. 계단을 내려가 지하로 갔다. 공장 안으로 들어가니 사장과 할머니 직원 다섯 명이 있었다. 우엉을 까는 할머니가 누구슈라고 물었다. 일하러 왔는데요, 라고 대답했다. 사장이 잠시 앉아서 커피를 마시라고 했다. 물론 봉지커피다. 커피 한 잔을 마시는데, 좀 전에 누구슈라고 물었던 할머니가 다른 할머니들한테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여기는 말이여. 잘생기고, 성실하고, 인간성 좋은 사람만 들어올 수 있는 데여.” 다른 할머니들이 맞아, 맞아 맞장구쳐주면서 웃었다. 커피를 마신 뒤 일을 시작했다. 기역자 선반이 있는 구석으로 갔다. 내 등 뒤에서는 할머니 셋이 있었다. 한 명은 껍질 깐 우엉을 자동채썰기 기계 속에 넣고 있었다. 기계가 자동으로 김밥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로 채를 썰었다. 또 한 명은 커다란 고무대야에 쏟아지고 있는 채 썰어진 우엉을 다른 고무대야에 넣고 있었다. 또 다른 한 명은 어른 손으로 가로 두 뼘, 세로 세 뼘 정도 되는 크기의 비닐봉투에 4킬로가 되게끔 눈대중으로 우엉을 담고 있었다. 내 왼편 선반에는 대략 4킬로로 맞춰 담가진 우엉이 들어있는 비닐봉투가 2열종대로 놓여 있었다. 봉투 하나를 집어와 정면 선반에 있는 전자저울 위에 올려놓았다. 4킬로를 맞춰야 했다. 오차는 플러스, 마이너스 5그램까지 허용했다. 4킬로에서 모자라면 우엉을 더 집어놓고, 넘으면 우엉을 빼야했다. 그 다음 봉투를 저울 오른편 선반에 놓아 봉투 위를 잡고 탁탁 쳐준다. 그리고 오른편에 있는 진공포장기에 넣는다. 조금 열려있는 진공포장기 뚜껑을 손으로 더 올린다. 진공포장기 높이는 내 허리보다 조금 높다. 포장기 안에 봉투를 세워 놓고 양 손으로 봉투 위 맨 끝을 잡고 팽팽하게 당기면서 봉투 윗부분을 살짝 접는다. 위에서 양 손으로 조금 세게 봉투를 눌러준 뒤 봉투를 엎어논다. 불록 튀어나온 가운데를 손으로 세게 눌러주고, 동서남북 방향으로 가에를 눌러준다. 그렇게 손으로 압축을 시킨 뒤 비닐만 있는 부분을 진공포장대에 고정시킨 후 뚜껑을 닫는다. 뚜껑을 닫으면 자동으로 진공포장이 된 후 뚜껑이 조금 열린다. 그럼 진공포장된 우엉을 종이상자에 담는다. 오늘은 나 말고도 새로 들어온 신입 아줌마 직원이 또 있었다. 나이를 밝혔는데 아줌마가 아니라 60대 중반의 할머니였다. 하지만 겉모습만 보면 50대 중반의 아줌마로 보였다. 아주 작은 영세한 가내 공장이기 때문에 할머니들의 수다가 다 들렸다. 신입 할머니 직원은 공장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래서 일을 잘 못했다. 그래서 신입 앞에 고참 할머니 직원이 붙어서 일 군기를 잡고 있었다. “언니, 언니는 이런데 처음이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 해. 그러다가 요령이 붙으면 언니 맘대로 하면 되.” 잠시 뒤. “언니, 그게 아니잖아. 아, 내가 그렇게 하지 말랬지. 언니가 이렇게 일을 하니까. 저기 새로 온 젊은 노총각 오빠가 놀고 있잖아.” 할머니가 나를 보고 오빠라 한다. 기분 생뚱맞다. 그러고 난 놀고 있지 않았는데. 종이상자 만들고 있었는데. 다시 진공포장을 시작했다. 젊은 노총각 오빠가 들어와서 그런지 할머니들이 친절하게 신경을 써주었다. 할머니 한 분이 고무장갑을 주었다. “총각. 이거 끼고 해. 안 그러면 손이 우엉물이 들어서 시커먼해져. 그럼 장가도 못가. 내 말 못 믿겠지. 김 사장, 이리 와봐. 와서 손 좀 보여줘.” 김 사장이 손을 보여줬다. 손이 우엉물이 들어서 시꺼멓다. 특히, 손톱 쪽이 시커멓다. 김 사장도 거둘었다. “장가가고 싶으면 장갑 끼고 해.” 김 사장은 유부남이라서 장갑을 안 끼어도 됐다. 순간 나는 고민했지만, 장갑을 안 끼기로 했다. 할머니가 걱정을 해주었다. “총각, 그럼 장가 못 가는데.” 작업 중간에 사장이 담배 피자고 했다. 나는 담배를 안 핀다고 했다. 그러자 신입 할머니가 핀다고 했다. 우엉을 까고 있던 할머니가 말했다. “언니, 후두암, 폐암을 펴? 끊어 뭐 하러 펴. 언니 하루에 얼마나 펴?” “나 세 갑 펴.” “언니, 미쳤어. 끊어.” “미쳤니. 내 유일한 벗을 왜 끊니.” 신입 할머니는 사장과 함께 담배를 피러갔다. 나는 봉지커피를 마셨다. 시간은 잘 갔다. 어느새 퇴근 시간이다. 사장이 힘들지 않느냐고, 할 만하냐고 물었다. 할 만하다고 대답했다. 신입 할머니를 닦달하던 고참 할머니는 걱정이 되는지 신입 할머니에게 “내일 꼭 나와야 해. 조금만 더 하다보면 하나도 안 힘들어. 언니, 여기 나와야지. 담뱃값이라도 벌 거 아냐.” 신입 할머니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얼굴을 보니 아마도 내일 안 나올 것 같다. 일을 하면서 허리가 아프다고 했는데, 거기다가 할머니 하나가 계속 군기를 잡으니. 그나저나 나도 온몸이 쑤셨다.
2 어라, 신입 할머니가 출근했다. 어제 허리가 계속 아프다고 못해먹겠다고 했는데 출근하다니 헐. 오늘도 우엉을 건지면서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공장장 할머니가 신입 할머니에게 물었다 “언니는 여기 오기 전에 무슨 일 했슈? 이런 일은 처음이지?” 신입 할머니는 대답을 못하고 꾸물거렸다. 내가 보기엔 술집에서 일한 냄새가 풀풀 풍겼다. 신입 할머니는 꾸물거리다가 커피숍을 운영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분명 다방 레지를 한 것이다. 공장장 할머니가 계속 물었다. “언니는 자식이 몇 이슈?” “나 결혼 안했어. 이래뵈도 처녀야. 나 멋진 애인있어. 얼마나 멋진 줄 알아. 내 애인은 야성적이야” 공장장 할머니가 물었다. “뭐가 야성적인데?” 신입 할머니가 자랑스레 말했다. “나한테 얼마나 욕을 잘하는데. 어제도 쌍년, 꺼져라고 했어. 얼마나 야성적이야.” 공장장 할머니가 어처구니없어했다. “언니, 그건 야성적이 아니라 양아치야. 양아치.” 신입 할머니가 반박했다. “아니야. 쌍년 꺼져가 얼마나 야성적인데. 아무 남자나 그런 야성적인 말하는 게 아냐.” 공장장 할머니가 다시 한소리 했다. “언니. 그놈 양아치야. 헤어져.” 뭐 이런 얘기가 한동안 둘 사이에 계속 오고갔다. 공장장 할머니가 다른 걸 물었다. “언니, 언니 얼굴보면 이런데 올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공장에 왜 왔어?” 신입 할머니는 이쁘게 생겼다. 젊었을 때 많은 남자를 울렸을 것 같았다. 지금도 할아버지 정도는 쉽게 유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신입 할머니가 설명했다. “나 도박을 해서. 도박빚이 있어.” 공장장은 놀라지 않았다. “그래. 저번에 여기 온 언니도 도박빚 때문에 왔는데. 여기 도박하다 온 언니들 많아. 그럼 언니도 여기 오래 못 있겠다.” 신입 할머니가 말했다. “그러지 않아도 나 오늘까지만 하고 내일부터 안 나와. 사장에게 어제 얘기했어.” 나는 퇴근 후에 집에 와서 온몸에 파스를 붙였다.
3 이번엔 웬일로 아줌마가 새로 왔다. 40대 중반의 아줌마다. 할머니들만 보다가 40대 아줌마를 보니 신선했다. 공장일은 처음이란다. 과연 내일 나올는지. 일하는 걸 보니 어제 할머니들보다 못했다. 과연 내일 나올는지. 나는 일하는 틈틈이 생 우엉을 씹어먹었다. 우엉이 혈관에 좋다고 한다. 여기서 우엉을 먹으면서 혈관을 건강하게 해야겠다. 맨손으로 우엉을 잡으면서 일하니, 공장장 할머니가 보다못해 또 말렸다. “삼촌. 어제 얘기했잖아. 손에 우엉물 들면 지워지지 않아. 그럼 장가 못가.” 나는 그저 씨익 웃었다. 공장장 할머니가 아줌마들에게 투표했냐고 물으면서 우리 동네에 동성연애를 지지하는 국회의원 후보가 나왔다면서 세상 말세라고 믿을 건 하나님밖에 없다고 열불을 토했다. “아니, 어찌 이럴 수가 있어. 사위가 여자라고 생각혀 봐. 며느리가 남자라고 생각혀 봐. 이게 말이 돼. 아멘이여 아멘!” 내가 집에서 밥을 한다니까 공장장이 우엉 찌꺼기 남은 것을 챙겨주었다. 가져가서 반찬 해먹으라고. 퇴근할 때 깜박했다. 내일은 꼭 챙겨와야지. 집에 오니 눈이 침침했다.
4 공장장 할머니가 사장하고 점심을 먹고 온 뒤, 공장에 들어오자마자 “벼룩시장 어딨어?”라고 소리쳤다. 우엉을 까던 할머니가 “왜 그래? 언니. 사장하고 싸웠어?”라고 물었다. “사장하고 일 못해먹겠다. 나 그만두련다. 벼룩시장 어딨냐?” 그런데 공장장은 벼룩시장은 찾기는커녕 커피를 타먹고 있었다. 우엉을 씻던 할머니가 조그만 소리로 “저 언니 또 시작이야. 봐, 조금 있다가 고르곤 피자 먹으러 가자고 할 거야.”라고 키득거렸다. “오 여사, 심 여사. 오늘 끝나고 뭐해? 우리 고르곤 피자나 먹으러 가자구. 꿀 발라 먹으면 기똥차게 맛있어. 고르곤 피자.” 약속이나 한 듯 할머니들은 다들 일이 있다고 못 간다고 했다. “아우! 나 오늘 돈 쓰고 싶은데. 왜들 안 도와줘.” 공장장 할머니가 다시 졸랐다. 오후가 되자 어제 들어온 40대 신입 아줌마가 허리가 아파서 못하겠다고 했다. 사장이 사람 구할 때까지만 하면 안 되겠냐고 물어보자 신입은 안 된다고 대답했다. 신입들은 도무지 이틀을 넘기지 못했다. 퇴근 시간이 되자 공장장 할머니가 다리에 쥐가 났다며 소리쳤다. 사장이 공장장 할머니 다리를 주물렀다. 공장장 할머니가 “아휴, 내가 아까 사장 욕을 해서 벌받나봐”라고 하자, 사장이 웃었다. 공장장 할머니가 “안 되겠어, 이따 회개해야겠어, 아멘”이라고 말했다.
5 공장장 할머니가 개떡을 사왔다. 모두 개떡을 먹었는데 사장만 먹지 않았다. “아니. 김 사장 개고기는 잘 먹으면서 왜 개떡은 안 먹어. 이런 개떡 같은 경우가 있냐. 개고기 먹는 놈들은 다 개처럼 살 거야. 아멘.”이라고 공장장 할머니가 말했다. 공장 들어온 지 일주일째다. 공장장 할머니가 우엉 채 써는 방법과 건지는 방법을 알려주면서 나보고 오래 다니라 했다. 사장이 트로트 메들리를 틀었는데, 오 여사 할머니가 지루하다며 이박사로 바꾸라고 사장에게 말했다. 잠시 후 몽키몽키매직, 몽키매직이 공장 안에 울려 퍼지고 할머니들이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묘했다. 나는 전에는 이박사 메들리를 안 좋아했는데, 이박사 메들리가 신선하게 들렸다. 무엇보다 신났다. 단순작업을 반복하면서 듣기에 딱 좋았다. 뭐랄까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랄까.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것은 이박사 메들리에 맞춰 할머니들이 자기들 맘대로 가사를 바꿔부르는 것이었다. 그 중 내 기억에 남는 것은 “남자 놈들은 글러처먹었어. 아, 내가 낮에는 밥 줘, 밤에는 몸 줘. 도대체 나한테 제대로 주는 게 없어.”였다. 이 가사를 듣자마자 나는 웃음보가 빵 터지고 말았다.
6 오 여사 할머니가 말했다. “삼촌은 여기서 일할 얼굴이 아닌데.” 공장장 할머니도 맞장구쳤다. “그래. 삼촌은 이런데서 일할 사람이 아니야.” 오 여사 할머니와 공장장 할머니가 번갈아 물었다. “삼촌. 혹시 수배자 아니야?” 오 여사 할머니가 재차 말했다. “아무래도 수배자 같아. 이런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 오 여사 할머니가 진지하게 다시 물었다. “삼촌. 그럼 내가 내는 문제를 맞혀봐. 이걸 맞추면 삼촌은 분명 대단한 사람이고, 못 맞추면 여기 오래 다녀. 자, 그럼 문제 나간다.” 나는 긴장했다. 오 여사 할머니가 문제를 냈다. “삼촌. 병아리는 삐악삐악, 오리는 꽥꽥, 강아지는 멍멍, 고양이는 야옹야옹 울지. 그럼 김밥은 어떻게 울어?” 세상에나 듣도 보도 못한 문제였다. 지구에서 이걸 맞출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내가 계속 멍 때리자 오 여사 할머니가 답을 말해줬다. “삼촌. 고양이는 야옹야옹 울고, 김밥은 우엉우엉 울어.” 황당해하는 나를 보고 공장 안의 할머니들이 까르르 웃었다. 다시 공장장 할머니와 오 여사 할머니가 말했다. “삼촌, 여기 오래 다녀. 알았지?”
7 우엉을 까는 오전반 할머니들이 있다. 오전에 40개의 우엉을 까고, 깐 개수를 달력에 적는다. 그런데 한 할머니가 5개를 속여서 추가해 45개로 적었다. 공장장 할머니가 발견했다. 다음날 공장장 할머니가 오전반 할머니한테 왜 45개를 적었냐고 따졌다. 오전반 할머니는 45개가 맞다고 주장했다. 둘이 티격태격했다. 결국 오전반 할머니는 오전에 일을 하다 말고 가버렸다. 오전반 할머니가 가버린 뒤에 남아있는 할머니들이 뒷담화를 시작했다.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어떻게 5개를 속이냐? 그 시간에 도저히 5개를 깔수 없거든. 38개만 까고 가는 건 뭐야? 이왕 까려면 2개 더 까서 40개 채워야지. 삼촌, 이해해. 할머니들은 원래 이런 수다 떠는 맛에 산다우.” 내가 대답했다. “남자들도 그래요.” 사장과 할머니들이 내게 잘해주었다. 첫날 장화에 물 샌다고 하니까. 안 샌다고 그럴 리가 없다고 하더니. 오늘 새 장화를 사줬다. 그리고 작업하기 편한 새 고무장갑을 줬다. 3시만 되면 간식을 사왔다. 그리고 계속 오래 다니라고 내게 말했다. 우엉공장이라 별로 힘들지 않을 거라고 얕봤는데 그게 아니었다. 허리가 계속 아프다. 오늘은 종일 우엉을 채 썰었는데 오른 손목, 팔목, 어깨, 허리가 너무 아프다. 공장 노동이란 고통의 연속이다.
8 국세청에서 사장한테 등기 우편물이 왔다. 오 여사 할머니가 장난이 발동했다. 사장한테 국세청에서 압수수색이 왔다고 문자를 보냈다. 사장한테 전화가 왔다. 오 여사 할머니가 심각하게 말했다. “김 사장 큰일 났어. 국세청에서 압수수색이 들어왔어. 뭐, 세금 안 낸 것 있어? 세금 안 낸 게 있다고…… 김 사장 뻥이야. 하하하.” 오 여사 할머니는 우엉을 까면서 계속 압수수색이란 말을 중얼거리면서 웃었다. 다음날 오 여사 할머니가 공장장 할머니에게 압수수색 이야기를 했다. 공장장할머니도 웃음보가 빵 터졌다. 압수수색이란 말이 나올 때마다 둘은 깔깔거리며 웃었다.
9 출근하니 우엉이 다 떨어져서 우엉 까는 아줌마들이 출근하지 않았다. 오후 3시 반이 넘어서 우엉이 왔다. 1층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폭이 1미터쯤 되는 계단이 있다. 계단에 자동 컨베이트 벨트가 설치돼 있었다. 사장이 1층에서 우엉 상자를 벨트로 보내면 벨트가 끝나는 지점에서 내가 받았다. 나는 우엉을 수동 롤러레일 위로 보냈다. 즉, 내가 우엉 상자를 손으로 세게 롤러레일 위로 밀어버리면 우엉상자가 롤러를 타고 끝으로 갔다. 그럼 끝에서 우엉을 배달해 온 기사가 받아 우엉상자를 차곡차곡 쌓았다. 우엉 상자를 다 쌓은 후 쉬었다. 우엉 기사는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 기사가 내게 고마움을 표했다. “젊은이. 고마워. 마구 나르지 않아줘서. 저번 할아범은 우엉 상자를 마구 보내서 내가 애먹었어. 그렇게 보내지 말라니까. 귀가 어두워서 말귀를 못 알아들어. 그래서 내가 소리쳤는데. 소리치지 말라고 난리였어. 젊은이는 컨베이어 벨트를 껐다, 켰다하면서 잘 조절해서 내가 일하기가 좋았어.” 저번 할아범이란 매일 낮에 공장에 와서 폐지상자를 수거해가는 할아버지다. 일손이 없어서 폐지수거 할아버지에게 부탁한 것이다. 공장장 할머니가 할아버지 기사에게 얘기했다. “그 할아버지 아퍼. 살이 쪽 빠졌어. 그리고 귀가 잘 안 들려.” 할아버지 기사가 말했다. “오늘 일진이 안 좋은 날이야. 아침부터 중국산 양주 150박스를 배달하느라구 죽는 줄 알았네. 게다가 지금은 우엉 박스 300박스를 나르구. 아, 빡센 하루다. 이런 날이 있어.” 공장장 할머니가 말했다. “강씨, 노년에 무리하지 말아. 약값이 더 들어. 뭔 돈독이 들어가지구.” 할아버지 기사가 말했다. “난 돈 많이 벌어야 돼. 우리 아들 장가보내려면 아파트 사줘야 해.” 공장장 할머니가 발끈했다. “미쳤어. 아들 아파트를 왜 사줘. 지가 벌어서 사야지.” 할아버지 기사가 말했다. “아들이 서른아홉 살이야. 그런데 여자를 사귀는데 여자 나이가 스물아홉 살이야. 그러니까 내가 아들 아파트를 사주지 않으면 아들 결혼할 수 없어.” 공장장 할머니가 다그쳤다. “강씨. 아들 아파트가 문제가 아니라. 강씨. 이빨부터 해.” 할아버지 기사는 앞니가 다섯 개쯤 빠져있었다.
10 야옹,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내 스마트폰 문자 수신음이다. 일을 해야하기 때문에 문자를 볼 수 없었다. 그래서 2분마다 야옹하는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문제는 진짜 고양이 소리와 똑같다는 것이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공장장 할머니가 일을 하다말고 공장 안에 고양이가 들어왔다며 좋아했다. 우엉을 까는 할머니들도 분명 고양이라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공장장 할머니가 고양이를 찾았지만 당연히 찾을 수가 없었다. 공장장 할머니는 길냥이들에게 퇴근하는 길에 먹이를 주려고 사료까지 사서 공장에 갖다 놓았다. 나는 내 폰 문자 수신음이에요, 라고 말하려다가 못했다. 할머니들이 너무 진지했다. 고민했다. ‘이거 내 폰 소리라고 말해야 돼, 말아야 돼?’ 할머니들은 고양이가 구석에 있다. 아니다. 천장에 있다. 등등 고양이 위치를 추적했다. 아무래도 일이 끝난 뒤에 공장 안을 샅샅이 뒤질 것 같았다. 결국 나는 퇴근할 때 자수했다. 공장장 할머니는 아쉬워했고, 오 여사 할머니는 웃음보가 빵 터졌다.
11 네 박스가 반품이 왔다. 나는 내가 진공포장을 잘못해서 반품이 온줄 알았다. 공장장 할머니가 반품된 네 박스 때문에 일하는 내내 투덜거렸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불편한 마음으로 일을 해야 했다. 네 박스면 십만 원에 해당한다고 공장장 할머니가 힘들게 고생해서 이게 뭐냐고 화를 냈다. 나는 바늘 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내 주급에서 까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카드값, 보험료, 전화세, tv요금 등등 내야할 게 많아서 그냥 꾸욱 참았다. 공장장 할머니가 나보고 반품된 우엉 포장을 뜯어서 냄새를 맡아보라고 했다. 자신과 사장은 코가 이상해서 냄새를 못 맡는다고 했다. 이상 없으면 다시 포장하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냄새를 맡다가 나는 쓰러질 뻔 했다. 코를 찌르는 상한 냄새가 역했다. 아깝지만 모두 버려야 했다. 돈이 아까운 게 아니라 저걸 만드느라 고생한 게 허망하게 날아가버려 마음이 휑했다. 허리, 손목, 팔목이 더 쑤셨다. 공장장 할머니가 드디어 폭발했다. “저거 한 집에서 온 거야. 이번이 처음이 아니야. 아주 상습범이야. 어떻게 우엉이 저렇게 상할 수가 있어. 딴 집들은 안 그러는데 꼭 저 집만 그래. 김밥이 안 나가면 주문을 적게 하든지. 꼭 주문을 왕창해놓고 반품이야. 내가 사장에게 따져야겠어. 앞으로 저 집은 적게 주라구.” 다행이다. 나 때문에 반품된 것이 아니다. 어쨌거나 앞으로 진공포장할 때 좀 더 신경써야겠다. 사장이 나갔다 돌아왔다. 우엉이 반품 왔는데 냄새가 나서 못쓴다고 했다. 사장이 반품된 우엉을 손으로 집어서 씹어 먹었다. 사장은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한다. 오마이갓. 공장장이 나보고 한번 먹어보라고 했다. 나는 반품된 우엉을 조금만 집어 씹어보자마자 바로 퇴,하고 뱉어버렸다. “완전 쉬었어요. 못 먹어요. 우웩.” “거봐. 사장은 코가 이상해서 냄새를 못 맡아. 쉰 거를 몰라. 그래서 맨날 내가 냄새 맡는다. 이 나이에.” 공장장 할머니가 설명했다. 사장은 반품 온 우엉 네 박스를 버렸다.
12 일을 하다가 공장장 할머니가 계속 일에 대한 잔소리를 늘어놓자 사장이 “네, 마님.”이라고 대답했다. 이 말에 공장장 할머니가 흐뭇해하자, 오 여사 할머니가 “네, 마님이란 말은 재수 없다는 말이야.” 하고 깔깔깔 웃었다. 그래도 공장장 할머니는 흐뭇해했다. 공장장 할머니가 나보고 장가를 꼭 가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오 여사 할머니가 “아니, 전에는 남자 직원들한테 장가 가지 말라고 하더니 이제는 왜 가라고 그래? 삼촌은 장가 안 간다는데. 삼촌 장가가지마. 혼자 살아. 뭐 하러 장가가? 그놈이 그놈이고 그년이 그년이야.” 공장장 할머니가 다시 말했다. “삼촌, 늦더라도 꼭 가. 혼자 살면 외롭고 우울해줘. 늘그막에는 동반자가 있어야 해. 애는 낳지마. 둘이 친구처럼 살면 되.”
13 이곳은 주급제다. 일주일 일하고 다음 주 화요일에 주급이 나온다. 사장 말이 업체에서 입금해주면 그 돈으로 주급을 준다고 했다. 사장이 “오늘 주급 입금 못했어.”라고 공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왜?”라고 오 여사 할머니가 묻자. 사장이 우엉값좀 입금해달라고 문자를 보냈는데, 기분 나쁘다고 계약 끊겠다고 했단다. 할머니들이 열 받았다. 할머니들 입에서 쌍욕이 튀어나왔다. 나도 열 받았다. “세상이 이런 나쁜놈들이 어딨어. 항상 물건 먼저 받고 나중에 돈 주면서, 돈도 제때 주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오 여사 할머니가 씩씩거리며 말했다. 공장장 할머니도 거들었다. “우리나라는 이게 글러처먹었어. 물건 값을 치르고 물건을 받아가야지. 물건 먼저 받고 돈은 나중에 주는 게 이게 말이 돼? 하나님이 이런 놈들 벌줘야 해. 근데 김 사장아. 거래업체 끊겨서 어떻게 해?” 사장이 대답했다. “괜찮아요. 다른데 뚫으면 되지요.” 김 사장 얼굴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그나저나 주급 밀리게 생겼다.
14 공장장 할머니가 잘 챙겨주었다. 쉬는 시간이 없는데 일부러 쉬는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또 사장을 닦달해서 간식을 사오라고 했다. 그럼 사장은 간식을 사왔다. 주로 사오는 간식은 김밥과 우유다. 사장에게 삼촌은 허리와 어깨가 아프다며 진공포장만 시키라고 말했다. 그럼 내가 괜찮다고 했다. 요즘 들어서는 내가 우엉을 채 썰고, 공장장이 우엉을 건지고, 사장이 진공포장을 했다. 아마 내가 그만둘 때까지 이 시스템으로 갈 것이다. 우엉 건지는 일이 힘들다. 허리를 숙이고 일하기 때문에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프다. 그래서 내가 교대로 하자고 공장장 할머니에게 말하면 공장장 할머니는 됐다고 삼촌은 이 일은 허리가 아파서 못한다고, 아마 하면 공장을 바로 그만둘 것이라고 했다. 공장장 할머니는 내가 이 공장에 오래 다니길 원했다.
15 오후 네 시쯤, 일이 힘들 때가 되면 오 여사 할머니가 이박사를 튼다. 좋아,좋아, 몽키몽키, 월드컵 등등 이박사 메들리가 공장을 뒤덮는다. 이박사 메들리가 이렇게 좋다니. 이건 노동요다. 이박사 메들리가 울려퍼지는 동안 지루한 공장 일에 활기가 넘친다. 잠시 공장장 할머니와 오 여사 할머니가 일을 멈추고 신나게 춤을 춘다. 아싸, 좋아, 좋아하면서 말이다. 나도 동참했다.
16 오 여사 할머니가 알려주었다. 여기서 일하는 할머니들은 손가락이 관절염에 걸렸다. 물일을 오래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오 여사 할머니가 또 다른 사실을 알려주길 식당에서 일하는 아줌마들도 결국에 관절염에 걸려 고생한다고 했다. 우엉 공장 할머니들도 젊었을 때는 식당에서 일하다가 나이 들어서 일할 데가 없어서 이곳까지 왔다고 했다.
17 사장이 점심을 짜장면을 시켜줬다. 오 여사 할머니가 막걸리 두 병을 사왔다. 짜장면과 막걸리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오 여사 할머니가 나한테 그만두지 말고 오래 다니라고 설득했다. 오 여사 할머니가 소개팅을 해주겠다고 했다. 마흔이 넘은 노처녀인데, 집안이 잘 산다고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인물도 괜찮고 눈도 높다고 했다. 당연히 나는 거절했다. 공장에 다닌다고 하면 안 될 것이 뻔했다. 오 여사 할머니가 공장에 다니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하라고 했다.
18 오 여사 할머니와 공장장 할머니가 사장에게 시급을 천원 더 올려달라고 말 했다. 사장은 들은 체 만 체했다. 사장이 들은 체 만 체하던 말던 두 할머니는 작업하는 내내 시급 천원을 올려달라고 했다. 결국 일주일 만에 사장은 백기를 들었고 시급을 천원 더 올려주었다. 아! 할매들 너무 멋지다.
19 할머니 한 명이 못 나왔다. 기르던 고양이가 갑자기 죽어서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했다. 할머니 직원들은 모두 동정해주었다. 특히, 공장장 할머니가 가장 슬퍼했다. 공장장 할머니는 개 두 마리와 고양이 네 마리를 키웠다. 고양이 장례식 때문에 못 나오는 할머니가 나오기까지 남은 할머니들의 일손이 더 바빠졌다. 모두 일이 끝난 뒤에 고양이 장례식에 참석하기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