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43장
요셉이 베냐민을 만남, 섭리를 이루는 직분자로서의 절제력
(찬송 3장)
2024-2-19, 월
맥락과 의미
43-45장은 요셉의 형들이 양식을 사기 위해 두 번째로 이집트를 방문한 이야기입니다. 43-44장은 형들이 요셉에 의해 난처한 입장에 몰리는 이야기입니다. 두 가지 장면이 나옵니다. 야곱이 아들들을 이집트로 보내는 장면, 그리고 그들이 이집트에서 요셉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43장에서 요셉은 주요 인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요셉은 본문에서 이름이 아니고 단지 “그 사람”으로만 여러 번 나옵니다(5, 7, 14절). 오히려 야곱과 그 아들들, 특히 유다가 중요한 사람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어떻게 변화되고 있습니까?
1. 야곱이 곡식을 사기 위해 아들들을 이집트로 보냄(1-14절)
2. 이집트에 도착하여 요셉과 첫번째 대면함(15-34절)
1. 야곱이 곡식을 사기 위해 아들들을 이집트로 보냄(1-14절)
야곱이 있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해졌습니다. 자식들을 이집트에 내려 보내 양식을 사오도록 합니다. 그때 야곱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람이 아들 유다입니다.
2절에서 양식을 조금 사오라고 야곱이 아들들에게 말합니다. 유다가 나서서 말합니다. “베냐민을 데려가야 합니다. 이집트에 가지 않으면 확실히 아버지와 우리들의 집은 굶어 죽습니다. 베냐민을 데리고 가지 않으면 우리들이 죽습니다. 베냐민을 데리고 가면 적어도 우리와 아버지, 그리고 우리 어린 아이들이 살 것입니다.” 몰아친 심한 기근 앞에서 야곱의 고집이 꺾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11절에 야곱은 유다의 말을 듣고 “그리 해야 한다면 이것을 하라”고 명령합니다. 가나안의 값진 선물과 돈을 가져가라고 하면서 가장 중요한 베냐민을 데리고 가라고 결정합니다. 이스라엘은 막내아들 베냐민을 보냅니다. 보내면서 축복합니다. 14절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이 전능하신 하나님, “엘 샤다이”가 굉장히 중요한 단어입니다. 창세기 17장 1절에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실 때 “나는 엘 샤다이다” 하셨습니다. “언약의 하나님, 내 조상, 내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셔서 자녀가 없을 때 이삭을 주실 것을 약속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 이제 내 베냐민이 혹시 죽더라도 하나님께 다 맡깁니다. 위험을 맡깁니다. 내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쳤지만 하나님께서 살려 주셨듯이 이 베냐민도 살리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은혜를 베푸사” 라고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야곱을 야곱이라 하지 않고 “이스라엘”이라 말하고 “아버지”라고 하고 있습니다. 야곱을 이스라엘이라 한 이유는 이제 이스라엘 민족으로서 이집트에서 번성할 것임을 미리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아버지는 다른 말로 하면 조상이라는 뜻도 됩니다. 조상 이스라엘이 어떻게 이집트에 오게 되었고 이집트에서 어떻게 번성되었는가 알려주는 출애굽기 이후의 이야기를 이 말씀은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형제들의 대표로 유다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흐름이 아버지 이스라엘과 유다와 요셉, 이 세 사람으로 이루어집니다. 나중에 야곱이 자기 아들들을 축복할 때도 보면 유다와 요셉을 특별히 축복합니다. 49장 10절에서 유다에게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하고 말합니다. 또 요셉에 대해서는 “무성한 가지라” 하고 복을 많이 받을 것을 말합니다. 이 두 사람에게 특별히 축복하면서 하나님께서 택한 사실을 강조합니다.
나중에 요셉의 후손이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됩니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누어졌을 때 끝까지 남아있던 두 지파가 바로 유다와 에브라임 두 지파입니다.
2. 이집트에 도착하여 요셉과 첫번째 대면함(15-34절)
1) 이집트에 도착하여 요셉의 집으로 안내됨(15-25절)
야곱의 아들들은 베냐민과 함께 이집트에 도착했습니다. 요셉은 그들을 자기 집으로 가게 했습니다. 집으로 데려가니까 형들은 두려워하며 말했습니다. “이제 종을 삼는가 보다.” 전에 그들이 요셉을 이집트에 종으로 판 것에 대해 생각하며 그들은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지난 번 곡식을 사 가지고 갈 때 판매대금이 그들의 곡식자루에 있었던 것 때문에 벌을 받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자기들이 의도적으로 한 것이 아님을 설명했습니다.
그때에 요셉의 청지기가 축복합니다. 23절 “너희는 안심하라, 샬롬!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에게 주셨다.”
2) 요셉과의 첫번째 대면: 절하고 잔치함(26-34절)
이제 요셉이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땅에 엎드려 절하였습니다”(26절). 요셉은 자기 아버지의 안부(샬롬)를 물었습니다(27절).
형들이 대답하는 말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들이 대답하되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평안-‘샬롬’-하고”(28절). 자기 아버지 야곱을 요셉의 종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한 번 더 머리 숙여 절합니다. 두 번째로 머리를 숙인다는 것은 자기 아버지 야곱이 머리 숙여 절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샬롬”하고 물으니까 “샬롬”하면서 엎드려 절합니다.
이것은 창세기 37장에서 하나님께서 요셉의 꿈을 통해서, 형들과 아버지와 어머니가 요셉에게 절할 것이라고 예언하셨는데 그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그 예언을 이루셨습니다.
어릴 때 요셉은 그 꿈이 자기가 인정받는 것으로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요셉은 성장했습니다. 자기에게 이루어진 꿈은 형들이 자기에게 절하는 개인적인 자기의 성취나 인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가문의 보호자, 구원자로 자기를 보내신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은 자기 어머니 라헬에게서 태어난 친동생 베냐민을 보고서 그에게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네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 사랑하는 동생을 보고 마음이 타는 듯했습니다.
요셉이 30세에 총리가 되었고 풍년이 7년, 기근이 한 2년 되었으므로(45:6) 지금 약 39세 정도는 되었을 것입니다. 17세에 고향을 떠났다면 거의 22년동안 사춘기 때 헤어진 동생을 못 만나다가 이제 성인이 되어 만났으니 얼마나 눈물이 복받쳤겠습니까? 급히 나와서 안방에 가서 울고 얼굴을 닦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정을 억제했습니다”(31절). “정”은 14절의 ‘은혜를 베푸사’에 나오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깊은 사랑과 정입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마음의 정에서 나오는 은혜를 베풀기 원한다고 축복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마음이 요셉에 가득합니다.
요셉은 동생 베냐민을 향한 큰 사랑이 있었지만 “내가 요셉이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한 계획을 집행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형들이 악을 스스로 회개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이제 형들을 나이 순대로 앉혔습니다. 형들은 신기하게 생각했습니다. 식사를 대접해주었습니다. 요셉 자기 식탁에 함께 앉았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집트 사람은 히브리 사람과 식탁을 같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히브리 사람이 부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형제들과 함께 앉는 것을 통해 이런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나는 이집트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들과 같이 먹어도 부정케 되지 않는 언약의 백성입니다.”
형제들의 나이 순서대로 앉힌 것도 상징적입니다. 베냐민에게 다섯 배나 더 주었습니다. 베냐민을 특별히 사랑하는 형이라는 것을 나타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섭리 가운데 이 모든 것을 허락하신 것을 요셉은 의식하고 자신도 의도적으로 행합니다. 이 직분자로서의 지혜를 갖고 있는, 또한 하나님의 인도를 민감하게 알아차린 요셉으로부터 우리는 많이 배워야 되겠습니다.
34절에 형들은 마시며 함께 즐거워하였다고 하는데 즐거워하였다는 것은 “취했다”는 뜻입니다. 술 취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러나 구약의 하나님 백성들은 특별한 날에는 실수하지 않을 정도로 취하면서 즐거워했습니다. 제사장이 성전에 들어갈 때 취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인생의 아주 특별한 날에는 취하면서 온전히 즐거워하는 것이 허용되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취할 정도로 즐거워합시다. 또 특별한 날에는 음식을 즐기는 즐거움을 누립시다. 그런 즐거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3) 야곱의 아들들의 투옥(44:1-13)
4) 요셉을 두 번째 만남(44:14-45:14)
5) 이집트를 떠남(45:16-24)
6) 야곱의 아들들이 야곱에게 보고함(45:25-28)
위와 같이 야곱의 아들들의 두 번째 이집트 방문이 이루어졌습니다. 첫 번째 방문과 비슷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믿고 복종할 일
오늘 말씀에서 두 가지를 믿고 복종합시다.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고백: 첫째, 하나님을 고백하며 찬양합시다. 오늘 이야기는 요셉의 형들이 회개하는 데까지 나가는 내용의 한 부분입니다. 그들은 전에 지은 죄에 대해 회개의 심정이 점점 더 많아집니다. 요셉은 전에 꿈에서 본 대로 형제들의 경배를 받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지는 않지만 성도의 고백 가운데 계십니다. 야곱의 축복 가운데 계십니다. 야곱은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시기를” 하며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종의 고백 가운데도 계십니다. 또 요셉이 직접 축복하는 데에도 하나님이 계십니다. 구약 성도에게 하나님은 직접 나타나기도 하셨습니다. 또한 그들의 고백과 믿음 가운데 계시고 일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복잡한 삶의 현장 가운데서 중심을 잃지 말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고백 가운데 하나님을 고백하면서 나아갑시다. 다양한 상황이 있겠지만 이 역사의 중심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다 주관하고 계시니 우리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감사하면서 찬양합시다.
직분자의 역할: 둘째, 직분자로서 부드러움과 절제가 있는 사랑을 베풉시다. 요셉은 형들을 엄하게 대했습니다. 동생 베냐민에게 사랑의 정이 넘쳤지만 억제했습니다. 그가 직분자였기 때문입니다. 형들이 환난과 어려움 가운데서 자기 스스로 회개할 기회를 주어야 하기 때문에 고통스럽지만 그것을 억제합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무엇이든지 해주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자녀들을 올바로 키우는 책임을 맡은 직분자들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힘든 일을 당할 때 내버려두고 참고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정에 움직여 편하게만 해주면 아이들이 버릇이 없어질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인생이 실패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이들을 강인하게 만들기 위해서 정을 억제하고 자기를 절제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정(31절)=은혜(14절)=라함
요셉이 자기 동생에게 가졌던 “정”(라함, 31절)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에게 내려 주시는 “은혜”(14절)와 같은 단어입니다. 믿음의 사람 요셉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넘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