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TV 드라마를 상당히 즐기는 편이다.
예전엔 가까운 친구들로부터 꽤나 빈축을 사기도 했다.
남자가 뉴스나 스포츠라면 모를까, 무슨 TV 연속극에 그렇게 목을 메냐고…….,
해서 한 때는 나의 드라마에 대한 애정을 아닌척 감추기도 했었다.
그러나 어쩌랴 내 몸속에 흐르는 여성호르몬의 과다 분비 탓인지,
아니면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여성성인 아니마의 크기가 생각보다 넓게 자리한 탓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나는 모든 장르의 드라마가 재밌다.
요즈음은 전에 없이 일찍 퇴근하는 빈도가 높아짐에 따라 나의 취미 생활을 만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드라마가 지니는 심각한 중독성을 잘 알기에 웬만하면 시작을 하지
않으려는 무의식적 의도가 내게는 좀 배어있다. 그런데 또 낚였다.
요즈음 MBC 월화 드라마 “선덕여왕”이 그것이다. 진즉에 시작한 줄은 알았지만,
애써 무관심으로 일관했고 그나마 연일 계속되는 늦은 귀가 탓에 내가 지닌
아니마의 더듬이 영역밖에 있는 의미없는 존재였을 따름이었다.
그런데 3주전쯤 어느날 예정됐던 저녁 약속이 갑작스레 미뤄지면서 모처럼의 이른 귀가
기회가 생긴것이다. 자연스레 리모콘은 내 손에 쥐어졌고, 아무생각 없이 이리저리
채널 순례를 하던 중, 정말 내용을 볼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왠지 그냥 좋은 느낌을
갖게되는 이요원이 남장을 하고 나오는 장면에서 순례는 멈춰 섰고 그것으로
나의 고질병은 다시 도지고 말았다.
18회쯤부터 보기 시작했나…? 요즘엔 ‘비담’이란 인물의 등장으로 아주 흥미진진하다.
드라마 대사중에 “북두의 일곱별이 여덟이 되는 때…”라는 대목이 나온다.
머리속이 기민해졌다. 우연한 계기로 별자리를 공부할 기회를 갖게 되었는데,
이게 참 재미가 장난이 아니다.
북두칠성은 실제 8개의 별이 맞다. 좀 더 정확하게는 그 이상의 숫자로 존재한다.
국자모양으로 생긴 북두칠성은 본래 큰곰자리의 엉덩이 부분에 해당한다.
국자의 손잡이 모양은 바로 큰곰의 다소 긴 꼬리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 꼬리의 끝에서 두 번째 즉 여섯번째 별이 바로 미자르라고 불리우는 별인데,
이 별이 하나가 아닌 실제로는 두 개인 이중성이다. 더 정확하겐 세개다.
맑은 날엔 육안으로도 식별이 가능한데 예전 로마에서는 이 안시쌍성(眼視雙星)의
식별 유무를 가지고 병사들의 시력 검정을 했다고 한다.
지구로부터 78광년 떨어진 미자르 옆에 살짝 붙어 있는 별을 일컬어 알코르라고 부른다.
거의 붙어 있어 하나로 보이지만 사실 얘네들끼리도 3광년이나 떨어져 있다.
밤 하늘에는 이런 식의 쌍성들이 아주 많이 존재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요즘 같은 여름철에 등장하는 백조자리의 머리부분에 해당하는
‘알비레오’라는 이름의 이중성이 있다. 이 별을 망원경으로 한 번 보고 나면 꺼뻑 간다.
오렌지 빛으로 빛나는 주성 옆에 사파이어처럼 푸른 빛을 발하는 작은 별을 보노라면
이 세상 어느 보석과도 감히 견줄 수가 없다.
내가 아는 어느 분은 이 아름다운 별을 보고 난 뒤로 자신의 몸에 어떠한 보석도
지닐 수 없었다고 고백하였다. 실제로 나는 그 분이 한번도 그 흔해 빠진 귀고리, 목걸이,
반지 하나 치장하는 걸 본적이 없다.
윤도현 밴드의 노래 중에 “큰 별은 없어”란 제목의 노래가 있다.
“♪ 누군가 말했지 작은 별이 있음으로 큰 별이 빛난다고~~ 하지만 이제 큰 별은 없어
모두들 자신을 큰 별이라 하고 있기 때문이지, 아무도 작은 별이 아니라고 외치기 때문이야
♬ ~~ 그래 너희들이 그렇게 말한만큼 자신들에게 당당한가~~ 오~오~
밝은 하늘 아래 혼자 있을 때에도 부끄럼 하나 없이 그렇게 당당한가~~~아!!! ♩♬”
뭐 정확치는 않아도 대충 이런 내용의 가사로 된 꽤 힘찬 록 스타일의 노래다.
난 이 노래를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어느 노래방에 가 보아도 이 노래는 없었다.
금영이나 질러넷 관계자들이 주변에 있으면 볼멘 하소연이라도 해 보련만…….
가사도 의미있고, 힘있고 신나는 비트의 노래인데…… 왜 없는건지 당최 의문이다.
어쨌든 이 노래 가사처럼 밤하늘에 빛나는 알비레오 같은 이중성들이 그 어느 보석보다
더 한 아름다움을 발할 수 있는 건 상대적으로 덜 밝게 비추는 듯한 작은별의 존재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우리 세상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아는 역사 속에서도 그러한 예는 수없이 많다.
19세기에서 20세기 전반을 걸쳐 세상을 뒤흔들었던 마르크스 곁에는 엥겔스가
늘 지키고 있었고, 쿠바 혁명을 성공시키고 지금까지도 건재한 카스트로에게는
체 게바라가 있었다. 모택동의 주변에는 주덕과 같은 인물들이 즐비해 있었고,
수세기에 걸쳐 지금껏 그 명성을 날리고 있는 명탐정 셔얼록 홈즈는 항상 왓슨과
함께 다녔다.
지난 주말 집안의 행사가 있어 겸사겸사 부산에 다녀오는 길에 봉하마을을 들렀다.
부엉이 바위라는 곳에도 올라 보았다.
화면을 통해서 보던 것 보다도 훨씬 더 소박하게 만들어진 자연석 비석에
씌여진 작은 글씨를 보면서, 역시 그 분 답다 라는 느낌을 가졌다.
조촐하고 질박한 묘역의 정경과 생전의 그 모습이 오버랩되어 떠오른다.
최고 권좌에 앉았던 사람의 묘역이라면 흔히들 하듯이 모두를 굽어 볼 수 있는
높은 자리에 다소 오만하게 자리 잡는다 해도 크게 그르칠 것 같지도 않은데…,
동네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줄도 모르고 그냥 걸어가다 문득 마주치는
그런 평편한 자리에 그는 그렇게 있었다.
일찍이 사르트르는 20세기에 가장 완벽한 인물로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를 꼽는데에
주저하지 않았다. 기실 이 세상에 완전한 인간이야 존재 할 수 있겠는가마는,
다소 부족함도 있고 시시콜콜 따지면 결함 투성이처럼 보일 수도 있다.
아무런 힘도 권위도 없는 나 이지만, 나는 이 시대 가장 완벽한 인물을 꼽는데
그를 선택함에 주저하지 않겠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모자름을 넘어 완전한 인간이고자 몸서리 쳤던
그의 곁에는 왜 엥겔스와 게바라와 주덕과 왓슨이 없었을까…?
그렇게 받쳐주는 작은 별이 있었다면 지금처럼 그토록 낮은 땅에 서둘러 눕지 않고
밤 하늘에 아름다운 별들로 빛을 발하고 있었을 텐데…..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해 보았다.
며칠전, 한때 ‘부적절한 관계’라는 신조어를 전세계에 유포시킨 스캔들의 주인공이
마중 나온 화동의 꽃을 받아 들기 위해 은빛머리를 숙이며 평양 순안 비행장에 나타났다.
그리곤 한마디 말도 없이 하룻밤 자고 수개월간 억류돼 있던 자국민 유색인종
여성 둘을 데리고 홀연히 떠났다.
전직 대통령의 이 멋진 소리없는 행보에 이어 현직에 계신 오바마 아저씨는 자국민의
석방과 핵문제는 별개라며 빈말로라도 고맙단 인사 한마디 할 법 하건만 그냥 쌩깐다.
아~~! 멋지다. 마치 19세기에 다섯개의 공을 가지고 놀며 사분오열된 독일제국의
통일을 완성시킨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의 혀를 내두를 듯한 외교술을 보는 듯하다
기막힌 드라마다. 왜 이 멋진 아저씨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닌걸까…?
같은 시각 다른 화면에는, 가진거라곤 열심히 자동차 만들다 느닷없이 거리로 쫒겨나게 된
암담한 현실 밖에 없는 사람들을 향해 궁상 떨며 뗑깡 부리지 말라며 세계 어느 전사에도
없는 신종 전략 전술을 구사하며, 자국민 보호를 위한 공권력의 이름으로
무슨 사나운 이리 사냥 하듯 내리치고 패고 찍는 장면으로 일관된
헐리웃 블록버스터 다큐멘타리가 방영되고 있었다.
내가 비록 모든 장르의 드라마를 좋아하긴 하지만, 내가 지닌 아니마의 점유 구성으로
볼 때, 이런 종류는 좀 아니다. 이건 단지 다큐 형식으로 풀어낸 픽션일 따름이지
절대로 이 땅에 존재하는 현실이라 믿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이게 진짜란다. 오~호~ 이를 어찌 할꼬....!!
한겨레 21 기사 제목엔 노사분쟁이 있었던 총독부 시절에도 이러진 않았단다.
뭐 이런 무뢰배들이 다 있을까…? 참으로 화가 난다.
그리고 또 쪽팔려서 고개를 못들겠다.
데려다 기른 제식구 챙기기위해 모든 명예와 권위를 다 벗어 던지고 태평양을 날아오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좀 주책 맞지만 그래도 큰 대인이 있는가 하면,
지가 낳은 새끼를 지척에 두고도 생사확인 조차 않되는 상황에서도 나몰라라 하면서도
측은한 듯 시장 아줌마 목도리 감아 한번 안아주고, 소탈한 듯 오뎅 찍어 먹으며 파안대소
하는 척 돌아서며 쥐잡듯 쓸어버리는 이 비정한 무뢰한들을 언제까지 두고 보아줘야 하나….!
무언가 하지 않은면 안된다!! 나부터 무엇을 할 것 인가 참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겠다.
그리고 바로 현실에 옮겨야 한다.
더 이상 도균君 말처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과거의 회상에 잠겨 허무한 딸딸이나 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밝고 맑고 따스한 기운이 묻어나는 그런 드라마를 보고 싶다.
더 이상 큰 별이길 꿈꾸기 보단 차라리 마음을 정화시키는 풀섶에 맺힌 아침이슬 같은
그런 존재가 되어보면 어떨까…?
다들 한 번 머리 맞대보자!!!
이 땅을 아름답게 비추는 새로운 알비레오를 꿈꾸며……
이런저런 곡절을 넘기느라 여러달 걸쳐 산행도 빼먹고, 오랜만에 들어와 멋적은 인사라도
한다는게 그만 주저리주저리 장황한 푸념만 늘어놓다 말았네요….
다들 잘들 지내고 있으리라 믿고, 다음번 산행을 기약하며 씩씩하게 삽시다!!!
---- 더위도 한풀 꺽여가는 입추(立秋) 오후에…….
*근데 누가 산에 가기전에 번개 한번 안치나…?
담주에 번개나 한번 쳐볼거나…!! ㅎㅎ
첫댓글 형의 글발은 예사글발이 아녀~~ 선덕여왕에서 딸딸이까지... 음~ 번개 담주에 제가 칠께요~ 기둘리세요 함봐여~ ^_^
형 정말 잘 읽었어.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