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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형이상학(2020)
윤구병, 2020, 보리 (2020 09 04) 2021 07 05 3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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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윤구병은 우리 식으로 “형이상학”에 대한 생각의 진행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이 책 이외에도 앞서서 두 권의 책이 더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자: “있음과 없음(2003)”와 “철학을 다시 쓴다(2013)”.
앞에서 철학사의 흐름을 관통해 보았던 저자는 누구든지 읽을 수 있고, 스스로 생각하며 자기 자신의 모습을 만들 수 있기를 바라면서 썼을 것이다.
제1장은 형이상학에서 다루는 것이 어떤 것들인지, 그리고 그것들이 살아가는 이들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지 아닌지 묻는다. 제2장은 이런 문제들 다루는 서양말이 아니라 우리말로 하면 좀 더 속 깊이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다. 우리말로도 우주에서 그리고 티끌까지도 다룰 수 있다고 본다. 제3장에서는 자연이라는 우주를 다루어본다. 그 속에 틈도 있을 것이고 그리고 그것을 채우려는 힘 또는 노력도 있을 것이다. 제4장에서 이런 것들을 다룬 도구가 수학에서 0과 1이라 하고, 이런 도구를 잘 사용하면 자연의 모습들을 잘 그릴 수 있고 또한 이용하고 살 수 있다. 제5장, 그러면 인간은 이런 지식을 갖고, 어떻게 자기의 터전에서 힘쓰고 노력하며 살아가야 하며, 있을 것이 있고 없을 것이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그런 자연과 세상을 만드는 데는 학습과 노력이 여전히 필요하다(?). 이 책은 수학적이고 물리학적으로 설명을 많이 하지만 자연(생명)의 자치성과 자발성을 인정하는 점에서 불교, 도가를 곳곳에 보탰고, 자연의 숙명을 깨닫고 그 속에서 자연의 자치만큼이나 인간도 자치와 자유를 누리며 살아보자고 한다. 그 노력을 통해 방향을 잡고, 홍익인간(弘益人間)처럼, 널리 이롭게 펼치자고 쓴 것이리라. (59u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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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가 형이상학이라고 생각한다. 서양철학에서 형이상학의 대상은 공간과 시간, 인간의 현존 상태에서 도덕과 아름다움, 자유와 필연, 음덕(기적, 은총)과 같은 우발적 사건들과 운명, 그리고 이런 바탕으로서 자연과 신도 대상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이것들을 다루는 ‘생각하는 자아(인간)의 다양한 역량’인데 감각, 감정, 오성, 지성, 이성, 추리, 추억, 기억 등을 다루는 인식론이 있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 인간의 생각이 만들어낸 구성, 구축, 조성을 통해, 틀(도식)과 계열, 체계를 다루는 논리학, 수학, 물질과학, 생명과학일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사는 터전에 대해 인간이 인간과 관계를 맺고 연결들의 고리든 그물이든 만들어가는 공동체에서 사회, 노동, 국가, 체제, 그 안에서 재화의 축적와 분배, 탐욕을 추구하는 폭력과 통제도 있지만, 공감과 공명을 통한 평등과 평천하를 추구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요즘에 덧붙여서, 터전에서 즐기며 화해하는 놀이들, 운동, 음악, 예술 등을 다루고 사는, 또한 지역에 따라 달리 생성된 문화론도 보태야 할 것이다.
이 책은 형이상학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한 길라잡이일 것이다. 이전에도 철학 입문서가 여러 종류가 있지만, 두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우선 철학의 제 문제(소광희, 이석윤, 김정선 저, 1973)가 있었고 이는 독일 관념론에 영향 아래 서양철학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에 비해 라틴계의 입문서로서 프랑스 고교 4학년에게 철학입문으로 쓴 베르제즈와 위스망의 인간학 철학 형이상학(1)(1999), 인간과 세계(2),지식과 이성(3),실천과 목적(4)(남기영 번역)이 있다. 고등학생 전부가 철학을 학습과정으로 만든 나라는 프랑스가 유일하다. 두 입문서는 앵글로 색슨의 사고방식과 라틴계의 사유방식의 차이를 볼 수 있다.
이와 달리, 여기 이 책은 우리 땅에서 우리 입말로 쓴 책이라는 점에서 우리 방식의 배치와 용어가 필요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세계사의 지위에서 어떻게 펼쳐나갈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는 이라면 여기 이책을 통해서 성찰하고 숙고할 수 있으리라. 이런 시금석과 같은 방법을 제시하기는 매우 어려움에도 저자는 우리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과 소통을 위하여 그리고 다음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썼을 것이다.
한 가지 더 아래 내용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서 지나가듯이 읽어보게 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말로 우리 사유를 할 수 있는 단초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09, 59UMF)
@참조: 형이상학에 대한 단상들: https://cafe.daum.net/milletune/S5wU/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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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책머리에 기쁨을 주는 형이상학을 꿈꾸며 4-8
1장 꿈꾸는 형이상학 13
* 가장 작은 것 가장 큰 것 15 / 심장은 불의 강이다 18 / 꿈은 얼마나 낯선가! 21 / 꿈꾸는 형이상학 24 / 얼과 넋 29 / 눈이 온 누리를 삼킨다 34 / 빛과 그늘의 잣대 38 / 크기가 없는 생명이 하는 일 40 / 산이들의 ‘타는 목마름’ 42 / 없음이 있어야 할 까닭 45.
2장 우리 말 속에 담긴 철학 51
* 같은 말인가, 다른 말인가? 53 / 똥구멍말 57 / 상상력을 자극하는 말 꾸러미 62 / 흉내 철학 64 / 우리에게 가장 쉬운 말 67 / 사랑과 생각 70 / 아름답다는 것 73 / 얼과 넋이 뭉친 한생각 77 / 온 세상 소리를 보려면 81 / 어림없는 앎 86 / 평생을 두고 싸워야 할 사람 87 / 우리 말 속에 담긴 철학 91 / 낱말의 뿌리 95 / 이시다와 어시다 97 / 안다와 모른다 100.
3장 우주의 빛과 그림자 103
* 땅과 물과 불과 바람의 역사 105 / 인간의 오만 107 / 불변의 진리는 없다 109 / 나를 끌어당기는 무극 111 / 거품우주에 대한 생각 115 / 모든 것에는 빈틈이 있다 118 / 미시세계와 거시세계의 한계 121 / 왜 사느냐, 삶이란 무엇이냐? 125 / 살아 있는 우주적 상상력 128 / 자유와 필연의 틈새 131
4장 0과 1의 아름다움 135
* 수학의 아름다움 137 / 1과 0의 합금 139 / 시간도 공간도 벗어나는 것 141 / 결핍은 대칭의 어머니 147 / 이런 이야기를 한 사람이 있었던가? 149 / 빛의 빠르기는 상수일까 151 / 수의 실재론? 154 / 빠진 것으로 없는 것 157 / 독립원자가 지닌 우연성 159 / 무한의 자식들 162 / 셈에서 벗어난 무엇 165 / 왜, 무엇 때문에, 어떻게 167
5장 살아 있는 힘 175
* 힘의 본모습 177 / 다른 것은 늘 바뀐다 179 / 알 수 없는 끝 182 / 이어짐과 끊어짐 184 / 모순에 빠지지 마라 187 / 맞서느냐, 물러서느냐 190 / 양과 질 195 / 셈과 잼의 신격화 198 / 살아 있는 힘 202 / 증명되지 않은 공리 205 / 철학이 짊어져야 할 몫 208 / 주어진 것은 삶이다 210 /
부록 215
형이상학 더하기 1: 0과 1 사이217-226
형이상학 더하기 2: 논리연산 밑자락 깔기227-238
책에 나오는 사람들 239-252
우리 말 철학 꾸러미 253-259. (55NNN)
**꿈꾸는 형이상학(2020)* 내용중에서*
# 책머리에 기쁨을 주는 형이상학을 꿈꾸며 4-8
나는 이날 이때껏 철들어 보지 못한 아이 같다. (4)
올해 들어 코로나바이러스 19가 온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바이러스에 대한 내 관심은 꽤 오래되었으나 이에 대하여 아는 바는 그리 많지 않다. .. 평균 수명이 200만년이 넘는다는 것 (5) - [주로 바이러스는 구형(20면체)이라 하는데, 바이러스 발생은 35억년 전으로 잡고(?), 바이러스가 숙주 속에서 성체로서 화석처럼 남아있는(살아있다기 보다) 흔적의 경우에 5백만년 전의 것도 있다고 하나, 이것이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 차례 9
1장 꿈꾸는 형이상학 13
* 가장 작은 것 가장 큰 것 15 / 심장은 불의 강이다 18 / 꿈은 얼마나 낯선가! 21 / 꿈꾸는 형이상학 24 / 얼과 넋 29 / 눈이 온 누리를 삼킨다 34 / 빛과 그늘의 잣대 38 / 크기가 없는 생명이 하는 일 40 / 산이들의 ‘타는 목마름’ 42 / 없음이 있어야 할 까닭 45.
파동(wave)을 ‘결’로, 입자(particle)를 ‘톨’로, 입자 가운데 더 깨뜰리 수 없는 가장 작은 것(미립자 따위)를 ‘티’로 부르자. 제 풀에 움직이는 생명 입자들을 ‘탄티’나 ‘산톨’로, 재빨리 움직여(빛의 빠르기 두 제곱만큼) 힘(에너지)으로 탈바꿈하는 몸(질량)의 움직임을 ‘퍼짐’으로, 힘이 한데 모여 결과 톨로 바뀌는 응집력을 ‘마디’라 부르다. (16-17)
봄은 불꽃이 하얗게, 빨갛게, 파랗게 피어오르는 철이다. 그 불꽃이 이우는 자리에 송알송알 맺히는, 안으로 젖어 드는 열매들. ... / 왜 마음을 적시는 이런 생각의 흐름은 과학이 아닌가, 철학이 아닌가.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되풀이되거나 이어지지 않으니가? (20) - [보이지 않고, 동일하게 되풀이되지 않은 것, 인간 자신의 영혼(정체성)일 것이다. 이것이 ‘뭣꼬’라고 묻는 것이 싯달다였고, 서양에서 소크라테스였을 것이다.]
애벌레에서 번데기로 바뀌는 동안에 잠이 찾아든다. ... 번데기는 딱딱한 허물 안에서 그 사이에 몸에 스며든 물의 결들을 마지막까지 모으고 모아 제 모습을 바꾸는 꿈을 꾼다. 그 메마르고 버석거리는 껍질 안에서 날개 달고 하늘을 나는 꿈을 꾼다. 그 꿈이 허물을 벗고 드디어 날개 펼친다. 온몸으로 꿈을 현실로 바꾸어 낸다. (22) - [문학적이다. 생명의 과정은 느리지만 쉬지 않는다. - 나로서는 매미가 땅속에서 유충으로 지내는 기간이 7-10여년을 거쳐서 번데기를 거치지 않고서 몸만들기 한다는 것이 믿기어지지 않았다.]
우리 옛 어른들에게 ‘넋’은 가슴(염장, 심장)에 깃드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 넋은 피를 따라 손끝 발끝까지 퍼진다. ... / 이와 달리 ‘얼’은 머리에 자리 잡고 있다. 머리통 앞쪽에 눈, 코, 입, 귀, 혀가 있는 곳을 얼골(얼굴)이라 부르는ㄴ데, 낯(얼골)은 얼이 사는 골(마을)이다. 얼은 눈, 코, 입, 귀, 혀를 통해서 ‘빠지고’ 넋은 숨이 끊어지면서 ‘나간다’(빠지기도 한다). 넋이 나가고 숨이 끊어지면, 피가 식고 불도 없어진다. (31) - [들뢰즈가 얼굴이 구멍으로되어 있다고 했던가? 구명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구강성이고 여기에 먹고, 뱉고, 숨쉬고, 소리하고, 사랑한다. 막히면 끝난다. 정지는 운동 다음을 설명하는 용어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우주는 ‘하늘’이라고 불렀는데 그 안에는 여러 뜻이 하나로 뭉쳐있다. 한알, 한얼, 한울, 한올도 같은 말에서 가지를 쳤다. 큰 알이 한알이고, 큰 얼이 한얼이고 큰 울이 한울이고, 큰 올 또는 오르라기가 한올이다. (32-33) - [환하다 하늘이다는 연관이 없을까?]
풀과 나무의 겨울 눈은 봄이 오는 것을 미리 본다. .. 반야심경이 얼눈(심안)으로 보는 ‘관(觀)’과 살눈(육안 肉眼)으로 보는 ‘견(見)’을 맨 앞자리에 둔 까닭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34)
산티의 존재를 가장 잘 밝혀주는 것은 눈이 하는 일이다. 눈은 빛을 포함해 온 별누리에서 가장 작은 것까지 다 보고 담아내지만, 보이는 것에 손상을 입히거나 스스로 다치지 않는다. ...(35) - [저자는 눈을 기미를 아는 생명의 싹이기도 하고(원형동물의 눈은 촉수이다), 관(觀)과 견(見)의 의식과 신체에서 기미를 알아차릴 때로 구별된다.]
질(quality)→골(이리저리 파여 모습을 이룬다 해서 얼골→얼굴)
양(quantity)→헴(헤아릴수 있는 정도의 차이를 지닌다해서 헴→셈)
대상(object, Gegenstand)→맞서남(눈 밖, 코 밖, 귀 밖, 몸 밖, 맘 밖, 생각 밖으로 내 밖에 있어 나와 맞서는 것, 또는 나와 만나는 것) - [cf.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접촉(contact, contingency)→맞담(우연히 맞닿음, ‘만남+맞섬’) (40)
지배계급은 개미귀신과 같다. 거미줄을 치듯이 어디에나 덫을 놓고 산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이들은 말 그대로 흡혈귀들이다. (43) - [산업사회에서 자본가들이 흡혈귀라고도 한다.]
노자는 도덕경 첫머리에서 ‘검은 암컷’(현빈(玄牝), 하늘 암소)이 낳은 쌍둥이가 흰둥이(있음)과 검둥이(없음)라고 하다. 서양철학 전통에 따르면 ‘있는 것만 있고, 없는 것은 없다’. 파르메니데스를 이어받아 플라톤을 거쳐 교부철학에 바탕을 둔 스콜라철학에 이르기 까지 한결같은 흐름이다. (47) - [플라톤의 티마이오스편에 아페이론의 성격 중에 메트릭스라는 이야기도 있다고 한다.]
불교의 핵심 이론(알맹이 뜻)이 담긴 반야심경 앞쪽에 ‘없다’, ‘없음’이 열 번 넘게 나온다. (47) - [색즉시공(色卽是空)에서 공(空)을 말할 것이다.] -
기독교의 신은 인간의 탈을 쓰고 있지만 ‘나는 빛이요, 생명이다’라는 말씀(로고스)에는 깊은 뜻이 있다. ‘나는 어둠이요, 죽음이다’라고 바꾸어도 그 뜻은 바뀌지 않는다. 죽음도 삶의 한 모습이고 삶의 그림이니까. (50)
2장 우리 말 속에 담긴 철학 51
* 같은 말인가, 다른 말인가? 53 / 똥구멍말 57 / 상상력을 자극하는 말 꾸러미 62 / 흉내 철학 64 / 우리에게 가장 쉬운 말 67 / 사랑과 생각 70 / 아름답다는 것 73 / 얼과 넋이 뭉친 한생각 77 / 온 세상 소리를 보려면 81 / 어림없는 앎 86 / 평생을 두고 싸워야 할 사람 87 / 우리 말 속에 담긴 철학 91 / 낱말의 뿌리 95 / 이시다와 어시다 97 / 안다와 모른다 100.
‘엔 아르케 헨 호 로고스’[“Ἐν ἀρχῇ ἦν ὁ λόγος”] / ‘인 프린치피오 에라트 베르붐’ / ‘태초 존재 언어(태초 존재 언어)’ / ‘처음에 말씀이 있었다’ (53) - [처음에 있다 논리가, 이에 비해 처음부터 (지구의, 우주의)움직임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르기까지 그리스 이래로 거의 2천 5백여년이 걸렸다.]
헤라클레이토스, 엠페도클레스, 파르메니데스, 제논, 데모크리토스 다 마찬가지다. 플라톤의 대화편은 몇 개만 빼면(비록 산문 형식을 띠었지만) 입말로 이루어졌다. ‘대화편’(다이얼로그)의 영문 표기인 ‘dialogue(dia + logos)’라는 말이 바로 ‘이야기 나누기’라는 뜻이기도 하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조금 다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글말로 이루어져 있다. 다시 말해서 아테네가 델로스 동맹의 맹주로서 그리스어를 통합하고 이 말이 그리스 전역에 표준말이 되면서 대화의 전통은 사라진다. (54-55) [제국주의에서는 입말보다 글말이 더 우세하다? - 아마도 논쟁에서는 글말이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논쟁의 증가가 문헌?이다. (59UKI)]
참, 빠뜨린게 있다. 논쟁(엘렝코스)와 수사학에 대한 이야기다. 논쟁술에서 ‘논쟁’은 말다툼이다. (55) ... / 수사학은 또 다른 설득설이다. (56)
내가 이렇게 섣부르게 말과 글의 역사를 두루 살펴보려는 것은 우리의 생각과 느낌, 사랑까지도 말에 담겨 있어서다. (‘생각’과 ‘사랑’에 대해서는 능엄경언해에서 잘 다루어 주고 있다. (57) [생각과 사랑이 같은 어원일 것이라는 것이 불교에서 나왔다고 들었지만 능엄경언해본에서 나오는 것 같다.]
그 뒤로 훔볼트나 그림 형제 같은 사람들이 독일어를 가다듬고 그 말을 바탕으로 괴테나 쉴러, 휠더린이나 릴케는 소설이나 시나 극본을 쓰고 헤겔이나 맑스, 하이데거 같은 철학자는 철학책을 썼다. (63) - [프랑스의 디드로와 루소 그리고 대혁명의 영향으로 괴테(Goethe, 1749-1832), 실러(Schiller, 1759-1805), 횔덜린(Hölderlin, 1770-1843) / 민족적 자의식에서 훔볼트 (Wilhelm von Humboldt, 1767-1835), 야코프 그림(Jacob Grimm, 1785-1863)과 빌헬름 그림(Wilhelm Grimm, 1786-1859) // 그 이후 릴케(Rilke, 1875-1926)]
세종이 훈민정음을 지은 뜻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면 적어도 16세기부터는 ‘우리철학’(조선철학)의 씨앗이 뿌려졌을 것이다. 불경언해에 나타나는 우리 말들을 보면 그렇다. ... 세종조의 큰 뜻은 한자어에 기댄 기득권층, 사대부의 반대로 시들었다. 말이 죽으면 생각도 사랑도 꽃피지 못한다. 내가 철학을 다시 쓴다에서 ‘능동’과 ‘수동’을 ‘함’과 ‘됨’으로 ‘에너지’를 ‘힘’으로, ‘존재’나 ‘무’를 ‘있음’과 ‘없음’으로 바꾸어 본들, 이 첫 발자국마저 그 뜻을 살피려 들지 않고 별난 짓으로 여기는 눈면 ‘철학도’들만 아직도 하계를 주름잡고 있으니, 언제쯤 이 땅에서 제대로 된 우리 철학이 꽃피고 열매 맺을 수 있을까. (66)
있다, 없다, 이다, 아니다(안 + 이다), 이것, 저것, 그것, 여기, 저기, 어제, 이제, 아제, 것, 겉, 갓, 끝, 사이, 틈, 참, 금, 잇다, 끊다, 안, 밖, 속, 마음, 얼, 넋, 안다, 모른다, 한다, 된다, 힘, 논다, 쓴다, 머리, 가슴, 손발, 굳다, 녹다, 멈춘다, 움직인다, 혿낟(하나), 덛낟(둘), 섿낟(셋) 빔과 참 … (68) [들뢰즈가 의미의 논리에서 명사, 형용사 동사만큼이나 시간 장소의 부사어든지 연결사 등이 중요하다고 한다. 삶과 현실은 후자들에 있을 것이다.]
이른바 형이상학(결꼴 벗은 앎)이 쓸모 있는 것은 물리, 수학, 화학, 생물학 같은 앎과는 달리 실험이나 관찰, 공식 같은 것에 매달리지 않고 우리가 가장 흔히 듣고 보고 냄새 맡고 맛보고 살갗에 와 닿는 것들을 통털어 가장 쉬운 낱말로 드러내 그 말들로 가장 작은 무엇에서부터 가장 큰 무엇에 이르기까지 졸가리 있게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테면 있다, 없다, 이다, 아니다, 것, 하다, 되다, 결, 꼴, 돈다와 같은 낱말로 참과 거짓, 좋음과 나쁨, 움직임과 멈춤 따위를 큰 틀에서 그려 낼 수 있다. (69) - [논리를 구성하고 체계를 구축하는 것만이 학문이 아닐 것이다. 형이상학은 자연의 배후에 어떠 힘 또는 운동(지속)이 어떻게 다양한 갈래들을 만드냐도 중요하다. 서양철학사에 자연의 배후(또는 내부, 심층)에 대해 제대로 다룬 것은 19세기 후반에서이다. 이 때부터 수, 톨, 혼, 음, 기호(상징) 등을 다루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59UKJ)]
한자어 ‘기억’은 우리말로 ‘생각’이고 ‘사려’는 ‘사랑’이다. (72) ... / ‘결바뀜’을 한자어로 ‘변이’라고 한다. 느닷없이 바뀜을 ‘돌연변이’라고 한다. 이 모든 것이 유전자(생각톨)에 박혀 낱낱의 글꼴을 이룬다는 게 이 유전자 연구에 코 박고 있는 학자들의 생각이다. (73)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반야심경에 나오는 구절이다. 여기서 의(意)는 ‘얼’이고 법(法)은 결이다. (얼과 결은 맨 마지막, 밑바닥에 깔긴 것을 뜻한다) (77) - [서양철학에서 신체의 기능들로부터 알게 되는 것을 감각작용이라 한다. 이에 비해 신체의 도움 없이도 추리하고 틀(체계)를 만드는 것을 의식이라 한다. 의식의 포괄적이고 전체적 작동을 혼(또는 정신)이라고 하고 이 혼의 기능들이 원리, 공리, 공준, 정의, 법칙, 규칙 등을 구성하고 구축한다고 한다. 이에 비해 혼의 자율적 활동이 생산하고 확장하는 역량들이 공감과 공명을 이루는데, 이를 조성과 생성이라 한다. (59ukj)]
기쁘다, 이쁘다, 곱다, 밉다, 나쁘다는 모두 골을 나타내는 말이다 결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아무것도 머무는 것이 없으므로 무주상(無住相)이다. 그게 다르마이고 법이고 결이다. 그야말로 얼결에 이루어진다. 바른 법 오롯이 받아들임을 뜻하는 섭수정법(攝受正法), 승만경에 그리도 자주 나오는 이 말이 뜻하는 바는 바로 이것이다. 결이 바르고 고르로워야한다. ... (79) - [이쁘다, 곱다, 밉다(미쁘다) 등의 골의 말이기도 하고 결의 말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멋지다 훌륭타 장하다를 나타내는 바르다도 있고, 상쾌하다 유쾌하다 통쾌하다를 나타나는 시원하다도 있다. 아름다움, 도덕감, 음덕(기적)같은 흐름도 있다. 이런 흐름은 크다 작다로 구별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다. (59ULC)]
온 세상 소리를 보려면81
불교에서 제6식(여섯째 앎), 것, 소리 냄새, 맛, 닿음[색성향미촉]이 결로 바뀌어 그것을 틋이 알아차리는 것이라 불 수 있다. (81)
‘서럽다’는 말은 ‘싫다’는 말고 뿌리가 같다. .. 슬과 설이 무리를 이루는 것이 모이고 쌓이는 것이 온 누리에 가득해지는 것이 집(集)이다. 이 쉬(시), 설, 슬을 그 모임을 알아차리는 것이 제7식(일곱째)이다. 그것을 없애야 한다.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 불교에서는 말라식이라 한다. (82)
그런데 밖에서 들어오는 것도, 그것을 바탕으로 안에서 고르고 가르고(분석) 모으고 뽑아내는(종합) 것도 알맹이가 없다. 아무것도 없다. 비어 있다(무, 공). 겉핥기다. 그림자놀이다. 이것을 깨우치는 것을 제8식(여덟째 앎)이라고 한다. 아뢰야식이다. (82-83)
몸과 마음을 닦고 또 닦아서 ‘다 없앴다’, ‘다없다’는 깨달음을 얻을 때 상구보리(上求菩提)는 끝난다. 그 다음에는 제9식(아홉째)이 드러날 때다. 제9식을 드러낼 참이다. (83)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온 세상 소리를 보려면’(관세음) 그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가야 한다. 이것이 하산이다. 하화중생(下化衆生)이다. (84)
하화중생이 없이는 제9식도 없다. (85)
끝까지 풀 수 없는, 풀리지 않는 게있다. 내가 ‘9÷ 9 = 1’이 아니라 바른 답은 ‘0.9n, 0.9999……∞’라고 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어딘가에 아니 도처에 ‘하나(1)’가 아닌 놈이 없는 것(0)이 숨어있거나 도사리고 있다. (86) - [수학사에서 ‘9÷ 9 = 1’에서 1은 10진법의 1이 아니라 60진법의 1이다. 기호화에서 이 대수 방식은 함수의 영역이 다르다고 한다.]
박 선생님이 풀이하는 베르그송 이론은 베르그송의 것이 아니라 박선생님 이론이라는 생각이 든다. 베르그송이 쓴 ‘devenir’라는 말을 박 선생님은 ‘생성된다’고 옮겼는데, 이 말을 깨뜨리면 ‘de + venir’(어디에서 온다)가 된다. (나는 이것을 ‘됨’이라고 옮긴다.) / “긍정은 진리를 퍼뜨리고 예견하는 것, 다시 말하면 자기 자신의 동일성을 지속시키려고 하는 것이 ‘지성적 주도권’ 속에 들어가 있어”라는 박홍규 선생님 말씀이 눈에 띈다. (89) - [긍정의 진리란 수학적으로 양수의 진리이다. 이는 다음 수가 미래 예견처럼 보인다. 그러나 음수의 연결도 있고, 복소수(허수, 상상계)의 한계긋기(discrimination, 판별)도 있다. 특히 복소수의 한계긋기는 미분 함수의 극한(도함수)와 다르다. 무한이란 용어가 세 갈래로 갈라지는 이유가 있다. 정수의 무한과 특정수의 상수는 단위를 넘어서는 무한수(infinit)일 수 있다. 이에 비해 미분의 극한에서 무한은 무한계(illimite)이고 복소수의 무한은 정의할 수 없지만 있을 것 또는 있어야 할 것에 대한 무한정(indéfini)에 가깝다. 그 외에도 조건 안에서 규정을 넘어서는 무규정적(indétermine)도 있다. 어쩌면 무한이란 용어는 진위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문제거리가 어디 또는 어떤 상태를 가리키는 용어일 것이다.]
내 생각이 박 선생님의 생각과 얼마나 달라졌을가? 알맹이는 바뀌지 않았다. 풀이가 다를 뿐이다. ... / 게으르고 대충대충, 건성건성 다는 데다 학문에 크게 뜻이 없는 나는 박홍규 선생님이 싸움 상대다. 따져보면 즐거운 싸움이다. 스승은 제자가 싸움에서 자기를 넘어뜨리기 바란다. ... / 아직도 나는 책을 묶인 박홍규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는 때가 즐겁다. 알아듣는 대목보다 못 알아듣겠는 곳이 더 많다. 아직 멀었다. 아마 죽을 때까지 ‘이게 뭣 소리여’ 할 대목이 더 많이 남아 있겠지. 내 나이 그 선생님이 돌아가실 때 나에 머지 않았는데도 그렇다. (90) - [나로서는 서양 중요한 학자들이 자기 스승의 어깨 위에 앉는 난장이와 같다는 비유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선승들의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그럼에도 이규성선배와 윤구병 형님을 ‘다음 측정’의 두 축으로 삼고 마주치는 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교차점을 찾으려고 할 때가 좋은데, 그 점을 찾을 아직도 잘 알지 못하지만 찾으려 노력 할때가 좋다. 지금도 이 둘의 저술들을 읽을 때면 동시대에 살아간 흔적을 마주하였다는 것 만으로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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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땅사람(91) - [이 기호가 문자화이든 소리의 상징이든 간에, 우리 입말에서 세 가지 기본 요소라는 것을 나는 좋아한다. 서양철학사도 그리스 학문이래로 이 셋에 대한 담론들의 변화, 변모, 변형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낱말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살피는 일은 우리의 느낌을 바른길로 들어서게 하는 길잡이가 된다. (97) - [입말의 문자로 표시되기에 들뢰즈는 지시작용, 표명작용, 기호작용, 의미작용이 있다고 한다. 그 마지막 의미에 대해 다른 의미들도 많다. 착하다 훌륭타와 장하다도, 이쁘다 미쁘다 (눈에)선하다도, 시원하다와 후련하다 풀리다(내리다) 등이 있는데, 이를 느끼는 것은 사람들 사이에 공감과 공명이 있어서 일 것이다. (59ULE)]
‘이’는 한자어로 ‘현재’를 나타낸다. ‘이제’, ‘이곳’, ‘이’ 사람처럼. ‘어’는 한자어로 ‘과거’(지난적)를 가리킨다. 어제처럼. 제주도 말에는 있다를 ‘이시다’로, 없다를 ‘어시다’로 쓴 흔적이 있다. (98) - [언젠가 형님은 어제(과거), 이제(현재), 아제(미래)로 쓰자고 했었다. 미래의 표현으로 ‘아직’이란 단어가 남아있듯이 어,이,아,로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는 방식이 좋아서, 나도 이 표현을 쓴 적이 여러 번이다.]
소크라테스는 ‘나는 내가 뭘 모른다는 것을 안다’(뭘 모르는지 안다)는 말을 내뱉었다는데, 이것은 입밖에 내뱉을 수 있는 오직 하나뿐인 참말이라고 불 수 있다. (101)
마음이 따로 없는, 몸과 마음이 하나인 가장 작은 ‘산티’, 이를테면 세포가 하나인 단세포 생명체에도 들어맞는 배움과 가르침의 길을 찾아야 한다. 살릴 길, 살길이 죽일 길, 죽을 길보다 더 바른길이고, 삶의 흐름은 앞엣것으로 이어져 내려왔다. 과학이, 철학이 제값을 하려면 이 길을 열어 가고 밝혀야 한다. (102)
3장 우주의 빛과 그림자 103
* 땅과 물과 불과 바람의 역사 105 / 인간의 오만 107 / 불변의 진리는 없다 109 / 나를 끌어당기는 무극 111 / 거품우주에 대한 생각 115 / 모든 것에는 빈틈이 있다 118 / 미시세계와 거시세계의 한계 121 / 왜 사느냐, 삶이란 무엇이냐? 125 / 살아 있는 우주적 상상력 128 / 자유와 필연의 틈새 131
땅과 물과 불과 바람의 역사105 - [이 단락의 제목은 서양철학사에서 초기에 세상(코스모스)를 구성하는 네 원소이다. 지수화풍(地水火風)이다.]
플라톤이 남긴 글 잔치에서 아리스토파네스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신들을 깔보고 신들에게 대들만큼 힘이 세진 인간들의 오만한 생각과 힘을 꺾기 위해서, 본디 손발이 네 개씩 되었고 앞뒤로 눈과 코와 입이 달렸으며 귀도 네 개나 있던 인간을 신들이 둘로 갈라놓았다는 것이다. (107) -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는 그의 작품 구름(Νεφέλαι)에서 소크라테스를 ‘등애’라고 풍자하였다.]
모두가 이어져 끝이 안보이면 겉과 갓(끝)도 없어 ‘무극(無極)’이라 한다. [주돈이의] 태극도설(太極圖說)에서 만물의 근원으로 여기는 ‘태극(太極)’의 맨 처음 상태가 무극이다. (111) - [크리스트교에서 태초에 말씀(논리)가 있었다는 것에 비해, 태극(무극)을 사유하는 것이 우주발생적일까? 그런데 그 기호의 변모와 변형은 논리를 따른 것이 아닐까?]
‘고비’(힘의 최고점)는 위로 솟은 곳을, ‘구비’(힘의 최저점)는 밑에 자리 잡은 것을 가리킨다. 위로 치달으며 고비를 넘기는 것, 넘기는 것은 높은 데를 올라야 해서 힘겹다. 구비로 내리닫는 내리막길은 저 낮은 곳으로 그 나름으로 버겁다. ‘주름’은 고비와 구비가 이루는 결이다. (115-116) - [고비와 구비에서 고비의 최고점을 마루, 구비의 최저점을 골이다. 사회와 경제에서 변화의 마루를 변곡점이라 하자. - 물질에서는 임계점(points critiques)이 있다. 공안에서 이루어진다. ]
위 그림[세로 태극무늬]에서 흰고리는 ‘함’의 자리로 보고 검은 고리는 ‘됨’의 자리로 보자. 블랙홀과 화이트홀은 저마다 힘이 가장 큰 자리를 나타낸다(그 자리의 크기는 0이다. 없다). 웜롤은 이 동그라미(구가 우리 눈길에 닿는 모습)의 한 가운데 있는데, 따지고 보면 검은 구멍(블랙홀), 흰구멍(화이트홀), 벌레구멍(웜홀)은 모두 한자리에 있다. 따라서 우리 눈길을 끄는 것은 동그라미도 구멍도 아니다. 동그라미를 옆으로 놓으면 아래 그림처럼 드러나는 굽은 ‘결’이다. (119) - [평면위에서 이원성에서 출발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세계는 일상적으로 원이라기보다 공(球 구)이다. 공에서 이원성을 설명할 때 어떻게 될 것인가? 회오리일 것이고 가닥은 여럿일 것이다.]
삶은 ‘결’이다. ‘톨’이 아니다. 끊임없이 흔들린다. 흔들리면서 흐른다. 맞서기도 하고 만나기도 한다. (120) - [삶은 공의 회오리처럼 흐름이다. 결에 닮았다. 자를 수 없다. 물체는 자를 수 있다는 점에서 원자처럼 톨이다.]
우리 귀에 들리는 소리를 아무리 키워도(증폭) 또는 아무리 줄여도(약화) 가청(들을 수 있는 소릿결)을 벗어나면 들리지 않듯이, 도 우리 눈에 온갖 현미경을 곱으로 들이대도 볼 수 있는 톨 크기에 끝이 있고, 망원경을 키우고 또 키워도 볼수 있는 하늘의 크기에 한계가 있듯이 우리 ‘감관 지각’에 들어오는 크고 작음에는 울타리가 있다. ... / 그런데 ‘미시세계’와 ‘거시세계’의 이 한계점(임계점이라 불러도 좋다)을 벗어나면 직관이나 느낌으로만, 또는 상상력이나 꿈으로만 그릴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휘감아 돌아(휘돌고 감돌아) 톨로 뭉치기도 하고 결로 퍼지기도 하는, 그리고 때로는 맴도는 것으로도 보이는, 톨과 결이 겹을 이루며 움직이는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하나의 ‘누리’(우주)를 여러 과학의 힘을 빌려 그려보기도 하고 ‘여러 누리’(다중 우주)의 모습을 엿보기도 한다.(121) - [흥미로운 표현. 여기서 느낌과 직관의 영역과 상상과 꿈의 영역이 다르다는 점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122쪽 그림 : 겹을 이루는 여러 누리의 모습: (122) - [이 그림은 평면으로 그려진 것이다. 원들의 조합방식이다. 그런데 이 그림을 공으로 상상하고 나아가 이 공같은 덩어리들이 틀에 맞는 배열이 아니라 혼재된(크기와 강도에도 불구하고) 방식으로(소용돌이, 회오리) 뒤섞여 있으면서 각 덩어리가 자기 형성을 하려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빛들 세기”이래로 자연의 덩어리는 자치적이고 자율적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 짐작으로는 플랑크상수(h)가 미시세계를 측정하는데 있어 수학적으로 요구되는 0에 가까운 가장 작은 상수이고, 그 보다 더 작은 영역은 변수들의 영역인 듯하다. 마치 빛의 상수(C)가 1에 가까운 가장 큰 상수이고 그보다 더 큰 영역은 또 다른 변수들의 영역인 것처럼. (123)
그리고 파인만이 발견한 ‘제멋대로인 행보’를 보이는 까닭은, 이 우주에 시공간의 형태로 왜곡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다른 결과들과 자연스럽게 이어져 공명하기 때문에 생기는 미시적 현상이 아닌가 한다. (124) - [파인만(Richard Feynman, 1918–1988)의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The Feynman Lectures on Physics, 초 1964)에서 ‘제멋대로인 행보’는 수학과 물리학에서 말하는 무작위 행보(Random Walk, 랜덤 워크)이다.]
산이들이 하는 짓도 여기서 크게 다르지는 않다. 영원회귀(Ewig Wiederkehrung)를 내세운 니체가 그리는 큰집(우주)의 움직임도 다를 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이라는 말처럼 산이들이 그리는 궤적(결자취)도 따지고 보면 그런 모습이 아닌가? 유전자도 도돌이표이고, 기억도 되돌아온다. (126)
크게 보아 지난 몇 백 년 동안 과학계에는 세 차례에 걸친 큰 변화가 있었다. 뉴턴이 찾아낸 관성과 만유인력의 법칙,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 그리고 [슈뢰딩거의] 양자역학이다. 하나는 일상세계의 해석에서 또 하나는 거시세계의 해석에서 나머지 다른 하나는 미시세계의 관찰에서 일어난 변화로 볼 수 있다. (128)
플라톤주의와 원자론자들 이론의 통일? 글쎄, 어려울게다. (128) - [원자론자들은 플라톤의 이데아를 이어받았다. 플라톤의 아페이론이 원자론자의 빈것과 다르다.]
한 입으로 두 말뿐 아니라 여러 말을 할 수 있다 ‘다 비었다, 하나다, 마음이 모두 빚어냈다, 물질이다, 생명이다, 창조의 역사, 진화의 역사다……’ 이른바 화엄세계는 살아있는 우주를 가리키는 말이다. (129)
“E=mc2에서 C2은 엄청나게 큰 숫자이므로, 아주 작은 질량이라고 해도 이것이 에너지로 전환되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에 투하되었던 핵폭탄의 위력은 2파운드(약 910그램)의 우라늄 중 1퍼센트의 질량(9.1그램)이 에너지로 전환되면서 발생한 것이다.” / 브라이언 그린의 이 말을 여기에 옮기는 까닭이 있다. C2이 ‘엄청나게 큰 숫자’라는 말은 C(빛의 속도)의 제 모습(또는 힘이나 결)을 데대로 못보고 얼버무린 말이다. 그 까닭은 ‘1’(하나, 있음)이 지닌 힘과 또 거기에 맞서는 ‘0’(영, 없음)의 힘이 얼마나 큰지에서 비켜 가는 말이기 때문이다. (130) - [브라이언 그린(Brian Greene, 1963-), 미국 물리학자, 끈이론가.]
되물이되는 ‘우연’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모습은 아침마다 해는 동쪽에서 뜨고 저녁마다 그 해가 서쪽으로 기운다는 것이다. 둥글게 울타리 쳐진 우주에서는 필연이란 없다. 필연은 유클리트 기하학 세계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우주관은 뉴턴의 관성과 중력의 법칙에서 정식화된다. (131) - [둥글게 쳐진 우주: 플라톤 시대? - 필연의 이중성: 사유(논리)의 귀결의 필연성 대 아페이론의 무정형의 필연성]
자유와 필연의 틈새, 시간의 지속성과 공간의 연장성을 생각한다. 없는 것이 많을수록, 빠지는 틈새가 크면 클수록 틈새는 길어지고 넓어질 것이다(시간과 공간의 연속성은 커질 것이다). 에라토스테네스의 체는 구멍이 작을수록 걸러지지 않는 것이 늘어난다(빠진 것이 줄어든다, 없는 것이 없어진다). 빠진 것이 없을수록 끊김이 많이 생긴다(연속성이 줄어든다). 마지막 선택은 있으냐 없느냐 사이의 선택이다. 그것은 하느냐 되느냐 사이의 선택이기도 하다. / [아인슈타인] ‘하느님은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는다’고 통일 있다고? (133)
큰펑(빅뱅) 이론은 플로티노스의 우주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이것은 플라톤의 우주와 다른 것이어서 머지 않아 다른 증거들이 나타나 되살펴지게 될 것이다. 우주 생명(또는 온 생명) 이론은 아직 직관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앞으로 우주 생물학이 크게 유행할 것이다. 아원자(맨톨)에서 광자(빛톨), 전자(그늘톨) 같은 덩이들과 그것들이 일으키는 여러 결들은 산톨(생명입자)과 산결(생명의 파동)로 이름이 바뀌고 저마다 스스로 살아 움직이고 꿈틀거리는 쪽으로 되풀이(재해석)될 것이다. (3장 마지막 문단, 134)
4장 0과 1의 아름다움 135
* 수학의 아름다움 137 / 1과 0의 합금 139 / 시간도 공간도 벗어나는 것 141 / 결핍은 대칭의 어머니 147 / 이런 이야기를 한 사람이 있었던가? 149 / 빛의 빠르기는 상수일까 151 / 수의 실재론? 154 / 빠진 것으로 없는 것 157 / 독립원자가 지닌 우연성 159 / 무한의 자식들 162 / 셈에서 벗어난 무엇 165 / 왜, 무엇 때문에, 어떻게 167
내가 형이상학을 그려 낼 때 가장 자주 쓰는 낱말은 여남은 마디에 지나지 않는다. ... 이 몇 안되는 낱말로 가장 작은 것(톨)에서 가장 큰 것(큰집, 우주)을 이러주는 마디들을 건드리는 일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마치 해금이나 기타나 바이올린 줄을 건드리는 일과 같다. 아름다운 소리를 빚어낼 수 있으면 좋으련만 (137) [소리: ‘자연배후학’의 기본일 것이다.]
수학 공식은 아름다운 가락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포탄이 터지는 폭발음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사람을 죽이는 우아한 탄도곡선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망델브로(1924-2010) 집합이나 줄리아(1893-1978) 집합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카오스로 그려지기도 한다. (137) - [ [망델브로(Mandelbrot, 1924-2010), 폴란드 태생 프랑스-미국 수학자. 프랙털 집합 기하학 분야. / 쥘리아(Gaston Julia, 1893-1978) 프랑스 수학자 프랙탈 집합]
무엇이 나를 아직도 소수에, 리만기하학에, 허수에, 0과1에 그토록 집착하게 만드는지 나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새끼를 꼬면서 그리고 그 새끼로 여러 가지 매듭을 지으면서 나는 그 새끼줄 속에 함깨 들어가 꼬이고 매듭지어지는 아름다운 우주를 본다. (138)
인간의 의식도 정서도 합금화되었다. 불에 녹는 절대온도, 모든 게 티끌의 티끌로 흩어지는 절대온도, 아주 뜨겁거나 아주 찬게 아니라면, 한데 녹이거나 0으로 돌가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세계를 꿈꾸었고 그 꿈은 절반쯤 이루어졌다. ... 그러나 1과 0이 만나면 제3의 것이 나타난다. 필연의 세계는 무너지고, 자율의 영역이 움튼다. (139-140) - [나는 필연의 세계가 무너진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무너질 것이 없는 플라노메네 아이티아의 세계가 필연이 아닌가?] - [AI: 물질의 분자 운동이 완전히 멈춰 열에너지가 최저가 되는 절대 영도(0 K, 섭씨 약 -273.15°C)라는 이론상 가장 낮은 온도가 존재, / 이론상 가장 뜨거운 온도의 개념: 플랑크 온도 (Planck Temperature) 인류가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는 온도이며, 우주 탄생의 순간인 빅뱅(Big Bang) 직후 10-43초(플랑크 시간) 동안에만 잠시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3.] 시간도 공간도 벗어나는 것141
[나로서는 시간도 공간도 벗어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자연은 차이를 드러내고 나누어지고 곱하여(중첩, 또는 혼융)되는 방식 이외에 다른 방식을 가지고 있는 않을 것 같다. 그 이외에 0과 ∞을 생각하는 것은 인간이 어느 시기부터인가 예측 또는 예견을 위한 방편으로 고안해 낸 기호(signe), 또는 상징(symbole)일 뿐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기호가 삶의 분배와 교환에서 수학적 기호가 편리하고 정확성을 갖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단지 인간의 누가 훌륭한지, 장한지는 분배와 교환과 달리 공감과 공감의 영역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형이상학과 수의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원점은 0이다. ... (141) - [벩송은 사유의 기원에 수를 대상으로 한 것이 공간화의 근본이라 보았다. 모든 수는 하나다(Tout nombre est un)으로 보면 0도 하나이다.]
이를 테면 동그라미(원)를 생각할 수 있다. 0에서 반지름이 1인 원을 그리는데 그 원의 크기는 규정되지 않는다. 되풀이되는 수의 계열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없다. (142) - [점인 원이다. 삼각형을 데카르트좌표에 넣으면 밑면도 0의 자리이고 높이도 0의 자리인 점이 삼각형이다. 규정상 그렇다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분석학 이래로 19세기 후반 집합론에 이르기까지 점, 0으로 표기되되는 그 점은 무엇인가? 전체도 하나이고 점도 하나이라는 집합론의 파라독사가 생겨날 것이다.]
0은 시간도 공간도 벗어난다. 그리스, 히브리 사상은 1에 특성을 부여하려고 했다.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서 움직이게 하는 자’(kinoun akineton), ‘없는 것에서 모든 것을 만빚어낸 자’(creatio ex nihilo), 앞뒤가 끊어진 외마디로서 낱말 로고스(하느님 말씀). 이것이 바로 1이고 그것에 신성을 부여해 하나님(theos), 유일신이라 일컬었다. (143) - [이런 사고는 스콜라적 사고라고 한다. 이것은 그리스 식민지에서 참주제(정복에 의한 영토차지)가 성립하던 시기라고 한다. (해석가들에 따르면) 수메르, 인더스, 고대 나일 문명에서 세기(셈)만큼이나 나누기의 발달은 분배에 대한 이해가 교환가 먼저였다고들 한다. 아마도 플라톤의 지식에서 선분의 비유는 분할(나누기)에서 찾았을 것이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에서 항목은 교환(대상화)에서 찾았을 것이다. 이 둘 사이의 조화로운 계산은 라이프니츠의 미적분에서 일 것이고, 거기서 모나드는 전체이자 부분, 우주이자 먼지이다.]
그것은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없으므로 카오스이고, 이것을 규정하는 코스모스로 바꾸면, 이것 저것을 자로 재고 무게를 달 수 있으려면 1이, 한 자가, 일 인치가, 일미터가, 한 근이, 일 온스가, 일 그램이 척도이고 재고다는 단위가 되었다. (143) - [이는 현재 쓰고 있는 단위로부터 단위설정으로 추리한 것이다. 수의 발생과 대상의 기호화는 전혀 다르다. 안재구의 “수학문화사1(1990)”, 브륑슈비끄의 “수학 철학의 여러 단계들(1912)”은 흥미있는 이야기들을 제기한다.]
내가 이 어릿광대 놀이에 손을 내젓기 전에 이미 베르그송[벩송]이 그 길을 열었다. “태초에 운동이 었었다” 벩송의 이 말을 들여다보면 태초에 0과 1로 상징되는 두 힘의 실체가 있었고, ... (144) - [형님의 사유에는 존재라는 관념(기호)이 먼저 있다는 경향이 있다. “ ”안은 벩송의 언어가 아니라 해석이다. 벩송에서는 ‘근원(기원)에 흐름(운동)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태초라는 말에는 스콜라적 사고가 들어있다. (59ULH) ]
주37: 닐스 보어는 자기 가문의 문장으로 주역을 상징하는 태극도형을 직접 디다인해서 그려 넣었다. 닐스 보어는 기사 작위를 받는 날 수상식장에도 태극도형이 그려진 옷을 입고 참석했다. (145) -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1885-1962)는 1947년 덴마크 왕실로부터 국가 최고 훈장인 엘리펀트 훈장(Order of the Elephant)을 받으면서 직접 자신의 개인 문장(Coat of arms)을 디자인했다고 한다.]
[§3.] 결핍은 대칭의 어머니 147
[결핍 또는 모자람의 프랑스 용어로 manque 와 그리스어 크레이아(χρεία)에는 이중적인 것 같다. 채워야할 필요성으로 욕구, 욕망과 연관이 있다. - 사물에 대해서라기보다 영혼에 대한 용어가 아닐까? ]
삶은 결핍의 다른 이름이다. 덜 것도 더할 것도 없는 가득함(충만)은 삶의 꼴도 결도 아니다. 대칭은 생명체가 살아남기 위해서 제안에 무언가를 뺀 나머지 모습이다. 좌우대칭은 그 가운데 가장 흔히 눈에 띄는 한 가지 모습일 뿐이다. 물리나 화학에서 나타나는 대칭은 어쩌다 그렇게 된 현상이지 스스로 뺀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나비의 두 날개로 나타나는 대칭과는 다르다고 불 수 있다. (149) - [생명체에서 대칭이든 화학에 원자구조에 대칭이든 운동의 양면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우선 지구자전에서 남극과 북극, 그리고 회전에서 여러 종류의 대치(교환, 치환)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0과 1(없음과 있음)사이에 있는 힘마당(역장) 속에 어떤 상수도 없다. 모두 변수일 따름이다. 여기저기 이렇게 저렇게 감돌아 뭉친 힘의 덩이를 바탕으로 수리물리학의 필요나 요청에 따라 상수를 끌어들이는 게 계산에 편할지는 모르나 그것은 또 다른 변수의 겉모습일 뿐이다. (150-151)
[§6.] 빛의 빠르기는 상수일까 151
‘빛의 빠르기’(C)는 우주상수로 알려져 있다. (이 우주에서 빛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것은 없다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다.) 그런데 정말 C가 상수일가? 바뀌지 않는 걸까? 나는 그렇게 여기지 않은다. (151-152) - [C는 라틴어로 ‘빠름’ 또는 ‘속도’를 뜻하는 “celeritas(켈러리따스)”의 첫 글자이다.] - [흔히 혼동하는 개념인 아인슈타인의 ‘우주상수(Λ, Lambda, 암흑에너지)’ 와 ‘빛의 속도 상수(C)’는 물리적으로 다른 개념이라 한다.]
좀누리(미시세계), 사이누리(중간세계). 한누리(거시세계)에 대해 생각했다. 좀누리에서는 아주 좁은 공간 안에서 ‘양자요동’으로 제멋대로 날뛰는 결 안에 들어 있는 힘(에너지)이 무한대라 한다. ... 한누리에 가득 퍼져 있는 ‘함’의 힘과 맞먹는 힘일 것이다. 사이누리에서도 꽃가류나 나노의 세계에서는 이런 힘의 움직임을 볼 수 있다. (153)
스스로 하나임을 증명하려는 하나님이 있나? 하나님도 모르는 ‘하나’를 누가 알지? (155) - [하나, 둘, 등의 수는 삶의 약속이 아닐까? 추상으로서 또는 상징으로서 하나 지성(이성)의 머리로 만든 기호가 아닐까?]
없는 것이 없으면(빠지면) 우리의 사고도 감각기관도 직관도 우주공간도, 그 안에서 바뀜(변화)을 나타낼 시간도 ‘없다’. 빈구석이 없으면 그림도 그릴 수 없고 숫자를 쓰거나 가릴 수도 없도 노래도 선율을 들을 수도 없다. (158) - [없음이라기보다, 있음의 분화, 분산, 발산, 생성에서 생기는 사실들에 대한 용어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초끈이론에 따르면 고리가 달린(끈이 있는) 이 독립원자들이 우연히 운동 경로를 바꾸기 때문에 무한한 공간 안에서 온갖 것들이 생겨난다. 쿼크든 전자든 뮤온이든 뉴트리노든 가릴 게 없다. 이 가장 작은 ‘톨’로 여겨지는 것들이 살아 있는 ‘결’이라고 한들 다를게 무엇이 있겠는가? 이것들이 달라붙고 또 달라붙어 원핵세로로, 진해세포로 탈바꿈하고, 이 우주 공간 어느 곳에선가 땅별같은 별들도 무더기로 생겨난다고 한들 무슨 이론적 하자가 있겠는가? (160) [물질계의 덩이(masse)의 자치성, 생명계의 다발(gerbe)의 자율성, 사회(사건)의 덩어리(faisceau)의 자발성, 얼과 혼의 지속에서 정체성 등은 여러 다른(차히) 방식으로 덩어리를 이루고 있다. 물리학에서 상수와 사회제도에서 상수는 다를 것이다.]
플랑크가 우주상수가 1.58 x 10-123이라고 한다. 요즈음에는 ‘다중우주’의 상수가 10500이라고 주장하는 물리학자도 있다. 계산해보니 그렇고, 그 계산이 어떤 조건을 충족시킨다는 것이다. 차원이 다른 10500의 우주? 나도 모르는 하나님도 모를 일이다. 도대체 무슨생각들인지, 아인슈타인도 플랑크도 와인버그도‥… (165) - [안드로메다성운이 45억 광년의 거리라고 하는데, 그 성운의 일부가 폭발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고 몇 년전에 발표한 적이 있다. 가끔 딴생각을 한다. 그 별의 변화의 빛이 45억년을 거쳐서 왔을진데 그 별의 현재상태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게 뭐?]
나는 철학을 다시쓴다(2013)에서 동일률이 어디에서 어떻게 깨지는지 밝히는데 힘을 쏟았다. 함과 됨으로 드러나는 힘은 우리 눈에 톨의 움직임으로 밖에 드러나지 않는다. 눈보다는 귀가 조금 더 밝아서 결의 움직임을 받아들이지만, 그것도 어디에서 어디까지, 얼마에서 얼마까지라는 틈새에 지나지 않는다. (167) - [형님이 철학을 다시쓴다(2013)에서 동일률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아마도 들뢰즈를 받아들인 것 같다. 그럼에도 0과 1이라는 수리계산+논리계산에서 생각한 것이 아닌가 한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을 이어 주는 결에서 ‘끈끈이’같은 것, 이를테면 들뢰즈의 끌개(attractor)가 어떻게 더 큰 힘, 더 더 큰 힘으로 스스로 감아 돌면서 저마다 다른 톨들을 빚어내고, 그것들을 잇는 사이에 벩송이 ‘기억’으로 부르는 틈새를 만들어 유전자 꽈베기의 칸을 짓고, 그 마디가 안에서 생기는 힘 또는 밖에서 더해지는 힘에 따라 떨어져 나가 그 틈새를 다른 것이 메꾸어 돌연변이가 일어나는지, 왜 모든 산톨들이 더는 갈라지지 않거나 몸집을 불리지 못하고 작은 씨앗으로 목숨을 이어 갈 길을 찾는지, 암수가 갈라지고 저마다 꼴과 크기가 다른 산티, 또는 산톨들로 바뀌게 하는지, 여기서 ‘홑음’과 ‘되풀이’라는 힘의 결이 무슨 몫을 맡는지……. (168) - [뤼엘(David Ruelle, 1935-) 벨기에 출신 물리 수학자. “이상한 끌게”(strange attractor, fr. « attracteur étrange »)라는 용어는 뤼엘(David Ruelle, 1935-)과 타켄스(Floris Takens, 1940-2010)에 의해 쓰여졌다. 유체의 흐름을 묘사한 체계로부터 연속적인 가지치기(la suite de bifurcations)로 창조된 끌게들을 범주화하기 위해 사용했다. 데이비드 뤼엘은 네덜란드의 수학자 플로리스 타켄스와 함께 공동으로 집필하여 1971년에 발표한 논문《On the nature of turbulence(난류의 본질에 대하여)》에서 "이상한 끌개(strange attractor)"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 [AI 들뢰즈는 (Strange Attractor)'라는 용어를 그의 마지막 주요 저작이자 펠릭스 가타리와의 공저인 철학이란 무엇인가(1991)에서 직접 사용.] - [(ms)회오리로 확산하는 흐름에서 각 방향에는 끊임없는 가지치기가 일어난다고들 한다.]
형이상학과 수의 관계를 헤아려보기 위해 1에서 9까지 수로 드러나는 힘을 하나하나 되살펴 보고자 한다. 수로 드러나는 심 “아홉” - [수의 각각의 고유성(동일성) 또는 인접성, 공통분모, 소수 등의 논의는 정수론에서 다룬다. 그래서 형님은 수를 10진법과 60진법으로 환원할 수 있는 방식들을 0과 1의 대수의 기호들(집합론의 요소들)처럼 다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
우주에서 힘의 ‘본생’(원천)은 0과 1의 꼬임에 있다. ‘없음’에서 싹트니까 무한하고, 무규정적이다. ‘있음’으로 드러나니까 유한하고 규정적이다. 그 사이는 무규정성과 규정성이 뒤얽힘 ‘뭉친 결’(톨)과 ‘풀어진 톨’(결)로 가득한, 빛과 그늘로 이루어진 작은 누리 큰 누리들이 가득 채우고 있다. 생명계니 물질계니 하는 것들은 그때 그때 드러나는 바뀜에 붙이는 딱지일 뿐이다. (174) - [꽈베기(2가닥), 3가닥 꼬기(머리땋기), 6가닥 꼬기, 전통매듭의 24사, 36사 등도 있다]
5장 살아 있는 힘 175
* 힘의 본모습 177 / 다른 것은 늘 바뀐다 179 / 알 수 없는 끝 182 / 이어짐과 끊어짐 184 / 모순에 빠지지 마라 187 / 맞서느냐, 물러서느냐 190 / 양과 질 195 / 셈과 잼의 신격화 198 / 살아 있는 힘 202 / 증명되지 않은 공리 205 / 철학이 짊어져야 할 몫 208 / 주어진 것은 삶이다 210 /
맨톨(아원자)은 밖에서 미는 힘이 있어야 움직이고, 이미 움직이고 있다면 밖에서 멈춰 세우는 힘이 있어야 움직임을 그치는 것들이다. (원자에서 아원자에 이르는 모든 물리학적 실체들이 그렇다.) 산톨(생명입자)은 스스로 움직이고(움직이는 힘이 안에 있고), 스스로 멈출 수 있는 (삶의 기운이 그 안에 스며 있는) 것들이다. 스스로를 결(파동)로 바꾸기도 하고, 톨(입자)로 바꾸기도 하는 것이다. (177) - [움직임 또는 결이 있고 그 결의 한 찰나 또는 단면이 톨(요소)이 아닐까? - 흐름에는 충력, 엘랑, 자발성이 있는 것이 아닐까?]
멘티[물질입자]의 움직임이든 산티(생명입자)의 움직임이든 가리지 않고 그 세계는 모순이 끼어든다. 있음과 없음, 임과 안님(아님)이 한 덩어리가 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 ‘인 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닌무규정성이 형이상학적 실체로 자리 잡는다. 끊기지 않고 끊임없이 서로 겯고 틀면서 힘다당이 결로 들어난다. (178) - [움직이는 과정과 흐름이 있는 상태 또는 덩이에는 모순이 끼어들까? 갈라지는 가지치기를 할까? 혼재(카오스)가 먼저 아닐까?]
같은 것은 바뀌지 않고 다른 것은 늘 바뀐다. 우리는 ‘같은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고 다른 것은 ‘없는 것’으로 부른다. 빠짐(결핍)이 바뀜을 낳고 이 바뀜은 산이(생명체)를 저마다 다른 것으로 바꾸어 내는데, 이 ‘돌연변이’가 어느 끝에 이르면 어떤 종에 드는 산이들은 모두 사라지기도 하고 또 새로운 종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180) - [“같은 것은 바뀌지 않고 다른 것은 늘 바뀐다.”, 사유의 틀로서 동일성(l’identité)과 사유의 과정으로서 정체성(l’identité)은 두가지 다른 길임에도 용어는 하나이다. 용어의 성립과 사용(적용)의 방식이 글 쓰는 이와 시대 공통성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큰집은 하나일까, 여럿일까. 하나에 다가서지만 하나가 아니고 둘에 닿을 둥 말둥하지만 둘도 아니다. 그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는 ‘셋’이다. 이 ‘셋’은 1도 아니고 2도 아니며 있음(유)도 아니고 없음(무)도 아닌 것이다. 도가에서는 이것을 감암(현빈)이라고 부르고 불가에서는 빔(공)이라고 이르며 유가에서는 가없음(무극)이라고 일컫는다. 어떻게 부르든 이것은 덧엄음(무상)이다. 결이 두 겹으로 꼬인 덧없는 힘이다. 이 힘이 꼬이고 또 꼬여 엉클어질 대로 엉클어지면 톨로 뭉치고, 톨로 뭉친 힘이 느슨하고 풀리고 또 풀리면 겨을 되찾는다. (183)
“원자가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화할 때 광자라고 부르는 빛의 입자를 방출한다고 알고 있는데…….” / “그렇습니다.” / “그렇다면 광자가 원래 원자 속에 들어 있다가 방출되는 것이냐?” / “아니요, 광자가 원래 있다가 방출되는 것은 아닙니다.” / “그렇다면 광자는 어디에서 온 거지? 어떻게 해서 생긴 것이냐?” / 나는 광자의 수는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전자의 운동에 의해 생성된다는 것을 아버지께 설명드리려고 애섰지만 잘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드렸다. / “그것은 제가 지금 내고 있는 소리와 비슷합니다. 소리가 제 몸 속에 원래 있었던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 아버지께서는 그런 점에서 나를 만족스럽게 생각하지 않으셨다. -《님이야 뭐라 하건》(리차드 파인만글, 홍승우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4)에서) (186)
힘으로서 빛(그것에 C라는 딱지를 붙이자)은 결로 드러나고 톨로도 드러난다. 함으로서 힘이 어느 빠르기에 이르면(C2) 덩이로(m) 바뀐다. 거꾸로 이 덩이가 어느 빠르기에 이르면 힘으로 바뀌는데 덩이는 ‘된 힘’(됨이 받아들여 함을 한데 모은 힘)이고 덩이가 되는 힘은 ‘한 힘’이다. 덩이 꼴을 하고 있느냐 결 모습을 지니느냐는 힘의 빠르기에 달려 있다. (188) - [물체가 아닌 물질을 덩이(la masse), 생명체가 아니라 생명에는 다발(la gerbe), 사건에서는 묶음(le faisceau) 이라는 용어가 있다.] - [우주를 설명하는 방식이 수와 원자, 즉 입자를 중심으로 설명하면서, 결을 만들어가는 과정처럼 설명한 것 같다. / 자연에서 보면 덩어리 자체의 움직임이 결을 생성하고 그 결에서 톨이 굳어진 것으로 등장한다. ]
‘모순에 빠지지 말라’, ‘논리의 일관성을 지켜라’ ‘온 우주는 등식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은 차례로 ‘모순이 있다’, ‘일관성이 없다’, ‘부등식이 있다’는 걸 바탕에 깔고 있다. 힘은 바로 이 모순에서 생긴다. 있을 수 없는 일도 있다. 없을 수 없는 일만 있는 게 아니다. (없을 수 있는 일도 있다.) (190) - [존재론으로 사유하면 위와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생성론은 모순이라고 하지 않고, 반대, 대립, 경쟁 등의 용어를 쓸 것 같다.]
과거(어제)와 현재(이제) 그리고 미래(아제)를 풀어헤침(분석)의 눈으로 살피면 ‘어제’는 이어진 삶의 결을 (박테리아 수준에서 아인슈타인이나 호킹 같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산 것들은) 톨로 바꾸어 낼 수 있다(질을 양으로 바꿀 수 있다). 단성생식이나 양성생식에서 세포분열을 통한 몸집 늘리기(성장)도 이런 흐름으로 여길 수 있다. 그 일을 하게 하는 것은 몸(사람의 경우에는 주로 머리)에 새겨진 지난 삶의 자취[추억들](기억)다. (191) [어제-이제-아제의 흔적들(추억들)을 양으로 환원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의 흐름인 기억은 양이 아니라 질이며,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이때 물질이란 무엇일까? 결과 톨은 어떻게 다를까? 크거나 작은 고리를 이루는 결의 움직임이, 톨로 다져지는 다른 결의 움직임과 이어지는 길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절대온도(-273˚C)에 이르러 제자리에서 널뛰기를 하는 결들이 어느 한쪽으로나 다른 쪽으로 퍼져 나가는 전자기의 이어받기 운동이나 빛의 운동과는 다르다고 해서 그것을 멈춤(정지)이라고 볼 수 있을까? ... ‘검은구멍[불랙홀]’과 ‘흰구멍[화이트홀]’, ‘벌레구멍[웜홀]’들의 저편에는 그것과 이어지는 또 어떤 출렁이는 고리가 있을까? 또는 생겨날까? (197)
헤아림(셈)과 잼의 ‘신격화’와 수의 ‘실체화’. 이것과 저것으로 갈라진 틈새를 메우고 이어주는 끈(=). E=mc2. ... / .... 사람의 머리로는 E=mc3이라고 해도 된다, 하늘 머리로는 E=mcn이겠지만 헤아릴 수 있고 잴 수 있는 것은 고작 E=mc2.밖에 안되지까 ‘수학’ 공식에는 이게 들어맞겠지. (199) - [데카르트가 “우주의 속도를 빠르게 해도 운동량은 동일하다”는 표현은 문맥상 물체들 간의 충돌 과정에서 한 물체의 속력이 빨라지더라도, 그만큼 다른 물체의 속력이 느려지기 때문에 총합은 변하지 않는다는 뜻. - 우주에서 빛의 속도가 빨라져도 우주의 통일성은 동일하다고 생각해야 하나?] [[데카르트는, 감각이 속일지라도, 꿈이 속일지라도, 말랑 제니가 속일지라도, 내가 의심하면서도 생각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유클리드를 본떠서 나도 열 개쯤 공리를 만들어 볼까?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의 원리에 대해 내가 쓴 철학을 다시 쓴다(2013)에서 딴지를 걸었으니 이번에는 ‘공리’ 차례다. 이른바 ‘개똥철학자’가 정리한 ‘딴지학의 열 개 공리’다. / 딴지학의 열 개 공리 / 1. 점(point)은 ‘있음’과 ‘없음’이 겹쳐 있는 자리다. (굳이 말로 하자면 ‘없는 것’이다) ... (201)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의 원리: 동일율, 무모순율, 배중율.] - [나로서는 정의, 공리, 공준이 헷갈린다. // 유클리드의정의1 점은 부분을 가지지 않는다. 크기가 없다(위치?) / 공준(postulats, αἴτημα)[요청, 전제] 다섯 가지 중 1) 직선의 선분은 두 점 사이의 연결이 있다. / 공리(axiomes, κοινὴ ἔννοια: 공통 용어, 일상용어) 1권에서 다섯 가지 중에 1) 셋째 것과 동등한 두 사물은 동등하다, 이다. ]
헤아리기 좋아하는 이(수학자)들은 ‘연산법칙’을 세우고 대수이론, 기하학, 실수, 허수, 복소수 같은 온갖 수들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낸다. 이 일은 이어지고 되풀이되는 것들의 다름을 어떻게 새서든지 그럴듯하게 풀이하려는 바람을 드러낸 것이다. (들뢰즈가 ‘차이와 반복’이라고 이름 지은 것도 마찬가지다.) 되풀이 되는 다름으로 저마다 다르게 되풀이 되는 하나들(개체, 종, 수, 크기, 꼴‥…)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204) [들뢰즈에 관심 (168쪽에 이어) 두 번 등장, 그러나 인명록에는 없다.]
함과 됨이 맞부터 갈라 세울 수 없은 ‘이’(현재), 0과 1이 무르 녹아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이 원융무애를 불교에서는 일원상[원불교처럼]으로 그리고 기독교에서는 유일신을 기린다. 노자가 남긴 “도덕경”에서 그려낸 유무상생의 원점, 가맘소(현빈, 검은 암소)도 마찬가지다. / 더위(열)와 추위(열의 사라짐)가 결의 흐름을 바끈다는 말은 앞 뒤가 안 맞는 말이다. 절대온도 따위는 없다. 힘은 사라지지 않는다. 힘은 숨어있다. 함과 됨으로 갈라서 꼴을 빚지 않은 힘. 빛의 빠르기보다 헤아릴 수 없이 더 빠른, 그러나 타오르지도 얼어붙지도 않는 힘. 아직은 삶과 죽음으로 갈서지도 못산이들과 덩이들을 살림과 죽임으로 갈라세우지도 않는 힘. 맴돌고 감돌고 휘도는 그 모든 힘의 한 가운데. 왼쪽과 오른쪽, 앞뒤, 위아래, 안팎으로 올 데 갈데 없으므로 등식이 사라지고 자리 잡을 틈도 없으므로 ‘수치 계산’이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는 힘이자 자리가 바로 ‘이’이다. (207) [현재를 움직이지 않는 점 또는 영원히 움직이는 점, 이중적 사유도 인간의 것이다. 지연은 흐름이며 그 흐름에 점을 찍는 것은 수도 원자도 아니고, 원이나 현 위에 어느 움직이는 점일 뿐이다. 벩송이 그 점을 순간이라 불렀고, 그 사이의 가름을 하는 점을 찰나라 부른다. 수학자 제르곤(Gergonne)이 둘을 달리 표현하는 방식을 기호로 표현했다.. ]
수학자와 물리학자, 화학자 그리고 덩달아서 분자생물학자와 두뇌생물학자 들까지 모두 숫자의 신격화에 빠진다. 그리고 본디 수학이 아닌 통계까지 수학으로 둔갑시켜 확률 이론을 늘어놓고 오차 범위로 정밀성을 나타낸다. 가끔 ‘무한’을 수학화하려는 골치 아픈 사람들(칸토어나 괴델 같은 이들)이 나타나 폭탄을 덩지기도 하지만 아직도 끄떡없다. (212) - [수학자들은 수를 가지고 노는 것이 아니라 기호를 가지고 논다. 오일러 상수도 기호라 할 수 있다. 그 기호에 의미가 있다고 설명하는 것이 인간의 지성이다. ]
이 세상에 구체적 데이터는 없다. 주어진 것은 삶이다. 잘 살면 된다. 있을 것이 없으면 빠진 것을 채우고, 없을 것이 있으면 그 군더더기를 덜어내면서 있을 것만 있고, 없을 것은 없는 삶을 꿈꾸며 하루 하루 살아간다. (214) - [형식논리는 여전히 빼고 더하고 한다. 그러나 연결(connexion)의 방식에 따른 기호화의 의미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 정수의 곱셈과 달리 6승 다곱성(승수들)의 형상은 없을지라도 조직화(또는 유기체화)에서는 다곱성의 연결이 있다. 사실이 아니라 사건에서 다곱성의 연결이 있다.]
(16:11, 59UMC) (17:18, 59UMF)
책1943윤구병2020꿈꾸는B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