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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1147
그리스도인의 자유(갈라디아서 5:1-15)
2023-9-10
믿음과 사랑으로 자유를 누립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해 주시고 자녀로 받아들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유를 주십니다. 양심에 자유를 누립니다.
그런데 갈라디아 지역의 성도들에게 율법주의자들이 들어왔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를 점점 잃어가고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으로 참된 자유를 빼앗기지 말라고 권합니다. 우리도 양심의 자유를 빼앗기지 맙시다.
믿음과 사랑으로 자유를 누립시다.
1. 믿음에 굳게 서서 자유를 누립시다.(1-12절)
2. 서로 사랑하여 종으로 섬기며 자유를 누립시다(13-15절)
오늘 이 시간 성령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참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회복해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1. 믿음에 굳게 서서 자유를 누립시다.(1-12절)
개역개정 | 사역 |
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 1 자유로 우리를 그리스도께서 자유케 하셨습니다. 따라서 굳게 서서 다시 종/노예의 멍에에 걸려 짓눌리지 마십시오. |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해방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받아야 할 심판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했습니다.
우리의 양심이 우리의 죄를 계속 지적했습니다. 우리는 죄책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두려움이 우리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무엇이 옳은 지를 압니다. 성경을 알지 못하는 불신자들도 양심이 있습니다. 죄를 지을 때 양심에 괴로움이 있습니다. 신의 심판을 받을까 두려워 합니다.
그런 우리를 위해,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13(신약 304)는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일을 믿는 자들에게는 더 이상 심판이 없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아서 심판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우리는 죄를 짓지만, 더 이상 우리 죄에 대한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님입니다.”고 믿은 자의 특권입니다. 죄가 있지만, 죄에 대한 저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계속 용서하십니다.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십니다. 죄의 짐에 눌려 있는 우리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기를 펴고 일어 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용서 받고 양심의 자유함 가운데 기쁘게 살아 갑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지역의 교회들에 성도의 자유를 빼앗아 가는 사람들이 들어 왔습니다.
2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 2 보십시오, 나 자신 바울이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할례를 받고 있으면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어떤 유익/빚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
예루살렘에서 어떤 교인이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에 왔습니다. 이런 말을 퍼뜨렸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더라도 반드시 할례도 받아야 하나님이 의롭다고 인정해 준다.” 할례라는 멍에를 지우려 했습니다.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받지 못할 듯한 그런 두려움에 빠뜨렸습니다.
할례는 남자 아기가 태어난 지 8일 째 되는 날에 고추 끝 껍지를 자르는 의식입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구약 백성에게 언약의 표시로서 하나님께서 명령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할례는 세례로 바뀌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원한다면 민족의 습관으로 할례를 해도 좋습니다.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대답합니다.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고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요?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이 우리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 그리스도를 믿고 죄용서 받고 성령님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죄용서에 부족함이 있다는 말입니다.
3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 3 그런데 내가 다시 증거합니다, 할례를 받고 있는 각 사람에게 그는 율법 전체를 실행해야 합니다(할 빚을 지고 있습니다.) 4 그리스도부터 끊어졌습니다, 율법 안에서 의롭게 되고 있는 여러분은, 은혜로부터 떨어졌습니다. |
할례는 율법 조항의 하나입니다. 그 하나를 꼭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면, 다른 율법도 다 지켜야만 구원을 받습니다. 율법은 선하고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주의는 나쁩니다. 율법주의는 율법을 지켜서 착하게 삶으로써 하나님께 의롭다는 인정을 따 내려 하는 것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이미 그리스도로부터 끊어졌습니다. 자기 노력을 의지하므로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떨어진 사람입니다. 사람의 조그만 선행을 의지하려는 것은 결국 그리스도도 없고, 은혜도 없는 불쌍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할례는 사람의 선행 전체를 대표하는 말로 쓰였습니다. 미워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 이 율법을 지키는 것은 선합니다. 교회에서 섬기고 헌금하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리스도의 은혜로부터 끊어집니다. 그 선한 일을 하는 바로 그 순간에도 우리에게는 악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의롭게 됩니까?
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6 그리스도 예수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 5 왜냐하면, 우리 자신은 성령으로 믿음으로부터 의의 소망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6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할례도 아무 능력이 없고 무할례도 아무 (힘이 없고), 오히려 사랑을 통해 역사하는 믿음이 (힘이 있습니다.) |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것은 우리가 행한 선행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선행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행한 선행을 공짜로 우리 것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은혜로 인정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우리는 믿음으로 받았습니다. 우리가 믿은 다음에 선한 행동을 합니다. 그러나, 믿은 다음에 행한 선행 때문에 우리를 의롭다고 하시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하고 믿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 인정해 주십니다. 아들 딸로 받아 주시고 있습니다. 마지막 날 심판 날에도 우리의 선행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선행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의롭다고 인정받을 것입니다.
때로는 두려운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은 우리가 선하게 살려고 하지만 아직 죄악된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심판하시는 것은 아닌가?” 이 두려움이 일어납니다. 그럴 때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증거합니다. “그래도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딸이다”라고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아빠 아버지”라 부르면서 확신을 가집니다. 마음에 자유를 누립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미래에 하나님 나라를 상속할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할례를 받는 것이나 선행을 행하는 것이 우리에게 능력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돈이 많거나 적거나, 지식이 많거나 적거나, 외모나 어떤 것도 우리에게 능력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역사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역사한다”는 “바깥에 있는 힘이 우리 안에서 일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 바깥에 있는 힘이 우리 안에서 일합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일합시다. 형제 자매를 사랑하는 힘을 우리 안에서 주십니다.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은 믿음 안에서 사랑이라는 열매를 맺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은 우리에게는 성령님이 계셔서 능력으로 일하십니다. 우리가 사랑의 열매를 맺을 때 마다, 자기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이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하신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다시 굳게 잡고 자랑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자신의 선행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았다는 확신이 있습니까?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미 믿음으로 구원받았는데도,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내가 좀 더 착하게 살아야 하나님이 나를 아들 딸로 인정해 주시는데, 그래야 천국가는데” 그런 불안을 버리기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충분합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해 주셨으니 하나님 앞에 참 자유함과 평화를 누리십시오.
2. 서로 사랑하여 종으로 섬기며 자유를 누립시다(13-15절)
첫째로 들은 말씀은 믿음에 굳게 서서 자유를 누리자는 말씀입니다.
둘째로 서로 사랑하여 종으로 섬기며 자유를 누립시다(13-15절)
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 13 왜냐하면 여러분 자신은 자유를 위하여 부름받았습니다, 형제님들. 단지 그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서가 아니라, 오직 사랑을 통해 서로 종으로 섬기십시오. |
죄인인 우리를 하나님께서 양심의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사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육체란 성령님을 통해 변하기 전의 사람의 마음, 악한 마음을 말합니다. “나는 죄용서 받았고 자유를 얻었다. 내 하고 싶은 대로 하자. 죄도 좀 짓고 즐겁게 살자. 다시 용서해 주실 것인데 뭐” 방종에 빠지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자유가 아닙니다. 다시 종이 됩니다. 죄의 종이 됩니다. 우리가 편하게 죄짓도록 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고난을 당한 것이 아닙니다. 편하게 죄를 지으라고 죄용서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의롭게 살도록 하기 위해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자유를 선물로 받은 성도들이 반드시 해야 할 좋은 종노릇이 있습니다. “사랑을 통해 서로 종으로 섬기는 일입니다.” 성도 서로 서로를 향하여 이 자유가 흘러 갑니다. 사랑하는 것이 참 자유입니다. 사랑으로 섬기는 자유도 이것은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 때문에 가능합니다.
6절에서 “사랑을 통해 일하는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 있는 성도에게 성령님께서 그리스도처럼 사랑하게 일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노예가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용서 받은 우리도 그리스도 처럼 다른 성도를 노예처럼 사랑하며 섬깁니다. .
우리가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을 얻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율법은 새로운 가치를 가집니다.
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 14 왜냐하면, 온 율법은 하나의 말씀에 성취되어 왔습니다. 즉, “네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에. |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율법의 정신은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에 성취되어 있습니다. 4-6절에서 우리가 율법 전체를 실행할 수도 없고, 그래서 율법을 실행하여 의롭게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 믿음이 사랑을 통해서 일합니다. 성령님 안에서 믿음으로 행합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 때문에 성령님의 일하심 때문에 율법이 성취됩니다. 이루어집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결과 율법과 십계명은 사랑이라는 열매로 성취됩니다. 율법 조항을 억지로 지키지 않고 성령님에 설득되어 기쁨으로 지킵니다. 남에게 보이려고 형식적으로 율법 조항만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로 형제 자매를 서로 사랑합니다. 사랑할 자유를 얻었습니다.
만약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 까요?
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 15 그런데 만일 여러분이 서로를 물고 먹고 있으면, 조심하십시오. 서로에 의해 멸망당하지 않도록.. |
믿음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형제 자매들끼리 짐승 처럼 물어 뜯을 수 있습니다. 말로서 혹은 행동으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서로 물고 뜯으면 서로에 의해 망합니다. 성도들이 서로 상처를 줍니다. 10절에, 잘못된 교리로 성도를 뒤흔들고, 그 자신은 심판을 당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랑이 없으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교회를 망하게 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방법을 6:1-2는 말합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 네 자신을 돌아 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 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우리가 사랑해야 할 형제 자매들은 죄인입니다. 그들의 죄를 볼 때 말로서 물어 뜯듯이 비판하지 마십시오. “신령한 너희는 신령한 마음으로” “성령적인 너희는 온유함의 성령 안에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성령님이 주시는 온유함으로 죄를 지은 자를 바로 잡읍시다. “나는 저런 죄를 짓지 않는다.”교만하지 맙시다. “나도 혹시 저런 죄를 짓지 않는가?” 자기를 돌아 봅시다. 앞으로 그런 시험을 받지 않도록 조심합시다. “
“너희가 서로 짐을 지라.” 죄의 짐을 져 줍시다. 죄를 덮어 줍시다. 죄의 결과에 대해 함께 책임집시다. 그 죄인인 성도와 친구가 되고 비난 받읍시다. 그렇게 구체적으로 짐을 지는 것이 “그리스도의 법, 그리스도의 율법”을 성취합니다. 모든 성경의 명령을 그리스도께서 이루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사랑하며 그리스도의 법을 이룹시다. “율법을 지겨야 구원을받는다”고 하는 사람은 성도의 양심의 자유를 뺏아 가니다. 다른 사람의 죄를 보면 비난하고 정죄합니다. 그들은 자기의 심판을 짊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용서 받아서 하나님 앞에서 양심의 자유를 누리는 성도는, 다른 성도들의 짐을 져 줍니다. 그렇게 종으로 섬길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바로 가르져 주신 사랑의 법을 성취합니다. 서로의 죄의 짐을 지고, 고통을 져 주면서 노예처럼 섬기는 거기에 참 자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서로의 짐을 지는 곳에, 그리스도께서 먼저 그 형제 자매들의 짐을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형제를 위해 고난 받는 그 곳에 그리스도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종이 되는 자유를 누립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의 자유를 뺏아가는 율법주의를 조심합시다. 우리의 자유를 뺏아가는 방종주의, 이기주의를 조심합시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양심의 자유를 누립시다. 성령님을 의지하여 성도를 사랑함으로써 참 자율를 aa 누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