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 지킴이
박 순 태
인간사人間事 실록實錄 일면을 복사한 대밭이다.
안팎이 극과 극이다. 멀리서 볼 땐 잎 물결 출렁대어 활기차고 평온했건만, 가까이서 안쪽을 들여다보니 꺾이어 넘어진 녀석들이 즐비하다. 몇 년 전 태풍잔해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남의 가정사 속속들이 알 수 없듯 이곳 대숲이 그러하다.
바깥쪽 경계지점의 대는 파수병이다. 혈족 보전을 위해 궂은일 다하려 몸 둘 바를 모른다. 바람막이 보초병들에게 마음이 꽂힌다. 안쪽 무리보다 키 높이가 낮을뿐더러 몸집 또한 왜소하다. 하지만 몸통 외피가 밤톨같이 반들반들하고 빳빳한 잎이 반짝반짝 빛난다. 큰바람이 휘몰아칠 때면 매타작을 당했건만 어찌 온전할까. 우람한 몸통으로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안쪽 녹경綠卿과 대비된다. 최전선 지킴이 임무를 맡아 인내하면서 끈덕진 건성으로 다져진 억척들이다. 추위가 혹독하면 혹독할수록, 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부릴수록, 그들은 과육 껍질처럼 질깃한 벽이 되었다.
대밭 속을 보며 ‘쩌쩌’ 혀를 찬다. 양질의 부엽토에서 호의호식好衣好食하다가 비명에 쓰러진 철면피들. 왜소한 몸집으로 성을 지키는 동료를 안중에 두지 않은 채 자기네만 우뚝해지려 발싸심이었다. 어찌하면 몸집을 불리고 키 높이를 더해 더 많은 햇빛을 흡입할까에 혈안이 되었던 후안무치, 사시장철 고통 겪고 있는 바람막이 경계병 신세들을 피지배자로 다루면서 군림한 녀석들이었다.
대밭 속에서 밖으로 나왔다. 아둔할 만큼 담대한 억척들, 변방 지킴이들 앞에서 나는 지난 세월 어느 시점에 묶여버렸다. 동병상련同病相憐 동지애를 느껴서다.
초등학교 동기생들과 백마고지에 왔다. 6.25 전쟁 시 한국군과 미군이 중국 인민지원군과 싸워 피 흘리며 쟁취한 이곳. 넓디넓은 철원 평야를 빼앗기고서 김일성이가 가슴 치며 대성통곡했다던 옥토. 민통선 내 대마리 마을 대문이 활짝 열렸다. 군사분계선(休戰線)을 가운데 두고 남쪽과 북쪽으로 각각 2km씩 완충지대로 하여 동서로 선을 그은 남방과 북방한계 철책선. 비무장지대(DMZ)의 전초前哨와 저 멀리 북한군 초소가 가물가물 시선에 잡힌다. 반세기 전 내 말초신경을 곤두서게 했던 장소들이다. 세월에 묻혔던 사연이 하나씩 하나씩 되살아난다. 감정에 사로잡혀 숨소리마저 녹인 채 묵상에 잠겼다.
1975년 북괴군 침투로 철책선이 뚫렸던 이듬해 봄, 나는 그 자리에서 밤을 지켜야 하는 올빼미로 영을 받았던 게다. 어둠을 헤치는 눈빛을 잠시도 멈출 수 없었다. 먼 산에 아지랑이 아롱거리는 따지기에 새싹이 돋아나도 내 마음은 동토였다. 삼복 뙤약볕에 몸은 찐 감자가 되어갔고, ‘앵앵’거리며 전투복을 뚫는 모기와 사투를 벌였다. 사방이 울긋불긋 물들면 사과를 한입 깨물고 싶어 입안에 침이 고였다. 눈썹에 고드름 내리고 칼바람과 사투를 벌일 때면 고향 집 방 아랫목이 그립기만 했다. 그래도, 그래도, 해가 서산에 기울고 어둠이 내릴 때면 어김없이 진지陣地에 투입되어 북으로 총구를 겨누었다.
잊을 수 없는 그 장소가 망원경에 확대되어 들어온다. 1976년 8월 18일 도끼 만행 사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 돌아오지 않는 다리 근방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감독하던 미군 장교 2명이 북괴군 도끼 만행에 희생되었다. 전군에 전투태세 데프콘 2 발령으로 일촉즉발 위기가 감돌았다. 완전군장 하여 진지에 투입되었다. 지급된 탄약이며 아홉 끼를 때울 전투식량 건방이 마음을 짓눌렀다. 참호塹壕 속에서 사흘을 버티어야 할 몸, 총알받이 운명으로 피를 말렸던 그곳.
하늘이 근심 내리고, 땅이 눈물 솟게 했던가. 월남전에 참전했다던 어느 고참병은 전역을 며칠 앞두고 넋 없이 남쪽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지었다. 이미 결혼하여 처자식을 둔 전우는 하염없이 눈물만 글썽거렸다. 영도 줄도 몰랐던 햇병아리 신참인 나는 앞뒤 잴 것 없이 허기진 배를 달래느라 전투식량 건방에 마음이 고정되어 버렸다.
첫 휴가를 다녀온 후 더블백 꾸리는 전우가 종종 있었다. 최전방을 후려치고 후방으로, 그 아래 후방으로 내려갔다. 그네들은 기댈 언덕이라도 있었건만, 울이 없어 내버린 자들만 서러웠다. 사돈의 팔촌에도 먹물 먹은 펜대 굴리는 사람이 없어 일일 생명 수당 60원에 저당 잡힌 하루살이 신세였다. 소대원 36명 중 연애편지 대필해 줄 병사가 둘 셋이었다는 게 가슴 저리는 시대 상황이었다.
문득 떠오르는 게 있다. 천안함 사태 때 지하벙커에서 국가 비상대책회의가 열렸던 자리다. 군 기피자들 일색이었다. 대통령을 필두로 국무총리며 각부 장관까지, 그것도 모자라 국정원장이며 집권 여당 대표와 비서실장도 한몫 끼었다. 여기에 국방부 차관까지 군 면제자였다. 그들은 국가보전의 생산자가 아니라 영악한 안보장사꾼들,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엔 정신적 무능력자들이었다. 그 무리 앞에서 언론이 폭발했고, 어진 국민은 함몰해 버렸다.
대숲의 변방 지킴이가 부르짖는다. 상식과 공정을 무시하면서 공을 앞세우려는 만무방. 수신제가修身齊家 없이 제도권에 군림하려는 불한당. 타협 없이 무리수를 두려는 벽창호. 그들에겐 비통한 말로가 눈앞에 아른거릴 뿐이다. 남들이 외면하는 낮은 이곳이 가장 높은 자리가 아니겠는가. 탄력성 몸뚱어리로 지칠 줄 모르는 바람막이 경계병 대, 더 크지도 더 작지도 않은 딱 그만큼인 최전방 지킴이이다.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생명체는 모두 죽는다는 사실이다.’ 아함경阿含經 이 구절에서 위안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