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를 자르지 못하는 아이들
모든 것이 왜곡되어 보이는 아이들의 놀라운 실상
미야구치 코지, 인풀루엔셜, 2020
이 책은 인지 기능이 낮아서 판단이 미흡한 아이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알려줍니다.
무엇보다 이들에 대한 상담 이나 지도가 단순히 자존감 향상이나 공감해주는 방식이 아니라
보다 실질적인 방법이 고안되어 제공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10
자기 인식이나 상황 판단력이 부족한 경계선 지능 아동과 경도 지적 장애 학생들은
상담을 하는 순간에는 잘못을 인정하고 앞으로 잘하겠다고 말하지만 그때뿐인 경우가 많습니다.
인지 기능이 낮은 탓에 기본적인 상식이 통용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영 역'인 것입니다.
그런 만큼 이들이 진심으로 달라지고 변화 의 길을 걷게 하기 위해서는
'깨달음의 스위치를 켜는 기회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교육 복지 대상 학생'이라고 해서
가정에서의 돌봄이 부족한 아이들을 찾아내어 도움을 주고자 노력해왔습니다.
하지만 학교에 적응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비행 청소년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도
가정의 경제적 여건이나 환경 조건이 맞지 않아서 대상자로 선정되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11
인지행동치료는 '지적 능력인 인지 기능에 문제가 없을 것'을 전제로 한다.
인지 기능에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도 효과가 있는지는 확실하게 증명되지 않았다.
그러면 인지 기능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일까?
간단히 말해 발달 장애나 인지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가리킨다.
즉 발달 장애나 인지 장애가 있는 아이들에게는 인지행동치료를 바탕으로 하는 프로그램은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가능성이 있다.
치료 방법이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실제로 현장에 서는 이런 아이들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답은 병원에 있지 않았다.
세간에서는 병원을 최후의 보루로 여기고 있지만, 실제로 병원에서는 발달 장애나 인지 장애가 있어
여러 문제 행동을 반복하는 아이에게 결국 투약 치료라는 대증요법만 내어줄 뿐 근본적인 치료는 어렵다. 이것이 현실이다.
나는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 17
지금도 소년의 그림을 봤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내가 이전까지 품고 있던 발달 장애와 인지 장애에 대한 이미 지가 산산이 부서졌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이 그림을 보여주고 감상을 들어본 적이 있다.
그는 담담히 "따라 그리는 게 서투네요"라고 말했다. 분명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 보는 힘이 이렇게 약하다면 분명 듣는 힘도 상당히 약해서
어른이 하는 말을 거의 알아듣지 못하거나, 알아듣더라 도 왜곡해서 들을 가능성이 있다.
나는 어쩌면 이것이 소년이 비행을 저지르는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소년이 지금까지 사회에 서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을지 쉽게 상상이 되었다. 35
죄를 저지른 소년에게 왜 그런 일을 벌였는지 물어보면 대답하지 못하고 굉장히 어려워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갱생을 위해서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직시하고, 피해자의 심정을 제대로 들여다보며,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통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아이들은 애초에 그런 능력 자체가 없는 것이다.
즉 '반성 이전의 문제'가 된다. 이런 상황이라면 피해자도 고통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이런 소년들 중에서 어렸을 때부터 병원 진찰을 제대로 받아본 적 있는 아이는 거의 없었다.
아이들의 보호자는 무심했고 양육 환경은 결코 좋지 않았다.
이런 환경에서 보호자가 아이의 발달 문제(그림을 따라 그리는 것이 서툴다, 공부를 따라가지 못한다.
인간관계를 맺기 힘들어한다 등)를 발견하고 병원에 데리고 가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 성장 발달 문제를 안고 있다가 비행을 저지르게 되는 소년들에게 의료적 진단이 내려지는 때는,
비행을 저지르고 경찰에 체포되어 법의 심판이 내려진 후다. 이런 소년들은 애초에 일반 정신과 병원에는 오지 못한다. 37
그렇다면 이들의 학교생활은 과연 어떠했을까?
이들의 학교생활을 보면 대체로 초등학교 2학년 정도부터 공부를 따라가지 못하고
친구들에게 바보 취급을 당하거나 따돌림을 받았다.
선생님에게 불성실하다는 말을 듣거나 가정 내에서 학대를 당하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 학교를 가지 않거나 폭력과 절도 등 다양한 문제 행동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하지만 초등학교에서는 '다루기 힘든 아이'로 분류 될 뿐
경도 지적 장애나 경계선 지능(확실한 지적 장애는 아니 지만 상황에 따라서 지원이 필요하다)이라고 해도
그런 상황에 놓인 것을 대부분 알아보지 못한다. 40
아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비행을 저지른 현재까지 삶 전체가 이어져 있다. 41
아이들이 보내 는 다양한 신호를 발견했다 하더라도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현재의 교육 및 보육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지원의 형태는 대개
'장점을 찾아 칭찬한다' '자신감을 높여준다'는 쪽에 맞춰져 있다.
아이의 능력에 편차가 있을 경우 못하는 것을 자꾸 시키면 자신감을 잃으니 잘하는 부분을 찾아 키워준다.
장점을 찾아 칭찬한다는 방향으로 지도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못하는 것을 더 이상 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무서운 발상이다. 43
일주일에 한 번씩 물건을 잃어버리는 아이가 있다고 하자. 이것을 '늘 물건을 잃어버린다'라고 볼지
반대로 '일주일에 4일은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라고 볼지에 따라 아이에 대한 대응이 달라진다.
현재의 칭찬 교육은 물건을 잃어버리는 것에 주의를 주지 않고,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해 그 점을 칭찬하여 강화하는 형태다.
분명 칭찬으로 좋아지는 부분도 있다.
그렇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씩 물건을 잃어버리는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면
칭찬보다는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력 및 집중력을 키워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경우 '칭찬 교육'은 문제를 나중으로 미루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44
앞으로 일어날 일을 헤아려 계획을 세우는 힘이 약하면,
즉 실행 기능이 약하면 과정이 더 간단해 보이는 '훔친다' '속여서 빼앗는다'와 같은 방법을 선택하기도 한다.
세상에는 "어쩌면 그런 바보 같은 짓을 저질렀을까?" 하는 사건이 많은데,
그런 짓을 저지른 사람들에게는 '앞뒤를 생각하는 힘이 약하다'라는 문제가 숨어 있다. 61
사람도 마찬가지다. 무인도에서 혼자 살다 보면 '진짜 내 모습은 알 수가 없다.
즉 자신을 적절하게 알기 위해서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생활하면서 다른 사람과 커뮤니케이션 을 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적절한 신호를 주고받으며, 상대의 반응을 보고 자신에게 피드백하는 작업을 수없이 해나가야 한다.
그런데 만약 상대방의 신호를 보지 못하거나, 일부 정보만 받아들이거나
정보를 엉뚱하게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될까?
상대가 웃고 있는데 화를 내고 있다고 받아들이거나 화를 내고 있는데 웃고 있다고 받아들인다면
자신에 대한 피드백이 왜곡된다.
적절한 자기 평가를 하기 위해서는 편견 없는 적절한 정보 수집 능력이 필요하다.
상대가 보내는 신호를 제대로 파악하는 데는 상대의 표정을 정확히 읽어 내고
상대가 한 말을 정확히 알아듣는 등의 '인지 기능이 관련되어 있다. 106
이런 식으로 케이크를 자르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기에 이 그림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자른 사람이 강도, 강간, 살인 등의 흉악 범죄를 저지른 비행소년들이라는 것,
그리고 이들이 중학생, 고등학생 연령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이들에게 잘못된 행동에 대한 반성과 피해자의 마음을 헤아려보게 하는 지금까지의 교정 교육을 시행해봤자
대부분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버릴 것임은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저지른 범죄에 대한 반성 이전의 문제인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케이크를 제대로 나눌 수 없는 소년들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좌절을 경험했을지,
사회에서 얼마나 힘들게 살았을지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학교에서 이런 아이들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점,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을 알아채지 못하고 특별한 배려를 해주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다가 비행을 저지르고,
마지막으로 도달한 소년원에서도 이해받지 못하고 '비행에 대한 반성만 끊임없이 강요받았다는 점이었다.
그렇다면 곤란을 겪고 있는 아이들을 구체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뭐가 있을까.
(...) 학습적인 면, 신체적인 면, 사회 적인 면의 세 가지 지원이 필요하다.
가족에 대한 지원과는 별개로 아이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은 전부 이 세 가지로 이루어진다. 204
약 150명의 살인범을 면담한 미국의 조지타운 대학 의학과 교수 조나단 핀커스(Jonathan Pincus)는
그의 저서 《기본 본능: 무엇이 살인자로 하여금 살인하게 만드는가(Base Instincts: What Makes Killers Kill?)》에서
살인범의 신경학적 손상이 의심되는 구체적인 사례를 다수 제시한다.
핀커스는 살인범을 검사한 결과, 대다수가 전두엽에 신경학적 손상이 의심되는 흔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또한 뇌 기능 장애 (특히 전두엽)만으로는 범죄로 이어지지 않겠지만,
뇌의 '신경학적 손상' '학대 피해' '정신 질환'이 세 가지 요소를 모두 갖췄을 경우는 범죄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고 경고했다. 223
학대 피해 아동에게서 걱정되는 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애착 장애, 트라우마 반응, 우울증, 인격 장애 등 '마음의 병'이 생기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난폭 행위, 불안정, 공격성, 배회, 가출 등 반사회적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 즉 학대를 받으면 비행을 저지르게 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마음의 병'과 관련해서는 의료기관이 주축이 되어 치료를 시행하고 있지만,
반사회적 행동에 대해서는 좀처럼 구체적인 방법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자기 평가가 낮은 것 등이 반사회적 행동의 원인이 된다.
여기에는 사람을 믿을 수 없어서 원만한 인간관계를 만들지 못한다, 감정 조절이 안 된다 등의 심리적 문제와
산만하거나 집중력이 부족해 공 부를 못한다 등의 인지 기능적 문제가 연관되어 있다. 229
첫댓글 오 흥미로운 책이네요! 공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