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배동에서 업무를 마치고 저녁 식사 고민을 하는데 지인이 닭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닭을 별로 안 좋아하는 필자는 내심 다른 메뉴가 생각났지만 지인의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간절한 것 같아 그리로 발길을 돌렸다. 방배동 카페골목에 있는 <영양센타>로 차를 몰고 갔다. 간판에 ‘SINCE 1960’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영양센타>는 1960년부터 영업을 시작했는데, 물론 그 점포는 명동에 있는 본점 얘기다. 1960년은 4. 19 혁명이 일어나던 해다. 대학생 시절, 학생회에서 스폰서 일을 했을 때 4. 19혁명 세대 선배를 여러 분 만났던 기억이 있다. 그 선배들은 독재정권을 맨손으로 물리친 기억을 자랑스러워했다. <영양센타>의 출발은 한국 경제 근대화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가게 안에는 손님이 많지 않았다. 쇠락한 방배동 카페 골목 상권 때문인지 혹은 요즘 소비자들의 전기구이 통닭에 대한 기호가 미약해서인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흥미로운 것은 메뉴판을 보니 20~30년 전이랑 메뉴가 똑같다. 주력 메뉴는 전기구이 통닭이고 삼계탕이 있었다. 그리고 예전이나 지금이나 치킨스프와 빵도 판매한다.
1980년대 대학생 시절 어쩌다 가본 명동 본점에도 지금 메뉴와 똑같았다. 더 어렸을 때인 1970년대에도 지금 메뉴와 거의 동일했다. 닭은 크기에 따라 3가지가 있는데 가격은 각각 500원씩 차이가 난다. 치킨 무는 사이즈가 참 크다. 성의가 없는 것인지 혹은 큼직하게 제공하려는 목적인지 헷갈렸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치킨은 이 무가 참 잘 맞는다. 배가 고파서 무를 미리 허겁지겁 먹었다. 시큼하고 단맛이 예전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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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닭구이가 나왔다. 하얀 플라스틱 그릇에 담았는데 차림새도 예전 방식이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이 치킨집은 70~80년대의 느낌과 정서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우리가 주문한 전기구이 통닭(大)은 1만4000원으로 사이즈는 8호 혹은 9호 닭이다. 마침 일행 중 한 사람이 유명 치킨 프랜차이즈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어서 정확히 알고 있었다. 8호나 9호 닭의 육질이 가장 맛있다고. 하지만 솔직히 양은 좀 작았다. 통닭구이의 진수는 역시 다리다. 그 때도 살보다는 껍질이 맛있었는데 지금도 그렇다. 껍질의 바삭바삭한 맛은 여전하다. 순수하게 전기로만 구워서 튀긴 닭으로, 튀김옷이 없는 닭고기다. 살 속에 염지를 안 해서 소금에 찍어 먹어야 한다. 소금도 후추소금으로 예전과 똑같은 타입이다. 좀 싱거운 맛도 있지만 속은 부드럽다.
이런 통닭은 어렸을 때 고급 음식이었다. 대부분 포장판매로 집에서 먹었던 적이 많았다. 소싯적 대체로 좀 먹고 살만한 형편이었다. 어른들이 명동에 나가면 이 통닭이나 혹은 중국만두를 포장으로 사가지고 왔다. 손으로 찢어서 소금에 찍어 먹었다. 요즘 어린 세대들은 이런 음식을 사다 줘도 시큰둥해하겠지만 우리 때는 그 포장음식 덕분에 입도 마음도 행복했다. 지금은 전화 한 통화면 신속하게 배달이 가능하지만 그 당시 통닭은 시내에 나가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아마 청량리에도 있었던 것 같다. 우리 세대에게는 분명히 추억의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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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흘러가도 맛과 메뉴는 그대로
가만 생각하니 ‘통닭’이라는 단어 자체도 이제는 점점 사라지는 것 같다. 일반 프라이드 치킨은 조각 단위로도 판매하지만 <영영센타> 치킨은 지금도 통째로 제공한다. 닭 한 마리가 통째로 나와, 보기에는 좀 민망한 모양이지만 이 <영양센타> 치킨은 옛날 시스템이다. 그런 우직함이 어찌 보면 55년을 끌고 온 힘일지도 모른다.
한 때 외국에서 유명한 K치킨이 들어와 열풍이 불었지만 필자 입맛에는 지금도 그 외국 치킨이 맛있는 줄 모르겠다. 우리 입맛에는 이 담백하고 바삭바삭한 전기구이 통닭이 훨씬 더 입맛에 맞는다. 양배추를 자른 샐러드도 비교적 가늘게 썰어서 먹기에 좋다. 그러나 샐러드 소스는 그냥 그렇다. 외식업의 발전과 더불어 샐러드 소스도 많이 발전했는데 이 집 샐러드 소스는 옛날풍의 맛이다.
상호도 외래어 표기법으로 쓰면 ‘센터’가 맞지만 1960년 가게를 열었을 때 그대로 ‘영양센타’를 사용하고 있다. 이 유서 깊은 치킨집은 변화 자체를 거부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새로운 손님보다는 단골손님이 많은 것 같다. 이 집에 갔던 이유도 동행했던 지인이 옛날 맛을 그리워한 탓이었다. 40대 중년의 지인도 통닭 맛을 추억의 맛으로 여기고 열심히 먹었다. 미식가이자 음식 전문가인 그녀도 이 고전적인 맛에서 과거를 회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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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탕도 특별할 것은 없었지만 국물이 마치 치킨 스프 같은 구석이 있다. 1960년 <영양센타>를 열었을 때 그 창업주가 외국 음식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그 시절 치킨구이를 팔겠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선진적인 사고였을 것이다. 1960년 통닭 가격은 150원으로 부자들이나 먹었던 음식이다. 1960년대 초반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못사는 나라였다. 통닭 자체가 귀한 고급 음식이었다. 어렸을 때 명동의 <영양센타> 쇼윈도우에서 통닭이 회전하면서 구워지는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랬던 음식이 지금은 어쩌다 먹는 별식이 되어버렸다.
지출 (5인 기준) 통닭 대(3마리X1만4000원)+영양삼계탕(2그릇X1만3500원)+맥주와 소주(3병X4000원)=8만1000원
<영양센타> 서울시 서초구 방배중앙로 178 02-594-9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