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사 명장면] 32. 티베트대장경의 성립과 간행
대부분 탄트라…산스크리트 원문에 충실
14세기초 필사본 ‘구 나르탕대장경’이 원조
1. 번역과 편찬
티베트불교사에서 첫 번째로 꼽히는 의미 있는 인물은 투뵈(吐蕃)왕조 33대 왕인 송짼감뽀(581∼649년)이다. 그는 네팔과 당나라에서 왕비를 맞아들여 사원을 세우고 불교를 장려하였다. 그의 최대의 공적은 일단의 청년들을 인도에 파견하여 산스크리트의 문자와 문법을 배우게 하여 티베트문자와 문법서를 창제하여 불경을 티베트어로 번역하게 한 일이었다.
그러나 송짼 임금의 장려 후에도 불교는 전통종교인 뵌뽀교의 견제로 인해 지지부진하다가 한 세기를 지나 38대 티송데짼(742∼797년)에 이르러 비로써 국교로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티송 왕은 쌈예대사원을 건립하기 위해 761년에 인도에서 학자로서 유명한 샨타라크쉬타(寂護)와 티베트불교의 진정한 전래자인 빠드마쌈바바(蓮華生)를 초청하였다. 그러나 당시 설역에는 이미 중국계 불교가 자리 잡고 있었기에 헤게모니쟁탈전은 필연적이었는데, 이 싸움은‘쌈예논쟁’에서 판가름이 났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다.
<티베트대장경>의 최대 간행처인 데게사원(德格)의 경판고.
한편 불경의 번역이 이루어짐에 따라 그 과정에서 생기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티데송첸(776~815)왕 때에는 번역의 통일을 위해 산스크리트어와 티베트어를 병기한 용어집인 <번역명의집(飜譯名義集)>이 편찬되었고 다시 824년에는 티데죽짼 왕의 여름궁전 댄까르에서 당시까지 번역된 불경의 목록인 <댄까르마목록>이 최초로 편찬되었다. 이와 같이 투뵈왕조 시대에 많은 번역이 이루어졌지만, 이른바 ‘삼장(三藏)’의 모습을 갖춘 대장경은 다시 몇 세기를 기다려야 했다. 왜냐하면 왕조의 붕괴와 함께 불교가 긴 암흑기에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티베트대장경>의 원조는 14세기 초에 만들어진 <구 나르탕대장경>인데, 목판본이 아닌 필사본이라는 특징이 있다. 이를 기초로 <체빠대장경>이, 다시 <부뙨불교사(布敦佛敎史)>를 지은 걸출한 학자인 부뙨린첸둡[1290~1364]에 의해 시가쩨 인근의 샤루샤원에서 <샤루대장경>이 티베트어로 번역, 편찬되기에 이르러 후대 대장경의 기초가 되었다.
경.율장 ‘깐규르’와 논장 ‘땐규르’로 구분
불경 수요 따른 대량생산으로 다양한 ‘판각’
2. 대장경의 간행
불교의 정착에 따른 불경의 수요에 따라 한정된 필사본이 아닌 목판본 인쇄에 의한 대량생산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간행된 판본들이 바로, 1732년에 판각된 <나르탕판(sNartha, 那唐版)>과 1733년의 <데게판(sDedge, 德格版)>과 1773년의 <쪼네판(Cone, 卓尼版)>과 <라싸판(lHasa, 拉薩版)>과 <리탕판(Litha, 理塘版)>과 그리고 명대에 제작된 <영락판(永樂版)>과 청대 강희제(康熙帝)때 의, 일명 <북경판(北京版)>으로 널리 알려진, <강희판(康熙版)>과 <건륭판(乾隆版)> 등등이 순차적으로 판각되면서 비로써 현재 우리가 접할 수 있는 <티베트대장경>으로 완성되었다.
특히 1410년에 제작된 <영락판대장경>은 목판이 아닌 동활자로 주조된 것으로서, 명(明)의 영락제(永樂帝)는 이를 당시의 티베트 각 종파의 고승들인 겔룩빠의 개조인 쫑카빠를 비롯해 까르마빠와 싸갸빠 등의 고승들에게 공양하여 티베트불교의 시주로써 큰 역할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1990년에 방대한 대장경이 간행되었고 또한 2004년에는 인도로 망명한 티베트인 학자들에 의해, 현존하는 각종 경전을 비교해서 현시대에 맞게 제작한 새로운 대장경목록인 <까르착릭빼락뎁>이 출간되기도 하는 등 최근까지 <티베트대장경>의 모습은 진행형에 있다. 한편 국내에는 1967년 제13대 달라이 라마가 기증한 <라싸판>을 비롯해 <북경판>과 <데게판>등 4가지 판본이 동국대도서관에 보관돼 있어서 국내학자들의 연구에 도움이 되고 있다.
티베트불교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현재까지 잘 보관되어 내려온 방대한 분량의 대장경이라 말할 수 있다. <티베트대장경>은 크게는 <깐규르(bkan-vgyur, 甘珠)>와 <땐규르(bstan-vgyur, 丹珠)>로 나누는데, 전자가 불어부(佛語部)란 뜻으로서 우리의 경, 율장(經, 律藏)을 해당되며 후자는 논소부(論疏部)로 우리의 논장(論藏)을 가리킨다.
이중 <깐규르>는 반야(般若), 화엄(華嚴), 보적(寶積), 경부(經部), 율부(律部), 속부(續部)와 총목록 등을 포괄하는 7부(100질에 800부)로 구분되어 있다. 그 분량은 <데게판(德格版)>을 예로 들어보면 불학(佛學)부분이 102함(函)이고 목록이 1함이다.
또한 <땐규르>는 예찬부(禮讚部), 속부(續部), 반야(般若), 중관(中觀), 경소(經疏), 유식(唯識), 구사(俱舍), 율부(律部), 본생(本生), 서한(書翰), 인명(因明), 성명(聲明), 의방명(醫方明), 공교명(工巧明), 수신부(修身部), 잡부(雜夫), 아띠샤소부집(阿底峽小部集)과 총목록 등 18부(224질에 3, 400부)로 나누는데, 역시 <데게판>을 예로 들면 불학(佛學)부분이 198함(函), 어법(語法)부분이 5함, 의학부분이 5함, 공예부분이 1함, 잡류가 3함, 목록이 1함으로 총 213함중에서 불학(佛學)부분이 198함으로, 전체의 93.43%를 차지하고, 그 외 문법, 의학, 천문역산 등이 13함, 목록이 1함이다.
여기서‘함(函)’이란 말은 티베트 경전들이 우리 한역경전처럼 책, 권(冊券)으로 묶어 보관되는 것이 아니라, 가로로 길고 세로로 좁은, 종이낱장 상태의 경전을 겹쳐서 한 묶음으로 하여 이를 비단보자기로 둘둘 말아서 멋지게 포장해서 보관하다가 필요할 때 보자기를 풀어서 보는 특징에서 나온 용어이다. 아마도 이는 고대 인도의 패엽경(貝葉經)의 형태와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한역대장경엔 목록조차 없는 대승경전 ‘가치’
3. 불교사적 의의
티베트어로 편찬된 <티베트대장경>의 특징과 불교사적 의의는 다음과 같이 꼽을 수 있다.
첫째는 티베트대장경이 대부분 인도후기불교의 산물인 탄트라, 즉‘금강승(金剛乘, Vajra-yana)’의 경전들이라는 점을 우선 꼽을 수 있다. 이는 고향인 인도에서 불교자체가 사라져버린 현시점에서 대, 소승 불교권에는 남아 있지 않은 후기불교의 원형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데 그 의미가 있다. 또한 우리가 비록 인정하고 싶지 않더라도, 불교가 무서운 속도로 확산되어가고 있는 구미에서는 불교를 대, 소승 또는 남, 북방불교 이외에 ‘금강승’을 하나 추가하여 세 갈레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가로가 긴 <티베트대장경>의 형태- 예, <티베트사자의 서(바르도 퇴돌)> 목판인쇄본. 사진제공=김규현
둘째는 한역대장경에는 목록조차 없는 대승불교 경전들이 있다는 점이다, <반야심경> 등이 그 예에 속한다. 티베트에는 광본과 소본의 반야심경이 전해지고 있지만, 주로 광본(廣本)을 중요시 하고 있다. 중국, 한국 등지의 한역권에서는 소본의 <반야심경>이 주로 독송되고 있는 반면에 티베트에서는 서분과 정종분과 유통분의 모든 형태를 갖춘 완전한 광본이 주로 독송되고 있다.
<반야심경>이 비록 짧지만 함축된 진리를 담고 있다는데 가치가 있다고 하더라도 경전은 형식을 모두 갖출 때 그 의미와 가치가 더욱 드러난다는 점에서 <반야심경>의 광본의 가치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티베트대장경>속에서는 심경의 주석서가 다수 포함되어 있지만 한역으로 번역된 주석은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도 중요성이 있다고 하겠다.
셋째는 기존의 한역경전이 뜻을 전달하는데 목적을 둔 반면, <티베트대장경>은 산스크리트의 원문 구절에 충실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티베트문자가 처음부터 불경의 번역을 위해 창조된 언어이기에 원전인 산스크리트의 특성을 잘 살릴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로써 이점 또한 <티베트대장경>의 특색 중에 하나로 꼽을 수 있다고 하겠다. 예를 들면 게송의 경우, 보통 7음절씩 4행으로 이루어져 있어 원문의 리듬감을 맛볼 수 있는데, 이는 뜻을 번역하는데 치중한 한역경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라 하겠다.
넷째는 티베트인의 저술은 대장경 속에 포함시키지 않고 따로 전서로써 ‘장외불전’으로 두는 원칙을 고수하였다는 점이다. <티베트대장경>에는 일반적으로 자국인의 저술은 실려 있지 않는 것이 보통이지만, 한역대장경에는 수록되지 않은 논서, 특히 중관과 인명등 대승교학과 관련한 논서, 즉 <땐규르>가 다수 전해지고 있는 까닭에 넓은 의미의, 티베트어로 된, 경전들은 오늘날 동서양의 많은 불교학자의 주목을 끌고 있다는 점도 특징 중에 하나로 꼽는다.
김규현/ 티베트문화연구소장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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