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교과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초, 중등학교 교육현장에서 교과교육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으며, 대학에서도 교과교육 연구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역사교육 연구도 주제와 연구방법이 다양해지고 있다.
그 동안 교과교육과 관련하여 ‘교과교육이란 무엇인가’, ‘교과를 왜 가르치는가’, ‘어떻게 하면 잘 가르칠 수 있는가’ 등에 관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져 왔다. 이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끌어온 것은 교수이론일 것이다. 그것은 교과교육은 교과를 가르치는 현장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실천적 학문이라는 인식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교과교육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교과교육의 본질적 성격을 일정 정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역사교육에서도 가르치는 것에 관한 교과교육이론의 가능성이 모색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역사교육의 교수이론의 틀이나 방향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논의는 이루어지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이는 역사교육의 개념이나 이론적 바탕, 방법론 등이 정립되지 못한 역사교육 연구의 현실적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교과교육관을 보는 기본적 관점에 대한 논의와 역사교육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역사인식의 성격에 대한 이론적 검토를 통해서 역사교과 교수이론의 가능성과 방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은 역사교육의 학문적 체계를 세우고, 역사교육 연구의 방향에 대한 시사점을 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2. 역사교육에서 내용과 방법의 통합
교과교육에서 내용이 중요한가 방법이 중요한가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 왔다. 교과 내용 전공자들은 교과의 내용을 많이 알수록 잘 가르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들은 가르치는 방법은 수많은 수업현장에 따라 각각 달라지는 것으로, 이론이라기보다는 실제 수업을 하는데 필요한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배워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교사로서 경험을 통해 차츰 습득해 나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일반 교육학자들은 방법을 강조해 왔다. 이들은 효율적인 학습지도에 필요한 수업모형의 개발에 힘을 쏟았으며, 그 결과로 개발된 수업모형을 모든 교과에 적용시키려고 한다. 일반 교육학자들에 따르면 교사는 무수히 많은 교과내용을 일일이 알 수도 없으며, 알 필요도 없다. 필요한 것은 중요한 내용과 그렇지 않은 내용을 구분하거나 필요한 내용을 자료에서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이에 반해 대부분의 교사들은 내용과 방법, 양자가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교과교육이 교육목적에 부합되고 학생들에게 적절한 효율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방법과 내용의 모든 요소들이 통합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교과교육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에서도 마찬가지다. 교과교육을 교과를 가르치는 것과 관련된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루는 응용학문이라고 말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여기에서 교과교육학은 어떤 교과를 가르치는 목적인 “왜”, 교과의 내용인 “무엇”, 가르치는 방법을 말하는 “어떻게”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학문으로 규정된다. 그러나 이 경우도 내용과 방법은 서로 밀접한 유기적인 관계를 가진다기보다는 단지 병렬적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두 입장의 차이는 단순히 교과내용과 교수방법이 모두 중요하다는 말 한마디로 정리될 만큼 단순하지는 않다. 양자의 관계를 보는 시각은 교육과 관련된 구성원의 입장에 따라 서로 다르며, 시기별로도 교육사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나아가 여기에는 교육관이나 교수관까지도 반영되게 마련이다. 이 두 가지 입장의 대립은 ‘내용과 방법은 적’이라고까지 일컬어질 정도이다. 교과교육의 내용과 방법에 대한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교과교육관의 차이로도 나타난다.
전통적으로 교육종사자들은 교과교육을 교과의 내용을 수업하고 학습하는 과정의 방법적 원리 또는 기술에 관한 학문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교과교육학을 교육방법중심적 교과교육학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방법중심적 교과교육학은 그 연구 대상이 교육의 내용이 아니라 교육의 방법에 관한 것으로, 교육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교육의 방법적 원리를 개발하고 이를 체계화하는데 일차적인 관심을 둔다. 이제까지 교과교육에 관한 많은 논의들은 이러한 입장에 선 것이었다. 교과교육에 대해 논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은 교과교육의 내용과 방법이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교과를 잘 가르칠 수 있는가의 문제에 관해서는 방법의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교과의 내용과 방법은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조건과 분리될 수 있는 상황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서, 교과의 내용과 방법을 분리하는 데서 출발하여, 가르치는 일을 방법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교육내용중심적 교과교육학은 교육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그 내용을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이와 더불어 교육의 방법적 원리를 개발하고 정당화하는데 관심을 둔다. 교육내용중심적 교과교육학이 교육방법중심적 교과교육학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교육의 방법을 내용과 분리된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내용과 논리적으로 관련시켜 개발하고 정당화해야 한다고 본다는 점이다. 이에 따르면 역사를 잘 가르치기 위한 방법적 원리는 역사학의 학문적 성격과 내용에 대한 체계적 이해를 바탕으로 개발될 수 있다. 따라서 국사학습지도에 유능한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한국사의 내용에 대해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이에 바탕을 둔 방법적 원리를 습득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같은 교과 안에서도 내용에 따라서 방법적 원리가 달라지게 된다. 고려의 경제제도를 가르치는 방법적 원리와 조선후기의 문화적 변화를 가르치는 방법적 원리는 다를 수 있다.
교육내용중심적 교과교육관은 영역별 인지이론(domain-specific cognition theory)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영역별 인지이론에 따르면 각 교과는 특수한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교과와는 구별되는 인식의 방법, 사고 논리, 교수 방법을 가지고 있다. 영역별 인지이론에서도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적절한 교수방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교수방법은 교과의 성격과 교수내용체계에 의해 정해진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적절한 교수방법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교과의 중심개념이나 내용지식은 필수적인 요소이다.
교육내용중심적 교과교육관을 받아들인다면 역사교육 연구는 역사학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반면 일반 교육학 이론을 그대로 역사교육이론으로 사용할 수는 없다. 역사교육이론은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나 개념, 역사학의 특성이나 학문적 원리 등을 바탕으로 개발되어야만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인 활용가능성으로나 그 가치가 높아진다. 그러나 역사학의 내용을 아는 것만으로 그대로 역사교육을 할 수도 없다. 역사교육은 가르치는 목적, 대상, 환경 등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할 때는 어떠한 역사적 사실들을 다루어야 하는지, 그러한 내용을 왜 가르쳐야 하는지, 어떻게 가르칠 수 있는지가 연구되어야 한다.
내용과 방법이 하나가 된 역사교육 이론을 개발하는 것이 교육내용중심적 입장에서 역사교육의 주된 관심사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역사교육관이 정립되고 교수-학습방법이나 평가의 원리가 개발되어야 한다.
3. 역사인식과 역사수업의 원리
(1) 역사인식의 의미
수업내용, 교재, 교수-학습활동은 수업의 성격과 효율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구성요소이다. 수업내용은 교수-학습활동의 소재이며, 교수학습활동은 수업내용이 다루어지는 방식이다. 교재는 수업내용을 담은 그릇이나 전달하는 도구 역할을 한다. 학생들은 교수-학습활동을 통해 교재에 담겨져 있거나, 교사가 전달하는 수업내용을 학습한다. 역사수업에서 학생들이 학습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역사수업에서 역사를 학습한다는 말은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할 수 있다.
㈀ 역사적 사실에 관한 지식을 획득한다.
㈁ 과거 사건이나 시대, 사람들을 이해하거나 파악한다.
㈂ 역사적 서술을 평가하고 비판할 능력을 획득한다.
㈃ 역사적 탐구의 기술을 배운다.
㈄ 역사서술의 기법을 배운다.
여기에서 ㈀과 ㈁은 역사적 사실에 관한 지식과 이해, ㈂, ㈃, ㈄은 역사적 능력이나 기능에 관한 것이다. 역사적 지식과 이해는 물론 역사적 사실에 관한 것이고, 역사적 기능이나 능력 또한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 길러지는 것이다. 즉, 역사교육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이건 간에 역사수업 자체는 교수-학습활동을 통하여 역사적 사실을 알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교재 또한 마찬가지다. 역사수업에서 어떤 교재를 사용할 것인가는 학생들로 하여금 어떤 역사적 사실을 알게 하려고 하는가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게 된다. 예컨대 국경이나 영토가 시기에 따라 어떻게 변하였는지를 다루려는 교사는 흔히 역사지도를 사용할 것이다. 조선 세종 때 우리나라의 국경에 대해 가르치는 교사가 신라 말, 고려 초, 고려 성종, 고려 말, 조선 세종 때의 국경을 함께 표시한 지도를 사용하는 경우는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역사인식은 역사수업의 구성요소를 연결하는 끈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인식의 의미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역사인식을 ‘역사를 안다’는 말로 단순화시켜도 그 개념을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교육철학에서는 ‘어떤 것을 안다’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아래와 같은 조건이 만족되었을 때 A사람은 명제 P를 안다고 주장할 수 있다고 한다.
① A는 P를 믿는다.
② A는 P를 믿을만한 훌륭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③ P는 실제로 일어난 사례이다.
이러한 조건을 역사인식에 적용하였을 때, 만약 어떤 사람이 다음과 같은 조건을 충족시킨다면, 그는 미국의 남북전쟁에서 북부가 남부에 이겼다는 것을 안다고 말할 것이다.
① 그는 북부가 이겼다는 것을 믿는다.
② 그는 전쟁을 공부하는데 대학생활의 모든 학기를 소모하였다.
③ 남북전쟁에서 북부는 실제로 이겼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인식에는 이러한 기준이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역사교육에서 다루는 역사적 사실은 ‘남북전쟁에서 북부가 이겼다’는 것과 같이 명백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은 남아 있는 과거의 흔적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것이다. 그것은 수학이나 과학적 지식과 같이 논리나 실험에 의해서 확인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자료에 대하여 역사학자가 분석과 해석을 한 결과이다. 따라서 역사적 사실은 정확하고 의심할 여지가 없는 참 진술만으로 구성되지는 않는다. 많은 역사적 사실에는 역사가의 상상이 개재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역사인식에는 다양한 의미가 내포되기 마련이다. ‘역사를 안다’고 했을 때,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대답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묘청의 난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의 예를 통해 역사인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 고려의 중심 지배층은 문벌귀족이었다.
㈁ 고려 인종 때 이자겸의 난이 일어났다.
㈂ 김부식과 정지상은 정치적 대립관계에 있었다.
㈃ 고려사회에는 풍수지리설이 널리 퍼져 있었다.
㈄ 묘청은 稱帝建元과 풍수지리설을 내세웠다.
㈅ 묘청은 서경에서 봉기하여 大爲國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연호를 天開라고 하였으며, 근대를 天遣忠義軍이라고 불렀다.
㈆ 김부식 등 문벌귀족은 묘청의 난을 진압하였다.
㈇ 묘청의 난 이후 고려사회는 문벌귀족 중심체제가 더욱 강화되었다.
㈈ 1170년 정중부, 이의방, 이고 등의 무신들은 정변을 일으켜 문신을 죽이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 신채호는 묘청의 난을 ‘朝鮮 一千年來 第一大事件’이라고 평가하였다.
첫째, 우리는 ㈀~㈉ 각각의 사실을 기억하고 있을 때, ‘역사를 안다’고 한다. 고려의 지배층은 문벌귀족이고, 조선의 지배층은 양반이라는 것, 고려 인종 때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난을 일으킨 사람은 이자겸이라는 것을 아는 것은 하나의 역사인식이다. 이 경우 역사인식이란 실제로 일어났던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이러한 역사인식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보편적 지식의 성격을 띤다. 그러나 반드시 절대적 객관성을 띠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이자겸이 난을 일으켰다’는 것은 기록에 나오는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이지만, 고려의 지배층이 문벌귀족이라는 것은 역사학자들의 연구 결과로 만들어진 역사적 지식이다. 이와 같은 역사적 지식은 역사학자들의 동의에 의해 성립되며, 역사학자들의 해석과 역사적 관점이 개재되어 있다.
둘째, ㈀~㈉의 역사적 사실을 인과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의 사실들을 ㈅의 원인으로 이해한다든지, ㈆의 결과로 ㈇과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든지, ㈇의 결과로 심화된 사회모순이 ㈈과 같은 사건을 불러 일으켰다는 것이 그것이다. 역사적 인과관계는 역사적 사실일 수도 있고, 후대의 사람들, 특히 역사가들이 파악한 것일 수도 있다. 묘청이 칭제건원론과 금국정벌론을 내세워 난을 일으켰다면 두 사실간의 인과관계는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벌귀족사회의 모순이 묘청의 난을 일어나게 했다고 하는 것은 역사가에 의해 부여된 인과관계이다. 역사가들은 자신이 부여한 인과관계가 실제의 역사적 사실이라고 강조하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 경우 ‘역사를 안다’는 것은 역사적 사건들간의 관계를 아는 것이다.
셋째, 우리는 자료에 나타난 역사적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그대로 믿는 것은 아니다. ㈂의 사실을 보고 어떤 사람은 묘청은 실제로 금나라를 정벌하고, 중국과 대등한 황제를 칭할 생각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반란의 구실을 찾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김부식은 학문적으로 정지상에게 라이벌 의식을 느끼고 있었으며, 그것이 묘청의 난을 혹독하게 진압한 이유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역사를 안다’는 것은 역사적 행위를 한 인간의 내면을 파악하는 것이다. 역사는 인간의 행위로 이루어지며, 그 행위의 동기나 이유를 파악하는 것이 곧 역사를 아는 것이 된다. 이런 의미의 역사는 첫째나 둘째 의미의 역사만큼 객관적이지 못하다. 비록 그것이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나, 당시의 사회적 맥락을 토대로 파악한 것이라고 할 지라도 그것을 입증하는 것은 위의 첫째 의미의 역사는 물론, 둘째 의미의 역사에 비해서도 매우 어렵다.
넷째, 어떤 두 사람이 다같이 셋째 의미의 역사에 대해 ‘묘청은 실제로 그렇게 할 생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난을 일으킬 명분을 축적하기 위해서 칭제건원과 금국정벌론을 내세웠다’는 견해를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아는 역사가 반드시 같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둘 중의 한 사람은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묘청의 난은 긍정적인 것이었다. 묘청은 당시로서는 자주적이고 진보적인 사람이었으며, 묘청의 난은 보수세력에 대한 개혁세력의 저항이었다’고 생각하고, 다른 한 사람은 ‘묘청은 권력에 대한 욕심에 물든 사람이었다. 그는 반란세력을 강화하기 위해 민심을 현혹하였으며, 나라를 어지럽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의미로 ‘역사를 아는’ 것에는 역사적 판단이 내포되어 있다. 이 역사적 판단에는 자신이 기존에 알고 있는 ㈀~㈉의 역사적 사실은 물론 관련된 다른 지식, 자신의 역사관이나 사회관, 가치관 등이 종합되어 나타날 것이다. 이 경우에도 사람들은 ‘자신이 아는 역사’가 타당하다고 주장하고, 이를 입증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설득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앞의 세 가지 의미의 역사에 비해 넷째 의미의 역사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객관적 증거를 강조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어떤 사람이 자신과는 다르게 역사를 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쩔 수 없다는 태도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상에서 ‘역사를 안다’고 하였을 때 역사의 의미를 네 가지로 제시하였다. 역사수업이 학생들로 하여금 역사를 알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을 때, 그 역사가 이 네 가지 의미의 역사 중 어떤 것인가에 따라서 역사수업의 방식은 달라질 것이다. 그것은 수업에서 다루는 역사적 사실의 내용, 교사가 그 사실을 통해 길러주고자 하는 학생들의 역사의식이나 역사적 사고력, 학생들의 역사적 지식, 수업활동 등은 역사인식에 커다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2) 역사인식에 따른 역사수업의 유형
첫째 의미의 역사인식은 주로 학생들의 기억을 통하여 나타난다. 이런 의미의 역사를 아는 데는 그 밖의 별다른 사고활동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역사적 지식을 습득하게 하기 위한 수업방법으로는 흔히 교사의 설명이 사용된다. 교사는 자신의 설명이나 간단한 문답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전달한다. 그러나 교사는 학생들의 기억을 돕기 위해 일정한 설명기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비교나 유추, 연상 등도 학생들의 기억을 돕기 위해 교사들이 사용하는 설명 방식이다.
둘째부터 넷째 의미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상당한 사고활동이 필요하다. 그런데 넷째 의미의 역사에 대한 인식은 둘째와 셋째 의미의 역사에 대한 인식의 토대 위에 가치관이나 사회관과 같은 다른 분야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일반적인 관점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역사적 사고가 역사를 인식하는 역사학의 특징적인 방식이라고 하였을 때, ‘역사를 아는 방식’은 주로 둘째와 셋째 의미의 역사인식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의미의 역사가 실제의 역사적 사실이건, 역사가에 의해 부여된 사실이건 간에 , 그것을 알아 가는 데는 논리적이거나 합리적인 탐구 과정이 포함된다. 둘째 의미의 ‘역사를 아는’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역사가 객관적인 사실이며, 자신이 과학적인 역사인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 절의 예에서 어떤 교사가 “문벌귀족사회의 모순으로 인해 묘청의 난이 일어났다”고 학생들에게 설명한다고 하자. 이러한 사실을 무조건 학생들에게 외우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이 교사는 문벌귀족사회의 성립부터 무신정변 발생까지 주요 사건들을 분석하여 이를 인과관계로 연결시킬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자신의 이러한 분석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학생들의 일반적, 상식적 판단에 의존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관련 자료를 제시하기도 하고, 신라 말이나 조선 후기와 같이 지배층 사이의 갈등이 정변을 발생시킨 다른 예를 통해 자신의 설명을 납득시키려고 한다. 그리고 신라 말이나 조선 후기의 사례의 경우에도 다시 이러한 분석의 과정을 되풀이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종합하여 ‘지배층의 모순→정변의 되풀이→정치적 혼란→민중생활의 어려움→민란의 발생’과 같은 일반화된 역사 변화의 도식을 만들어낼 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필요한 것은 역사적 사고는 역사적 사실들 간의 관계를 분석하고, 그것을 입증하려는 일종의 과학적 사고 방식이다.
역사적 사실들간의 인과관계는 교사의 설명을 통해 학습되기도 한다. 흔히 역사적 사건으로 전쟁을 학습할 때, 교사들은 ‘배경(원인이나 발단) → 전개 → 결과나 영향’의 순으로 설명을 한다. 전 단계가 다음 단계의 원인이 되며, 다음 단계는 전 단계의 결과인 인과관계적 설명이다. 학생들은 이러한 설명을 통해 역사적 사건들간의 인과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분석적, 비판적 사고 방식에 의존하는 대표적인 수업의 형태는 탐구수업이다. 탐구수업은 모형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문제의 인지→ 가설의 설정 → 자료의 수집 → 가설의 검증 → 일반화’의 과정을 거친다. 역사수업에서 탐구 자료로 이용되는 것은 주로 1, 2차사료이다. 학생들은 사료를 토대로 한 학습을 통해서 역사학자들이 역사연구에 사용하는 역사적 사고방식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교과의 탐구수업은 사료학습의 형태를 띠는 것이 보통이다.
셋째 의미의 역사를 아는 과정에 필요한 사고 방식은 이와는 다르다. 셋째 의미의 역사인식도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하고, 그것은 역사적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다. 하지만 역사적 자료에 외형적으로 나타난 사실이나, 당시의 사회 상황에 대한 지식만으로 역사적 행위의 이유를 파악할 수는 없다. 이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전형적인 방법 중의 하나는 자신이 과거 행위자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보는 감정이입적 이해(empathic understanding)이다. 감정이입적 이해를 통해 과거의 상황을 재연(re-enactment)하는 것이 이러한 의미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사고 방식이다. 이를 위해서는 상상이 필요하다. 즉, 감정이입적 이해는 상상적 이해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다. 감정이입적 이해와 같은 상상적 이해는 과학적 사고에 의존하는 역사적 사고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역사적 상상은 자신이 이미 알고 있거나 자료에 나타나 있는 실제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막연히 상상을 하는 사람의 정서나 주관적인 생각에 의존하는 다른 분야의 상상과도 다르다.
감정이입적 이해의 방식에 의한 역사수업은 과거인의 경험을 추체험(re-living)하는 형태를 띠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수업형태로는 역할극이나 시뮬레이션 게임, 답사나 관람보고서, 창조적 글쓰기, 역사신문 만들기, 기사문이나 선언문, 규약문 제작 등을 생각할 수 있다.
4. 역사수업의 과정과 교수방법
역사수업이 수업활동을 통해 학생들로 하여금 역사를 인식시키는 것이라고 할 때, 수업의 내용은 곧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이 그대로 학생의 역사인식 속에 담겨지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 사실은 수업의 목적이나 수업환경에 따라 수업내용으로 변형된다. 수업내용은 또한 수업과정과 학생의 역사 이해과정에서 변형되어 학생들의 역사인식이 된다. 따라서 ‘실제의 역사적 사실’이 ‘학생들이 인식하는 역사로 바뀌는 과정이 곧 역사수업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수업 과정을 도식화하면 <그림>과 같다.
① 역사적 사실
o 교사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역사적 지식
o 교과서나 교재
o 그 밖의 참고자료 ▾② 교사의 역사 인식
o 학생에 대한 교사의 이해
o 교사의 역사관이나 교육관
o 활용할 수 있는 교육기자재
o 그 밖의 수업환경 ▾③ 수업내용
o 효율적인 수업 활동의 여부
o 학생의 능력이나 흥미에의 적합성
o 학생의 선개념이나 선행지식
o 그 밖의 수업환경 ▾④ 수업내용에 대한 학생의 이해
o 학생의 선개념
o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가치판단
o 학생의 역사관이나 교육관 ▾⑤ 학생의 역사인식
<그림> 역사수업의 과정
앞에서 언급한 ‘묘청의 난’을 예로 이 과정을 설명해 보자. 묘청의 난과 관련된 많은 ‘역사적 사실들(①)’이 있다. 이 역사적 사실들은 사료에 나오는 것일 수도 있고, 역사가들이 밝혀낸 사실들일 수도 있다. 묘청의 난에 대하여 수업을 하려는 교사는 자기 나름대로 묘청의 난에 대해 이해하고자 할 것이다. 묘청의 난에 대한 교사의 지식은 아마도 기존에 묘청의 난에 대해 알고 있던 역사적 지식에다가 교과서나 그 밖의 교재에 나오는 내용, 그리고 필요하다면 다른 참고자료를 통해 알게 된 내용이 추가될 것이다. 여기에다가 교사는 자신의 역사관이나 가치관, 역사적 판단 등을 가미하여 묘청의 난을 인식할 것이다. 이것이 ‘교사의 역사인식(②)’이다. 여기에서 교사는 묘청의 난에 대한 모든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며, 또 그럴 필요도 없다. 다음으로 교사는 수업에서 묘청의 난에 대해 어떤 내용을 학생들에게 전달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교사는 자신이 알고 있는 묘청의 난에 대한 모든 역사적 지식을 전달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역사적 사실을 수업의 내용으로 택하는 가에는 교사가 파악하고 있는 학생의 흥미나 능력, 교사의 역사교육관, 활용할 수 있는 수업기자재나 그 밖의 환경 등이 고려될 것이다. 그러나 선택된 역사적 사실이 원래 형태 그대로 수업내용으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교사는 적절한 도구를 사용하여 역사적 사실을 수업내용으로 변형한다. 예컨대 역사수업에서 담론으로서 내러티브라는 형식을 사용할 경우, 역사적 사실의 선택과 이를 수업내용으로 변형하는 과정에는 이야기의 내용과 그에 대한 교사의 해석, 그 수업에서 교사가 가지고 있는 수업관이나 학생들에 대한 이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기법 등이 포함된다. 수업내용은 경우에 따라서는 이러한 요인들을 고려하여 변형된 교수내용지식(pedagogical content knowledge)일 수도 있다. 여기에는 교과내용에 관한 지식과 교과에 대한 믿음이라는 두 가지 영역이 포함된다.
이와 같은 수업내용이 교수-학습의 과정을 거쳐서 학생들에게 얼마나 적절하게 전달되는가는 교수-학습활동이 얼마나 효율적이었는가, 선정된 내용이 학생들에게 적합하였는가, 학생들이 묘청의 난이나 그와 관련된 어떠한 선개념(pre-conception)이나 선행지식을 가지고 있었는가와 그 밖의 수업환경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학생들은 이렇게 이해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가치판단을 하고, 이에 덧붙여 기존에 가지고 있던 묘청의 난이나 그와 같은 유형의 사건에 대한 평가, 그리고 자신의 역사관이나 교육관을 가미하여 묘청의 난에 대하여 자기 나름으로 인식하게 된다. 따라서 ①→②→③→④→⑤의 각 단계의 역사적 지식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이 학생들의 역사 이해를 효율적으로 신장시킬 수 있는 역사수업을 만들기 위해 고려해야 하는 점들이라고 할 수 있다.
5. 맺음말
교과교육에서 내용과 방법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결합되어 나타난다. 교과교육은 교과의 내용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교과에 대한 관점이나 가르치는 목적, 교수방법은 교과내용을 토대로 하고 있으며, 교과내용에 따라 달라진다. 마찬가지로 교과 수업의 구성요소인 수업내용, 교재, 교수-학습활동도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끈에 의해 엮어지게 마련이다. 이 글에서는 역사교육에서 그러한 끈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역사인식을 상정하고, 역사인식의 개념과 그에 따른 수업형태, 학생들에게 인식시키고자 하는 수업내용의 구성 과정 등을 검토하였다.
역사인식은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글에서는 역사인식을 간단히 ‘역사를 안다’는 뜻으로 사용하였을 때, 그 의미에는 역사적 사실의 기억, 역사적 인과관계의 파악, 역사적 감정이입, 역사적 가치판단이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을 사례를 통해 살펴보았다. 수업을 통해 이 중 어떤 의미의 역사를 인식시키고자 하는가에 따라 학생들의 사고활동과 그에 적합한 교수-학습방법이 달라지게 된다. 또한 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인식하는 역사는 원래 형태가 아니라, 역사가, 교사, 수업활동을 거쳐 변형된 역사적 사실이다. 이 글에서는 학생들의 이러한 역사인식이 어떠한 수업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지를 제시하였다.
교과교육이론은 교과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 신념과 교과의 내용, 사고방법을 토대로 한다. 역사교육학도 역사관과 역사적 사실의 성격, 그리고 역사적 연구방법을 바탕으로 성립한다. 이러한 조건들을 하나로 묶는 교수방법이 개발되었을 때, 진정한 의미에서 역사교육의 교수이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이와 관련된 기초적인 이론적 논의를 통해 독자적인 역사교육학의 성립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교과교수이론을 개발하기 위한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