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일에 게시한 이 글을 못 보시고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자유게시판에서 이곳으로 옮깁니다.
(일반 게시판들은 페이지가 쉽게 넘어가 제 개인적인 생각을 올리는 이곳으로 이동함)
이제 갈 사람은 가고 남은 사람은 경과보고를 합니다.
2년 가까이 병실에 누워 있던 집사람이 지난 3일 새벽 4시 25분에 운명을 달리했습니다.
그동안 집사람의 몸 상태를 간간히 게시판에 올리고 했지만 입원 후 소통도 안 되고 몇 개월 동안은
연명치료에 의존했었지요. 그러다가 눈 한 번 맞추지 못하고 안녕이라는 말 한마디 남기지 않고 떠나더군요.
서로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상태가 점점 심각해져 얼마 전부터 처제와 장례 준비를 해왔습니다.
나는 문상 올 사람도 얼마 안 될 것으로 판단해 무빈소장(빈소도 없고 문상객도 받지 않는)을 제안했고 처제는 그래도 조카들이라도 올 텐데 가족장으로 하자고 해서 동의했습니다. 이제까지 병원비는 물론 간병비까지 다 책임지던 처제의 의견이니 무시할 수는 없었죠. 보통 장례는 일반장이든 가족장이든 3일장이지만 처가쪽이나 우리쪽에 친척이 많지 않아서 2일 가족장으로 합의했습니다.
그렇게 합의하고 장례식장을 뒤지다 보니 소요되는 비용이 700만에서 1,000만 원이 넘는 곳이 있어 감을 잡을 수 없었죠. 이런 일을 처음으로 준비하다 보니 당황스럽더군요. 더구나 아들도 문상객이 친구들 너덧 명, 나도 너덧 명일 거라고 했더니 처제는 실망하며 장례 비용도 내가 내야 하나며 짜증을 냈고 음식값만 내겠다고 하더군요. 장례비에서 음식값이 차지하는 비율이 40~ 50%라지만 나머지 몇 백은? 앞이 깜깜하더군요.
그런데 문상객이 예상보다 훨씬 많았고 자리가 모자랄 때는 10여 명의 아들 친구들을 밖으로 나가 담배 피고 오라며 내보내기도 했답니다. 문상객이 많지 않을 거라는 판단해 식당을 작은 곳으로 선택했기 때문에 일어난 불편함이었습니다.
어제 새벽 처제와 아들이 계산을 했다는데 처제의 얼굴이 펴지는 걸 보면 총비용을 치르는데 지장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집에 와서 아들에게 물어보니 구체적으로는 모르지만 부의금이 장례를 치를 정도로 충분했을 거라고 하더군요.
특히 우리 문봄 회원님들의 부의금도 상당했을 텐데 나는 부의금함 근처에도 가지 않았지요, 현금은 처제가 다 가져가고 아들은 빈봉투에 이름과 액수를 확인해 사진을 찍어놓았다더군요. (오늘 명단을 받았음)
직접 문상 와서 물심양면으로 위로해 주신 회원님들과 부득이한 사정으로 방문은 못하지만 문자로 위로해 주고 계좌로 입금해 주신 회원 여러분 감사합니다. 부의함에 직접 넣어 처제 앞에서 체면을 살려주고 계좌 입금으로 아슬아슬한 생활비를 보태 주신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보냅니다.
경기 화성에 있는 함백산 화장장이 포화 상태라 군포에서 용인으로 다시 용인에서 함백산으로 뱅뱅 돌았습니다.
결혼 후 성당을 수십 년 다니지 않아 냉담자이나 지난 2월 동네 성당의 신부님을 모시고 가서 병자성사를 받게 했으니 봉안함에
십자가와 천주교우 박효식(실명-박선식) 영세명은 말따(마르타)라고 새겼어요. 천주교 신자라면 장례미사가 마땅하겠으나 교적이 서울로 되어 있어 미리 연락을 했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고 발인이 일요일이어서 장례미사 집전이 어려웠겠죠. 그래도 미리 교적을 군포에 있는 어느 성당으로 옮긴 후 연락했더라면 아마도 주일미사를 마친 후 수십 명의 신자들로 시끌버끌했겠지요. 그러나 그 절차를 생략한 것은 장례식장을 큰 곳으로 얻어 문상객을 받아야 하고 다시 성당으로 옮겨 미사를 드리려면 버스가 두 번 움직여야 하는 등 여러가지 비용이 새로 발생하고 2일장이 아닌 3일장이 되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함백산 추모공원 봉안실, 나도 머잖아 이곳에 올 수도 있겠구나 싶어 동반자 칸에 집사람을 안치하고 돌아왔습니다. 내 자리를 미리 예약해 놓고 온 거지요. 이런저런 사정으로 이틀장으로 치렀고 집에 도착해 샤워하고 피곤해서 저녁도 안 먹고 바로 잠들어 오늘 새벽에 깼습니다. 그리고 지금 의자에 앉아 지난 날들을 되돌아 보고 있습니다,
주여! 정말 살아계시다면 우리 집사람 이제 아프지 않고 편한 곳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30여 년을 내게 복종만 하고 누구와도 다툼을 피하는 등 법 없이도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멘.
첫댓글 고생 많으셨습니다.
짧은 소풍을 마치고 하늘에 오르셔서
앞으로는 개동님을 굽어보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개동님 건강도 살피시고
사모님 누리지 못한 건강과 행복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이미 준비하고 있던 일이라 충격 받을 일은 없었어요.
항상 앞장서 챙겨줘서 고마워요.
비용도 절차도 잘 마무리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사모님은 꽃대궐 천국에서 고통 없이 편안히 계실 거예요.
이젠 개동님은 기운내셔서, 여생 즐겁게 보내시다가 사모님 만나러 가셔야죠.
개동님, 화띵입니다!!!
글쎄 꽃대궐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능력한 나보다 나은 환경으로 갔겠죠.
이제 아프지 않은 곳에서
영혼의 편안한 삶이 이어지시리라 믿으며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동안
오랜 시간 맘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이젠 더욱더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가는 곳이 어디가 되었든 더는 아픈 곳이 아니었으면 한답니다.
애 많이 쓰셨어요.
사모님 영면을 기도합니다.
발행인님께서도 몸도 맘도 추스리시길 기도합니다
나는 이미 준비하고 있었으니 그냥 무덤덤해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기다렸는데 일정이 묘하게 됐더군.
신경쓰지 말게나. 참석하지 못해도 잊지 않으면 고맙지.
가는 사람의 명복을 비는 건
남은 사람의 예와 몫이지요.
거기에
남아있는 분들이 잊지말아야 할
또 하나가 있다면
그 어느 누구, 가는 사람을 떠나보내며
저러지 말아야지와
저리 살아야지의 양갈래 다짐도 하게됩니다
부디
문봄의 어른으로 건강히 잘
계셔주시기를 바래봅니다
다시한번 마음의 위로를 전합니다.
당사자라면 누구나 마음이 복잡하겠지.
천국에 계신 사모님이 원하는 건 남편과 자식의 건강과 행복이겠지요.
고생 많았습니다.
전날도 오래 머물렀으면서 발인식까지 와줘서 정말 고마웠다네.
참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 빠른 시일 내에 평온한 일상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서로가 해방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죠.
마음에는 남아 있지만 그냥 편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선생님,마음이 짠하네요~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예요.
기운 내세요.
좋은 곳이 있다면 갔을 겁니다.
행복이 기다리는 곳이면 좋겠습니다.
푹 쉬시고 ㆍ기운 내세요ㆍ정서적 안정 찾으시고요ㆍ
노력하고 있어요.
감정이 특별히 달라진 것도 없어요.
가신님의 명복을 빕니다
남은 님도 마음 잘 추스리시길 기도 합니다
갈 사람은 가는 것이 맞겠지요.
남은 자로서 너무 얽매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돌아갈 집이 있어서 아마 잘 도착하셨을 겁니다. 가끔 개동님께 활짝 웃으시며 편지도 보내실 듯 싶네요.
답장 하셔야죠. 잘 있다고 걱정 마시라고~. 그동안 맘고생 많으셨어요. 이제 조금만 아파하시고 개동님 건강을 챙기셔야 해요. 지난번 너무 작아지신 모습이 맘 아팠어요.
지난 번 초라해 보였던 건 나이 탓이에요.
나이야 어쩔 수 없지만 마음은 편하게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초라하진 않았어요 너무 여위셔서 작아보였죠
의식없이 누워만 있어도 든든하고 외롭지 않은 법!
이제 내 곁에 없으면 허전하고 외롭고 슬프기 한이 없을거다.
부디 힘내고 열심히 살기 바라네.
어떻게든 산사람은 살아야하니까.
말타는 주님 품안에서 평안하고 고통없이 영원한 안식을 누릴테니.
간 사람이나 남은 사람이나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도 든다네.
다만, 한편으로 허전하기는 하네
늦게나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기운 내시고요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