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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그를 구하면 만나리라 (신 4:25-31)
신명기(Deuteronomy)는 Duteros와 Nomos라고 하는 두 단어의 합성어로 두 번째 율법
(second law)이라는 뜻입니다. 두 번째 율법은 모세가 율법을 새롭게 받았다는 의미
가 아니고,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을 새로운 세대에게 다시 한 번 설명해준다
는 의미입니다. 모세가 쓴 신명기는 모압 광야에서 모세가 행한 세 편의 설교로 이루
어져 있습니다. 설교의 내용은 두 돌비에 받은 율법의 대의를 설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과 ‘가나안 땅’ 두 가지 선물을 내려주
셨습니다. 율법과 땅은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에 순종
하여 살면 형통하고 번창하여 그 땅에서 오래 살게 되고 그 땅을 잃지 않을 것입니
다. 그러나 율법에 불순종하면 그 땅에서 온갖 재난을 만나게 될 것이고 결국은 그 땅
에서 추방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과 땅이 연결되어 있다는 내용은 모세 설교
의 핵심내용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땅은 우리의 삶의 지지기반, 삶의 터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정이나 직장, 교회와 같은 우리 삶의 현장이 바로 ‘땅’입니다. 하나
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땅을 주셨고 이 땅에서 살아가며 지켜야 할 법도를 주셨습니
다. 이러한 삶의 현장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존중하면 우리 삶은 형통하겠지만,
하나님의 법을 멸시하면 재앙을 맞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율법의 말씀에 순종하면
형통하고, 불순종하면 저주와 재난을 맞게 된다’는 말씀이 바로 모세의 설교의 핵심
입니다. 이것을 ‘신명기 사관’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특수한 경우에는 신명기 사관
이 적용이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신명기 사관은 일반적으로, 또 보편적으로 적
용되는 삶의 타당한 원리입니다.
여러분은 율법을 모두 기억하십니까? 아시는 분들도 있지만 모르시는 분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시내산에서 모세가 받은 두 돌비의 첫 번째 계명은 ‘너는 나 외에 다
른 신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입니다. 두 번째 계명은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
는 것이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말며, 섬기지 말라’입니다. 세 번째
계명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이고, 네 번째는 ‘안식일을 기억하
여 거룩하게 지키라’입니다. 여기까지는 ‘일신 이상 삼망 사안’이라고 축약해서 외
우면 됩니다. 다섯 번째 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여섯 번째 계명은 ‘살인하
지 말지니라’, 일곱 번째 계명은 ‘간음하지 말지니라’, 여덟 번째 계명은 ‘도적질
하지 말지니라’, 아홉 번째 계명은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하지 말지니라’, 마
지막으로 열 번째 계명은 ‘네 이웃의 아내나 집을 탐내지 말라’입니다. 여기까지는
‘오부 육살 칠강 팔도 구거 십탐’이라고 외우시면 됩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를 믿고 구원받은 백성들이 이 땅의 삶의 현장에서 형통하고 복되게 살 것인지 아니
면 그렇지 못할 것인지에 대한 것은 바로 이 십계명에 달려 있습니다. 우상 숭배하고
부모님께 불효하며 살인하는 사람의 인생이 잘 될 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십계명
은 성도들이 인생을 살아갈 때에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하면 복을 받고 어떻게 하면
저주를 받는지에 대한 원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복을 주시려면 그냥 주시지 왜 하나님은 이렇게 달갑지 않은 금지조항들을 나열해서
축복의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하느냐고 반문할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 사회
는 규례와 법도가 없이는 존속될 수 없습니다. 잠언 29장 18절에 “묵시가 없으면 백
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방자
히 행한다는 말은 삼가는 태도와 거리끼는 것이 없이 제 멋대로 교만히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 사회에 어떤 법이 없다면 사람들은 방자히 행하고 사회는 결국 파괴되
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룩한 법을 주신 것은 우리를 사랑하
시기 때문입니다.
1. 율법의 가치와 역할
오늘의 말씀은 율법이 지니는 가치를 다섯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율법은
살게 합니다.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
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1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우리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살리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면 우리가 살게 됩니다.
둘째, 율법은 사람의 마음을 계몽하고 자극합니다.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
음을 힘써 지키라 두렵건대 네가 그 목도한 일을 잊어버릴까 하노라 두렵건대 네 생존
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날까 하노라”(9절)고 기록되었습니다. 내
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될 때, 율법의 말씀, 신명기의 말씀을 보면 된다는 말입니
다. 율법의 말씀을 보면 ‘내가 부모님께 효도해야 되겠구나. 사람을 미워하고 살인하
지 말아야겠구나. 도적질 하지 말아야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설령 그
런 위기에 처한다 할지라도 마음에 자극을 얻어 죄를 범하지 않게 됩니다. 이처럼 마
음을 계몽하고 자극하여 생명을 누리며 바르게 살도록 우리를 이끄는 것이 바로 율법
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명심보감이나 처세술 책보다 이 신명기의 말씀
을 붙들어야 합니다. 이 율법의 말씀을 귀히 여기고 사랑하여 그것으로 마음을 계몽해
야 합니다.
셋째. 율법은 자녀 교육의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에 대한 질문에 모세는 율법과 십계명으로 교육하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9절)고 말씀합니다. 할아버지가 손자
에게, 부모가 자녀에게 교육시켜야 할 내용이 십계명과 율법입니다. 부모들은 자녀들
에게 이 율법의 말씀, 하나님의 거룩한 법을 가르쳐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자녀들이
듣든지 듣지 않든지 간에 교육시켜야 합니다. 제가 예전에 ‘십계명을 가르치면 아이
들을 망친다’는 내용의 책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 책은 아이들에게 십계명을 가르치
면 아이들이 도리어 삐뚤어져 간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론은 십계명을
가르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보십시오. 십계명을 가르쳐도 삐
뚤어질 아이들이라면 무엇을 가르친들 소망이 있겠습니까? 우리의 자녀들이 설령 말씀
에 귀를 기울이기 싫어한다고 해도 우리는 바른 내용을 가르쳐야 합니다. 성경적 자
녀 교육의 원리는 바로 율법 교육입니다.
넷째, 율법은 사회를 하나로 묶는 구심점이 됩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
를 위하여 백성을 모으라”(10절)고 기록되었습니다. 백성들이 모여서 하나로 연합하
고, 그들을 정화시키고 교육하는 구심점은 오직 율법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사회
는 구성원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스포츠, 특히 축구
가 등장해서 사회를 묶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닙니
다. 이 사회의 구심점은 하나님의 거룩한 법이 되어야 합니다.
다섯째, 율법은 이웃 사회와 이웃 국가에도 큰 영향을 줍니다. “너희는 지켜 행하
라 그리함은 열국 앞에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6절)고 기록되었습니다. 열
국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율법 지키는 것을 보면 ‘아! 저 사람들의 나라는 대
국이구나. 저 사람들은 어떻게 저런 지혜로운 법을 얻게 되었는가? 하나님께서 주셨구
나’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자극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를 괴롭히기 위한 까다로운 조건들이 아닙니다. 우리를 살리시고, 교육시
키며, 마음을 정화시키고, 백성들을 하나로 묶으며,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고 순종하며, 인위적으로 가감하지 말고 그 근원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형통하고 승리하고 장구히 살게 될 것
입니다.
2. 그리스도를 찾아야 할 때
그러나 과연 십계명을 따라서 잘 살 수 있는 존재가 있을까요? 인간의 죄성은 이와 같
은 하나님의 제안을 거부합니다. 율법을 교육시키면 도리어 어긋난 길로 가는 청개구
리 심정이 된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세 사람이 꿈속에서 천국에 가서 사도 베드로를 만났습니다. 베드로가 이 세 사람이
너무 반가운 나머지 “내가 너희들에게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으니 각각 소원을 이
야기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첫 번째 사람은 “나는 구청장 선거에 네 번 나가
서 모두 떨어진 경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권력에 한이 맺혔으니 제가 권력을 잡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그건 아주 쉬운 일이다”라고 대답하고서는
그 사람을 구청장에 당선이 되게 해주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나는 너무 어렵고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돈 한 번 실컷 써봤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역시
베드로는 “그건 아주 쉬운 일이다”라고 대답하면서 그 사람이 로또 복권에 당첨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사람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지자 이 사
람은 “나는 좋은 아내를 원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계속 묻습니
다. “너는 어떤 아내를 원하느냐?” 이 마지막 사람은 “잠언 31장에 나오는 현숙한
여인을 원합니다.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는 여인, 또한
집안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하며, 자식들은 일어나 사례하며,
남편은 칭찬하는 그런 여자를 원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그 사람
을 가만히 보더니 “에끼 이 사람아. 그런 여자 있으면 내가 당장 데리고 살지 너한
테 주겠느냐?”라고 대답했다는 확인이 안 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복 받는 비결을 몰라서 복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 받는 비결은 너
무 쉽고 간단하고 너무 뻔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율법을 지켜서 복을 받을 수 있
는 능력이 있다면 아마 성경도, 예수님도, 복음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스
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부패하여 하나님의 노를 격발하고, 그 땅에서 결국 멸망하여 열
국으로 흩어지는 결과를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해서 시험하
신 것입니다. 시험 결과는 백성들이 율법을 어기고, 우상숭배하며, 멸망하여 열국으
로 쫓겨나고, 부패하며, 타락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어느 민족을 세워서 실험해 봐
도 결과는 똑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이처럼 율법에 불순종해서 환란과 고
통을 당하는 것이 진정한 결말은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복음과 예수님이 무슨 필요
가 있겠습니까? 복음은 인간이 하나님의 율법에 불순종해서 환난을 당한 그 지점으로
부터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예수 이름과 하나님의 자비가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율법에 불순종하여 환난과 고통을 당하는 처지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인간
은 스스로 부패해서 본성이 타락하였기 때문에 복음과 은혜, 하나님의 자비가 필요합
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야 할 때가 언제일까요? 본문은 세 가지 시점을 묘사하
고 있습니다. 첫째, ‘거기서’입니다. “그러나 네가 거기서”(29절). 환난을 당하
고 포로가 되며 강제로 목석의 신들을 섬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우리가 서 있
는 그 시점 그 자리에서, ‘거기서’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둘째, ‘환난을 당할 때’입니다. “이 모든 일이 네게 임하여 환난을 당하다가”(30
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환난을 당할 때가 주님을 간절히 찾아야 할 때입니다. 사업
을 하다가 어려움을 당해서 빚만 짊어지게 되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돈도 없고, 빚만 지고, 몸도 병들었습니다. 죽자니 청춘이요, 살자니 고통입니다. 빚
쟁이는 몰려오지만 갚을 능력도 없고, 감옥 가자니 자식들이 불쌍합니다. 큰 환난입니
다. 교회에 같이 가자고 그렇게 조르던 아내가 그만 세상을 떠났다면 이 또한 큰 환난
입니다. 건강이라면 걱정 없다던 사람이 그만 암이 생겨서 이제 죽게 되었다면 이것
또한 말할 수 없는 환난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당할 수 있는 인생살이의 환난의 종
류는 아마 수 만 가지가 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환난 당할 때 당황하거나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의 이름
을 부르고 여호와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
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 환난을 당하면 당황하지 마시고, 다른
곳으로 가지도 마세요. 예수님 앞으로 나오세요. 미루지도 마십시오. 중병 걸려서 죽
게 된 사람이 명의의 소식을 들었는데도 내일 가야지, 모레 가야지 하면서 시간을 끌
겠습니까? 지금 물에 빠져 죽게 된 사람이 구조선을 보면서 한 시간 뒤에 구조선에 올
라갈 것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주저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붙드십시오. “주여. 제
가 하나님의 법을 어겨 이처럼 비참하게 환난을 당했으니 나를 건져주시고 도와주십시
오. 제가 회개하고 다시 돌이키기를 원하오니 나를 붙들어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십시
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건져주십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시점은 ‘끝 날에’(30절)입니다. ‘끝 날’이란 환난의 과정이 막바
지에 달했을 때라는 의미도 있지만, 산전수전 다 겪고 인생의 후반부에 달한 시간으로
도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황혼기에 접어들었을 때, 젊음과 영화도 모
두 지나고 죽음이 가까워진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인생
에는 현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세도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인생의 노년기라 할지라
도 영원한 내세에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을 누리기 위해 여호와를 구하고 만나
는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의 자비를 체험하는 길
모세는 하나님의 자비를 체험하는 방법을 세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여호와
를 찾아야 합니다. 29절에서는 여호와를 찾으라는 말씀이 “여호와를 구하라”는 말
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예레미야서 29장 13절에서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
면 나를 만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30절 말씀처럼 “이 모든 일이 네게 임하
여 환난을 당하다가 끝 날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그 말씀을 청종하
면” 하나님께서 살려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방법으로는 안 됩
니다. 인생 살다가 지금 망해서 환난 당하고 어려운 처지를 당하고 있다면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둘째로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필요한 시점에서 전심으로 하나님
을 찾으며 회개해야 하며 우리의 삶을 돌이켜야 합니다.
그리고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해야 합니다. 청종한다는 말은 순종한다는 의미입
니다. 불순종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기도하고 순종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시 46:1) 시
편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도움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4. 하나님의 자비의 결과
하나님의 자비를 체험하고자 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요?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
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열조
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31절) 얼마나 좋습니까? 첫째로 버리지 아
니하시고, 둘째로 멸하지 아니하시며, 셋째로 잊지 않으십니다. 버리지 않고, 멸하지
않으며, 잊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건져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율법을 순종해서 복받을
만하기 때문에 건져주시는 것이 아니라, 불순종해서 스스로 부패하고 환난을 당했음에
도 불구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건져주시고 멸하
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결 론
이솝 우화에 너무나도 유명한 태양과 구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외투를
입고 걸어가고 있는데, 태양과 구름이 그 사람의 외투를 누가 먼저 벗길 수 있느냐는
내기를 합니다. 먼저 구름이 자신만만하게 나가서 엄청나게 센 바람을 불었습니다. 바
람이 세게 부니까 이 사람은 오히려 옷깃을 더욱 여미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율법은
구름이 만들어 내는 바람과 같습니다. 율법은 옳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죄성으
로 말미암아 율법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율법이 오면 인간은 외투를 덧입고 더 껴입습
니다. 그러나 태양이 밝은 빛과 뜨거운 열을 비추기 시작했을 때, 몸을 잠시 움츠렸다
가 곧 윗도리를 벗고 흐르는 땀을 닦기 시작한 것처럼 하나님의 자비의 광선이 우리
의 옷을 벗기고 복을 줄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패자 부활전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의 타락한 본성으로 율법
을 지켜서 복 받는 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부패하고 타
락한 세상 속에서도 여전히 패자 부활전이 있다고 우리에게 역설합니다. 율법으로 복
을 받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을 찾으면 패자는 부활하게 되고, 하나님의 자비의 광선을
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2003년도 SBS 최고 히트 드라마는 ‘올인’입니다. 무려 6주간 방송시청률 1위를 기록
한 작품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을 각색한 이 ‘올인’의 실제 주인공인 차민
수 씨는 6·25 시절에 유복자로 태어나서 미국으로 건너가 최고의 프로 도박사가 됐습
니다. 그런데 그의 인생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라는 원리와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하
는 두 가지 원리가 교차하고 있었습니다. 이 두 가지 원리가 교차하다가 나중에는 자
기 마음대로 살려고 하는 원리가 이 사람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약을 먹
고 건강도 해치고 가정도 파괴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환난의 자리
에서 차민수 씨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회개 기도함으로써 결국 건강과 가정도 모두
회복 되었다는 이야기가 드라마 ‘올인’의 내용입니다.
이 드라마를 소설로 기록한 올인의 저자는 노승일이라는 작가입니다. 역곡동 교회에
다니는 집사님인데 이 분이 올인을 집필한 후에 역곡동 교회에서 ‘원산폭격’하는 자
세로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기도의 내용은 단순합니다. “하나님! 제게 기침이라도
한 번 해주세요.” 심지어 찬송가 168장의 ‘하나님의 나팔 소리 천지진동할 때에’라
는 가사를 ‘하나님의 기침소리 천지진동할 때에’라고 바꿔서 계속 부르면서 기도했
다고 합니다. 그러자 이 노승일 집사의 작품이 대 히트를 하게 되었고 그의 인생은 대
역전의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서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분이 계십니까? 마음이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지면 축복도 그 만큼 멀어집니다. 삶에 환난이 와서 허둥대는 분이 계십니
까? “아! 내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가?”라고 한탄하는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오
늘 하나님의 기침소리라도 듣는 축복이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하나님!
제가 환난 당하였으니 날 도와주십시오.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 예수님을 믿는 저를
구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버리지도, 멸하지도, 잊지도 않
으시고 하나님의 위대한 자비를 보여주실 것입니다. (피영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