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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 송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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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茶) 사찰 음식 스크랩 중국의 각종 차문화 ③중국의 불교와 다문화(茶文化) ④ 농가차(農家茶),문사차(文士茶)
望雲樓 추천 0 조회 35 16.01.24 09:3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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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각종 차문화 ③

 

선불교 원통사상은 음차문화 발전 원동력

 

▲ 무이산의 대홍포(최초 차나무).

 

 

2. 중국의 불교와 다문화(茶文化)

 

1) 중국 선승(禪僧) 다풍(茶風)의 형성

 

중국에 처음 전래되었을 때 불교는 궁중(宮中)이나 귀족들의 자손번창, 국가안녕, 자신들의 복을 추구하는 기복적인 경향이 강했다. 불교 승려들이 최초로 차를 마신 시기는 대략 후한(後漢) 말의 삼국시대가 끝나고 출현하는 진(晉, 265∼420년)나라 때라고 볼 수 있다. 진나라 이후 중국불교는 역대 왕조의 통치수단으로 즐겨 이용되었으며, 이것은 중국불교가 발전하는 원동력이 되어 여러 종파를 출현시키는 계기가 됐다.

 

특히, 선종불교의 원통(圓通)사상은 중국의 토착문화와 원만하게 조화하고 융화되어 당대의 음차문화를 급속히 발전시킴은 물론 단박에 다풍(茶風)을 중국 전역으로 확산 유행시키는 핵심적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불교의 청정(淸靜)사상은 중국의 다문화 속에 깊이 녹아내려 당시 다인들은 음차생활을 통해 자신과 자연을 한 몸으로 만들어 내면의 아름다운 운율과 정신을 풀어내고자 소망하였다.

아울러 ‘다도(茶道)’란 두 글자를 선승(禪僧) 교연(皎然)이 최초로 사용하면서부터 중국의 음차문화는 일반적인 기예로부터 고도의 정신적 경지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이론(異論)의 여지가 아직 남아있긴 하지만, 대체로 ‘교연(皎然)’과 ‘봉연(封演)’의 두 가지 설로 압축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선승(禪僧)들의 다풍(茶風)이 형성된 시기는 대략 위진남북조 시대로 보인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몇몇 기록이 육우의《다경》 <칠지사(七之事)>에 인용되어 있다.

석도설(釋道說)의 《속명승전(續名僧傳)》에는 “송나라〔南朝〕 석법요(釋法瑤)의 성은 양(楊)씨요, 하동(河東)사람이다. 원가(元嘉 : 424∼451년) 연간에 강을 건너서 심대진(沈台?)을 만나 무강(武康)의 소산사(小山寺)에 돌아가라는 청을 받았다. 수레를 매달아서 드리울 나이1)에는 식사 때마다 차를 마셨다.”2)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또한 이어서 인용된 《송록(宋錄)》에는 “신안왕(新安王)인 자란(子?)과 예장왕(豫章王)인 자상(子?)이 팔공산의 담제도인(??道人)을 참예하였다.

도인이 차를 베풀자 자상이 이를 맛보고 이르기를, ‘이것은 감로(甘露)요, 어찌 차라고 하리까?”라고 하였다. 이러한 문헌 기록(남조 송나라 때의 기록)들은 대략 위?진남북조 시기에 이미 승려 사이에서 음차풍습이 널리 형성되었음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2) 중국불교 사원경제에서 ‘차(茶)의 위상’

 

중국불교는 동한(東漢) 초기부터 광범위하게 전파되기 시작하여 수?당(隋唐)과 성당(盛唐)에 이르러 그 전성기를 누린다. 중국 전역에 매우 많은 불교사원들이 건립되고, 이에 따라 사원경제도 급속히 발전하게 되는데, 차는 바로 사원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게 된다. 중국차는 당대에 이르러 이미 전성기를 이루고 있던 선종불교의 발전을 기초로 삼아 더욱 급속히 흥성?발전하게 된다.

 

고대 중국의 사찰들은 차를 중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차의 생산과 선전, 차 연구의 중심이 되었다. 당시에는 사찰만이 차를 연구하는 최상의 조건을 구비하고 부단히 차의 품질을 향상?발전시켰다. 왜냐하면 사찰들은 모두 일정한 농지를 소유했을 뿐만 아니라 승려 대부분이 일반 백성들처럼 노동에 참가하지 않아 비교적 여유가 많았다. 또한 틈나는대로 문화적 활동의 일환으로 찻잎 따기와 차 만들기를 궁리하는 한편, 품다(品茶)의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고 더 나아가 차와 관련된 저술과 시작(詩作) 활동을 함으로써 누구보다 다문화 보급과 선전에 선구적 역할을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런 까닭에 중국에 “자고로 유명사찰에는 명차가 난다〔自古名寺出名茶〕”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당?송(唐宋) 때에는 불교사원에서 대규모 차연(茶宴)을 자주 거행하였다. 당시 차연에서는 주로 불경과 다도를 이야기하고 시를 짓고 읊기도 하였다. 특히 불교 청규(淸規)와 경전과 불리(佛理)의 변론, 그리고 각자의 인생관 등이 모두 하나로 어우러졌는데, 이것은 다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민간차례(民間茶禮)의 형성에까지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조정의 차의(茶儀)는 형식이 복잡하고 따라 하기 어려운 반면에 불교 선원의 차례(茶禮)는 그 형식이 요점적이고 간결하여 일반 백성들이 쉽게 다가가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송(唐宋)시기는 불교가 성행하였고, 이 시기의 불교사원에는 반드시 차가 있었다. 교육을 할 때에도 반드시 차가 있었고, 참선을 할 때도 차는 필수품으로 따라다녔다. 본래 참선수행 중에는 일체의 간식을 금지하고 있으나 수행자들의 졸음을 방지하기 위해 오직 차 마시는 것만은 허락되었다. 특히 중국 남방에서는 거의 모든 사원 주변에서 차를 직접 심고 재배한 흔적이 속속히 발견되어 그야말로 당시 승려들의 차를 기호하는 정도가 어떠했는가를 여실히 입증해주고 있다.

 

3) 불교사원에서 최초로 생산된 중국의 명차(名茶)

 

중국의 역대 명차 중에서는 불교사원에서 최초로 심고 재배하고 창조해 낸 차들이 아주 많이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은 각종 옛 문헌이나 중국의 민간전설 중에서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중국 사천성 아안(雅安) 몽산(또는 蒙頂山)에서 생산되는 ‘몽산차(蒙山茶)’는 ‘선차(仙茶)’라고도 하는데 전설에 의하면 한(漢)나라 때 감로사(甘露寺)의 보혜선사(普慧禪師)가 직접 심었다고 전한다. 그 품질이 매우 우수하여 황제에게 바치는 공차(貢茶)의 반열에까지 오르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중국 최초의 공차인 몽정차이다.

 

▲ 노죽 대방차 건엽.

 

또한, 현재 중국의 명차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복건 무이산(武夷山)에서 생산되는 ‘무이암차(武夷岩茶)’는 오룡차로도 불리는데 이 차는 사찰에서 만든 것을 최고 정품으로 치고 있다. 특히, 무이암차는 승려들이 직접 찻잎을 땄는데, 찻잎을 따는 절기에 따라 각각 ‘수성미(壽星眉)’와 ‘연자심(蓮子心)’ 그리고 ‘봉미용수(鳳尾龍須)’ 등 세 종류의 명차로 구분된다.

북송 때에는 강소성 동정산(洞庭山) 수월원(水月院)의 산승이 직접 따서 만든 ‘수월차(水月茶)’가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벽라춘(碧螺春)이다. 또한 명나라 융경(隆慶 : 1567∼1572년) 연간에는 승려 ‘대방(大方)’이 안휘성 남부의 흡현(?縣) 노죽령(老竹嶺)에서 직접 차를 만들었는데, 그 차는 매우 정묘하게 만들어져 이내 곧 세상에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 차를 가리켜 ‘대방차(大方茶)’라 불렀으며, 현재 환남차구(?南茶區)에서 생산되고 있는 둔녹차(屯綠茶)의 전신이 된다.3)

 

이외에도 절강성 운화현(云和?) 혜명사(惠明寺)의 ‘혜명차(惠明茶)’, 보타산(普陀山)의 ‘불차(佛茶)’, 황산(黃山)의 ‘운무차(雲?茶)’, 운남성 대리(大理) 감통사의 ‘감통차(感通茶)’, 절강성 천태산(天台山) 방광사(方廣寺)의 ‘나한공차(羅漢供茶)’, 항주 법경사(法鏡寺)의 ‘향림차(香林茶)’ 등은 모두 불교사원에서 최초로 생산한 중국의 명차들이다.

 

4) 불교사원 내의 다문화 ? 사원차(寺院茶)

 

중국의 불교사원에서는 차를 심고 재배하고 만드는 기술이 독특했을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음차에서부터 다도에 이르기까지 매우 연구적이었다. 사찰 안에는 ‘차당(茶堂)’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곳에서 선승들은 불교교리에 대해 각자 변론을 펼치기도 하고, 또 속가의 시주들을 초대해 차를 대접하기도 하고 함께 어울려 차향을 음미하며 마시기도 하였다. 법당 안에는 ‘다고(茶鼓)’라는 북을 두어 승려들에게 ‘차 마시는 시간’을 알릴 때 두드렸다. 이 밖에도 사원 안에 ‘다두(茶頭)’를 설치해 전문적으로 물을 끓이고 차를 달여 손님에게 대접하였다. 아울러 사원의 일주문 밖까지 몇 명의 시차승(施茶僧)을 보내어 사람들에게 차를 대접하도록 하였다.

 

사원에서 직접 생산한 차든, 혹은 외부에서 들여온 차든 사원 안에서 마시는 차는 모두 ‘사원차(寺院茶)’라고 한다. 사원차는 대략 ‘부처님께 차를 공양하는 것’과 ‘손님에게 차를 대접하는 것’, 그리고 ‘스스로 차를 마시는 것’의 세 가지로 나눈다. 이와 관련해 《만구지(蠻?志)》에는 “각림원(覺林院)의 승인들은 중등차를 손님에게 접대하고 자신은 하등차를 마시며 상등의 차는 부처님께 공양한다.”4)는 기록이 있다.

 

‘사원차’는 불교의 규범에 따라 다시 몇 가지 명목으로 구분한다. 예를 들어 매일 불전(佛前)과 당전(堂前) 그리고 영전에 차탕(茶湯)을 공양하는 ‘전다(奠茶)’, 수계를 받은 서열에 의해 차를 마시는 ‘계석차(戒?茶)’, 탁발하여 시주해 온 ‘화차(化茶)’ 등으로 구분한다.

 

중국의 많은 불문성지(佛門聖地)와 명산대찰 주변에는 대부분 차나무가 심어져 있고, 승려들이 직접 찻잎을 따고 만들어 왔으며 이러한 관습은 오래도록 이어져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불교 승려들의 오랜 음차습관은 수많은 고령 승려들의 장수비결과도 결코 무관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중국차문화’에 담긴 총체적 사상을 한마디로 줄이면 ‘중국인들은 차문화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며 타인과의 화목과 즐거움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반면 불교정신에서 강조한 것은 ‘고적(孤寂)함’이다. 이렇게 완전히 서로 다른 성격을 띠면서도 서로 함께 조화를 이루어 있었던 것은 역시 중국 선종불교의 원통사상이 중국의 토착문화와 잘 조화하고 융화한 덕분일 것이다. 어쨌든 차를 심고 재배하기, 음차습속의 확산과 차연(茶宴)의 형식, 다문화의 대외적인 전파와 보급 등 모든 분야에서 불교가 미친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 할 수 있겠다. 이렇듯 차와 불교의 불가분의 관계에서 ‘다선일미(茶禪一味)’의 사상이 탄생한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주) -----

1) 연수현차(年垂懸茶): 나이가 들어 수레를 매달아 드리울 때. 즉, 은퇴할 시기(70세). 한나라의 설광덕(薛廣德)이 늙어서 관직을 사임하였을 때, 천자로부터 하사 받은 수레를 매달아 자손들에게 영광됨을 보여 주었다는 고사에서 인용된 말이다. 《한서(漢書)》권71의 <설광덕전(薛廣德傳)>

2) 석도설(釋道說) 《속명승전(續名僧傳)》: “~年垂懸茶, 飯所飮茶.”(육우의 《다경(茶經)》〈칠지사(七之事)〉에서 재인용)

3) 대방차(大方茶): ‘대방차’에 대한 기록을 전하는 고문헌은 매우 많으며, 그 문헌의 수만큼이나 이에 대한 전설 또한 다양하게 전하고 있다. 〔《중국명차지(中國名茶志)》〈안휘성권(安徽省卷)> (북경, 중국농업출판사)〕, p232~237.

4) 覺林院的僧人待客中等茶、自奉以下等茶、供佛以上等茶.

 

 

 

중국의 각종 차문화 ④

 

“농가차, 복잡하거나 사치스럽지 않고 간결하면서 내실”

 

▲ 농가차

 

중국은 땅이 넓고 인구도 많을 뿐더러 56개 민족으로 형성된 다민족 국가인 만큼 중국 전역 각지에서 생산되는 차의 종류가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다양하다. 그런 만큼 차를 마시는 각 지역의 풍속 또한 참으로 다양하다. 그것은 각 지역마다 갖고 있는 서로 다른 고유의 전통풍속과 언어, 그리고 지역의 환경적 요인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중국 전역에 분포되어 있는 한족과 수많은 소수민족들의 음차풍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참으로 기이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참으로 경이로움과 감탄을 자아내기도 한다.

우선 소수민족의 경우만 보더라도 티베트인들의 쑤여우차(?油茶)를 비롯해 몽골족의 나이차(?茶:우유차), 위구르의 향차(香茶), 태족(?族)의 죽통차(竹筒茶), 납서족(納西族)의 염파차(鹽巴茶), 리리족(??族)의 뇌향차(雷響茶), 포랑족(布朗族)의 산차(酸茶), 백족(白族)의 삼도차(三道茶), 토가족(土家族)의 뢰차(?茶), 묘족(苗族)과 동족(?族)의 유차(油茶), 회족(回族)의 관관차(罐罐茶)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심지어 언어와 민족이 같은 중국 내지의 한족조차도 그 지방에 따라 서로 다른 음차풍속과 제각각의 포다법(泡茶法)을 가지고 있다. 다예적인 측면에서 볼 때도 각종 차의 종류, 즉 공부차(工夫茶), 홍차(紅茶), 녹차(綠茶), 화차(花茶), 흑차(黑茶), 백차(白茶), 황차(黃茶) 등에 따라 그 포다법이나 시연(試演)은 제각기 다르게 표출되고 있다. 아울러 그 생산지에 따라 음차풍속 또한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본고에서는 지역이 넓고 차의 종류가 복잡하고도 다양한 중국의 차문화 중에서 독특한 자연환경과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명·청(明淸)시대의 문화적 특징이 잘 계승 발전되었으며 또한 당·송(唐宋)의 유풍이 그대로 잘 보존된 휘주1)의 민간다예를 중심으로 그 종류와 형식 및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1) 농가차(農家茶)

 

이른바 ‘농가차’는 민간 향리의 음차풍속에서 발전하여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무원(?源)은 집집마다 거의 모두 차를 심고, 사람들은 모두 차를 즐겨 마신다. 심지어 일을 하러 나갈 때에도 반드시 차를 휴대하며, 집에 손님이 방문할 때에도 차로써 접대한다. 뿐만 아니라 이 지역 농가의 모든 아낙들은 차를 우려내는 솜씨가 모두 수준급이다. 농가의 차는 좋은 차를 만들고 마시는 것을 중요시 하는 반면에 다기(茶器)의 좋고 나쁨에 대해서는 그리 지나치게 따지거나 제한하지 않는다. 이는 곧 내면에 충실하면서 외적인 형식으로부터 자유로운 농가의 소박함과 진실함이 표출된 결과일 것이다.

 

행다(行茶)2)에 사용되는 다기를 보면 청화자호(靑花瓷壺), 청화다완(靑花茶碗), 물을 끓이고 따르는 동호(銅壺) 등이 고작이다. 시연이 시작되면 무대 위로 울려 퍼지는 경쾌한 음악소리를 따라 남백색 꽃문양 상의와 바지를 입고 두건을 쓴 세 명의 아가씨가 차탁 앞으로 등장한다.

세 아가씨는 먼저 차탁 위의 다기부터 배열한 뒤, 팽주를 맡은 아가씨가 손을 씻는다. 이어서 뜨거운 물을 부어 차호와 차완을 정갈히 씻는다. 차를 우릴 모든 준비가 완료되면 차를 넣기 시작한다. 이 때 일반 시연에서처럼 차시(茶匙:차 숟가락)나 차칙(茶則)3)을 사용하지 않고 팽주가 차통을 기울여 직접 손으로 찻잎을 꺼내어 쥐고 차호에 넣는다. 그 다음은 동호에서 끓인 물을 약간 청화자호 안에 따라 차를 신속하게 씻어낸다. 중국인들은 이를 ‘세차(洗茶)’한다고 한다.

이어서 다시 동호의 뜨거운 물을 청화자호 안에 가득 부어 차를 우려낸다. 차를 우려내는 동작은 빠르면서도 난잡하지 않고 가볍고도 경쾌하다. 차호 속의 차가 다 우려지면 세 아가씨는 신속하게 각 차완에 나누어 따른다. 이때 주의할 점은 각 차완의 탕색이 고르게 나와야 하며 농도가 일치하여야 한다. 이 때 차를 따르는 방법은 숙우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에 다관에서 직접 차를 따르는 우리나라 방식과 동일하다.

즉, 좌에서 우로 다시 우에서 좌로 따르는 ‘순환짐입법(循環斟入法)’이다. 무대 아래의 내빈들에게 봉차가 이루어진 후에도 아가씨들은 내빈들에게 다식으로 농가의 특산인 땅콩이나 대추 등을 제공하느라 바삐 움직인다.

 

이러한 시연과정은 물론 중국의 농촌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농가의 음차습속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 내용에서 보듯이 그 과정이 복잡하거나 사치스럽지 않고 간결하면서도 내실에 충실한 모습을 엿볼 수가 있다. 또한 시연자들의 복장에서 우리는 바쁜 농촌 노동생활 중에서도 차를 마시며 망중한의 여유를 찾으려는 중국 시골아낙들의 순박하고 정직한 모습이 그대로 반영되었음을 볼 수가 있다.

필자는 중국의 농가차(農家茶)를 통해 형식을 따르는 다도예절생활만을 고집하거나 구속될 것이 아니라 현대의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도 각자 처한 환경과 조건에 맞게 개성적인 음차생활을 즐길 수 있는 문화풍토가 우리나라에도 하루 빨리 조성되고 정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전통이나 예절이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농가차 시연과정은 다음과 같다.

 

1. 비구(備具) : 다기를 준비 → 2. 비차(備茶) : 차를 준비 → 3. 상차(賞茶) : 차를 감상하기 → 4. 탕구(蕩?) : 찻사발 씻기 → 5. 투차(投茶) : 차호(다관)에 차를 넣기 → 6. 충차(?茶) : 차탕 우려내기 → 7. 분차(分茶) : 차를 나누어 따르기(인원수에 따라) → 8. 경차(敬茶) : 차를 올리기(대접) → 9. 품차(品茶) : 차를 음미하며 마시기→ 10. 수다구(收茶具) : 다기를 거두기

 

2) 문사차(文士茶)

 

이른바, 문사차는 문인아사(文人雅士)들의 음차 습관에 근거하여 정리된 것이다. 문사차의 풍격은 고요함과 우아함을 위주로 한다. 꽃꽂이, 그림을 걸어놓기, 점다(點茶), 분향(焚香) 등은 역대 문인아사들이 기호하는 것들이다. 문인들의 품다(品茶)는 음미함에 더욱 가치를 둔다. 예를 들어 산이 푸르고 물이 빼어난 곳, 정원이 깊숙한 곳, 또는 청풍명월의 때, 붉은 매화에 눈이 내리는 날 등 이러한 환경은 그들이 조용한 마음으로 차를 품미하기에 좋은 때와 장소이다. 문인들의 품다는 단순히 갈증을 해소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들의 목적은 품다 생활을 통해 자신의 내면 깊숙이 숨어있는 자신만의 평온함을 찾으려는데 있다.

그래서 문인들은 품다에 앞서 언제, 어느 곳에서 마시느냐를 따질 뿐만 아니라, 차의 선택과 사용, 물, 불, 탄(炭)에 이르기까지 아주 까다롭게 따지며 더 나아가 누구와 함께 마시느냐까지도 따지고 궁리한다. 이렇게 여러 분야에 이르기까지 꼼꼼히 따지고 까다롭게 궁리하는 원인은 사실 딱 한 가지 목적을 위해서이다. 그것은 차를 통해 스스로 수신과 양성의 최고 경지에 도달하기 위함이다.

 

고로 문인차는 바로 문인음차생활의 청아함을 반영하고 있다. 문인차의 행다에 주로 사용하는 다기는 청화오동필우(靑花梧桐?盂)·탕구(湯?)·니호(泥壺)이고, 차는 무록명미(?綠茗眉)와 영암검봉(靈岩劍峰)이며, 물은 요공천(廖公泉) 또는 염천(廉泉)의 물이다.

관현악이 연주되면 문재가 뛰어난 듯 보이는 비단치마를 입은 단정한 여자 시연자가 무대 위로 오른다. 먼저 차탁 위의 다기를 정리한 뒤 향을 피우고 다성 육우에게 제를 올린다. 그리고 손을 깨끗이 씻고, 다기를 씻어 정갈하게 닦는데, 이때 찻잔을 닦는 천은 흰 비단을 사용한다. 이어서 차를 준비하고, 차를 씻는다〔洗茶〕4). 차를 우릴 때는 차호로부터 높이 떨어진 위치에서 물을 따르는 고충법(高?法)과 봉황새가 세 번 머리를 끄덕이듯 세 번 끊어서 따르는 ‘봉황삼점두법(鳳凰三点頭法)’을 함께 사용한다.

차탕(茶湯)할 때는 찻잔의 7부까지만 따른다. 주인에게 찻물이 채워진 찻잔을 받은 손님은 먼저 차향을 맡고, 찻물의 빛깔〔蕩色〕을 감상한 뒤 천천히 차를 세밀하게 음미한다. 이것은 세속적이며 상투적인 것에 물들지 않고 고상함과 우아함을 추구하는 문인아사들의 의경을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다. 문사차(文士茶)의 시연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비구(備具) : 다기 준비하기 → 2. 분향(焚香) : 향 사르기 → 3. 관수(?手) : 손 씻기 → 4. 비차(備茶) : 차 준비하기 → 5. 상차(賞茶) : 차 감상하기 → 6. 조기(?器) : 다기 씻기 → 7. 치차(置茶) : 차를 배열하기 → 8. 투다(投茶) : 차를 차호(다관)에 넣기 → 9. 세차(洗茶) : 차 씻어내기 → 10. 충포(?泡) : 물 따르고 차 우려내기 → 11. 헌명(獻茗) : 차 바치기 → 12. 수명(受茗) : 차 받기 → 13. 문향(聞香) : 차 향기 맡기 → 14. 관색(觀色) 차탕(茶湯) : 색 보기 → 15. 품미(品味) : 차 맛 음미하기 → 16. 상수(上水) : 물 붓기 → 17. 이순차(二巡茶) : 두 번째 차 우려내기 → 18. 수다구(收茶具) : 다기를 거두어 정리하기

 

3) 부실차(富室茶)

 

부실차의 시연 내용은 과거 부자나 귀족들의 음차풍습에 바탕을 둔 것으로서 앞에서 거론한 농가차의 청순·질박한 차풍과 문사차의 우아한 운치와 표일(飄逸)한 차풍과는 사뭇 다르다.

부실차는 화려하고 귀티나게 치장한 것이 특색이다. 부실차의 시연(試演)에 사용되는 다구는 분채필우(粉彩?盂), 탕구(湯?), 석호(錫壺)이며, 사용되는 차는 ‘무원묵국차(?源墨菊茶)’이다.

무원묵국차는 가는 실선으로 찻잎을 하나하나 엮어서 국화모양으로 만든 것이다. 일단 뜨거운 물을 부으면 마치 물 위에서 국화가 피듯 찻잎이 벌어지다가 나중에 찻잔 속에 가라앉으면서 완전히 벌어진다. 이때 사용되는 물은 활천(活泉)에서 나는 물이다.

 

시연자는 고상하고 우아하면서 화려한 고전적인 치파오(旗袍)5)를 입어 과거 부귀한 집의 주인을 연출한다. 행동은 마치 지체 높은 양반 댁의 규수 같이 일거수일투족 기품이 넘치고 용모가 빼어나 범상치 않은 규수인 듯 보인다.

 

시연자는 아름다운 자태로 사뿐히 걸어 무대에 오른다. 앞선 시연처럼 비기(備器), 비차(備茶), 상차(賞茶), 조기(?器), 투차(投茶) 등 일련의 행동을 순서대로 행한다. 그러나 율동이나 분위기가 앞서 서술한 농가차나 문사차와 많은 부분이 다르다. 부실차의 충다(?茶)와 포다(泡茶)는 ‘연자충니법(燕子衝泥法)’을 사용하여 동작이 아주 부드럽고 느리면서도 절대 끊어지지 않아 지체 높은 집의 규수의 우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손님에게 차를 권하는 ‘봉차(奉茶)’ 때에는 농가차는 수줍어서 약간 머뭇거리는 농촌 아녀자의 거안제미(擧案齊眉)6)의 순박함이 있고, 문사차는 여재자(女才子)의 공경한 태도에는 겸화가 충만하며, 부실차의 상경여빈(相敬如賓)의 자태에는 장유유서(長幼有序)와 존비유서(尊卑有序)의 예절교육의 색채가 짙게 배어있다. 부실차의 시연과정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비구(備具) → 2. 비차(備茶) → 3. 상차(賞茶) → 4. 조기(?器) → 5. 투차(投茶) → 6. 온윤(溫潤) → 7. 충포(?泡) → 8. 경차(敬茶) → 9. 수차(受茶) → 10. 품차(品茶) → 11. 수다구(收茶具)

 

비록 일부 지역 또는, 단절된 특정 시대 차풍(茶風)을 바탕으로 현재 어느 특정지역에서 그 체계가 형성된 시연의 형태였지만 이것은 농가차와 문사차 그리고 부실차를 막론하고 유구한 역사를 두고 시대를 뛰어넘어 계승·발전되어온 중국 민간음차 풍모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물론 학문적 입장에서 그 자료의 가치 비중이나 중요성 여부는 더욱 심층적으로 논의·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중국이란 넓은 영토에서 각 지역과 문화의 차이로 인하여 서로 각기 다르게 형성·발전되어온 음차 풍속을 중앙정부 주도 아래 획일화한다거나 통일시킨다는 것도 어렵거니와 설사 획일화된다 하더라도 그 지방의 특색이 전통적으로 계승·발전되지 못하고 말살된다는 것도 문화의 다양성이란 측면에서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라 생각된다. 다양성 없이 획일화된 문화는 발전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소개한 부분들은 어느 특정한 지역의 문화를 소개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대략적으로 대표성을 가진 부분들만 간추려 간략히 다루었다.

 

필자는 중국인들의 민간다예 중에서도 특히 농가차를 주목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 알려진 여러 가지 형식의 다법(茶法)이나 다례(茶禮)에서 서민의 음차생활에 대한 연구나 보고 등의 결과물을 별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설사 간혹 거론되었다 하더라도 그 저변이 결코 두텁지 않다는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과거의 다문화에 대한 연구도 좋고, 특정계층에서 행해지는 어려운 다예(茶藝)나 다도(茶道)도 좋다. 이왕에 차에 관심을 보이고 차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증폭되어 가는 다인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라도 우리 모두 함께 열린 생각과 뜨거운 가슴으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대중적인 생활음차문화에 대해서도 약간의 정리와 연구가 필요하지는 않을까 생각한다.

 

 

주) -----

1) 휘주(徽州): 현 강서성(江西省)의 무원(?源).

2) 행다(行茶): 다기를 씻고, 찻자리를 준비하는 절차에서부터 차를 우려내고, 차를 권하고 받아 마시는 예의범절 및 차를 다 마신 뒤에 다기를 수거하여 정리하는 절차에 이르기까지 차를 마시는 일에 대해 총망라된 일련의 모든 행위를 뜻한다.

3) 차칙(茶則): 차를 마실 때 차보관통에서 찻잎을 떠내어 차호에 넣을 때 사용하는 도구로서 주재료는 주로 대나무나 흑단(黑檀) 등이다.

4) 세차(洗茶): 차 씻어 내는 것을 말한다. 한국어로 읽으면 마치 자동차를 세차(洗車)하는 것으로 오인하기 쉽다. 중국어로 발음하면 ‘시차(洗x? 茶cha?)’가 된다. 세차(洗茶)의 목적은 찻잎에 덮인 먼지나 오염된 물질을 깨끗이 씻어내기 위함이 아니다. 뜨거운 물의 열기로 견고하게 굳어 있는 찻잎을 부드럽게 펼쳐서 찻잎의 향을 순식간에 충분히 발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세차는 반발효차 이상의 차(오룡차, 보이차 등)를 우릴 때 사용되며, 녹차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세차는 아주 짧은 시간에 뜨거운 물을 부어 얼른 쏟아 내야한다. 세차시간을 오래 끌게 되면 차향이 다 빠져나가게 되어 정식으로 우려마실 때에 차향을 음미할 수가 없게 된다.

5) 치파오(旗袍) : 중국 청나라 때 여자들의 정통복장. 양쪽이 허벅지까지 트여 길게 갈라진 치마.

6) 유가에서 나온 말로 “남편에게 눈썹 높이까지 상을 들어 바친다”는 데서 유래한 성어. 이 말은 ‘상경여빈(相敬如賓)’과 함께 호응하여 쓰이는 성어로 윗사람이 갓 결혼한 부부에게 덕담으로 주로 많이 사용한다. 남존여비의 사상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부부가 서로 존경함을 마치 서로 손님을 대하듯 하라”는 부부 상호 존중의 뜻이 담겨진 말이다.

 

 

박영환 | 중국 사천대학 객좌교수

 

/ 불교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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