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북동쪽 지역은 함덕이 대표한다면, 제주의 북서쪽 지역은 애월과 협재에 많은 여행자들이 모여든다. 협재에서는 비양도가 바라다 보이는 풍경이 멋있고, 인근에는 산책하기 좋은 한림공원도 자리잡고 있어 휴양지 분위기를 만끽하기 좋은 곳이다. 협재에서 서쪽으로 조금만 이동하면 한적하고 조금은 색다른 바다를 즐길 수 있는 월령리가 나온다. 올레길 14코스로도 연결되어 바다를 따라 걸어가도 좋은 곳이다. 월령리를 찾는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는 여행지는 선인장 군락지이다. 둥근 주걱같은 초록색 선인장 위에 붉게 열매가 맺힌 모습은 날카로운 가시가 있다는 것도 잊게 만들 만큼 귀여워 보이기도 하며, 그것들이 해안가에 가득한 풍경은 제주 안의 또 다른 제주에 온 것 같은 기분마저 들게 한다. 여행객들에겐 가벼운 산책을 즐기며 독특한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관광지 중 하나이지만, 선인장에 핀 백년초는 마을 주민들에겐 중요한 작물이다.
월령리를 찾는 대다수는 월령 선인장 군락이 있는 해안 산책로만 둘러보고 돌아가지만, 마을 안쪽 골목으로 5분만 걸어 들어가면 선인장 열매에 의존해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진아영 할머니의 삶터가 나온다. 진아영 할머니는 무고한 희생자가 수없이 났던 제주 4.3사건을 상징하는 분이다. 진아영 할머니는 4.3 당시 고향인 판포리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이어오던 서른 다섯의 아낙이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평범한 일상은 한 순간에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이 되고 말았다. 1948년 10월 이승만 정부 하에서 실시된 토벌 정책은 무차별 학살로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할머니는 울담 안에 있다가 경찰 토벌대가 발사한 총에 아래턱을 맞고 말았다. 천만다행으로 목숨은 건졌으나 아래턱이 없어지는 피해를 입었고,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평생 하얀 무명천으로 턱을 두르고 지내 왔다. 그래서 할머니는 이름보다 ‘무명천 할머니’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세간에 알려졌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집은 몇 년간 방치되어 있었다. 진아영 할머니를 비롯한 4.3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뜻에서 시민단체 사람들이 힘을 모아 '진아영 할머니 삶터 보존위원회'를 구성하고 2008년에 집을 정비해 전시관으로 탈바꿈시켰다. 실제 사용했던 집을 그대로 살린 곳이라 마을의 다른 집처럼 골목 한편에 돌담과 함께 소박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입구에는 정낭이 있는데, 처음 찾아갔을 땐 3개가 모두 걸쳐져 있었고 집으로 들어가는 문도 굳게 닫혀 있는 듯했다. 개방 시간도 정해진 바가 없기에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두 번째 찾았을 때, 마침내 조심스레 발을 들일 수 있었다.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온 곳은 부엌이었다. 부엌은 우리네 할머니 댁에서 보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두 평 남짓 될까 싶은 작은 공간엔 청록색 수납장과 작은 냉장고, 오래된 가스레인지와 갈색 수납장이 그대로 남아 있다. 집기들과 반찬통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어 당장이라도 할머니가 방에서 나와 반겨줄 것만 같았다. 부엌 한편에는 추모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커다란 천에 새겨진 할머니의 초상화와 아래에 소파 위에 많은 사람들이 추모를 다녀간 흔적이 남아 있다. 한 학생이 자수로 만든 할머니의 초상과 진심을 담아 쓴 편지가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추모 공간 위 무명천에 할머니의 초상이 새겨져 있고, 일대기가 짧게 기록되어 있다.
문턱을 지나면 이어지는 방도 부엌과 비슷한 크기였다. 벽에는 오래전 달력이 걸려 있고, 서랍장 위에 할머니의 증명사진과 물품들이 가지런히 전시되어 있다. 차곡차곡 쌓여진 이불에서는 정겨운 기분도 든다. 방에는 TV가 놓여 있는데, 그 앞에 붙은 안내문을 따라 작동시키면 할머니를 주제로 1990년대쯤에 촬영된 다큐멘터리가 나온다. 바닥에 앉아 영상을 끝날 때까지 보게 될 정도로 할머니의 여생은 고난으로 가득했다. 턱을 잃은 할머니는 음식을 잘 드시지 못해 위장병과 영양실조를 늘 달고 지내셨고, 말을 할 수도 없어 외롭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 오셨다. 할머니는 선인장 열매와 톳을 따다 품팔이를 하면서 55년이라는 긴 세월을 연명해 오셨다. 할머니를 가까이서 보살피고 지켰던 진위현 할아버지는 “큰아버지가 4.3때 진아영 할머니가 죽었다고 했다. 그런데 가서 보니 죽진 않고 이렇게 되어 있더라. 차라리 죽는 게 좋겠다…” 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 말에서 감히 짐작조자 할 수 없을 정도로 힘겨운 삶을 지내셨겠다는 것이 확 느껴졌다. 그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니 마음이 더욱 먹먹해졌다.
할머니가 쓰고 지냈던 무명천이 무명천 위에 새겨져 있다.
하얀 무명천에 할머니를 기리는 시가 쓰여져 있다.
달력은 약 20년 전에 멈춰 있다.
TV를 통해 다큐멘터리를 시청할 수 있다.
이처럼 국가 권력에 일방적으로 주민들이 희생당한 심각한 사건임에도, 세상이 만들어낸 이념 속에 갇혀 그동안 제주 사람들이 사건을 쉽게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는 점이 안타깝고 먹먹했다. 특히 그동안 보수 정권의 대통령 당선인들은 아무도 4.3 추념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4월 추념식에는 윤석열 당선인이 최초로 참석했다. 4.3은 더이상 이념의 문제가 아닌 사건이라는 걸 보여주는 방증이다. 4.3은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대한민국의 중요한 역사이다. 제주도 곳곳에 남은 그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그동안 미처 보지 못했던 제주도의 뒷모습을 알아가는 의미 있는 여행을 할 수 있다. 먼저 기억하고 제주도의 땅 아래 묻힌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제주도의 봄도 더욱 화사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