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 연휴기간에 미국 LA와 라스베이거스를 다녀왔다. 관광 차 방문한 것은 아니었다. 향후 미국에서 외식사업을 전개하려는 영주권 소지자인 지인이 도움을 청해왔다. 현재 미국 내 한식당 수준을 가늠하고 분석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던 것이다.
5박 6일 일정으로 한식당을 비롯해 여러 식당들을 방문했다. 며칠간 국내의 식당과 다른 요소도 많이 발견했다. 가장 부러웠던 점은 한국과 달리 식재료를 충분히 넉넉하게 사용하는 점이었다. 고기 원가가 우리나라에 비해 현저하게 저렴해 고깃집이나 탕 집에서 푸짐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숯불 사용이 어려워 갈빗집에서 숯불구이의 강점을 극대화할 수 없다는 한계도 엿보였다. 고깃집 중에서는 <박대감>이 원육의 강점과 경쟁력이 높았다. 현재 미국 내 한식당 중 가장 성공했다는 <북창동순두부>의 경우, 순두부 원재료 질이 한국보다 더 나은 것 같았다. 특히 갈비와 불고기를 조합한 세트 메뉴는 미국인들도 선호한다.
LA 한인타운 내 <불고기헛>과 <백정>은 미국인들도 줄을 서서 기다릴 만큼 핫 이슈의 식당들이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제일 마음에 들었고, 맛이 가장 좋았던 곳은 설렁탕 전문점들이었다.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처음 방문한 곳은 <선농단>이라는 설렁탕집이었다. 우선 건더기 고기가 푸짐해서 아주 마음에 들었다. 국물과 김치도 모두 한국 설렁탕집에 비해 나무랄 데가 없었다.
고기 건더기 맛있고, 맑은국물 감칠맛 최고 수준
그렇지만 귀국하기 바로 전날 아침에 방문했던 <한밭설렁탕>이 필자 입맛에는 최고의 설렁탕이었다. 일단 고기 건더기의 질이 뛰어났다. 한국에서 설렁탕을 먹을 때 국물이 아닌 건더기가 맛있는 경우는 드물다. <선농단>보다 건더기 양은 적었지만 먹기엔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양이었다. 섞음, 살코기, 양지, 내장, 우설 등 5가지 설렁탕을 구비했다.
이 가운데 양지설렁탕을 주문했다. 가격은 11불 50센트로 세금 포함한 가격이다. 미국에서는 식대 외에 팁이 필수다. 현지 지인에 따르면 오전에는 식대의 10% 오후에는 식대의 15~20%가 적정선이라고 한다.
필자는 설렁탕이 나오는 순간 첫눈에 이 설렁탕이 맛있을 것임을 직감했다. 국물이 진하면서 맑은 색이었기 때문이다. 업주가 한껏 정성을 들여 끓인 설렁탕임이 틀림없었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국물이 적당히 진하고 잡내가 없었다. 조미료 맛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30년 동안 업주가 늘 음식의 질을 직접 관리해왔다고 한다. 역시 좋은 음식은 저절로 탄생하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이번 미국 여행에서 먹어본 음식 가운데 단연 최고였다. 또한 이 정도 맛은 최근 2년간 먹어본 그 어떤 설렁탕보다 훨씬 나았다.
이 집 설렁탕은 기교보다 기본에 충실하다. 미국산 소고기나 소뼈도 잘만 고르면 설렁탕 식재료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비하면 미국의 소고기 값은 훨씬 싸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양질의 소고기를 선별해 30년간 꾸준히 충실하게 음식에 반영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파를 듬뿍 넣고 후추를 넣었더니 더 맛이 좋아졌다. 국물이 깔끔하고 담백하면서 조미료 없이도 감칠맛이 풍부했다. 반찬으로는 김치와 깍두기가 나왔다. 깍두기는 조금 과하게 익었고 맛은 평이했다.
일본 라멘보다 우월한 맛, 미국인들에게 알려야
주인장의 성실함은 식당 청결에서도 나타났다. 비록 66㎡(20평) 정도로 홀이 좁지만 내부가 아주 깨끗하다. 공공기관에서 인증하는 식당위생 등급도 ‘A'를 받았다. 식당 안에는 한국인 손님이 대부분이었다. 미국인은 단 한사람! 백인이 홀로 와서 설렁탕을 주문했는데 밥은 거의 안 먹고 국물과 고기 건더기만 먹었다.
반면 저녁에 리틀 도쿄를 방문했는데 일본 라멘집 앞에 미국인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일본 라멘에 비해 우리의 설렁탕이 결코 맛이나 질에서 뒤처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국수주의적이고 주관적인 생각이 아니다. 일본 현지에서 라멘을 여러 번 먹어봤지만 기름진 맛과 돼지냄새 등으로 그다지 맛있게 먹은 기억이 없다. 이는 필자만의 느낌이 아니다. 주변의 음식 전문가들도 모두 동의하는 바다.
그런 라멘이 미국인들이 즐겨 찾아먹는 음식이 된 것이다. 이는 미국 내에서 라멘의 노출 빈도가 그만큼 높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부터는 미국인들에게 제대로 된 설렁탕 맛을 보여줘야 한다. 느끼하지 않고 담백하면서 감칠맛이 진한 설렁탕 국물 맛의 존재를 일깨워야 한다. 그런 일에 필자도 일조하고 싶다. 일본 라멘에 비하면 우리 설렁탕은 10배 이상 맛있다. 둘 다 뼈를 고아 낸 국물이지만. 지출 설렁탕 1인분 11.5달러(VAT 포함) <한밭설렁탕> 미국 캘리포니아 LA 4163 W. 5th St. (미국)213-383-9499
글·사진 김현수 외식콘셉트 기획자·외식콘텐츠마케팅 연구소 (NAVER 블로그 '식당밥일기') 외식 관련 문화 사업과 콘텐츠 개발에 다년간 몸담고 있는 월간외식경영 발행인, ‘방방곡곡 서민식당 발굴기’는 저렴하고 인심 넉넉한 서민 음식점을 일상적인 ‘식당밥일기’ 형식으로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