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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행복한학교으뜸교육 원문보기 글쓴이: 백한진
시각장애인 영어교사 최유림 선생님
[화제의 특수교육인]
국립특수교육원 현장특수교육 2018 제25권
안녕하세요! 최유림이라고 합니다. 저는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일반학교에서 근무를 시작한 시각장애 교사입니다. 빛이 있는지 없는지 정도만 시각으로 감지할 수 있습니다. 중학교에서 영어교사로 12년째 일하고 있으며 현재는 천안두정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또한 서울여자간호대학교에서 겸임교수로 다문화와 특수교육을 강의하고 있기도 합니다. 서울맹학교에서 유치원에서 고등학교 과정까지 13년 동안 특수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학생으로서 1980년대에서 2000년대에 이르는 한국의 특수교육을 몸소 체험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과목이 영어와 사회 관련 과목이었습니다. 영어는 국제 언어이기 때문에 계속 공부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어릴 때 영어를 공부하면서도 생각하곤 했습니다. 영어 교사가 되면 자연스럽게 계속해서 영어를 접하며 공부할 수 있고, 내가 공부한 영어를 학생에게 혹은 저에게 영어를 배우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가르쳐 줄 수 있어서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대학 입학을 앞두고 전공 학과를 고민하게 되면서 현실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대학에 입학하던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시각장애인이 전공하는 학과는 대부분 특수교육이나 사회복지였습니다. 특수교육학과를 나오면 맹학교 교사로 일할 수 있고, 사회복지학과를 나오면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맹학교의 진학 담당 선생님과 주위의 많은 어른들이 특수교육학과를 가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하셨고, 결국 공주대학교 특수교육학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대학에 들어가서 대학 동기들에게 들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제가 대학에 들어갈 때 특수교육학과가 전체 취업 랭킹 3위학과라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어서 주위의 어른들이 특수교육학과에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는 권유를 많이 하셨을 것 같기도 합니다. 특수교육학과에 입학하면서 저는 어릴 적에 꿈꾸었던 영어교사가 아니라 맹학교에 발령을 받아서 안마 및 침술과 영어를 병행해서 가르칠 수밖에 없겠다는 현실적인 장벽을 그제서야 느끼게 된 것입니다.
대학교 2학년이 될 무렵 특수교육학과 학생도 중등이 전공이라면 담당 교과를 선택해야 했기에 저는 망설이지 않고 영어를 선택했고, 영어를 폭넓게 공부하고 싶은 욕심에 영어교육까지 복수전공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학교 2학년 1학기부터 영어교육학과 수업을 들으며 저는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하루는 강의 시간에 배부 되었던 학습자료를 교수님께 파일로 주실 것을 부탁드리고자 교수님 연구실에 방문하게 되었는데, 갑자기 교수님께서 교원 임용고시를 특수교육이 아닌 영어교육으로 도전해 보는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호주에 사셨던 한국계 호주인 교수님이셨는데, 저는 교수님이 호주에 너무 오래 사셔서 한국의 실정을 잘 모르고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저는 도전해 보고 싶긴한데 한국의 상황을 보았을 때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에 대해 교수님께서는 고민해보라고 말씀하셨고 이후에도 길에서 마주칠 때마다 영어교육으로 임용고시 보는 것을 고민하고 있는지 물어 보셨습니다.
대학교 2학년말 겨울에 계절 학기로 영어교육과정론이라는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모든 수강생이 교수·학습 지도안을 짜고 그에 따라 수업 실연을 해야 하는 과목이었습니다. 따라서 저 또한 지도안을 짜고 수업 실연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의 수업 실연이 끝나고 교수님께서 수업 실연에 대한 피드백을 하시면서 모든 수강생이 함께 하고 있는 그 자리에서 저에게 특수교육이 아니라 영어교육으로 교원 임용고시를 도전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앞서 한국계 호주인이셨던 교수님에 이어서 영어교육과정론 담당 교수님까지 한 분도 아닌 두 분의 영어교육학과 교수님께서 일반학교 영어 교사에 도전해 보라고 제안을 한 것이었습니다.
두 분의 영어교육학과 교수님의 제안에 저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저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1년 동안 고민한 끝에 대학교 3학년 말에 영어교육으로 교원 임용고시를 도전해 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여태껏 시각장애 교사가 일반학교에서 근무한 적이 없었기에 임용고사 2차 수업 실연 및 면접 때 저의 합격 여부와 관련해 많은 고민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종 합격 후 공무원 신체검사를 받게 되는데 합격 판정을 받지 못하고 보류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때만 해도 시력 0.3 규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류 판정의 의미는 검사를 시행한 담당 의사가 판단할 수는 없고 관련 기관에 판단을 맡기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만약에 담당 의사가 불합격 판정을 내려 버렸으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육청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안과의사, 특수학교 교장, 장애인 복지관장 등 다양한 전문가 집단이 참여한 심의위원회를 개최하였고, 저는 심의위원회에서의 면접 끝에 최종 합격 승인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현재 중학교에서는 영어 교사로, 대학교에서는 다문화와 특수교육을 가르치는 겸임교수로 있는데요. 영어, 다문화, 특수교육에 대한 전문성을 더욱 향상시켜서 현재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강의 및 수업을 통하여 영어, 다문화, 특수교육 등의 내용을 가지고 교류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특수교사들로부터 힘들다는 하소연을 많이 듣습니다. 사실, 특수교사만 힘든 것이 아니라 일반교사도 힘들고, 정말 힘들지 않은 직업이 없는 것 같습니다. 장애인을 대하고, 특히나 장애 아동을 가르치는 것이 정말 많은 인내를 필요로 하는 일이긴 합니다. 비록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장애인을 만나고 가르친다는 것이 어떤 즐거움이 있고 행복이 있는지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장애인 당사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애 때문에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장애인 주위에 있는 교사나 부모님들까지 행복해 보이지 않으면 장애 학생이 인생에 대한 희망을 지속적으로 가지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장애인 주위에 있는 여러분들이 먼저 자신이 행복을 느끼는 길을 찾고, 그 행복의 비결을 장애인들이 느낄 수 있도록 전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수교육을 계속 발전시키려고 하는 것은 결국 장애인을 현재보다 좀 더 행복하게 살도록하기 위함이니까요.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정보가 쏟아지는 오늘날, 시각장애인은 어떻게 정보를 습득할까요? PC, 모바일 기기 등의 이용이 어려울 거란 생각과 달리 시각장애인도 PC와 스마트폰을 사용해 인터넷을 이용하고 SNS, 메신저를 통해 소통하는데요. 지난해 '삼성전자 시각장애인 정보화교육센터(이하 '정보화교육센터')'에서 개최한 제11회 '애니컴 페스티벌' 체험수기 부문 'Light of Hope Anycom Award' 수상의 영예를 거머쥔 온양여자중학교 최유림 교사의 이야기 들어볼까요?
장애인 최초로 일반 과목 임용고시 통과
대학교 재학 시절부터 정보화교육센터를 통해 컴퓨터 교육을 받은 최유림 교사는 현재 충남 아산시에 위치한 온양여중에서 영어를 가르칩니다. 선천적 시력 장애를 갖고 있는 최 교사는 1급 시각장애인인데요. 지난 2007년 충청남도 임용시험 영어과에 통과, 시각장애인 최초로 일반교사 일반과목의 임용시험에 합격해 큰 화제가 됐었죠.
시각장애인이 일반 과목의 교사가 되기란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임용시험 준비에 필요한 모의고사 교재를 점자로 바꾸는 작업이 쉽지 않기 때문인데요. 교재를 장애인복지관에 맡겨 점자로 교체, 공부를 했지만 좀 더 다양하고 풍부한 자료를 보지 못해 아쉬웠죠. 게다가 눈으로 읽어도 어려운 내용을 들어서 이해하기란 더 험난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최 교사는 "당시 시험 준비는 장기전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며 "다른 사람들보다 미리 계획을 세워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책 한 권을 점자로 변환하려면 2, 3달이 넘게 걸리기 때문이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임용시험 2차 면접의 '교정시력 0.3 이상' 조항 때문에 탈락의 위기에 놓이기도 했었는데요. 시험 성적보다 더 큰 난관이었죠. 최 교사와 그의 대학 은사들은 해당 교육청에 이를 강력히 항의했고, 신체검사를 담당한 의사는 '부적격' 대신 '판정 보류'를 내려 일단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1년 뒤 이 독소조항은 최 교사로 인해 폐기됐죠.
능숙하게 컴퓨터 다뤄…"영화 활용해 수업하기도"
험난한 과정을 통해 꿈을 이룬 최 교사는어느새 10년 차가 된 '베테랑' 선생님인데요. 능숙하게 컴퓨터를 다루고 아이들이 공부에 흥미를 가질 수 있게 영화를 활용한 수업을 하기도 하죠. 최 교사가 화면을 보지 않고도 컴퓨터를 활용한 멀티미디어 수업을 할 수 있는 건 노트북에 깔린 '센스리더'라는 시각장애인용 컴퓨터 프로그램 덕분인데요. 고개를 돌려 귀를 노트북 쪽으로 기울이면 센스리더를 통해 아이콘과 문자를 음성으로 들을 수 있죠.
"대학 시절부터 정보화교육센터 이용했죠"
사실 최 교사는 대학교 입학 전까지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했는데요. 어렸을 적 장애인복지관에서 잠시 컴퓨터 수업을 받긴 했으나 집과는 거리가 멀어 포기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대학 입학 후 컴퓨터 사용은 필수가 됐는데요. 최 교사는 다른 시각장애인의 추천으로 삼성전자 정보화교육센터가 운영하는 컴퓨터 강의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2002년 11월 시작한 정보화교육센터의 애니컴(http://anycom.samsunglove.co.kr)은 엑셀, 검색엔진 활용법 등의 컴퓨터 관련 교과목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온라인 강의실인데요. 이동의 어려움이 큰 시각장애인을 위해 온라인 강의로 이루어졌죠. 고급 기능보다는 컴퓨터 초보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기초적이고 실용적인 강의가 많았는데요.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내내 애니컴을 통해 기초 강의를 들은 결과, 최 교사는 비로소 '컴맹'에서 벗어나 컴퓨터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가장 도움이 됐던 강의 중 하나는 10여 년 전 들었던 '포털 사이트 응용'에 대한 강의였는데요. 이 강의를 통해 검색엔진 사용법을 익혔고 인터넷 웹 서핑으로 보다 다양한 영어 강의 프로그램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막막했던 영어 교사라는 꿈도 인터넷을 통해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됐죠.
최 교사는애니컴의 가장 큰 장점으로 '집에서 편히 들을 수 있다'는 것 외에 무제한 청취가 가능하다는 점을 꼽았는데요. 원할 때 언제든 반복, 재생이 가능해 필기나 녹음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었죠. 최 교사는 애니컴 강의를 통해 PC 사용 기본기를 탄탄하게 익힌 데 이어 파워포인트나, 엑셀 등의 고급 기능 강의도 듣길 원하는데요. 언젠가 애니컴에 더 많은 강의가 업데이트 되겠죠?
"무엇보다 바뀌어야 할 건 사람들의 편견"
시각장애인에 대한 PC나 모바일 기기 등의 배려는 점점 나아지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장애인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기능을 지속 개발해 스마트폰에 적용해 왔는데요. 갤럭시 S6에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지체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기능을 채용, 업계 최고 수준의 접근성을 확보했죠. 최 교사 말에 따르면 스마트폰에 대한 관심이 높은 시각장애인이 생각보다 많다고 하는데요. 시각장애인들도 스마트폰 신제품의 새로운 기능에 관심을 갖고 전문가 못지 않게 다양하게 이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시각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이 개발되면서 그들의 삶도 보다 편리해졌죠. 애니컴 강의실에도 시각장애인이 스마트폰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10개의 스마트폰 활용 강의가 등록돼 있습니다.
이렇듯 시각장애인들도 정보화 시대에 맞춰 편리한 삶을 누리고 있는데요. 최 교사는 바뀌어야 할 건 무엇보다 '사람들의 편견'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장애인을 '도움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시선이 많기 때문인데요. 물론 도움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장애인이 뭘 할 수 있겠어'라는 사람들의 그릇된 생각이 장애인들을 더 힘들게 하기 때문이죠.
최 교사는 사람들의 이러한 편견에 맞서 싸우듯 또 하나의 꿈에 도전하는데요. 바로 박사 과정 공부입니다. 영어에 이어 특수교육 과정을 공부 중인 최 교사는 비록 비장애인보다 시간은 오래 걸리더라도 포기하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했는데요. 이뿐만 아니라 애니컴 페스티벌에서 열리는 정보화 대회에도 참가할 용의가 있다고 합니다. 워낙 검색 실력이 뛰어난 시각장애인들이 많아 아직까진 망설여지지만 언젠간 도전할 것이라고 하는데요. 최유림 교사의 끝없는 도전, 삼성전자 뉴스룸이 응원합니다.
김도형
아시아경제 2011.05.13. 13:52
[아시아경제 김도형 기자] 앞을 전혀 못 보면서도 과연 훌륭한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스승의 날을 이틀 앞둔 13일. 천안 불당중학교를 찾았다. 시각장애인 최유림 교사(28)의 영어수업을 직접 참관하기 위해서다. 그는 5년 전 시각장애인으로 국내 최초로 일반학교 교사로 발령돼 화제가 된 인물이다.
앞은 커녕 빛도 분간하지 못하는 전맹(全盲)이지만 어느새 5년차 교사가 됐다.
이날 2학년3반에서 진행된 영어수업은 막힘이 없었다. 최 교사는 아이들에게 영화 '인셉션'의 한 장면을 틀어줬다. 최 교사 자신은 화면을 볼 수 없지만 노트북을 활용해 능숙하게 영화를 반복해 보여주며 수업을 진행했다.
아이들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대사를 들으며 유인물 속의 빈칸을 채워나갔다. 교과서를 지루하게 여기는 아이들을 위해 최 교사가 특별히 준비한 수업이다.
대형 벽걸이 TV를 칠판삼아 노트북 자판에 'Proposal'이라고 입력한 뒤 글자 크기를 40포인트로 키우는 솜씨가 매우 능숙해보였다. 노트북을 다룰 때 최 교사는 고개를 돌려 귀를 노트북 쪽으로 기울인다. 노트북에 깔린 '센스 리더'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콘과 문자를 음성으로 들으면서 사용하는 것이다.
그는 어떻게 교사의 꿈을 이룬 것일까. 오늘의 그를 있게 한 이도 역시 선생님이었다.
임용고사 면접을 함께 준비하면서 동료들에게 '유림이의 어디가 가장 병신 같니?'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하면서 자신을 유난히 혹독하게 단련시켰던 휴버트 교수. 가슴 속에 품고만 있던 '영어 교사'라는 꿈을 끄집어내서 이룰 수 있도록 옆에서 용기를 붇돋워 준 강용구 교수. 서울맹학교에서 혼자 입시 공부를 하던 시절 말 없이 등을 토닥여주던 '멘토' 구자영 선생님. 최 교사의 성취 뒤에는 역시 많은 '스승'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11일 용산의 서울맹학교 이료전공교육관에서 만난 이인학 교사(46)도 그런 선생님 가운데 한 분이다.
최 교사와 마찬가지로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이 교사는 서울맹학교에서 당시 고교 2학년 과정이던 최 교사를 가르쳤다. 이 교사는 그 때부터 지금까지 최 교사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조언을 하는 사이다. 이 교사의 입에서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이 나왔다. 아끼는 제자 최유림을 두고 하는 말이다.
초등학교 6학년때 고열로 실명한 이후 서울맹학교에 입학해 29세에 교단에 선 이인학씨는 "선생님이라면 반드시 담임을 맡아봐야 한다"며 "아끼는 제자에게 그것만은 꼭 얘기해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일까. 지난 2008년 이틀 만에 담임교사를 그만둔 아픔을 겪은 최 교사는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태도를 가르칠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천안=김도형 기자 kuerten@
국민일보 2008.02.01. 17:29
최유림이 사는 세상/최유림/둥지
문제는 시선처리였다. 교단에 올라서서 학생들을 바라보지 못했다. 수업시간 내내 대각선 방향만 쳐다보며 입을 우물거렸다. 모의수업을 참관하던 동료들과 교수들이 지적을 쏟아냈다. 비수처럼 파고든 외국인 교수의 한마디. "얘들아 유림이 봐라. 병신같지 않냐?" 눈물이 핑돌았다. 일부러 그런게 아닌데. 앞을 바라보고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는데. 나는 시각장애인이니까.
"지금까지 그런 비판을 받은 적이 없었어요. 저 아이는 장애인이라 그렇다고 생각하고 주변에서 아무도 말을 해주지 않은 거죠. 교수님은 모욕을 주는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해 오랫동안 굳어진 제 습관을 고쳐주고 싶었던 겁니다. 제가 임용고시에 합격할 수 있도록 말이죠."
충남 천안두정중학교 영어교사 최유림(24·사진)씨는 전맹(全盲)장애인이다. 희끄무레한 명암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최씨에게 세상은 온통 암흑천지다. 그는 지난해 중등교원임용시험에 합격했다. 1급 시각장애인이 특수교육과가 아닌 일반과목 임용고시에 합격한 것은 최초였다. '최유림이 사는 세상'(둥지)이란 책에는 그 과정이 담겼다.
"어렸을 때는 희미하게 앞이 보였습니다. 색깔이나 형태도 인식할 수 있었어요. 지금도 뚜렷히 기억나는 게 지하철 독립문역 벽에 새겨진 태극문양입니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그 강렬한 색깔을 더 잘 보려고 두 손을 창에 대고 눈을 바짝 갖다 대곤 했어요. 그때마다 어찌나 가슴이 뛰던지…."
초등학교 때 완전히 시력을 잃은 최씨는 다른 시각장애인들처럼 맹학교에 들어갔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안마를 배우고 침술을 익혔지만 그의 가슴은 공허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었다. 장애인이 아니라 일반인을. 특수과목이 아니라 영어를.
"안마나 침술을 계속 공부했다면 심적인 부담은 덜했겠죠. 더 편안하게 생활도 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었어요. 장애인이 일반인에게 도움만 받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도 보여주고 싶었고요. 적어도 제가 가르친 학생들은 장애인 선생님에게 배운 가르침을 쉽게 잊진 않을테니까요."
악전고투.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수능 준비를 할 때는 새벽 5시에 일어나 과외수업을 받았다. 수학정석은 처음부터 끝까지 송두리째 외웠다. 임용고시에만 꼬박 3년을 투자했다. 1차 지필고사, 2차 한글면접과 영어면접, 논술과 학습지도안 작성, 수업시연까지…. 2007년 2월, 결국 합격증을 거머쥐었다. "막상 합격하니깐 생각만큼 좋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직 어리기만한 장난꾸러기 중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칠지 걱정이 앞서던데요."
최씨는 다큐멘터리를 즐겨본다. 히말라야를 오르는 등반가들이 나오는 프로는 빼먹지 않는다. "1년 내내 눈으로 덮여있는 신비롭고 장중한 히말라야를 본 적은 없지만 그들이 헉헉거리며 내뿜는 거친 숨소리를 듣기만 해도 얼마나 힘든지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운동도 즐긴다. 수영은 수준급이고 최근에는 골프를 시작했다.
"골프는 확실히 자기 자신과의 싸움인 것 같아요. 마음을 비우고 몸에 힘을 들이지 않으면 잘 맞는데, 좀 잘된다 싶어 조금만 욕심을 내면 바로 안맞아요. 공이 안보이는데 어떻게 치냐고요? 골프는 멘탈 스포츠잖아요."
김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