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친 글] 텔레비전을 사려면 / 정유철

텔레비전을 사려면 / 정유철 생활이 불편해진 건 텔레비전이 고장 난 이후부터였다. 밥 먹을 때, 저녁에 모여서 이야기 할 때 우리 삼남매는 텔레비전을 본다. 세명 다 나이 차이가 많이나서 그런지 조용한 공간에 함께 있는 게 어색하다. 그러니 각자 방에서 나와 함께 있을 때는 적막하지 않게 꼭 텔레비전을 켜놓는다. 그런 텔레비전이 어느 날 고장났다. 우리 집 텔레비전은 32인치짜리 LG에서 만든 것인데 105사이즈 내 반팔 티를 펼쳐 놓은 정도 크기다. 다른 집에 갔을 때 그 넓이와 관계없이 텔레비전은 굉장히 큰 걸 보고 부러운 적이 많았다. 그런 걸로는 넷플릭스만 틀어도 영화관 같을 것 같아서 부러웠다. 또 그렇게 커다란 화면으로 플레이스테이션(비디오게임)을 하면 어떨까 정말 궁금했다. 그런데 이젠 이 작은 텔레비전까지 볼 수 없게 되다니 마음이 아팠다. 텔레비전을 살까 생각도 해 봤다. 그런데 또 새로 사는데 텔레비전을 작은 32인치 짜리는 마음에 차지 않았다. 그렇다고 누나나 내가 덜컥 커다란 텔레비전을 살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텔레비전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커지기 시작한 건 아빠의 한마디로부터였다. 하의도에서 염전을 하시는 부모님은 비가 오면 목포에 나오신다. 오랜만에 가족들이 다 모여서 집 앞 식육식당에 가거나 집에서 고기를 굽는데, 그날은 운 좋게도 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누나와 엄마는 밥상을 차리고 내가 불판에 고기를 올리자 그때 아빠가 내 동생 유현이에게 말했다.우리가 기다렸던 순간이다. 텔레비전이 고장난 걸 알면 아빠가 고쳐주거나 새로 사주실 것이라는 게 우리의 예측이었다. 누나와 나는 유현이를 쳐다봤다. 유현이는 고장난 텔레비전 키고 아빠에게 말했다.“텔레비전 고장 났는데요.”“그럼 사야겠고만.” 밥을 먹고 다 같이 이마트로 갔다. 마트에 오기 전 엄마는 텔레비전 사러 가냐면서 큰 소리를 내며 집에 있으라고 말했다. 집에 떨어진 생필품만 사고 다른 것들은 구경만 하기로 약속하고 이마트에 도착했다. 하지만 도착해서 우리가 바로 향한 곳은 전자제품 코너였다. 32인치 텔레비전을 보는 동안 세상에는 좋은 텔레비전이 정말 많아졌다. 세로나 가로로 돌릴 수 있는 것, 화질이 8k라서 축구장 관중 얼굴까지 다 보이는 것, 3D로 보이는 것 등 다양했다. 누나와 나는 이마트로 오는 길에 카톡으로 은밀하게 상의했다. 최고급 텔레비전은 어차피 안되니 적당한 것을 골라 속전속결로 사자는 게 우리 작전이었다. 엄마는 다른 물건을 보러 가고 아빠와 우리 삼남매는 전자제품 판매원을 찾았다. 판매원이 여러 텔레비전을 소개하자 누나는 65인치 정도에 가격대까지 얼추 정해서 우리가 원하는 텔레비전을 설명했고 바로 볼 수 있었다. 가격도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요즘은 전기 효율 등급이 1등급이면 나라에서 지원 해준다는 말까지 듣자 아빠는 금방이라도 살 것처럼 신중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 거기에 유현이가 한마디 더 보태서 이런 티비로 피파(축구 게임)하면 진짜 축구 같겠다며 사면 안 되냐고 했다. 모두가 아빠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던 그때 엄마가 오고 있는 게 보였다. 아빠는 엄마를 보시더니 엄마 허락을 받아야 살 수 있다 하셨고 엄마는 오면서부터 계속 고개를 저으면서 오고 계셨다. 그렇게 엄마와 약속대로 정말 구경만 하다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이 상황이 아쉬우면서도, 엄마 몰래 속전속결로 텔레비전을 사려고 한 작전이 웃겼다. 다음 날 부모님은 하의도로 가셨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아빠가 혼자 목포에 나오셔서 텔레비전을 사러 가자 하셨다. 유현이는 학원에 가서 없고 누나와 나, 아빠 셋이서 목포 여러 군데를 돌아다녔다. 제일 괜찮았던 곳은 홈플러스에 삼성 텔레비전이다. 누나가 아는 판매원이라 가격을 낮춰줄 수 있다 해서 그곳에서 사고 텔레비전은 그로부터 2주 후에 집으로 설치하러 온다고 했다. 아빠는 어떻게 엄마에게 사도된다는 말을 들었을까 궁금했다. 역시 엄마의 허락 없이 사서 큰일을 치르느니 기다렸다 사는 게 정말 현명했구나 생각했다. 너무 궁금해서 아빠한테 여쭤봤다.“엄마가 티비 산다고 하니까 뭐라고 했어요?”아빠의 대답을 듣고 누나와 나는 깜짝 놀랐다. “응? 말 안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