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의 글은
2014년 1월 10일 포스팅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을 살펴보면
이스라엘의 위치를 험난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손자 이삭의 아들 야곱의 후손으로
열 두 지파를 형성하였습니다.
그 열 두 지파 가운데서도 오늘날의 이스라엘은
유대 민족이라는 유다 지파입니다.
야곱과 쌍동이 형인 에서의 후손은
에돔 족속으로 오늘날 요르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갈에게서 난 이삭의 이복 형인 이스마엘의 후손은
오늘날 일반적으로 중동 지역의 국가들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의 후손은
아랍 지역의 나라에 널리 분포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은
모압과 암몬 족속입니다.
같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열방의 국가를 형성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에게 나타났고.....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성경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신약 시대는 열 두 지파의 이스라엘 가운데 오직 유다 지파의 유대 만족만 남아
그루터기의 복음을 예수의 하나님 나라로 형성하였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는
열방의 관점에서 볼 때 편협한 복음의 종말론적인 가시밭 길,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이 구약을 정경으로 인정하면서도 신약을 인정하지 않듯
세계의 모든 나라와 민족들이 구약과 신약을 정경으로 깨닫기는 참으로 어려운 험산준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난 도올과 같은 학자는
구약을 성경으로 믿는 신앙은 서낭당(성황당) 종교라고 할 정도입니다.
오늘날 안티 기독교의 개독질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구약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 가운데
창세기와 출애굽의 이스라엘 역사는 유대 학자들에 의해 설정된 역사라고 주장합니다.
뿐만 아니라 안티 기독교의 개티들은
성경의 하나님을 사막의 잡신 야웨라고 폄하합니다.
그리고 바벨론 만신전의 한 귀퉁이에 있는
이스라엘의 토속신으로서 여호와일뿐이라고 억측합니다.
안티 기독교의 바람은
오늘날 기독교 신앙이 설 자리가 없게 만듭니다.
특히 민족의 정서가 강한 사람일수록
기독교의 신앙을 갖기 참으로 어렵습니다.
복음의 정상은
태산등정과 같습니다.
태산의 정상에 오르는 길은
참으로 멀고도 험하기만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오늘날 구약과 신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사람들 가운데
실존적인 인본주의 신앙이 대부분입니다.
문득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좁은 길을 말씀하시면서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이 분명하지만
대중의 문화는 넓은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절대 진리의 가치가 무너진 포스트 모던 시대에
프리모던 의식으로 살아간다는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세계 문화의 방향은 다원주의로 소셜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소통과 공감의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종교 다원주의 사상은
좁은 문, 좁은 길의 예수의 하나님 나라마저 종교 통합과 연합 운동으로 씨를 말리고 있습니다.
머나 먼 예수의 하나님 나라......
누가 있어 끝까지 인내의 믿음으로 안칙할 수 있을찌.....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는 예수님의 말씀은
인내의 믿음으로 언약적 복음 신앙을 가진 예수의 하나님 나라 참된 성도에게
위로와 소망의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초대형 맘모스 교회는 많고.....
목회자가 포화 상태인데도 신학도는 줄어들지 않습니다.
종교 사업.....
복음의 가시밭 길을 살짝 비켜만 가면 사이비 종교의 탈을 쓴 부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열매로 나무를 알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거짓 선지자의 유혹일 뿐입니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위해서 사도적 전통을 보수하며
믿음과 복음의 진보를 이루며 세상 가운데 복음의 빛을 비출 사역자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된 예배자입니다.
복음의 진보는 자유주의로의 변질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파고드는 역동적인 복음의 정체성입니다.
믿음의 진보도 신인협력의 발전된 진보주의 사상이 아니라
세상을 새롭게 변화 시키는 역동적인 믿음의 능력, 그 자체입니다.
종교적 영성이 아니라 믿음과 복음의 진보를 이루는 것이
예수의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창조적 구속의 원리입니다.
믿음과 복음의 진보를 이루기 위해서
진리의 복음과 구원의 말씀에 깨어 있어야합니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경청하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바로 그곳에 영원한 예수의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노숙자의 라면 한 봉지, 빵 한 조각에서 생존의 마지 노선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살기 위해 먹고....먹기 위해 일하는 인생의 가는 길은
종말론적인 죽음의 언덕을 향하여 달음질합니다.
산약초 산행을 하다보면
수 많은 무덤을 목격합니다.
누군가의 소중한 생명의 삶이 무덤의 흔적으로 남아
인생무상을 느끼게 합니다.
자연의 맑은 향기가 살아 숨쉬는 바로 그곳에서
죽음의 그늘을 느끼며 삶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인생길 나그네의 삶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지닌 길 가는 순례자를 만나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성령의 음성으로 듣는다면 영원한 생명의 복을 누릴 것입니다.
성공과 번영의 경쟁하는 길에서 얻는 삶의 보금 자리가 더 없이 중요하지만
빵 한 조각 앞에 놓고 기도하는 백발 노인의 두 손 모은 기도의 손은 자기를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입니다.
참으로 좁은 문 좁은 길 가는 나그네의 손에 들여진 언약의 말씀으로 믿음과 복음의 진보를 이루며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삶의 그루터기로 남긴 자는 영생의 복을 누릴 것입니다.
일촉즉발의 예루살렘 거리......
남왕국 유다가 멸망하기 전 최후 통첩의 경고가 예레미야 선지자의 식탁으로 있었습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또한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말로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선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 언약의 말을 듣고 지키라"
"이 언약은 내가 너희 조상들을 쇠풀무 애굽 땅에서 이끌어내던 날에 그들에게 명령한 것이라
곧 내가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순종하고 나의 모든 명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죄의 악이 넘치는 예루살렘의 거리에서
생명의 언약을 외치는 예레미야 선지자는 구원의 말씀을 가진 길 가는 나그네였습니다.
예루살렘 거리에서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만나지 못한 예레미야는
말씀대로 더 이상 예루살렘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지 못하고
시냇물처럼 흐르는 눈물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성령과 진리로 예배하는 바로 그 한 사람을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은 영원한 하나님의 자기 백성으로 찾으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새 언약은
어둠의 빛이요, 죄의 악으로 심판 받을 죄를 씻는 영원한 샘물입니다.
사막의 샘......
오아시스 같은 생명의 열린 샘을 가진 바로 그 한 사람을 찾아서
언약의 단금질은 거칠게 시작되었습니다.
생명의 그루터기인 언약의 말씀을 성령의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 믿음의 진보와 복음의 진보를 이루어
세상 가운데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가진 길 가는 순례자......
바로 그 순례자로 거듭나기 위한 복음과 믿음의 단금질로
죄를 씻는 샘물을 찾아서 영생의 구원을 믿음의 선물로 가졌습니다.
사막의 샘이라는 닉네임을 얻은 바로 그 순례자는
복음의 가시밭 길을 불로 연단한 금으로 얻었습니다.
사역자로 처음 만나 신고식을 받고......
복음의 감이 전혀 없는 돌밭과 가시덤불인 것을 느꼈습니다.
장로님과 권사님을 부모로 둔 신앙의 가정에서 자라나
중국 단기 선교 갔다가 선교 사역에 감동을 받아 고국에 돌아오지 않고
중국에 그대로 눌러 앉았습니다.
선교사의 선교 사역을 도우면서 중국 선교에 헌신된 연상의 자매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으면서
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평신도 사역의 한계를 느끼고 신학을 하여 총신을 졸업하였습니다.
누구보다도 사역의 사명을 선교로 깨달은
복음의 충성스런 헌신자로 거듭났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검증을 거치면서
중국 영성에 쪄든 하늘에서 온 편지의 결정체를 가졌습니다.
중국 선교사들에게 제 2의 경전이라는 감동을 남긴 하늘에서 온 편지는
중국 영성에 쪄든 샤마니즘적인 무속 신앙의 결정체라는 말에 발끈하였습니다.
충돌....강렬한 복음의 임펙트....
복음과 영성의 충돌은 언약적 복음으로 거칠게 단금질 되었습니다.
B형은 세 번 거듭나야 사람이 된다는 말로
마음의 연단은 거칠게 단금질 되었습니다.
타고난 B형의 체질이 난데없는 비판을 받고.....
선교의 사명으로 거듭난 중국 영성이 무속 신앙의 뿌리라는 질타는 감당하기 불가능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유 없는 반항의 중2병이 나타나고
사이코패스적인 안티의 거친 항변이 완고한 마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B형의 곤조가 헌병대 기질로 나타나는 끔찍한 마음의 벽을 느끼면서
"참된 믿음이란 무엇인가? 참된 복음이란 무엇인가를 거역할 수 없는 선포된 말씀으로 증거하였습니다.
성경에 대한 복음적인 시선을 갖기 위한 개인 트레이닝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카페의 초록향기와 복음 편지의 글을 두루 섭렵하는
2여년의 세월이 흐르고.....천외천의 하늘을 우주적 하나님의 나라로 발견하였습니다.
어느덧 언약의 말씀을 생명의 그루터기로 갖지 못한 가시덤불의 마음밭을 복음의 말씀으로 기경하여
태산등정의 험산준령을 오르는 복음의 가시밭 길을 그리스도의 향기를 지니고
길 가는 순례자가 되었습니다.
언약의 뿌리를 생명의 복음으로 가진 길 가는 노래하는 순례자는
복음의 가시밭 길을 흔연히 가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한 참된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의 전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