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기쁨 (잠 23:15-18)
15 내 아들아 만일 네 마음이 지혜로우면 나 곧 내 마음이 즐겁겠고 16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 17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이 시간에 “하나님의 기쁨”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는 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기쁘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까요? 엡5:10에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늘 생각하시고 고민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전후문맥을 살펴보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악을 피하고 선을 취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철저히 회개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어떻게 회개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요?
1. 깨달아 돌이키는 것입니다.
15절 “내 아들아 만일 네 마음이 지혜로우면 나 곧 내 마음이 즐겁겠고” 여기서 아들의 지혜로움은 앞에서 말한 부모나 교사의 훈계의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자녀가 훈계를 받아들여 악에서 떠나며 지혜롭게 되는 것은 그를 훈계한 자의 마음까지도 즐겁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깨닫는 것이 은혜입니다. 깨닫고 돌이킨다면 하나님께서 하늘에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 아홉보다 더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매를 맞고도 깨닫지 못하면 더 큰 매를 맞든지 아니면 그대로 버림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속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무지한 사람은 맞고도 깨닫지 못하고 반복하고 또 손해 보고도 깨닫지 못해서 또 반복합니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역사는 반복합니다. 그러므로 지난날의 잘못을 잊지 않아야 그 치욕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훈계를 잊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훈계하시는 것은 깨닫고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갈4:28에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했습니다. 우리는 이식과 같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로 살아야 하고 이삭의 생애를 본 받아야 합니다. 이삭의 생애는 야곱과 다릅니다. 이삭은 징계도 없고 고난도 없습니다. 그의 생애는 그렇게 평탄할 수가 없습니다. 반면 야곱은 불같은 시련의 연속입니다.
그 차이는 순종의 차이입니다. 이삭은 믿음과 순종의 사람입니다. 모리아 산에까지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것 보세요. 아들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한 아브라함도 위대하지만 아들 이삭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순종하는 사람은 자기를 이미 꺾었기 때문에 고난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벧전1:14-15에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깨달아 돌이켜 지혜로운 하나님의 기쁨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16절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 즉 앞의 말씀처럼 훈계를 통하여 바로 사는 열매를 맺는다면 그것은 그를 교육한 자에게도 큰 기쁨이라는 것을 거듭 강조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마12:34에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하신대로 지혜로울 정도가 아니라 그 지혜가 마음에 가득하여 그 지혜가 인격이 되고 나의 지혜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려면 성경을 읽어 하나님의 생각으로 가득히 채우시기 바랍니다. 죄에서 돌이킨 것으로 다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요리문답 제 3장 11문에 보면 “죄란 하나님의 법을 순종함에 부족한 것이나 혹 어기는 것이라.” 그러므로 회개하되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이 되길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사상이 되고 나의 소원이 되고 나의 노래가 되어야 합니다.
다윗을 보세요. 시119:54-56에 “내가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율례들이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의 법을 지켰나이다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들을 지킨 것이니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이었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버릴 뿐 아니라 하나님께 합당한 사람으로 변화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을 더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17절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여기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한다는 것은 악인의 어떤 것을 동경하여 그것을 얻기 위해 열심 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죄인의 형통 부러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즉 하나님보다 다른 부러운 것이 있다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한 번은 경찰이 패싸움을 하던 일진회 소속 아이들 몇 명을 구속하여 조서를 받던 중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 고교생 이야기인데 그 학생이 자기 미래의 꿈은 조폭이고 조폭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상당수 학생들의 꿈이 조직폭력배랍니다.
이 사회가 이렇게 된 데는 조직폭력배들을 미화하는 영화나 드라마나 코믹한 프로들의 영향이 큽니다. 이런 매체들이 조폭을 너무 친근하게 다가오게 만들었습니다. 그동안 매체들이 조폭이 되면 멋있고 남자답고 의리 있고 남이 나를 건들 수 없는 자리에 서고 주위에 많은 여자들이 항상 있고 검은 안경에다 외제 승용차 타고 다니며 부유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었다는 말입니다. 잘못된 동경심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런 극단적인 예 말고 누가 돈 벌었다. 누가 성공했다. 누가 어떻게 되었다. 그것이 부러우십니까? 부러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잘되게 하시면 잘 될테니 조금도 부러워 마시고 여유 만만하시고 시기하지도 마시고 잘되라고 마음껏 축복하십시오.
우리가 부러워하지 않을 것은 하나님보다 더 부러울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냐? 재물이냐? 하나님이냐? 세상이냐? 두 갈래 길에서 판단을 잘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도 아들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도 세상 부귀영화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했기에 그가 구하지 않은 것까지도 주셨습니다. 그 시험에 합격하세요. 매사에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것이 합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부자 청년은 예수님을 따르기를 원했지만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계명을 다 지켰다고 했지만 계명의 중심인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에 대한 실천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더 사랑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하나님과 한 소망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18절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여기 장래는 이 땅의 미래에 그치지 않고 종말론적인 최후의 심판 날의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는 장래입니다. 소망 역시 그렇습니다. 영원한 것입니다. 이것이 진실로 훈계를 받아들여 회개하여 돌이킨 자의 최후 승리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발견되는 진리 한 가지는 하나님의 목표는 이 땅 현세가 아니라 영원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목표를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하나님의 목표는 영원한데 우리의 목표는 이 땅이라면 기쁨이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이 땅에서 다 누리면 내세에 누릴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하늘에 쌓아야 합니다.
눅10:20에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큰 일한다고 기뻐하지 마세요. 이 땅에서 보잘 것 없다고 낙심하지도 마세요.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고 우리의 상이 하늘에 쌓인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온전히 하나님께만 영광 돌려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이걸 알지 못하고 지상에서 다 받으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참 신비합니다. 우리가 철저히 내세적일지라도 하나님의 복은 현세에서부터 쏟아집니다. 우리가 하늘에 쌓으면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문을 여셔서 지상에서도 넘치게 쌓아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22:4에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하였습니다. 주를 위해 살면 주님도 우리를 위해 살아주십니다. 육신적으로도 손해가 없습니다. 에녹의 삶이 그랬습니다. 히11:5에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하나님 기쁘신 대로 살았더니 육체의 죽음까지도 면제시켜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셨던 예수님처럼 우리들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징계와 훈계를 당할 수밖에 없던 우리들이지만 진실로 회개하면 하나님의 기쁨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진실로 돌이켜 가장 하나님만 믿고 하나님만 순종하고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만 소망 삼는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가장 지혜로운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