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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켤 수 있는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
*2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그리고 오늘도 똑같은 일이 저기서 일어났습니다. 동쪽에서 만난 것과 똑같은 일이 서쪽에서 만났습니다.
빛이 절대적으로 오려고 하는 다른 빛의 눈부심 속에서 살던 사람들은 빛 대신 눈부심을 받았기 때문에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이방인의 땅, 스불론과 납달리와, 갈릴리, ...이방인의 땅 갈릴리에는 큰 빛이 있었더라.”
지금은 일곱 번째 교회시대입니다. 그 태양이 동방에서 빛나기 시작할 때마다 서방에서도 같은 태양이 비추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그렇게 모든 시대를 통해 내려온 동일한 빛은 오늘날에도 동일한 아들이십니다.
다만, 무엇일까요? 알곡이 익어가는 계절처럼요. 지금 있는 태양은 올 가을, 올 가을 곡식을 익히는 태양과 같은
태양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시대인 오늘날은 그들이 그랬던 것과 이것까지 모두를 더한 빛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썩은 만나를 고집하고 교회의 전통과 신조들로 빛을 차단하고 난쟁이처럼 살기를 원합니다.
“나는 단지 그것을 보지 않기를 거부합니다. 다 말도 안 돼요.기록된 성경이 전부에요” 그리고 그들이 믿는다고
주장하는 바로 그 성경이 마지막 날에 빛을 가져다주는 동일한 성령에 의해 확인되고 있는데도 부인합니다!
이제 이해하십니까? 말라기4장에서 “아비의 믿음이 자식에게로, 자식은 아비에게로”라고 말한 것을 잘 보십시오.
예수님의 초림 전에 침례요한에게 임했던 그 영이 재림 전에 이 마지막 시대에서도 임하셨습니다.
정확히 그 영적인 빛이 동쪽에서 서쪽인 이곳에 왔습니다. 왜일까요? 동방과 서양이 만났으니까요.
바로 우리 눈앞에 있는데도 그들은 그것을 보지 못하죠. 왜요? 예수님이 “그럼 그냥 내버려 두라.”고 말씀하신
것도 당연하죠. “그들은 소경이니 소경을 인도하면 모두 구덩이(지옥)에 빠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으니까요.
다른 시대의 빛은 이 빛을 반사했을 뿐입니다. 보이시죠? 오늘날의 태양은 추수를 위해 하나님이...올 7월이나
8월에 있을 태양을 반사할 뿐입니다. 그리고 마틴 루터, 웨슬리, 샌키, 피니, 녹스, 칼빈, 무디, 그 밖의 모든
사람들, 그 빛을 가졌던 저기 있는 위대한 사람들, 침례교회의 존 스미스, 캠벨 교회, 알렉산더 캠벨,
소위 그리스도의 제자들, 기독교 교회, 그리고 그들이 더 많은 이름을 붙인 것들. 저기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시대에, 마지막에 이곳이 어떻게 될지를 반영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여기, 설립자 바로 뒤에 있는 사람들은 무엇을 했나요? 그들은 스토킹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것에서 벗어나서 여기에 작은 껍질로 스스로를 만들었습니다. 진짜 생명의 근원에서 멀어지면 생명이
없죠. 껍질을 벗겨서 여기 땅에 심으면 썩어 없어질 거예요. 당신도 옛날에 썩은 만나를 먹으려고 하잖아요.
수확이 무르익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도들이 그분이 오늘 여기에 계시다는 것을 증명하고 증명하는
복음의 빛으로 잘 익은 양식을 먹는 식탁이 펼쳐져 있습니다. 아멘. 성도들은 빵을 먹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어제의 낡은 껍질, 봐, 거기 다시 심지 마세요. 그것은 썩었습니다. 그건 안 돼요, 같이 있으면
안 돼요. 안 됩니다 소용없어 자라지 않을 겁니다. 그것은 생명에서 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은 생명입니다.
맞습니다. 껍질이 벗겨지고 수염이 빠지고 그런 것들입니다. 그것은 단지 스스로를 반영하고 떨어져 나갑니다.
그것은 생명과 함께 계속되기를 거부합니다. 하지만 빛은 그것을 증명합니다. 오, 세상에! 네, 선생님
어제의, 오, 세상에,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보아야하는지! 어제의 썩은 것들은 오늘은 먹지 마세요. 아시겠죠?
썩어서 벌레가 들어있잖아요. 이 작은 지렁이들 알죠? 세균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우리가 항상 위글테일이라고
불렀던 건 알아요. 조금만 썩으면 어디든 들어가죠. 아시겠죠? 그럼 싫어요. 당신이 만족한다면 그렇게 하세요.
하지만 전 싫어요. 하지만 기억하세요... “그럼 어제는 왜 좋았어?"라고 묻는다면
처음에 밀에 있던 아주 작은 껍질이 알곡에 남아 있으면 알곡이 더 커진다는 것만 알았다면요. 그것이 바로 밀을
꽃피우는 것, 어제에 있었던 것이지만 그것이 곡물에서 분리되어 성숙하지 않으면 사라집니다. 보이시죠?
그러나 그것이 생명을 주는 과정을 거치면 죽으면서 다른 무언가에 섞여서 곡물을 만듭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아멘 알겠어요? [회중들이 “아멘.”이라고 말합니다.]
영국 여왕처럼, 한번은 여왕이 큰 제지 회사에 가서 제지 공장을 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제지 공장을 보여줬는데, 펄프와 다른 것들을 만들기 전에 수년 전에 제지 공장을 보여줬어요,
그래서 그들은 그것으로 종이를 만드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잠시 후, 그녀는 방에 들어와서 크고 오래된 더러운
헝겊 더미 만 보더니 “이게 어디서 왔지? 이게 뭐야? 오,"그녀가 말했다. 그러자 공장 사장이 “이 더러운 걸레로
종이를 만들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저걸로 종이를 만든다고요?”라고 물었죠.
“네.” 그래서 그녀는 믿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떠난 후, 그 남자는 똑같은 더러운 걸레 더미를 가져다가
어떤 과정을 거쳐 깨끗하고 순수한 종이를 만들어냈어요...그리고 그 안에 그녀의 프로필을 넣어 그녀에게 보냈고,
그녀가 “더러운 걸레”라고 부르는 이 안에 자신을 비춰서 보냈어요.
이제 그게 바로 그것입니다. 어제의 죽은 것들, 루터의 메시지, 웨슬리의 메시지, 오순절의 메시지,
그것이 하나님의 성령과 변증의 말씀의 과정을 거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반영을
가져올 것입니다. 아멘. 하지만 그냥 놔두면 더러운 걸레가 됩니다. 아시겠죠?
다른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루터는 웨슬리로, 웨슬리는 오순절로, 오순절은 그리스도로 빚어져야 합니다.
과정을 거칩니다. 복음도 과정을 거쳤습니다. 과정 중입니다. 루터 시대의 칭의론, 우리는 그것을 믿습니다.
웨슬리의 성화론, 우리는 그걸 믿습니다. 오순절 시대의 은사 회복, 성령의 회복, 우리는 확실히 그것을 믿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함께 다 종합하면 무엇이 나올까요? 예수님, 맞아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 예수님이 나오겠죠?
주물공장에서 종을 만드는 사람은 종에 넣어야 할 특정한 음색이 있습니다. 거푸집을 세팅하고 쇳물을 부을 때
그는 황동과 강철, 구리를 엄청나게 많이 넣습니다. 그 이유는 얼마나 많이 넣어야 하는지, 어떤 음색을 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신부를 위해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루터, 감리교, 장로교,
오순절을 너무 많이 넣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무엇을 가지고 나오셨을까요? 그분 자신의 성찰입니다.
그게 뭐죠? 피라미드 메시지처럼, 그것은 바로 위로 쌓여 있고, 이것은 머릿돌과 함께 소수로 들어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지상에서 그분이 가졌던 사역과 같아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분은 그곳에 올 수
없습니다. 머리에서 발까지. 머리... 발은 머리가 아니라 머리가 발을 포장하거나 발을 만들고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려줍니다. 아시겠죠? [회중, “아멘.”] 아름답게도, 그것은 이 시대의 빛입니다. 웨슬리는 위대한 빛이었습니다.
침례 요한에 대해 “그는 그 시대에 큰 빛이었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그랬습니다.
선생님, 깨끗한 걸레...아니면 어제의 더러운 걸레...그대로 있으면...항상 더러운 걸레가 될 뿐입니다.
그것은 옷으로서 그 목적을 달성했지만 이제는 종이가 되었습니다.
칭의는 루터에 의한 칭의에서 제 역할을 다했고, 웨슬리를 통해 성화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성화는 성령의
침례가 될 때까지 제 역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침례는 성령이 교회 안에,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 섞여
예수 그리스도가 성경에서 약속하신 대로 이 땅에 반영될 때까지 그 시대를 살았습니다. 믿지 않으실지 모르지만
저는 그렇게 하도록 만들 수 없습니다. 저는 말씀에 대한 책임이 있을 뿐입니다. 아시겠죠? 맞습니다.
보이시죠? 보여요? 그렇다면 마치 웰치 부흥운동이 일어났을 때 한 남자가 웨일즈에 갔던 것과 같을 겁니다.
한 무리의 남자들이 미국에서 갔어요. 그래서 그들은 내려가서 웰치 부흥회가 어떤 건물에서 열리고 있는지
알아보고 싶다고 했어요. 많은 분들이 웰치 부흥을 기억하실 겁니다. 웨일즈의 웰치 사람들 사이에서 큰 부흥이
일어났죠. 그래서 이 사람들, 이 위대한 목사들은 미국에서 온 신학 박사였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어떤 위대한
일을 했는지 보러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길을 걷다 모퉁이에 서서 몽둥이를 휘두르며 찬송가를 휘파람을
불고 있는 작은 늙은 경찰관을 만났습니다. 그냥 찬송가를 휘파람을 불고 있었어요. 우리가 올라가서 그를 만나서
뭘 할 건지 보자고요. “왜 그러는지 물어보자고요.” 그래서 그들은 그에게 다가가서 “선생님, 웰치 부흥회는
어디에서 열리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모자를 살짝 내밀며 “선생님, 웰치 부흥회는 여기서 열립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오, 바로 그 사람이 웰치 부흥회였습니다.
오 하나님, 우리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반영이라는 것만 이해할 수 있다면, 그분의 말씀이 현현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분의 말씀의 반영입니다. 아시겠죠? “웰치 부흥회는 어디서 열리나요? 어떤 건물에서 열리나요?”
그는 “선생님, 제 마음속에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가 바로 웰치 부흥회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이 땅에서 행동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살았으니 너희도 살고, 내 생명이 너희
안에 있을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을 여러분도 하게 될 것입니다.” 아시겠죠? 교회도 그 자리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셨고,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될 거예요.
그래서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 우리는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분은 이 세상을 비추는 참 빛이십니다.
노아도 그 시대의 빛이었습니다. 그는 빛이었어요. 노아는 그 빛이었어요. 그는 무엇에 대한 빛이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내가 창조한 땅 위의 모든 사람을 멸하리라. 방주를 만들면 그 안에 들어오는 모든 생명은
구원받을 것이다."라는 말씀을 실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노아는 나가서 사람들에게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바로
방주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저 늙은 광신도”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말씀이 현현한 사람이었습니다.
노아는 그 시대의 빛이었어요. 그의 시대에, 그는 빛을 발산했습니다.
모세도 그 시대의 빛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반드시 너를 찾아 가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려가서 강한 손으로 내 백성을 데리고 나와서 이집트에서 내 능력을 보여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저 광야에서 불타는 떨기나무를 만나고, 그 안에 살아계신 “현재시제”의 하나님을 만났을 때에,
모세는 내려갔고, 그는 빛이었습니다. 아멘. 그가 먼지를 가져다가 불어서 “벼룩이 땅 위에 오게 하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당연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먼지가 불기 시작했고 벼룩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할렐루야! 왜? 그는 “내가 이집트에 재앙을 내리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의 빛의 현현이었으니까요. 그는 선지자였습니다. 그가 말한 것은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그날의 그 시대의 빛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빛이었습니다.
파라오는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가졌을지 모르지만, 나머지 모든 제사장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가졌지만,
모세는 빛이었습니다. 왜일까요?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현현하여 보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강한
손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내 영광을 얻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분이 하신 일입니다.
이것이 모세가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이유입니다. 모세가 창조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회중에게 가서 '내일은...'이라고 말하라.'고 말하셨습니다.” 주님께서 “한 줌의
흙을 가져다가 이렇게 하늘에 던져서 불러라'고 말씀하셨어요.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저기에는 있을 것이다.”
아멘! 맞습니다. 오, 자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오! [브래넘 형제가 손뼉을 한 번 친다.] 말씀의 현현!
그분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보냄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조상들에게 분명히 우리를 이곳으로 찾아오셔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때가 가까웠다는 것을 증명하러 왔다.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남겨두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약속의 땅으로 떠나가자!” 그들 중 일부는 “글쎄요, 저는...”라고 말했습니다.
어쨌든 모세는 생명이고 시대의 빛이었기 때문에 그냥 계속 나아갔어요. 그가 가진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약속하신 말씀을 나타내셨고, 모세는 그 시대를 위한 빛이었습니다.
엘리야도 그 시대의 빛이었습니다. “저 언덕에 올라가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네게 먹이를 주라고 명령했다.” 아멘!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며 내려오셨다. “내가 부르기 전에는 하늘에서 이슬조차 내리지 않으리라.” 아멘!
“해를 비추고, 구름을 부르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내가 부르기 전에는 이슬조차도 오지 않을 것
이다.” 그는 무엇이었을까요? 빛! 할렐루야! 그는 빛이었어요. 빛!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현현하신 분이었어요.
그들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주셨고, 굶어죽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전통대로 애굽에서 계속살고 싶어 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그 시대의 빛 가운데서 살고
있었어요. 시냇가에 자리를 잡고, 까마귀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식사도 하고, 돌봐줄 사람도 있고, 모든 것을
다 누리고 있었죠.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그 시대의 빛이었어요.
사람들이 말하길 “이봐요, 우리 동네에 있던 그 거룩한 롤러는 어떻게 됐어요? 글쎄 그거 알아? 저번에 사냥하던
사람이 저기 저 산 꼭대기에서 그 노인을 봤다고 했어요. 지금쯤이면 그 늙은 벌목꾼은 말라죽었을 거예요.”
오, 안 돼요. 그는 빛이었어요. 그는 빛이었어요. 그는 그 시대에 하나님의 빛이었어요.
요한은 이 땅에 왔을 때 신학교가 아닌 광야로 나가 하나님으로부터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는 메시아를 소개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나왔을 때 예수님은 “그는 밝고 빛나는 빛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왜죠?
그분은 말씀이 현현 하셨으니까요. 이사야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음성이 있어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외치는 한... 한 사람의 음성으로
외칠 것이니라.” 여기 그가 왔습니다. 그는 누구였습니까? “광야에서 부르짖는 자의 음성.” 그는 누구였습니까?
말씀, 빛의 현현. 창세기에서 말씀하셨던 바로 그 하나님, 그 하나님이 말씀하셨던 바로 그 빛이 여기 오셨습니다.
“해를 위하여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을 때 해가 존재하게 되었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을 것이라”
고 말씀하셨을 때 그 소리가 여기 나왔습니다. 그것을 보고 있을 때, 그것은 그 시대의 빛이었습니다.
그분은 또한 마지막 날에 말씀하십니다! 아멘! 바벨론 광야에서 외치는 시간의 빛, “내 백성아, 너희는 그녀에게서
나와서 그녀의 죄에 참예하지 말라. 그녀의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거기서 물러가라! 다가올 진노를 피하라!”
요한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여 있다.” 교육도 받지 않았고 설교자처럼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뱀, 막대기, 나무, 도끼, 사물 등 광야에서 익숙한 것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요한은 오늘날처럼 위대하고
크고 좋은 환경에서 자라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는 서서 “아-맨”이라고 말하며
화려한 절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거칠고 메마른 광야에서 곧장 나왔어요. “여러분은 '나는 이곳에 소속돼있고,
저곳에 소속돼있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감리교 신자, 침례교 신자, 장로교에 소속되어 있다고 해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붙잡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는 거리의 밀주꾼과 창녀를 데려가서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만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믿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대신해서 누군가는 그것을 듣고 누군가는 그것을 믿게 하실 것입니다.
요한은 또한 “도끼가 나무의 뿌리에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믿지 않는 나무는 모두 베어져 불에 던져집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요한의 메시지였습니다. 그는 그날의 입증된(현현된) 빛이었습니다.
예수는 요한에 대해 “그는 밝고 빛나는 빛이었고, 너희는 잠시 동안 그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를 원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지자 요한은 뭐라고 말했나요? “그분은 지금 여러분 가운데 서 계십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벗길 자격이 없습니다. 그분이 현장에 오시자마자 나는 떠날 것입니다.” 오, 세상에! 그분은 빛이셨기 때문입니다.
두세 개의 빛도 아니고 네다섯 개의 다른 조직도 아닙니다. 빛은 한분이셨습니다. 감리교, 침례교, 루터교, 성결교,
장로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참 빛이시며 빛은 생명입니다. 그리고 현현된 말씀은 그 시대의 빛입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더라.” 네, 그렇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이 시대에
빛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빛이 있습니다. 그분이 오십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이 시대의 약속을
바라보세요. 오, 세상에! 지금까지 빛났던 모든 빛, 이 일곱 교회시대, 우리는 그들이 어떻게...불쌍한 광경을 보고
거부하는 것을 봅니다. 여기 요한계시록3장이 적혀 있는데 그때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아시겠습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약속, 거부된 빛을 보라. 그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그들은 저기서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왜죠? 그들은 눈부심 속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똑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이세요? “전 루터교 신자예요. 침례교도예요. 장로교 신자예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그냥 “돼지, 돼지”라고 말하거나 자신을 부르고 싶은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도 있습니다. 아시겠죠?
그게 바로 그 의미입니다. 여러분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근본적인 부분으로 들어가면 그게 맞습니다.
“크리스천이세요?"라고 물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여러분 안에 있다면 말씀이 여러분 안에 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내 안에 있다면 빛이 비추고 있을 때
어떻게 그 빛에서 걸어 나갈 수 있을까요? 그게 바로 질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 안에 있는 빛입니다.
저녁 빛이 비추고 있습니다. 신부 나무가 피었습니다.
그 나무 가지치기한 거 기억합니까? “털벌레가 남긴 것은 팟충이 먹고, 자벌레가 남긴 것은 애벌레가 먹는다.”
감리교인이 남긴 것은 침례교인이 먹었고, 침례교인이 남긴 것은 오순절교인이 먹었습니다.
요엘은 “이 나무는 그루터기까지 모두 베어졌지만 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오, 그래요! 그는 그 나무를 예약했습니다. 그 나무는 그분의 신부였기 때문에 그분은 그 나무를 예약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내가 회복시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게 뭐죠? “루터교도들이 먹고 웨슬리교도들이 먹는
모든 것을 내가 다시 가져올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회복시킬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두 여전히 나무의
뿌리에 있기 때문이다.” 아시겠죠? 저기 땅속에 있잖아요. 제가 자매에 대해 말했듯이 흘러내린 수액처럼 거기에
누워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하나님의 나팔이 울릴 것이고, 그들은 어떤 조직과도 관련이 없는 루터교, 감리교,
침례교를 산출했습니다...루터는 아무것도 조직하지 않았어요. 무디도 아무것도 조직하지 않았어요.
교파가 그 뒤를 이어 조직을 만든 것은 껍데기를 가져간 것입니다. 존 스미스는 아무것도 조직하지 않았습니다.
나머지 어느 누구도 조직하지 않았고, 루터, 웨슬리, 또는 나머지 어느 누구도 조직을 만든 것은 그 후에 그
교파가 와서 조직을 만든 것입니다. 성령은 오순절에 아무것도 조직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순절은 교파가 아니라
경험입니다. 오순절은 아무것도 조직하지 않았습니다. 오, 아닙니다. 그러나 오순절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그것을
조직했습니다. 저기 껍질은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종이에 눌러서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형상이 나오게 하는
게 아니라, 자기들이 스스로 끌어낸 거니까 자기들이 할 일이 없는 거예요. 그냥 내버려 두세요.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 빛, 이 나무, 그리스도가 교회에 의해 다시 거부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이 처음에 그랬던 것과 같은 이유, 즉 다른 시대의 빛에 대한 오래된 눈부심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히브리서13장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그분께서 하셨던 일을 똑같이 하시기 때문입니다.
같은 말씀, 그 그리스도는...잘 들어보세요, 지금부터 개인적인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글쎄요, 그 테이프 때문에
지금 꺼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 중이에요. 그냥 놔둘게요. 아시겠죠? [회중이 기뻐합니다.]
하나 물어볼 게 있습니다. 이걸 보세요. “그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도다.” 보세요. 보세요.
그분이 행하신 일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제 잘 들어보세요. 그분은 요한복음14장12절에서 “내가 하는 일을
너희도 행하여야 하리라.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이보다 더 큰일을 너희도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씀은 결코 없어지지 않으리라.” 이제 우리가
시대의 마지막 끝에 있다면 그 “더 큰 일”은 어디에서 일어날까요? 보이시죠? 우리가 여기 있잖아요. 우리는...
로마 달력이 맞다면 이제 36년이 남았습니다. 2천 년마다 세상은 종말을 맞았어 처음 2천 년은 물로 멸망했고,
두 번째 2천 년은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이제 1964년, 36년이 남았습니다. 이집트 천문학 달력에 따르면 17년이
남았다고 하는데, 이보다 17년 앞당겨지면 19년이 남게 됩니다. 예수님은 “택함을 받은 자들을 위해 일이 짧아질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구원받을 육체가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디까지 왔을까요?
“내가 하는 일을 너희도 하리라. 같은 종류이지만 더 큰 일을 너희도 하여라.” 이제 보십시오. 잘 들어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열어주시고 이해하시기를, 그래서 여기서 너무 과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목하세요. 그는 언젠가 말했습니다...그분이 하신 “위대한” 일들을 보도록 합시다.
몇 가지만 잠깐 멈춰 봅시다. 생각해 봅시다. 한번은 그분께서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들은 “우리는 아무것도 없어요.” 예수님은 “뭐가 있냐? 가지고 있는 걸 가져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것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원래의 보리떡 다섯 개를
가지고 빵을 떼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그 빵으로 빵을 만드셨습니다.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맞습니까?
[회중은 “아멘.”한다.] 그리고나서 그분은 “그 물고기를 내게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물고기였습니다.
그리고 그 물고기와 다른 물고기, 또 다른 물고기를 가져다가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맞나요? [“아멘.”]
그러나 마지막 날에 그분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그냥 말씀하시면서 “거기 있을 거라고 하라”고
하셨고, 그 안에 아무것도 없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분에게는 다람쥐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그냥 “있게 하라”고
말씀하셨을 뿐입니다. 아시겠죠? 오, 그분의 말씀은 오류가 없으며 반드시 성취되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을 흔들 만한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보이시죠? 그분이 말씀하시면 거기에 있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시게 놔두세요. 보세요, 바로 그거예요.
보세요, 동쪽, 여기 서쪽이 돌아와서 동쪽에서 만났어요. 모세도 모래를 집어 들고 “땅에 벼룩이 있으라”,
“벼룩이 있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날에는 아무것도 취하지 않으시고 오직 말씀만 취하십니다.
“그대로 두라."고 말하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될 것입니다. 저는 오늘 밤 그분이 여전히 하나님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볼 수 있도록 몇 가지를 간증하고 싶습니다. 그분의 말씀은...“내가 하는 이 일을 너희도 하리니 이보다
더 큰 일도 하리라. 나는 물고기를 잡아서 물고기를 만들었으니 너희는 물고기가 없어도 된다.” 아시겠죠?
그분은 여전히 하나님이며 여전히 같은 아들이십니다. 물고기에서 물고기를 떼어내신 하나님의 아들은 오늘날에도
동일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내가 하는 이 일을 너희도 하리라. 이보다 더 큰일도 너희가 하리라.” “이보다
더 큰 일도 너희가 하리라."고 확대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않으려 합니다. 허! “더 큰 일!”
잠재적인(가짜) 빛. 방금 생각난 게 있어요. 영국에 대해 많이 언급했는데 가짜 빛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어요.
얼마 전 영국 역사상 가장 큰 강도 사건이 일어났던 걸 여러분 모두 기억하시죠?
700만 달러가 걸린 강도 사건이었죠. 전 세계에 그 사건과 비교할 만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일어난 700만 달러의 큰 보류 사건은 런던 경시청에서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해냈는지 아세요? 가짜 조명으로요. 철로에 빨간불이 들어올 때까지 경고등을 켜고 멈춰 섰어요.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강도가 일어났어요. 잘못된 신호등 때문에 영국이 역사상 가장 큰 강도를 당한 것입니다.
영국을 강탈한 거죠. 가장 큰 억류, 가장 큰 강도가 가짜 빛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가 당한 가장 큰 강도는 가짜(거짓) 빛, 눈부심, 그들은 조직이며, 교단입니다.
그것은 그들에게서 성령의 능력과 성령의 인도함을 빼앗아갔습니다. 그것은 교회에서 생명줄을 빼앗아갔습니다.
말씀 대신 교파의 신조들과 교리를 받아들였을 때 말씀도 빼앗겼습니다. 강탈당했습니다.
오, 그들은 말씀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말씀은 시대를 위해 스스로 살아서 스스로를 알려줍니다.
그들은 예수님 시대에도 말씀이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말씀은 “그들은 큰 빛을 보았다”고 말씀 하셨고
그들은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보았지만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왜냐하면 조직되었기 때문입니다.
오, 가짜 빛, 네, 교회는 역사상 가장 큰 강도를 당했습니다. 형제여, 차가운 교단 신조는 입증된 말씀, 한 알의
곡식을 익히지 못합니다. 성경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은 씨 뿌리는 사람이 뿌린 씨앗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보이시죠? 그리고 교회의 신조는 그 말씀을 익히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실제적인 빛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눈보라가 치는 추운 날은 밀을 익히지 못합니다. 맞습니다! 강렬한 햇빛의 따스함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일을 하려면 그 시대의 입증된 빛인,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니까요.
그리고 하나님의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그분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살아 계십니다. 신조와 교단은 결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차갑고 무관심하며 곡식은 땅속에서 썩을 것입니다. 그 아래서는 알곡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하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의 소중한 빌리 그래함 형제처럼 위대한 부흥사.
저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사용하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가 하는 일을 보세요. 침례교와 장로교 사람들
사이에 나가서요. 그들은 뭘 하죠? 교인들을 모으는 거죠?
남침례교가 교파가 가장 많아서, 혹은 다른 개신교보다 교세가 더 커서 저기서 우르르 몰려다니는 거 보이시죠?
가톨릭이 작년에 거의 다 가져갔어요. 신문에서 보셨나요? 네, 그랬죠. 걱정하지 마세요, 침례교와 개신교가 모두
함께 할 테니까요. 그리고 그들은 모두 하나이지만 그것을 모릅니다.
교회 협의회, 교회 협의회는 모두 똑같은 것을 넣습니다. 교단은...왜, 왜 여기 또는 여기 머물고 싶습니까?
이것을 거부하는 한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한곳에 있는 것만 같을 뿐 같은 교단 표기를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는 짐승이고 다른 하나는 표입니다. 그러니까, 거기 있잖아요, 차이가 없잖아요.
여기가 그가 있던 곳입니다. 그가 승인 도장을 밟았고, 거기서 그걸 가져갔어요. 그리고 백악관, 워싱턴 DC,
그리고 교회협의회로 바로 이어졌어요. 성직자들은 성경이 말한 대로 그들을 바로 데려갔어요.
이런, 시계가 그렇게 빨리 안 갔으면 좋았을 텐데! [회중들이, “천천히 하세요.”라고 말한다.]
자, 지금 우리가 어디에 와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다시 거부된 오늘의 약속들을 보세요.
이 마지막 날에 교회가 어떻게 했는지, 교단의 가짜 눈부심! 가짜 눈부심 속에 사는 것이 익지 않는 이유입니다.
이 말씀이 기적을 보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얼마 전에 한 신부가 저를 인터뷰하면서 “브래넘 씨, 어떻게 침례를
받으셨어요?”라고 물었습니다. 이 교회에서 나온 어떤 소녀가 가톨릭 남자애와 결혼해서 가톨릭교회에 들어갔어요.
그리고 그는 그녀를 교회로 데려가려고 했어요. 저는 “제가 그녀에게 기독교 침례를 주었습니다.”라고 말했죠.
그러자 그는 “주교님이 알고 싶어 하십니다.”라고 말했어요. 저는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죠.
그는 “맹세하시겠습니까?"라고 물었죠. 저는 “전혀 맹세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대답했죠.
그러자 그는 “네, 제 말을 믿지 못해도 괜찮아요.”라고 말했어요. 전 맹세하지 않으니까요.
성경은 “'하늘을 맹세하지 말라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이고 땅은 그분의 발판이다'라고 했습니다. '예'는 '예'로,
'아니오'는 '아니오'로 하라'고 말했어요.” 저는 “그분은 제 말을 믿어야 할 겁니다.”라고 말했죠.
그는 “글쎄요, '기독교 침례'라고 하셨는데 침수라니 무슨 뜻이죠?"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게 기독교 침례가 행해지는 유일한 방법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오하이오 강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녀를 물속으로 데려가 침례”를 주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녀에게 침례를 주었는데, 이것이 유일한 기독교 침례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네, 선생님."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내려놓았어요. 그리고 그는 “이상하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알다시피 가톨릭 교회는 예전에는 그런 식으로 침례를 줬어요."라고 말했죠. 제가 “언제요?”라고 물었죠.
그랬더니 그가 말하더군요. 그리고 한참 동안 대화를 이어갔어요. 그리고 그는 “글쎄요, 우리가 원래 가톨릭이죠.”
라고 말했어요. 알다시피, 거기에는 책과 역사가 적힌 책이 놓여 있었고, 저는 “그렇긴 한데, 오늘 해보는 건
어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말하길 “우리에게는 죄를 사하는 능력이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누구의 죄를 사하여 주면 그 사람에게도 사하여 주고 누구의 죄를 간직하고
있으면 그 사람에게도 간직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네, 선생님. 그렇습니다.”
그는 말하길 “그렇다면 교회에 권위가 있지 않습니까? 베드로는 교회의 수장이잖아요.”
저는 “교회가 베드로가 한 것처럼 죄를 용서한다면”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사람들이 '우리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는 말하길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그렇게 하시면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오,” 그가 말하길 ‘성경을 빌려서 하는군요.’라고 말했어요.
저는 “그게 바로 말씀이니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은 그분의 교회 안에 계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 안에 계십니다. '다른 사람의 말은 모두 거짓이고 그분의 말씀이 진리니라.'” 알겠죠?
그래서 그가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기, 어둠 속에서 바로 저기 있네요. 그리고 수천 명의
개신교 신자들이 그 어둠에 빠져들었죠? 신조와 신념을 받아들이는 것까지 바로 그 안에서 진행되고 있죠. 말씀이
바로 나오고, 그것을 증명하고,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그 신조의 눈부심 속에서 그들은 바로 어둠 속으로 나아갑니다. 노아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모든 시대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오늘도 어둠 속에서도 그렇게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의 신조가 그들의 눈을 멀게 했기 때문에
그들의 시대에 그 빛을 거부합니다. 오, 우리는 지금 얼마나 어두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까! 그렇죠! 네, 그들은
그리스도의 참된 영원한 빛을 거부합니다. 차가운 교단은 하나님의 말씀이 교단에 생명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결코
생명을 가져올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더 많은 기독교인이 있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여기 보세요, 기독교인이
저는 그 신부님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만약... 가톨릭교회가 처음에 로마의 니케아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오순절에 시작되었다면...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진짜 참 교회는 로마 니케아에서 시작된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오순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시겠죠? 예루살렘이 교회가 시작된 곳입니다. 하지만 제가 말했듯이...
여기서 저는 이 사람들, 노예와 같은 사람들이 성령을 받고, 그들의 주인이 그들의 능력과 사물, 그들이 하는 일,
즉 죽은 자를 살리고, 방언을 하고, 마귀를 쫓아내고, 예언하는 것을 보았다는 것을 인정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선지자들도 양가죽을 두르고 나와 약초를 먹고 니케아 공의회에 참석하는 등 얼마나 위대한 사람들입니까!
그리고 그들은 거기서 나와서 니케아 공의회로 올라와서 그 말씀을 옹호했습니다.
그러나 그 피비린내 나는 15일 동안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라는 성경의 교리 대신에
니케아 신조로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들였습니다. 이를 통해 모든 개신교 교회가 바로 그
안에서 태어났고, 다른 모든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체에 대한 잘못된 개념; 그들은 성찬을 받고, 성찬을 받고,
포도주를 마시고, “이것은 거룩한 성체, 즉 ‘성령’을 의미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사제가 여러분에게 줍니다.
성경에는 “오순절 날이 다 되었을 때, 한 사제가 길을 가다가 옷깃을 여미며 ‘혀를 내밀고 성체를 받으라’고
말했습니다.”라고 쓰여 있지 않습니다. 아니, '너희들 침례교인, 감리교인, 침례교인 여러분, 여기 달려와서 내게
교제의 권리를 주면 이름을 써주겠다'고 말한 게 아니었어요. 어디선가 편지를 가져오세요.”가 아닙니다.
그때 “그들은 모두 한 자리에 모여 한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몰아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고, 그 소리가 그들이 모여 있던 모든 방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들은 성령의 충만함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거리로 나갔고, 마리아를 비롯한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성령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비웃으며 말하기를, “이 사람들은 새 포도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왜, 그랬을까요? 그들은 교회의 신조에 눈이 멀었습니다. 베드로라는 이름의 작은 두 사람짜리 설교자가
거기서서 말하기를 “유대에 사는 너희와...예루살렘에 사는 너희 유대에 사는 너희는 이것을 알라. 내 말을 들어라.
이것은 술 취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것이 빛입니다. 이것이
말씀이 현현된(표명된) 것입니다.” 아멘. 오늘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그들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돌아섭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모두 도랑에 빠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 생명의 말씀이 육신이 되려면 영원한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오, 세상에! 말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작동하려면 성령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마가복음16장, 예수님의 마지막 사명을 보세요. “온 천하, 온 천하."는 아직
거기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온 천하에 다니며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누구든지 믿고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얻고 믿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라.”
“그들은 설교자와 악수할 것이다...?” 아니, “그들은 좋은 교인이 될 것이다?” 아니요
“그들이 내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해로운 것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오, 세상에!
얼마나 멀리? “모든 피조물” 얼마나? “온 세상”,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이 표적들은...”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이보다 더 큰일도 그가 할 것이다.”
오, 우리가 어떻게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는 제가 말할 수 있는 것 이상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들보다
더 어둠 속에 있습니다. 이제 몇 구절만 더 듣고 빨리 끝내겠습니다... 우리는 그들보다 더 어둠 속에 있습니다.
제가 한 시간 반 동안 여러분을 지치게 한 거 알아요. [회중이 “괜찮아요.”] 하지만 이 테이프는 저 안에서
계속 돌아가고 있습니다. 보이시죠? 그들은 우리보다 더 어둠 속에 있습니다. 제가 그렇게 말했죠. 왜요?
교회는 이 눈부심 속에서 너무 속여서 그것이 진리인 것처럼 보입니다. 자,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지 않으셨나요?
마태복음24장을 보시죠? 예수님은 “마지막 날에는 두 영이 할 수만 있다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할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해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참 교회를 만들기 위해 선택된 신부들이 나올 것입니다.
그때 그들이 진리라고 부르는 이 조직은 실재와 너무 가까워서 오순절주의자들조차도 속일 수 있을 정도로 되어
선택된 자들을 미혹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순절주의자를 감리교나 침례교 교리로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에게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그는 더 잘 알고 있습니다. 루터교 교리로 침례교인을 속이는 것도 안
됩니다. 아시겠죠? 그리고 여러분도 오순절 교리, 거짓 “성부, 성자, 성령”과 그와 같은 모든 것들, 그리고 그들은
조직된 강령과 교파의 신조들로 인해서 이 시대의 빛인 메시지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정말입니다.
오직 선택되어 예정된 신부들만이 그들에게 속지 않을 것이며 나머지는 다 속아 넘어갈 것입니다.
왜죠? 그 가짜 눈부심으로 속이는 겁니다. 뭐 하는 거지? 그들은 눈부심으로 교회를 공의회로 이끌고 있습니다.
그게 마지막 한 단으로 묶일 것입니다. 그녀와 로마가 하나로 연결될 때. 그들이 짐승의 형상을 만들 때, 그게
마지막 징조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가짜 눈부심을 보세요. 저게 뭘 하고 있는지, 사람들을 그리로 이끌고 있죠?
염소는 항상 양들을 이끌고 도살장으로 갑니다. 도축장에서 보셨을 겁니다. 염소는 저기까지 달려가서 양들을
이끌고 뛰어내려서 양들이 들어가게 하죠. 그게 염소가 하는 일이죠. 항상 그랬죠? 어린양 예수님을 도살장으로
이끈 것은 염소였어요. 로마의 염소들! 맞아요. 오늘날 무고한 양들을 도살장에 이끄는 것은 교단의 염소들입니다.
자기 자신과 이름을 저기 책에 새기면 그들은 끝납니다. 그것이 짐승의 표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오랫동안 품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짐승이 무엇이었습니까? 로마의 계급 구조, 최초의 조직입니다.
그것의 표는 무엇입니까? 정확히, 정확히, 정확히 똑같은 것이죠? 결국 3년 반 동안 학살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어둠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빛이 비추는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들어보세요. 우리는 그 빛, 그분이 이 시대를 위해 약속하신 그분의 말씀이 증명되고 입증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진리이며 이 시대의 빛입니다. 오, 세상에! 정말 기쁩니다. 잘못된 것은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얼마 전에 한 목사가 플로리다에 내려가서 쉐보레 차 한 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차가 고장 났다고 하더군요.
그는 그것을 고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차고에 들어갔고, 작은 늙은 정비공이 차 밑과 위로 가서 주위를
쪼아 보았지만 고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해봐도 안 되고 저렇게 해봐도 안 되더군요. 그리고 다른 방법을
시도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발전기를 켜고, 이걸 끼우고, 플러그를 꽂고, 포인트를 꽂아보았지만 작동이
안 됐죠. 도저히 작동할 수가 없었죠. 마침내 멋진 옷을 입은 한 남자가 다가왔습니다. 그는 “제가 조언을 해도
될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작은 정비공은 “네, 선생님”이라고 대답할 만큼 센스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걸로 이것과 이것, 그리고 이것과 이것 ‘이라고 말하며 ’한번 조합해서 시도해 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걸 가져다가 저걸 가져다가 합쳤고, 그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 작은 정비공이 돌아서서
“누구세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제너럴 모터스의 수석 엔지니어였습니다. 그가 만든 거죠. 그가 설계한 거죠?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감리교, 침례교, 장로교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분의 말씀의 설계자, 천지를 창조하시고
그분의 교회를 설계하신 분이 여기 계십니다! 그분이 휴거에 필요한 것에 대해 더 많이 아십니까?
아니면 감리교나 침례교가 휴거에 필요한 것에 대해 더 많이 아십니까? 그분은 설계자이십니다.
그분은 무엇이 필요한지 아십니다. 그분은 그분의 부활의 능력으로 잘 차려입으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분은 오늘도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 가운데 걸어가고 계십니다. 그분은 교회를 휴거의 질서로 세우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아십니다. 그분은 그것을 설계하셨고, 여기 성경에 그 부품들을 모아 놓으셨습니다. 아멘!
이제 그분이 작동하는 것을 지켜보십시오. 오늘 그분이 약속하신 말씀에 대한 믿음이 흐르게 하면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게 될 것입니다. 왜요? 그분이 설계하셨으니까요. 그분은 말씀으로 그분의 교회를 설계하셨습니다.
그것이 그분이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감리교, 침례교, 장로교, 오순절 조직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에 의해.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 네, 선생님.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어두운 시간, 어둠의 한가운데서 저들의 눈부심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5분 정도 남았습니다.) 어둠 한가운데서 누가 어린 신부를 데리고 나올까요? 누가 알까요?
수석 디자이너요. 아, 그렇군요. 이 모든 혼란스러운 눈부심에서! 감리교는 이쪽을, 침례교는 저쪽을, 장로교는
저쪽을, 오순절교는 또 다른 쪽을, 이 모든 것이 사방에서 눈부시게 빛나고 있죠. 그들은 달려가서 여기 이 눈부심
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교적부에 여기에 적고, 저기서 무언가를 찾으러옵니다. 그리고 이쪽으로 오세요.
그리고 저쪽으로 오세요. 이리 오세요...제가 그 사제에게 말했듯이, “여러분 모두가 초대 교회이고, 니케아에서
모인 이 사람들의 교리를 따랐다면, 왜 여러분은 처음에 그들이 가졌던 힘을 갖지 못했습니까?
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들이 했던 일을 하지 않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오, 우리는 지금 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시대에 살고 있잖아요.” 저는 “하지만 말씀은 변하지
않아요. 예수님은 '이 징조는 모든 시대까지 따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지만 내 말씀은
결코 없어지지 않으리라' 하셨습니다. 그게 다입니다.” 그는 “성경에 대해 말씀하시는군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네, 말씀, 즉 그리스도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맞습니다. 바로 그거예요. 보이시죠?
이 눈부심 속에서 감리교는 감리교대로, 침례교는 침례교대로, 장로교는 장로교대로, 각자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불쌍한 신부는 어디 있나? 그녀는 여기 오순절 하나됨에서 잠시 달려와서 거기에 그녀의 이름을 적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여기로 와서 "당신은 우리에 속해야합니다. 우리 교회에 속하지 않으면 신부도 아니잖아요.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여기 그들의 집회에 가서 그들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보세요. 침례교에 가서
그들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보세요. 장로교를 보세요...
저 불쌍한 작은 것은 어떻게 될까요? 보셨죠? 하지만 곧 나오실 거야 걱정하지 마 그녀는 거기 있을거야.
몇 년 전에 한 친구가 말했어. 그는 뉴멕시코에 있었어요. 칼스배드 동굴 근처에서 모임을 가졌어요.
여러분도 들어보셨을 거예요...한 남자와 그의 아내, 그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구덩이 맨
아래까지 내려갔어요. 그리고 내려가서 모든 불을 껐어요. 불을 다 끄고 나니 한밤중이었어요.
여기 이 정원에서 그렇게 하라고 시켰고, 콜로라도에 있는 저쪽 정원에서 아내와 저는 저 뒤에 있었어요.
그리고 불을 켰어요. 손을 이렇게 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거기 어린 여자애가 서 있는데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더군요. 비명을 질렀어요. 너무 어두워서 죽도록 무서워했어요. 불쌍한 여자아이는 사방을 움켜쥐고 아빠,
엄마를 부르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어요. 너무 어두워서 견딜 수가 없었죠. 그런 어둠을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리고 지금이 바로 지금이죠? 맞아요. 너무 어두워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어요. 감리교에 가도, 침례교에
가도, 장로교에 가도, 다 똑같아요. 썩은 만나를 먹어서 그 안에 벌레가 들끓고 있죠. 똑같은 신조, “ 이 신조,
저 신조, 저 신조”와 같은 오래된 신조와 모든 것이 있습니다. 거기엔 그리스도가 보이지 않아요. 보이시죠?
오, 독선적인 사람들이 보이죠, 그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 교단 안에는 훌륭한 사람들이 많아요.
저는 교파라는 시스템을 말하는 거지,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그게 바로 그들이 먹고 사는 거죠. 그들에게 알려주세요! 여기 신선한 음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 서 있던 어린 소녀가 히스테리를 일으키려고 목청껏 소리를 지르고 있었어요. 마치 어린 신부처럼요.
그런데 그거 알아요? 그녀의 남형제가 울면서 말했어요. “여형제, 두려워하지 마세요.” 엔지니어 바로 옆에 서
있었거든요. “여기 불을 켤 수 있는 남자가 있어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작은 자매님, 여기 불을 켜실 수 있는
분이 계세요. 그분은 이 말씀을 살아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어떻게 오실지 모릅니다. 그분이 언제
어떻게 오실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분은 여기 계시며 빛을 켜실 수 있습
니다.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을까요? 저도 몰라요. 하지만 그분은 여기 계시고, 그분은 불을 켤 수 있는 분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분은 그분이십니다. 그분은 빛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을 알려서 빛을 켜시는 거죠. 바로 그거야.
그리스도가 그분의 빛을 비추면 모든 어둠이 흩어집니다. 그분은 분리하십니다. 그분은 그분의 작은 신부를
끌어내십니다. “나는 내 이름을 위해 이방인 중에서 내 이름을 가진 백성을 데리고 나올 것이다.”
그분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좋아요. 감리교, 침례교, 장로교, 루터교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맞습니다.
그분은 빛이시며 진리이시며 빛이시며 그분 안에는 어둠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말씀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오실 때 어둠을 흩으십니다. 말씀은 빛입니다. 맞습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고,
그 말씀이 빛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이 말씀을 하실 때마다 그 시대의 빛이 되셨습니다.
이제 그분은 눈부심이 아닌 이곳에 계시지만 사람들은 눈부심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입증
된 말씀입니다. 그분은 어둠의 시대에 절대적으로 빛이십니다. 네, 그렇습니다. 이 모든 거짓된 눈부심과 것들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이 여기 계십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분의 약속의 말씀인 불빛을 켜세요.
살아계셔 그것은...“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너희도 행하리라.” 그리고 그것은 말씀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그분을 보내신 아버지, 그분 안에 오십시오.
여러분을 보내신 예수님이 여러분 안에 오십니다. 그리고 그분이 하셨던 일, 그분도 똑같은 일을 하십니다.
왜냐하면 (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인간의 육신이 되셨고, 그날의 빛으로 자신을 드러내시기 때문입니다.
여기 있습니다. 저기 있습니다. 빛 안에서 빛으로 가는 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조와 교파에 눈이 멀지 않은 현명한 사람들은 그 빛으로 걸어갈 것입니다. 오, 세상에!
여기 불을 켤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분은 무엇을 하시나요? 이 시대를 위한 그분의 말씀을 입증함으로써.
이 날을 위한 말씀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바로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겁내지 마세요. 그들이 하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주의를 기울이면 어둠 속을 걷게 될 것입니다.
지혜롭게 행동하세요. “다니엘은 “이 마지막 날에 지혜롭게 행하는 자들은 그들의 하나님을 위해 공적을 세울 것”
이라고 말했습니다. 알겠어요? 보이시죠? 그분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처럼 그들은 빛 가운데서 걸을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어둡고, 우리를 강요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이 모든 작은 교회와 물건들이 이제 들어와야
한다."고 선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들어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문을 닫을 겁니다. 그들은 성공할
것입니다. 오늘 밤, 제가 이 시간에 도착하면 정말 세게 치고 싶어요.
이제 그들은 “우리는 문을 닫을 것입니다.” 당신은 그들 중 하나가 되거나 그렇지 않아야 합니다.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사고팔지도 못해요. 그게 끝입니다. 감히 병자를 위해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병든 사람이나 영적인 것을 가진 사람을 위해 기도하다 적발되면 연방법에 따라 사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바로 그거예요. 아시겠죠? 알잖아요. 맞아요 서류에 적혀있어요 네, 그렇습니다. 그러니 넌 할 수 없어 이단에
속해야 해 형제여, 내가 하나 말해주지 지금 당장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셔야 할 때가 올 거야 그럼 넌 끝이야.
그 인봉이 찍히면 그녀는 영원히 거기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알겠지?
그러니 하지 마, 그런 거 믿지 마, 지금 바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말씀으로. 네, 알겠습니다
말씀을 입증하고 그 말씀이 시대의 빛이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분은 육신을 입고 나타나신 빛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이 빛이라는 것을 아는 방법입니다.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메시아가 오실 때 그분이 무엇을 하실지, 그분 자신을 입증하면서 자신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여자가 우물가에서 말하기를, “메시아가 오시면, 그분은 이런 일을 하실 것입니다. 당신은 말씀이신
선지자이시니, 이런 일들을 우리에게 예언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내가 바로 그분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시겠죠?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약속된 말씀에 빛이 비쳤습니다. 빛이 있습니다.
그녀는 곧바로 도시로 들어가서, “내가 한 일을 말씀하신 분을 보러 오너라. 바로 그분이 바로 메시아가
아니겠습니까?” 그게 다였어요. 아시겠죠?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든 그녀는 그분이 메시아라는 것을 알았어요.
모든 시대, 어둠의 시대에 하나님은 항상 빛과 어둠을 구분하는 말씀을 가지고 계셨음을 기억하십시오.
가톨릭교회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던 루터 시대에도 그 말씀이 있었고, 루터를 빛나는 빛으로 보내셨고,
루터는 진리와 어둠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루터교가 뒤틀렸을 때 존 웨슬리를 보내셔 빛과 어둠을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웨슬리안과 감리교, 침례교, 장로교가 모두 엉망이 되었을 때 오순절 메시지를 보내셔서 빛과 어둠을 분리
하셨습니다. 오순절은 그들의 조직에서 그들의 신조와 교리들을 가지고 그렇게 다시 어둠 속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이 말씀이 입증될 때가 왔습니다. 그분은 태초에 그랬던 것처럼 빛, 즉 말씀을 보내시고, 말씀을 보내시면
그 말씀이 스스로 증명하십니다. 빛이 계시지만 그분은 항상 분리하십니다. 태초에 영원하신 작은 빛들처럼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여러분, 제가 말했듯이 저는 지금 5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기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이 뭐라고 말하든 겁내지 마세요.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순간에도 그분은
항상 그 자리에 계십니다. 변함없는 임재, 그분은 항상 그곳에 계십니다. 그분은 빛을 켜실 수 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분은 당신이 무엇을 할 것인지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분은 원하시면 언제든지 스위치를 켜실 수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여기 빛을 켤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사망의 그늘진 곳에 자리 잡은 사람들”, 어떤
이들은 암 아래, 어떤 이들은 교단의 죽음 아래, 어떤 이들은 신념의 죽음 아래, 어떤 이들은 전통적 죽음 아래,
그리고 모든 종류의 죽음 아래 ”큰 빛을 보았습니다.” 그때 빛을 비추신 분은 태초에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신
분과 동일한 분이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그 하나님은 오늘,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현존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분은 불을 켜실 수 있습니다.
핍박이 오더라도 두려워하지 마세요. 빛이 있고, 그분이 당신의 백성을 붙잡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녀는 환난을 겪지 않을 것입니다. 그녀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그녀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녀는 잡힐 것입니다. “어떻게 할 건가요, 브래넘 형제님? 끔찍하게 어두워 보이네요!”
아무리 어두워져 앞이 보이지 않더라도 여기 빛을 켤 수 있는 분이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그분이 교회를
휴거하실 것입니다. “그래, 내 말이 맞아..."라고 말하겠지.
그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풀무불에 올라갔지만, 그곳에 불을 켤 수 있는 분이 계셔. 네, 그렇습니다.
오순절 날에 불어 닥친 그 거센 바람을 다시 켜서 모든 바람과 모든 불을 그들에게서 멀어지게 하셨어요.
그곳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넷째 사람”이라고 불립니다.
오늘 여기 한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유일하신 분입니다! 할렐루야! 그분은 전등 스위치를 손에 쥐고 계십니다.
“사망의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큰 빛이 솟아났다.” 거부하지 마세요. 주님의 이름으로 받아들이십시오.
잠시 고개를 숙이는 동안
아름다운 빛, 빛 가운데로 걸어갑시다, 자비의 이슬방울이 밝은 곳으로 오세요;
낮이나 밤이나 우리 주위를 비추소서,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
아름다운 빛이신 예수님, 우리는 빛 가운데서 걸을 것입니다, 자비의 이슬방울이 밝은 곳에 오네;
낮이나 밤이나 우리 주위를 비추네,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
빛의 성도들이여, 오라, 선포하라,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
그러면 천국의 종소리가 울릴 것이다, 예수, 빛이시여...
무엇이? 입증된 말씀은 오늘날 예수님입니다. 그분은 말씀이십니다.
우리는 이 빛 안에서 걸을 것입니다, 정말 아름다운 빛입니다, 자비의 이슬방울이 밝은 곳에 오시네;
오, 낮과 밤에 우리 주위를 비추소서, 예수, 빛이시여...
고개 숙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의 입증된 말씀인 성령의 인도 아래 이 빛 안에서 걷기를 원하십니까?
아시겠죠? 하나님께서 오늘 약속하신 말씀, 그 말씀이 나타난 것을 보십시오! 태초에 그분이 바로 그런 분이
아니었나요? 그분은 말씀이셨습니다. 아들이 태어나셨고 그분은 말씀이셨습니다. 그분은 메시아였습니다.
그분은 입증 된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 하나님은 태초부터 끝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이 시대를 위한 말씀이 있고, 그분은 그 말씀을 입증하고 계십니다. 혼란과 어둠과 눈부심 속에서 그것은
그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그것과 같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것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교파의 신조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하나님의 권능으로 마귀를 쫓아낸다면 너희는 누구로 마귀를 쫓아내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들을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를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오, 손을 들면서 생각해 봅시다. 이제 천천히 조용히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이 빛 속에서 걸을 것입니다. 이 빛은 정말 아름다운 빛입니다, 그리고 이슬방울이 맺히는 곳에...
고백하세요. 이제 하나님을 믿으세요. 낮이나 밤이나 우리 주위를 비추소서,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 우리는 이 빛 안에서 걸을 것입니다. 정말 아름다운 빛입니다,
자비의 이슬방울이 밝은 곳에 오시네; 낮이나 밤이나 우리 주위를 비추네,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
그들이 연주를 계속하는 동안 저는 묻고 싶습니다. 모든 시대는 똑같았습니다. 노아시대에 빛을 거부한 사람들은
어떻게 됐나요?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습니다. 모세에게 있었던 불타는 떨기나무 빛의 시대에 파라오는 어떻게
되었나요? 죽음의 바다로 걸어 들어갔죠? 빛을 시작했다가 거부한 다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땅의 갈라진
틈으로 들어갔고, 그를 삼켜버렸죠? 모든 시대에서 빛, 곧 오늘의 빛으로 걷지 않은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언제나 예수님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의 시대에도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이시며 말씀이 빛을
만드시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오늘의 빛이십니다. 지금 진정성을 가지고 조용히 생각해
보세요. 당신은 빛 가운데서 걷고 있습니까? 다시 흥얼거리면서 말입니다. [브래넘 형제와 회중이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흥얼거리기 시작합니다.]. ...아름다운 빛, 자비의 이슬방울이 밝은 곳에 오시네;
낮이나 밤이나 우리 주위를 비추소서,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
이제 일어서 봅시다.
하나님 아버지, 이 메시지가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과 테이프를 통해 이 메시지를 듣게 될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스며들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빛이 말씀과 씨앗 위에 임하여 이곳에 심겨진 모든 예정된 씨앗이 이
다양한 눈부심과 조직에서 나와서 이 시대의 빛으로 열매를 맺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니고데모처럼
“밤에 와야”할지라도 빛으로 나오기를 바랍니다. 허락하소서, 아버지.
산에서 손도 대지 않고 잘라낸 이 반석의 위대한 계시가 나오게 하소서. 이 이방인의 왕국들, 이 모든 왕국들,
영적 왕국들과 자연 왕국들을 땅바닥에 부수어 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반석이 온 땅을 덮을 것입니다.
그것은 정결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 반석이 짓밟는 자들은 가루가 될 것이며, 그 반석 위에 엎드리는 자들은
견고한 기초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여, 주님의 종인 제가 이 반석, 주님의 말씀의 반석 위에 죽게 하소서.
주 하나님, 다윗과 다윗을 위해 섰던 옛 용사들처럼, 오늘날 이 말씀이 교파들에 의해 거부당하는 것을 보면서
저를 이 말씀을 위해 서게 하소서. 여기 어딘가의 작은 수양관에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 시간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는 지금, 우리가 설 수 있는 힘과 용기와 성령을 허락하소서. 그러나 당신이 빛을 켜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게 하소서. 아버지, 아버지는 원하실 때 언제든지 빛을 켜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주님을 섬기는 저희의 빛이 다른 이들에게도 밝게 비추게
하시고, 우리가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셨던 것처럼 겸손과 달콤함이 가득하면서도 그분을 통해
말씀이 바르게 살아나는 복음의 빛을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허락하소서, 주님.
우리는 손에 스위치를 쥐고 계신 위대하신 주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주님은 세상을 손에 쥐고 계십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당신의 손에 붙드시고 당신의 말씀으로 세상을 지탱하십니다. 아버지, 우리가 말씀을 받게
하옵소서, 주님, 그러시겠습니까? 그것이 여기 있는 모든 마음의 간증과 소망이 되게 하소서.
아버지, 우리가 이 찬송을 부를 때...다윗이 찬송을 부를 때, 이 찬송은 예언이 됩니다. 그것들은 예언이었고,
당신은 그것들을 예언으로 인정하셨습니다. 주님, 우리가 찬양할 때, “우리는 이 빛 가운데서 걸으리.”라고
찬양할 때, 우리 마음에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 그렇게 하소서, 주님.
이것은 아름다운 빛입니다. 말씀입니다. 우리 가운데 살아계신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의 모습이 아니라,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는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알 뿐입니다. 그리고 아버지,
사람들이 이 아름다운 빛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걸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우리가 잠시 서 있는 동안 우리 모두 찬송하길 원합니다.
지금 여기에는 장로교, 감리교, 가톨릭이 있습니다. 교파를 따지자면 여기 모인 청중은 혼재되어 있습니다.
이제 기억하세요, 제가 이 눈부심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반감을 품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성경을 통해 그들이 눈부심이라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대로
그들과 함께 하셨을 것입니다. 아시겠죠?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거부합니다. 아시겠죠? 그리고 거기에 도착하면
무엇을 발견합니까? “교회에 가입하고 사도신경과 신조들을 암송하세요.” 그래서 뭐가 나오나요?
길의 끝에 오면 그것이 거짓된 신기루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말씀이십니다. 그분은 빛이십니다. 살 수 있을 때 지금 살아라. 당신은 무언가를 위해 살고 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죽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모두,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까?
먹기 위해서. 무엇을 위해 먹는가? 살기 위해.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죽기 위해.
그렇다면 왜 살기 위해 살지 않습니까? 살기 위해 살면 어떨까요? 그렇다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우리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여기서 만드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기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바로 여기 우리 앞에서 성령에 의해 증명되고 있습니다. 그 말씀대로 살지 않겠습니까?
이제 우리가 다시 이 찬양을 부르는 동안 각자의 자리에 서서 손을 뻗어 누군가의 손을 잡고 “형제여, 이 빛
가운데로 걸어가자”라고 말하며 ' 워크 인 더 라이트'를 부르자고 합시다. 여러분도 그럴까요? 우리가 함께
찬양하는 동안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가능한 한 멀리 바라보며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우리는 빛, 그 아름다운 빛 속을 걸을 것입니다, 자비의 이슬방울이 밝은 곳에 오네;
낮과 밤에 우리 주위를 비추네, (누구인가?)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
이제 손을 들어 봅시다.
아름다운 빛, 그 빛 가운데로 걸어갑시다, 자비의 이슬방울이 밝은 곳으로 오세요;
낮이나 밤이나 우리 주위를 비추소서,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
빛의 모든 성도여, 오라, (무엇이냐?) 선포하라.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
그러면 천국의 종소리가 울릴 것입니다,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
모두, 이제 따라 불러봅시다.
우리는 빛 가운데로 걸어갈 거야, 아름다운 빛이네, 자비의 이슬방울이 빛나는 곳으로 오세요;
낮이나 밤이나 우리 주위를 비추소서,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
이제 우리는 고개를 숙입니다. 이스라엘이 매일 새 만나를 먹으며 여정을 떠날 때, 그들은 불기둥의 빛 가운데
걸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 불기둥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그분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는 그분이 이 땅에 계실 때 그분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 하셨던 것과 같은 일을
하시는 동일한 불기둥으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가 여기서 집으로 돌아갈 때, 바퀴가 찬양을
흥얼거리면서 그 찬양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기억합시다. 저녁을 먹기 전에 머리를 숙여 이 땅에 양식을 주시고
육신을 위해 빛을 보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런 다음 혼에 양식을 주시기 위해 영적인 빛, 즉 말씀을
보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찬송을 여러분 자신과 가정에서, 여러분의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 부르고 오늘 저녁
6시 30분쯤 다시 모여 기도 카드 등을 나눠주세요. 그때 뵙겠습니다. 그때까지 고개 숙여 주십시오.
네빌 형제님, 목사님, 지금 여기 올라오셔서 기도 한 마디로 우리를 해산해 주실 수 있는지 물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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