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형명리를 주창하며, 반론을 고대한다
삼형의 연원은 한서漢書 익봉주사翼奉奏事 중에 “목은 떨어져 근원에 돌아가고, 수는 흘러가서 종말終末로 나아가며, 금은 강건剛健하고 화는 강포强暴하여 각자 그 본향本鄕에 돌아간다.”(木落歸本 水流向末 金剛火強 各還其鄉)라는 사구四句에 있다. 이를 소길은 오행대의 중에 지지상형支支相刑에서 “지지 자체의 상형相刑은 무엇인가? 자형子刑은 묘卯에 있고, 묘형卯刑은 자子에 있으며, 축형은 술에 있고, 술형은 미에 있으며, 미형은 축에 있고, 인형은 사에 있으며, 사형은 신에 있고, 신형은 인에 있으며, 진토와 오화 유금 해수는 각기 자형自刑한다.”(支自相刑者 子刑在卯 卯刑在子 丑刑在戌 戌刑在未 未刑在丑 寅刑在巳 巳刑在申 申刑在寅 辰午酉亥各自刑)라고 12지지의 각형各刑으로 배대하여 정리했다.
해묘미 목국의 삼형만 다시 인용한다. “목은 떨어져 근원에 돌아가고, 이 때문에 해묘미亥卯未 목의 방위는 형이 북방에 있으니, 해는 자형이고, 묘형은 자에 있으며, 미형은 축에 있다.”(木落歸本 故亥卯未木之位 刑在北方 亥自刑 卯刑在子 未刑在丑)
오행정기 중에 옥소보감은 위 원형을 어떻게 손상했는가? “해묘미 목위는 그 형이 모두 북방에 있으며, ‘목은 떨어져 근원에 돌아간다.’라고 말한 것은 근원에 돌아가는 방위이기 때문이다. 해방亥方은 목의 근원이며, 이 때문에 해수는 해수를 자형하고, 묘목은 자수를 형벌하며, 미토는 축토를 형벌하니, 모두 북방의 방위이기 때문이다.”(亥卯未木之位 其刑皆在北方 言木落歸本者 歸根之位也 亥者木之根 故亥自刑亥 卯刑子 未刑丑 皆北方之位故也)
“묘형은 자에 있다.”(卯刑在子) 이를 옥소보감은 “묘목은 자수를 형벌한다.”(卯刑子)라고 변형했다. 재在자를 삭제했다. 이 때문에 그 뜻이 정반대가 되고 말았다. 재在자의 용법을 다시 공부한다. 천간형지天干刑支는 “인형寅刑은 경庚에 있다.”(寅刑在庚)라고 하고, 지형천간支刑天干은 “무형戊刑은 인寅에 있다.”(戊刑在寅)라고 한다. 옥소보감처럼 재자를 없애면 어떠한가? “인목은 경금을 가형한다.”(寅刑庚) 또는 “무토는 인목을 가형한다.”(戊刑寅)라고 정반대로 해석하게 된다.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이 언어도단은 불가의 뜻을 취한 것이 아니다. 말이 되지 않는다. 옥소보감의 허물이 얼마나 큰가를 알겠는가?
채근담에 “석씨釋氏의 수연隨緣과 우리 유가儒家의 소위素位라는 네 글자는 바로 바다를 건너가는 부낭浮囊이다.”라는 명문이 있다. 이 명리회상命理會上은 모두 선남선녀로 각자 분수를 지킬 줄 안다. 그러나 아만통我慢桶 존자尊者들이 의외로 적지 않다. 나도 아만통을 쓰기로 말하자면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사람이다. 나의 아만통은 하늘을 찌른다. 한번 그 경계를 보시겠는가? 아래 2개 하문은 모두 덕형명리에 있다.
영가대사의 증도가를 인용한다. “곧바로 근원을 절단함에 제불諸佛이 인가하신 곳이고, 잎을 따고 가지를 찾는 일을 내가 할 리가 없다.”(直截根源佛所印 摘葉尋枝我不能) 적엽심지를 도치시켰다. 평문으로 환치하면 “내가 잎을 따고 가지를 찾을 리가 없다.”(我不能摘葉尋枝)이다. 상구와 하구가 모두 도치문이다. 제불이 곧바로 근원을 절단함에 인가하신 바이니, 나도 또한 직절근원에 뜻이 있을 뿐이다. 어찌 내가 잎을 따고 가지를 찾을 리가 있으랴. 전불前佛이 후불後佛에 인가하신 곳이 바로 직절근원이다. 근원根源은 근본무명根本無明이다. 직절근원은 일체제불一切諸佛의 출신처出身處이다. 적엽심지에는 조금도 뜻이 없다.
증도가의 직절근원에 대한 나의 해석은 절대지존絶代至尊이다. 인터넷 세상은 대명천지大明天地이다. 하나도 감출 수가 없다. 어떤 고승의 해설이라도 가지고 와서 나의 견해를 짓밟으시라. 나는 기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는 김에 또 자랑한다.
수천명受天命과 지천명知天命의 천명天命은 명동의이名同意異하다. “천명天命을 알지 못하면 군자君子가 될 수 없고, 복례復禮를 알지 못하면 성지聖地에 설 수 없으며, 성언聖言을 알지 못하면 성인聖人을 알 수 없다.”(不知命 無以爲君子也 不知禮 無以立也 不知言 無以爲知人也) “아침에 도를 듣는다면 저녁에 죽어도 옳다.”(朝聞道 夕死可矣) 아침에 도를 듣고자 하는 이는 성인인가? 아니면 범부인가? 성인이라야 비로소 성도聖道를 듣고, 그 진위眞僞를 간택할 수 있다. 아침에 도를 듣는 것이 바로 도를 전수傳授하는 것이다. 심심心心이 상인相印한다. 하필 저녁을 기다리랴.
공부자의 부지명不知命에 대한 나의 해석을 주자나 퇴계의 문집을 인용하여 반박해 보시라. 나도 거기에 진검으로 승부할 용의가 있다.
사견邪見을 버리고, 근원으로 돌아가라. 이 때문에 증도가의 직절근원을 인용한 것이다. 기존 삼형론은 사견이라 적엽심지摘葉尋枝도 되지 못한다. “적엽심지는 육바라밀이나 십바라밀 등 일체 선법善法을 닦는 것이다.” 적엽심지를 의거해도 삼아승지겁을 수행하면 성불할 수 있다. 이 해석에 대한 반박도 기꺼이 수응할 것이다.
멀리 갈 것이 없다. 나는 다시 단언한다. 기존 삼형론은 전도된 견해로 모두 사견이다. 나의 덕형명리 중에 어떤 구절이라도 가지고 와서 나에게 반론을 제시하시라. 기꺼이 응대할 것이다.
글을 써놓고 다시 읽어보니, 제 아만통이 하늘을 찌르기는 합니다. 어느 고인이 나와서 제 아만통을 잠재워 주실까요? 정중히 고견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2024. 8. 23. 19: 38, 甲辰 壬申 己未 甲戌 만리강산 정덕성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