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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을 들어라(1-4)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감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시며 위로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동시에 언제든지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아뢰는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누군가에 대해 평가하려면 그의 말뿐 아니라 그의 삶도 자세히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가 판단하는 선악의 기준이 얼마나 빈약한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1엘리후가 말하여 이르되 2지혜 있는 자들아 내 말을 들으며 지식 있는 자들아 내게 귀를 기울이라 3입이 음식물의 맛을 분별함 같이 귀가 말을 분별하나니 4우리가 정의를 가려내고 무엇이 선한가 우리끼리 알아보자(1-4)
엘리후 욥이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하는 나머지 자신을 하나님보다 더 의로운 위치에 두는 불경한 죄를 지었다고 지적했습니다(33:9-12). 또한 하나님께서 꿈이나 고통을 통해서 그의 백성에게 경고하며 그들을 단련하신다고 말하며 욥이 자신에게 닥친 재앙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도록 이끌었습니다(33:13-30). 이제 34장에서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모든 이를 감찰하시고 악한 자를 심판하심으로써 세상을 의롭게 통치하심을 증명하려 합니다. 그는 욥이 이를 듣고 하나님께 품은 야속한 마음과 재판을 열어 하나님과 변론하려는 생각을 철회하고 속히 하나님께 순복하여 종국의 심판을 면하기를 기대합니다.
엘리후는 먼저 지혜와 지식 있는 자들을 불러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라 요구하는데(2-15). 여기서 지혜 있는 자들이란 욥과 친구들이나 그들을 포함한 청중들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2,10,34). 엘리후는 12:11에서 욥이 한말을 따라 “입이 맛을 분별하듯이 귀가 말을 분별하므로 자기 말을 귀담아 듣고 정의가 무엇인지 함께 알아보자”고 설득합니다. 즉, 자신의 주장이 옳고 선한지, 욥의 주장이 옳고 선한지 판단해보자는 것입니다.
엘리후의 논쟁(5-30)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고난을 통해서도 선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엘리후의 가르침대로 언제나 정의를 이루시는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해야 하빈다. 우리의 시련을 통해 선한 열매를 맺게 하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의로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5욥이 말하기를 내가 의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를 부인하셨고 6내가 정당함에도 거짓말쟁이라 하였고 나는 허물이 없으나 화살로 상처를 입었노라 하니 7어떤 사람이 욥과 같으랴 욥이 비방하기를 물마시듯 하며 8악한 일을 하는 자들과 한패가 되어 악인과 함께 다니면서 9이르기를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나 무익하다 하는구나 10○그러므로 너희 총명한 자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결코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11사람의 행위를 따라 갚으사 각각 그의 행위대로 받게 하시나니 12진실로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시느니라 13누가 땅을 그에게 맡겼느냐 누가 온 세상을 그에게 맡겼느냐 14그가 만일 뜻을 정하시고 그의 영과 목숨을 거두실진대 15모든 육체가 다 함께 죽으며 사람은 흙으로 돌아가리라 16○만일 네가 총명이 있거든 이것을 들으며 내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17정의를 미워하시는 이시라면 어찌 그대를 다스리시겠느냐 의롭고 전능하신 이를 그대가 정죄하겠느냐 18그는 왕에게라도 무용지물이라 하시며 지도자들에게라도 악하다 하시며 19고관을 외모로 대하지 아니하시며 가난한 자들 앞에서 부자의 낯을 세워주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그들이 다 그의 손으로 지으신 바가 됨이라 20그들은 한밤중에 순식간에 죽나니 백성은 떨며 사라지고 세력 있는 자도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제거함을 당하느니라 21○그는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 22행악자는 숨을 만한 흑암이나 사망의 그늘이 없느니라 23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하시기에 오래 생각하실 것이 없으시니 24세력 있는 자를 조사할 것 없이 꺾으시고 다른 사람을 세워 그를 대신하게 하시느니라 25그러므로 그는 그들의 행위를 아시고 그들을 밤 사이에 뒤집어엎어 흩으시는도다 26그들을 악한 자로 여겨 사람의 눈 앞에서 치심은 27그들이 그를 떠나고 그의 모든 길을 깨달아 알지 못함이라 28그들이 이와 같이 하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이 그에게 상달하게 하며 빈궁한 사람의 부르짖음이 그에게 들리게 하느니라 29주께서 침묵하신다고 누가 그를 정죄하며 그가 얼굴을 가리신다면 누가 그를 뵈올 수 있으랴 그는 민족에게나 인류에게나 동일하시니 30이는 경건하지 못한 자가 권세를 잡아 백성을 옭아매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5-30)
엘리후는 욥의 발언들을 듣고 그가 악하다고 판단합니다. 그가 생각하기에 욥의 말은 결코 용납될 수 없었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악을 행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진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행하실 수 없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선하신 그분의 속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1) 욥의 부당한 주장(5-9)
엘리후 욥이 스스로의 의로움을 부각시킨 점이 부당하다고 밝히며(5-9), 이에 대한 증거로서 하나님께서 정의로운 통치자라는 점을 설명합니다(10-15). 그는 욥의 불경함을 증명하기 위해 욥이 이전에 한 말을 요약하여 다음과 같은 잘못을 지적합니다(5-6). 욥이 스스로 의롭다는 점, 하나님께서 자신의 정당함(‘의’로 번역됨)을 빼앗아갔다는 점, 하나님께서 자신을 거짓말쟁이로 몰았다는 점, 허물이 없는 자신에게 치료할 수 없는 고통을 주셨다는 점. 엘리후는 욥의 입장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엘리후 욥이 목마른 자가 물을 마시듯 남들이 자기에게 쏟아 붓는 비방과 조롱을 다 받으면서, 악인들과 떼 지어 함께 다니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봐야 유익이 없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정죄했다고 비난합니다(7-9). 엘리후의 이 주장은 욥의 말을 정확히 인용한 것은 아니며 욥이 한 말을 자기 나름대로 요약하여 설명한 것입니다. 친구들과의 논쟁 속에서 욥은 하나님께서 악인으로 하여금 의인이 누려야 할 장수와 권세를 누리게 하시면서도 죄 없는 자신은 고통 속으로 몰아넣으셨다며 불평하였습니다(21:7-26). 또한 악인들은 하나님을 섬기거나 그에게 기도해도 아무런 이득이 없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려 들지도 않음을 욥이 지적하였습니다(21:14-15). 이에 엘리바스는 욥의 죄가 크므로 욥이 고난을 받는 것이지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고난을 받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응수하였습니다(22:3-11). 엘리바스와 마찬가지로 현재 엘리후 욥이 악하고 어리석은 자의 길로 갔음을 증명하려 합니다.
(2) 하나님의 정의로운 통치(10-15)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죄 없는 자를 박해한다는 욥의 주장이 옳지 않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악행과 불의를 결코 행하지 않으시며, 사람의 행위에 따라 갚으시는 공의와 선의 통치자이심을 주장합니다. 그가 하시는 일에는 실수도 죄악도 없습니다. 이러한 엘리후의 주장은 욥이 지금 받고 있는 고난이 마땅하기에 허락되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엘리후는 또한 하나님께서 누구의 명령을 받아 세상을 통치하는 분이 아니라 스스로가 창조주이며 세계의 통치자이심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하시는 일을 일일이 누구에게 보고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 하나님께서는 마음만 먹으면 한순간에 사람으로부터 그의 영과 목숨을 빼앗아 혹으로 돌아가도록 할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호흡이 끊어지지 않게 보호하시고 삶을 영위케 하시는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분입니다. 엘리후는 현재 욥에게 생명이 붙어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3) 정의로 다스리시는 하나님(16-20)
엘리후는 욥이 하나님의 정의에 대해 올바른 시각을 가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제 욥에게 직접 향하여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라고 요구합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의 정의와 심판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미친다는 점을 설명하기 시작합니다(16-33).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신분의 높고 낮음이나 재물의 많고 적음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나라의 왕이나 지도자들에게라도 ‘무용지물’이라거나 ‘악하다’고 판단하고 선언하실 수 있는 권세자이십니다. 그들의 생명을 한순간에 빼앗을 수 있는 전능한 심판자이십니다. 엘리후가 특별히 왕이나 지도자와 같은 높은 지위에 있는 악인들을 예로 들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예외일 수가 없다고 말하는 이유는 욥의 위치가 마을의 지도자와 왕과 같았기(29:25) 때문이며 욥도 하나님의 심판에서 제외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정의를 싫어하신다는 욥의 주장이 결코 옳지 않다는 것을 재차 강조합니다.
(4) 감찰하며 심판하시는 하나님(21-28)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모든 행위를 살피십니다. 그러므로 악을 행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숨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각과 동기와 언행을 이미 다 파악하시므로 그가 악을 저질렀음을 즉각 아십니다. 그러므로 그를 심판하기 전에 사건의 전말을 따로 면밀히 조사하기나 재검토하는 등 시간을 지체할 것이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시면 행악자는 하룻밤 사이에 멸망하게 되고 그가 가진 것은 모두 남의 소유가 될 것입니다. 또한 그에게 닥친 하나님의 심판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다 알려져 공공의 이야깃거리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행악자는 어쩌다 죄를 짓게 되었습니까? 그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세상을 공의로 통치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떠났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났다’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가르치신 교훈이나 명령에 제대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알지 못하기 십상이고, 설령 알았다 해도 하나님을 자신의 주인의 자리에서 몰아냈으므로 자기 눈에 옳은 대로 행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학대하고 폭력을 행사하며 그들이 가진 것을 빼앗는 등 악행을 저지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핍박을 당한 자들은 하나님께 이에 대해 눈물로 부르짖으며 행악자의 심판을 간청하게 됩니다.
엘리후는 감찰하며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진술하면서, 욥도 자신이 알든 모르든 악행을 저질렀으며 그가 당한 고난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감찰하심과 심판의 결과라는 것을 넌지시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엘리후도 욥의 세 친구처럼 인과응보에 기초한 사상을 갖고 있습니다.
(5) 모두에게 동일한 하나님의 통치(29-30)
엘리후 욥이 줄곧 하나님의 침묵에 대해 불평하고 정죄했음을 지적합니다(29: 33:13). 하나님의 침묵에 대해 감히 따져 물을 자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통치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는 방법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공평함과 정의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권세 있는 악인이 그의 백성을 해치지 못합니다.
고난은 우리의 감정을 상하게 하여 하나님을 원망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마음을 당신께 아뢰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고통과 아픔을 숨김없이 내놓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께서 언제나 선함과 정의로 우리를 다스리고 계심을 확신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