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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최일환목사
기도를 가르쳐 주세요
눅11:1~4
2003년 11월 2일 장안중앙교회 최일환 목사 주일낮 설교
11: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11: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11:3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11: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하라
설교:
어떤 유명인사가 어느 女高에 가서 강연을 했답니다. 외국에서 학위를 따고 온 사람으로서 장래가 총망되는 분이었습니다. 그 여학교는 미션학교이기에 “강연 마치고는 기도로 마쳐주세요” 했습니다. 그러나 이분은 비크리스챤이지만 과거 미션 스클을 다녔기에 할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강연을 잘 마치고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를 하긴 했는데 “~~ 학생들이 다 되게 해주시옵소서!” 하면 “아멘” 이 나와야 되겠는데 아멘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도가 끝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도가 연장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끝을 맺습니다. “--이런 훌륭한 학교와 학생들이 되게 하옵소서!” 그런데 이번에도 “아멘”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문제가 심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해야 하는데 그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기도가 연장전에 들어갔습니다. 그러길 몇 번해도 안 되자 진땀을 흘리던 이분이 이렇게 끝을 맺었다고 합니다. “이상 기도 끝” 하고 마쳤덥니다.
기도가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특히 대표기도, 公祈禱가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사실 기도가 쉽다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럼 다시 묻겠습니까? 사람들과 말하는 것이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사람들과 대화 나누는 것이 어려워 종이에 써 가지고 말하는 사람 있습니까?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면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말하기입니다.
얼마큼 자랐느냐의 바로 메타가 “말하기”입니다. 키도 정상이고 몸무게도 정상이고 사지백체도 멀쩡인데 말을 못하면 장애인입니다.
아이가 자라나면서 자기 의사표시를 합니다. “엄마” “아빠”에서부터 ‘싫어’ ‘물 줘’ ‘고맙습니다.’ 등등의 말을 합니다. 그런데 이 말 배우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습니다.
세 살 먹은 아이가 엄마에게 “엄마 나 말 배우는 것 너무 어려워” “너무 부담스러워. 말 안 할래” 하는 것 들어보셨습니까? 아주 자연스럽게 말을 배워나갑니다.
마찬가지로 처음 교회 나와서 기도를 유창하게 잘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기도를 사양할 수 없습니다. 차츰 기도를 배워서 성숙한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과자 줄까?” 어른이 과자 내 밀면 ‘응’ 하고 받으려 합니다. 그러면 엄마가 바로 잡아 줍니다. “응이 뭐야, 네, 그래야지” 이러면서 경어 쓰는 법이라든지 적당한 언어를 구사하도록 교정해 줍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에게 세 딸이 있는데 막내딸이 아빠 손을 잡고 산보를 나갔습니다. “상은아 우리 바람 쐬러 나가자.” 하고 데리고 나갔답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이 녀석이 하는 말이 걸작이었습니다. “아빠, 우리 또 바람 피러 나가자.” 하더랍니다.
말이란 것은 참 쉬운 것입니다. 자연히 배우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알고 보면 아주 어려운 것이 말입니다. 어떤 분이 미국에 친척집에 가서 다니다가 어느 날 운전을 하다가 경찰에게 걸렸답니다. 신호위반으로 잡더라는 것입니다. 신호를 위반하지 않았는데 흑인 경찰이 딱지를 떼더라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옆에서 한참 보다가 “애라~ 영어가 아깝다 이놈아” 하더랍니다.
못생긴 흑인 경찰이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데 그것이 그렇게 부럽더라는 것입니다. 자기는 대학까지 나오면서 죽으라 영어공부를 해도 잘 안되는 것이 영어인데 그 못된 경찰은 유창하게 하니 속이 상한 것입니다.
그러나 말을 잘하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습니다. 평생 말을 하고 살았어도 실수하기 쉬운 게 말이고 적절한 말을 구사하기가 힘든 게 말입니다.
경어를 써야할 곳에 경어를 써야 하고 환경과 대상에 따라 말을 골라해야 하기 때문에 힘이 듭니다. 특히 우리나라 말이 더합니다.
여러분, 일상 생활하는 가운데서 언제 말하기 힘들다고 느껴지십니까? 대부분 하는 말이 문상 가서 유족들에게 건네는 말이 제일 어렵다고 합니다.
시어머니 돌아가셨다고 며누리에게 “아유, 잘 돌아 가셨지 뭐. 이젠 두 다리 쭉 피고 주무셔도 되겠네요.” 그렇게 말하겠습니까? 아무리 사정이 그렇다 해도 말을 가려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한번 연습해 볼까요
“애통하시겠습니다.“ ”뭐라 위로드릴 말씀이 없군요.“ ”주님의 위로를 빕니다.”
자식들 결혼 문제 때문에 양가 부모님이 상견례를 하는 자리라면 어떤 인사말이 좋겠습니까? 그냥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해도 되겠지만 조금 미흡한 것 같습니다. 언젠가 드라마를 보면서 제도 한 마디 배웠습니다. 극중에서 양가 부모님이 만난 자리에서 이러더군요.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인연으로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저도 기회가 온다면 이 말을 써먹으려고 단단히 입력을 해놨습니다. 여러분 옆자리에 사람에게도 쓸 수 있는 말입니다. 한번 다같이 해봅시다.
기도가 어렵다고 느끼시는 많은 분들이 있을 줄 압니다. 그래도 우리 교회 성도들은 기도를 대체로 잘하는 편입니다. 대표기도 잘하기로 소문났습니다.
그래도 대부분 기도를 하라고 하면 기도하기 전에 벌써 겁을 먹는다거나, 인상이 구겨진다거나, 식은땀을 흘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아예 안나와 버립니다. 그러고 어떻게 편안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선 안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대화를 하고 그분께 아뢰는 일이 즐거워야지 고통스러운 일이어서야 되겠습니까. 기도는 참 쉬운 것입니다. 아이가 엄마 아빠랑 대화하듯이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말을 배우는 과정을 생각해 보세요. 자꾸 반복하여 듣고 따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말을 배우게 됩니다. 처음엔 의사소통이나 될 정도의 미흡한 말이지만 자꾸 하다보면 훌륭한 어휘도 구사하게 되고 調理있게 말을 합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 기도할 때는 앞뒤도 잘 맞지 않습니다. 적당한 말도 생각나지 않아 끙끙대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기도가 순수하고 진솔한 맛이 있습니다.
예수 오래 믿고, 그야말로 닳고 달아서 사탕발림 같은 기도, 청산유수의 기도보다는 좀 서툴고 투박하지만 진솔한 기도를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초보 단계에서 머물 순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는 쉬운 것이지만 동시에 어려운 것이 기도입니다.
보다 잘하는 기도, 남들에게까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감동을 주는 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기도에 노력을 안하면 평생 대표기도 한번 못해보는 사람으로 남게 됩니다. 부끄러운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잘못하는 기도도 많습니다. 고쳐야 할 기도가 많습니다.
몇 가지 유형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1)준비되지 않은 기도입니다.
기도는 잘하는 것 같은데 가슴에 와 닿지 않는 기도가 있습니다. 이런 기도는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왜 일까요? 무엇을 고쳐야 할까요? 영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준비 부족입니다. 기도를 처음 할 때는 한주간 내내 긴장되고 심지어는 꿈에서도 준비를 하는데 좀 노련해 지면 별 준비 없어도 까짓것 하는 자만심이 생깁니다. 그러기에 평소, 일주일 내내 준비 기도를 제대로 하지 않던 사람이 주일 날 대중 앞에서 기도해봐야 그 기도는 허공을 치는 기도가 되기 십상입니다.
그러므로 대중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설교자가 노력하며 준비하듯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한주간의 삶에서 특별히 양심에 걸리는 일이 있으면 기도를 사양해도 됩니다. “목사님, 솔직히 오늘은 양심에 걸려 기도 못하겠습니다. 다음에 하겠습니다.” 하시기 바랍니다.
2) 생활이 따라주지 못하는 기도입니다.
이것도 잘못된 기도입니다. 즉 입술만 살아있는 기도입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이사야 시대에 하나님 보시기에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했습니다.
기도만 들으면 세상에서 제일 신앙생활 잘하는 듯한데 실상을 보면 많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기도를 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기도는 입으로도 하지만 생활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3) 사람 들으라고 하는 기도입니다.
어떤분은 기도로 남들에게 훈계를 합니다. “너 좀 듣고 회개하라. 이건 너 들으라는 소리다” 하면 바른 기도가 못됩니다.
또 어떤 분은 하나님을 가르치려는 듯이 기도합니다. 창세기 12장 1절에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하신 하나님, 요한복음 8장 31절에 진리가 자유를 준다고 하신 주님... 이러면서 자신의 성경지식을 장황하게 나열해가면서 기도하는데 얼핏 보면 설교인지 기도인지 모를 경우가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듣는 것입니다. 사람 들으라고 하는 기도는 응답이 없는 것이며 기도라는 도구를 악용하는 죄악인 것입니다. 우리가 어찌 감히 하나님을 가르치겠습니까. 기도가 불경스러워서는 안 됩니다. 가끔 성경구절을 낭독하고 기도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기도와 전혀 상관없는 성경낭독은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혹 기도제목과 관련된 구절이라면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성경 구절이거나 은혜 받은 성경 구절을 나누고 싶으면 기도시간에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4) 지루하고 긴 기도입니다.
주님이 가르쳐 준 기도는 아주 간략합니다. 지루하거나 길지 않습니다.
한얼산 기도원의 故 이천석 목사님 이야기입니다. 생전에 어느 교회 헌신예배에 초빙 받아 가셨답니다. 대표 기도자가 10분, 20분을 하는데 영 끝 날 기미가 보이지 않더랍니다. 화가 나서 집에 갔답니다.
제가 아는 어느 목사님 교회에서 장로님이 대표기도를 하는데 아주 오래동안 하셨나 봅니다. 그 자리에 술에 취한 사람이 참여 했는데 그 사람도 참다못해 “야 그만해 이새끼야” 했답니다. 교회가 온통 웃음바다가 되었는데 강단에 있던 목사가얼마나 통쾌했는지 모른답니다.
또 어느 교회에서는 집사님에게 기도를 시켰는데, 이 집사님이 얼마나 기도를 길게 하는지 그래서 참다못해 목사님이 종을 땡땡 치고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집사님은 기도 계속하고 우리는 찬송 부르겠습니다.” 했답니다.
개인기도는 아무리 길게 해도 좋지만 공적기도는 짧게 하여야 합니다.
대략 3분정도가 좋고 5분을 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그 시간을 측정하지 못합니다. 잠간 한 것 같은데 10분입니다. 그래서 공중기도는 집에서 적어서 준비해 오는 것이 좋습니다.
5)눈치없이 하는 기도입니다.
“엄마 나 천원만” 하고 뛰어 들어오던 아들 녀석이 집안에 손님 있는 것 보고 말을 끊습니다. 눈치를 봅니다. 엄마 등 뒤에 와서는 귓속말로 합니다. “엄마, 난 천원만”
새벽기도 시간에 남이 조용히 기도하는데 혼자 큰 소리를 지른다면 실례입니다. 혼자 조용히 기도하는 장소를 찾는 게 바른 태도입니다. 반면 남들은 열심히 기도합니다. 부르짖습니다. “고막 터져서 살겠나, 하나님이 귀가 멀었나. 왜 이리 소리들을 지르고 야단이야!“ 이것도 바른 태도는 아닙니다.
난 조용히 기도했으면 싶다고 생각하면 조용한 장소를 찾으면 됩니다. 비방해선 안 됩니다.
또한 방언기도 같은 것을 할 때는 남들이 내가 하는 방언기도를 의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방언기도는 남이 내가 방언기도를 하는 줄 모르게 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방언기도는 남에게 덕을 세우지 못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가급적 우리말로 기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내 기도가 남에게 방해를 주어선 안됩니다. 또박또박 기도하지 마시고 흘려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6) 불경스러운 기도입니다.
우리가 답답한 일 당하면 때로는 눈물, 콧물 흘리며 울부짖을 수 있습니다. 딩굴며 기도할 수도 있고 배를 깔고 엎드려 버둥거리며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큰 고함을 지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우리의 기도대상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잊어선 안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우리의 영원한 왕입니다.
높으신 분께 사정 아뢸 때 어떤 태도를 취합니까? 대갓집 가장 윗어른께 찾아뵙고 아뢸 때 어떤 태도를 취합니까?
아주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최고의 예를 갖춰 절을 하고 매무새를 공손해하고 앉습니다. 그리고 정중히 인사들 드립니다. 그리고 용건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불경스럽게 기도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에도 덕을 세워야 합니다. 언어사용도 조심해야 하고 음성소리도 길들이는 것이 옳습니다.
또 졸면서 하는 기도, 횡설 수설 하는 기도, 주문 외우듯이 하는 기도, 모두 하나님을 답답하게 하는 기도입니다.
7) 사람에게 보일려고 하는 기도입니다.
사람들에게 기도 많이 한다는 모습을 보여 주려고, 칭찬 받으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바리새인들이 율법학자들이 그렇게 기도하다가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들었습니다. 사람에게 보일려고 애쓰지 말라. 외식하지 말라. 나팔 불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기도한다는 것을 광고하는 사람들은 마태복음도 안 읽었나 봅니다. 어떤 부흥사들은 “40일 금식기도로 재무장” 아예 교계신문에 광고를 냅니다. 그런 광고를 붙힌 부흥사 집회, 기도원 집회는 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외에도 기도는 많이 한다고는 하지만 그 내용이 하나님 들으시기에 합당치 않아서 쓸데없는 기도도 많습니다. 잘못 드리는 기도가 많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주님이 잘못된 기도에 대해 가르치자 제자들이 주님께 청을 했습니다. 주님 기도를 가르쳐 주세요. 그래서 주님은 저들에게 바른 기도를 가르치셨습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기도는 우리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세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양식 섭취요 둘째는 호흡이요 셋째는 운동입니다.
영적인 삶에도 이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양식은 하나님 말씀이요, 호흡은 기도요, 운동은 생활 속에서의 실천을 말합니다. 이렇게 중요한 것이 기도의 삶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입니다. 여러분의 기도는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