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한문학 「영원소만월(咏元宵滿月)」 해상에 떠오른 대보름 달을 읊다>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우리나라 큰 명절 중에 하나인 정월대보름은 ‘음력 1월15일’ 보름날을 말하며 상원(上元), 등절(燈節), 원소절(元宵節)이라 일컫는데 연중 가장 처음 맞는 보름날(上元日)이고 그날 밤을 원소(元宵)라 한다. 중원(中元)은 7월 보름날(백중)을 하원(下元)은 추수가 끝나는 10월 보름날이라고 한다.
대보름이라 부르는 까닭은 정월에 보름달의 크기가 1년 중 가장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월대보름은 설, 추석과 함께 큰 명절 중 하나로 달맞이, 쥐불놀이, 지신밟기, 연 날리기, 바람개비놀이, 봉죽놀이, 밧줄 당기기, 놋다리놀이, 다리밟기, 수레싸움놀이 등 여러 가지 재미있는 민속놀이를 하였다.
이번 지면에는 거제시 고전학자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의 「영원소만월(咏元宵滿月)」, 즉 ‘해상에 떠오른 정월 대보름 달을 읊다’라는 칠언고시(七言古詩)를 소개하겠다. 거제도 해상에 떠오른 둥근 보름달(海月)을 보고 소회를 읊은 작품이다.
○ 한편 초겨울부터 시작된 연날리기는 정월 대보름 때에 이르러 대성황을 이루었다. 다리밟기는 달이 떠오르면 그 고장의 큰 다리로 나가 다리 위를 왔다갔다 건너다니며 달구경을 했다. 열두 다리를 건너든지 한 다리라도 열두 번을 건너든지 하면 그해에는 다리 병이 생기지 않고 튼튼해진다고 하여 모두 다리를 밟으며 건너다녔다.
예전 거제도에서는 대보름 전날엔 집집마다 콩을 볶아서 맷돌에 갈아 체로 치고, 다시 맷돌에 갈아 체로 고르기를 반복하여, 떡고물을 만든다고 메로 떡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마을마다 비단오색 다섯 가지 천을 쪼개서 길이 한자쯤 잘라 장독대나 선반, 부뚜막 위에 걸어놓고 ‘할만데‘ 우물에서 깨끗한 생수 물을 떠다가 올렸다.
그리고 2월 풍신(風神) 영등신(靈登神)은 주로 영남지방과 제주지방에서 받드는 민간신앙의 대상으로, ‘영등할미’라 부른다. 바람의 신인 영등할미는 곧 풍작과 풍어를 비는 농경시대의 상징적인 의식이었지만, 현대에는 미신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2월에는 집집마다 영등신(靈登神)에게 제사 지낸다"고 하였다. 이것은 비와 바람의 운행을 두고 그 해의 풍년과 흉년을 점치는 풍습이었다. 특히 뱃사람들이 정성껏 위한다. 바람이 심하게 불면 뱃일이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신령 앞에서 비는 뜻으로 희고 얇은 종이를 불살라서 공중으로 올리기도 한다.
또한 거제도 2월 풍신 제사에는 팥밥을 차려놓고 고사종이를 태웠으며 대보름 새벽에 팥밥과 나물을 만들어 오곡밥과 오곡 나물을 해 먹고 남녀 모두 밥 9그릇을 먹고는, 남자는 나무 9짐을 하고 여자는 삼삼기를 9번 삼았다한다. 또한 대보름날에 새를 쫓으면 일 년 동안 자기 논에 새가 들어오지 않는다하여 새를 쫓는 행위를 했다. “우리 논에 오질 말고 다른 논에 가~라”, “후~여~ 후~여~” 3번을 반복해 외쳤다. 대보름날엔 반드시 널을 뛰어야 ‘발에 가시가 안 찔리고 발이 강해진다’하여 널을 뛰기도 했다. 그리고 마을마다 조금씩 차이가 나긴 하지만, 설날이나 대보름날에 당산제와 마을 대동회를 열었다.
옛날 거제도에는 구렁이가 많아, 담장을 빙 돌고 다니기도 하였고 감나무 위에 올라가기도 하니 부엌에 있던 불 작대기에다 새끼를 감아서 집 앞뒤 한 바퀴 돌면서 “진대 끝자” “진대 끝자” 외치면서 다니는 풍속도 있었다. 예전에 거제도의 집은 대부분 초가집이었다. 그러다보니 썩은 짚에서 냄새나는 노래기가 너무 많았다. “노래기 각시 밥준다” “논 고동 각시 밥준다”고 할머님들께서 바가지에 담긴 소금물을 숟가락으로 뿌리면서 집안과 담장 주위를 다니셨다. 수많은 노래기 때문에 가끔씩 음식물에 노래기가 빠져죽어 있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어른들께서 “노래기는 몸에 나쁜 것이 아니다”고 하여, 그냥 먹었던 기억이 난다.
무엇보다도 대보름날의 최고 행사는 보름달 뜨는 광경을 보려가는 것이었다. 마을마다 달 보는 장소가 예로부터 거의 정해져 있었는데. 뒷동산 동쪽 바다가 훤히 보이는 곳이었다. 당시 고향마을 뒷산 고개 넘어, 해안 가파른 길을 따라가다가 바다에 접한 해안에서 마을 선후배들과 달집을 태우면서 소원을 올리고 축원하였던 기억이 난다.
○ 정월 대보름날을 명절로 맞았다는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보인다. 신라의 소지왕(炤知王 479~500)이 경주 천천정이라는 정자로 놀러 나갔다가 쥐와 까마귀, 돼지를 만난 후 불길한 일이 있었으므로 이때부터 매해 정월 첫 ‘돼지날’, ‘쥐날’, ‘말날’에는 모든 일에 조심하여 함부로 출입을 하지 않았으며, 정월 보름날은 까마귀의 제삿날이라 하여 찰밥(약밥)을 지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약밥의 유래에 대하여 말하는 동시에 대보름 명절이 삼국시대부터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도교에서는 상원(上元)을 삼원대제의 한 사람인 천관(사람에게 복을 주는 신)의 탄생일로 보고, 북위 이후 제일(祭日)이 되었다. 이날 밤에 초롱을 달아 등절(燈節), 원소절(元宵節)이라고도 한다. 이날 달맞이라는 만월제가 행하여졌으며, 사람들은 이날 달의 모습으로 1년의 길흉을 점치고, 각종 소원을 빌었다. 또한 농경예축 의례로서의 각종 행사가 이루어졌다.
달은 농경사회에서 여신(女神), 대지(大地), 여성과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달은 농사의 풍요로운 힘, 여성 생산력의 근원 등을 상징한다. 보름밤만은 여자들에게도 밤새도록 통행이 허용되어 해방의 기회이기도 하였다. 한편 이날에는 청정한 남자를 제주(祭主)로서 부락제가 행하여지며, 1년 중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였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초저녁에 횃불을 들고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을 달맞이라 하며, 먼저 달을 보는 사람이 길하다.”고 하여 소원과 일 년의 풍요를 빌었다. 달맞이는 일종의 월신제(月神祭)라고 하는 주술·종교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겠다. 부락제를 지내며 부락을 지켜주는 수호신인 당산제를 이때 지낸다. 이 당산제의 의미는 우리의 국조이신 단군(당골)을 낳으신 환웅님이 신단수 아래 임한 수목숭배 사상의 오랜 제천의식을 그대로 답습하여 행한 것이라 하겠다. 또한 『동국세시기』에 “이날 개에게 먹이를 주지 않는다. 개에게 먹이를 주면 향후 파리가 많이 끼고 마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속담에 굶는 것을 비유해서 ‘정월 대보름날 개 같다’는 말이 있다.”고 쓰여 있다. 그래서 흔히 굶으며 사는 것을 “개 보름 쇠듯 한다.”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또 더위팔기·달맞이·줄다리기·석전(石戰) 등을 한다. 보름은 새해 농사의 시점이라 하여 농사일과 관계있는 일들을 한다.
● 다음 ‘寒’ 운(韻)의 칠언고시(七言古詩) 「영원소만월(咏元宵滿月)」 ‘해상에 떠오른 정월 대보름 달을 읊다’는 거제시 고전학자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의 2016년 한시다. 칠언(七言) 16구(句)의 이 고시(古詩)는 정월 대보름 날, 남해 거제도 해상에서 떠 오른 둥근 달을 보고 읊은 글이다.
내용은 이러하다. 동쪽 바다에서 옥쟁반 같은 둥근 달이 절로 떠오르니 달빛이 맑게 빛난 이슬처럼 깨끗하다. 별들은 고운 빛깔 숨기어 드문드문 의아한데 가벼운 해풍이 귀밑털에 나부낀다. 만리 먼 곳의 묘연한 님의 얼굴, 밝고 둥근 달과 같은데 애석하게도 다시 보기 어렵다. 물 위의 달빛이 금빛 되어 흐르고 밤의 정취 상쾌하여 좋으니, 해상에서 떠 오른 보름달이 응당 님 계신 곳도 비추리라.
*「정월 대보름 달을 읊다(咏元宵滿月)」* / 고영화(高永和)
夜夜多情白玉盤 밤마다 다정한 흰 옥쟁반 찾다가
南海雙照淚痕乾 남해 바다에서 서로 마주하니 눈물자국이 마르네.
灧灧昇自碧海東 출렁출렁 푸른 동쪽 바다에서 절로 떠올라
皎㓗淸輝玉露寒 깨끗한 달빛이 맑게 빛난 이슬처럼 차갑구나.
團團月輝海天中 둥글고 둥근달이 바다 위 하늘에서 빛나니
歸帆風便泝前灘 순풍에 돛을 달고 앞 여울 거슬러 돌아갈까봐
星辰斂彩訝稀踈 별들은 고운 빛깔 숨기어 드문드문 의아한데
婆娑流影飄鬢殘 그림자 떠돌며 가볍게 흐르다 남은 귀밑털에 나부낀다.
萬疊鯨波正杳茫 겹겹이 둘러싼 큰 물결이 정히 아득하고
一輪明月轉淸寒 둥글고 밝은 달은 더욱 맑고 차갑네.
哀惜可憐萬里同 애석하고 가련토다. 만 리가 같을진대
杳然美人會面難 묘연한 님의 얼굴 다시 보기 어려워라.
月色如水流金波 물 같은 달빛이 금빛 물결 되어 흐르고
夜景凄凄爽氣歡 밤의 경치 쓸쓸해도 상쾌한 기분 매우 좋다
花容月態浮海上 꽃다운 얼굴, 달 같은 자태로 해상에서 떠올라
淸光應照美人安 응당 맑은 빛을 님 계신 곳에 비추겠지.
○ 옛사람들은 밝은 달과 구름을 보면서 향수와 우정, 사랑에 대한 자신의 심정을 나타내는 도구로 사용했다. 구름 걷힌 푸른 하늘은 근심 걱정이 말끔히 사라진 비운 마음, 즉 깨달음을 얻는 해탈의 경지를 연결해 표현하기도 했다. 또한 밤하늘의 둥근 달은, 원초적인 그리움의 대상으로써, 생명에 영혼을 불어 넣어주고 언제나 우리 곁에서 함께 했다. 그런고로 달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맑고 청량하며 고고한 영혼의 위로와 기원의 대상인 고귀한 심성의 거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