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표적
말씀: 요한복음 2:1-11
설교일: 2024. 9. 2 (주일 낮 예배)
우리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참으로 신기하고도 오묘하게 창조하셨습니다.
모든 신체가 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사람의 얼굴은 정말 기막힌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의 얼굴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 가운데 똑 같은 얼굴은 없다고 합니다.
누구나 얼굴 안에는 눈도 있고, 코도 있고, 입도 있고, 귀도 달려 있지만,
각자 다 특징이 있고, 개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다르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얼굴에는 희로애락의 감정이 나타납니다.
여러분 ! 기쁜 감정이나 슬픈 감정이 어디에서 나타납니까?
손바닥을 아무리 봐도 손바닥에는 기쁨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발에 나타납니까?
하루 종일 들여다 보아도 손에나 발에는 기쁨이나 슬픔같은 감정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감정이 얼굴에는 나타납니다.
그런데 시편 32편 11절을 보면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하라”했습니다.
여기서 ‘의인’이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함을 받은 우리 성도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얼굴은 기쁨으로 충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죄 용서함을 받은 기쁨,
나를 위해 죽어주시기까지 하신 그 주님을 만나는 기쁨,
그분을 만나면 나의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고,
합력하여 선이 이루어진다는 그 기쁨으로 가득차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5장1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아멘
그러니까 우리 주님의 관심도 온통 우리의 기쁨입니다.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서 기뻐해야 합니다.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박국 3장 17-19절입니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 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아멘
그런데 여러분, 우리만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우리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 하십니다.
스바냐 3장 17절입니다.
“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로다. 아멘
오늘 우리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하나님은 우리로 말미암아 기뻐하시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
잔치집은 기쁨이 있는 곳입니다. 특별히 혼인 잔치집은 더 그렇습니다.
그리고 포도주는 성경에서 기쁨을 상징합니다.
시편 104편 15절을 보면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말씀에 나오는 가나혼인 잔치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기쁨이 있어야 곳에 기쁨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잔치집은 천국을 상징하니까 천국의 기쁨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오늘 우리 마음에, 우리 가정에, 우리의 모든 생활 속에 기쁨이 사라졌다면,
오늘 가나혼인 잔치집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해야 사라진 기쁨을 다시 회복할 수 있습니까?
오늘 기쁨을 회복한 가나 혼인 잔치집에서 세 가지 비책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을 초청해서 모셔야 합니다.
1-2절을 보겠습니다.
(요2: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요2: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만약 이 혼인 잔치집에서 예수님을 초청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유대의 혼인 잔치에서는 포도주가 반드시 있어야 했습니다.
옛날 우리나라에 잔치집에는 잔치 국수가 있어야 했던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잔치 중간에 포도주가 떨어지자 손님은 손님대로
“왜 준비를 그렇게 적게 했느냐? 고 불평하고
주인은 주인대로
적게 준비한 게 아니다. 손님이 많이와서 그렇다!
하면서 잔치집의 기쁨은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잔치집의 문제를 예수님이 해결해 주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주인이 예수님을 초청했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현장에서도 그렇습니다.
일 잘하고, 마음이 착하고, 사랑이 많고, 인간성이 좋은 사람을 초청하고
함께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사람보다도 우리 예수님은 반드시 초청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만이 우리가 잃어버린 기쁨을 다시 찾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 3-5절을 보겠습니다.
(요2: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요2: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요2: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민족적으로 기다리던 메시야,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하는 말을 듣고도 하인들에게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순종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 마리아의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기쁨을 잃어버린 가정에 기쁨을 찾게 했습니다.
우리도 이 마리아 같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나만 아는 믿음이 있잖아요?
조용히 예수님께 기도했는데 놀랍게 응답되었습니다.
새벽기도, 작정을 하고 열심히 기도를 했더니,
몇 십년 이루어지지 않았던 일들이 이루어 졌습니다.
죽을 병에서 고쳐 주시면 하나님께 평생 충성하겠다고 서원했더니 깨끗이 고쳐 주셨습니다.
직장 문제, 물질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더니 다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응답받은 사람은 예수님을 믿습니다.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말씀은 다 믿게 됩니다.
그리고 마리아처럼 기적을 체험하고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6-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 속에 나오는 주인공은 연희장이 아니라 바로 그 집의 하인들입니다.
이 하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아도 순종했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하는데, 왜 발 씻는 항아리에 물을 떠다 붇느냐고 물어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그대로 했습니다.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할 때 기쁨이 회복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여러분에게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가나 혼인집 주인처럼 예수님을 초청하고 모셔야 합니다.
그리고 마리아처럼 예수님을 믿고 말씀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집의 하인들처럼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크고 비밀한 일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
오늘 혼인 잔치집에 기쁨이 회복된 것은 것은
무엇보다 예수님이 그 집을 긍휼히 여겨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 주시지 않으면 기적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하나님 !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눈먼 소경들이 주님을 만나 불쌍히 여겨달라고 할 때에 그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나병 환자들의 불쌍히 여겨달라고 할 때 깨끗하게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죄가 있는 사람도 “하나님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병이 있는 사람도 “하나님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그 어떤 문제가 있는 사람도 “하나님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하고 주님의 긍휼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긍휼이 여겨주시기만 하면 죄도, 병도 그 어떤 문제도 문제가 아닙니다.
물이 포두주가 되는 것 같은 기적은 우리 주님이 불쌍히 여기실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 마지막 1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2: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표적이라는 말은 싸인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첫 표적은 무슨 싸인이겠습니까?
첫째, 오직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아름답고 향기나는 인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물을 설명할 때 “무색, 무취, 무미,” 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물은 색도 없고, 냄새도 없고, 맛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포도주는 어떻습니까? 색이 아름답고, 향기가 있고, 맛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 인생이 맹물과 같이 보람도 없고, 가치도 없고 의미도 없다면 그 질이 바꿔져야 하는데 그것은 오직 예수님으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둘째, 내 인생이 바뀌면 저절로 전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11절 마지막을 보면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했습니다.
내 인생의 질이 바뀌니까 다른 사람들이 믿는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아무개를 보니까 나도 믿어야 겠어!”
우리를 통해서 이런 믿어지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점점 좋아진다는 싸인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요2: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지금까지 지내온 것은 주의 크신 은혜라”하는 찬송이 있습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지금까지 많은 은혜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 축복의 서론에 불과합니다.
본론을 주시기 시작하면 감당하기 어려울만큼 주실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복 중에서 가장 좋은 축복은 제일 나중에 나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오늘 우리가 주님께 나와서, 그분을 믿고, 그분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그분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기만 하면 우리 인생의 질은 바뀌어 질 것입니다.
그리고 변화된 우리 인생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로 돌아 올 것입니다.
또한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우리도 감사와 기쁨도 넘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항상 기쁨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