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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오디션프로그램이 유행입니다. 물론 오디션이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너무나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다보니 이곳저곳에서 오디션형식의 행사들이 많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가요제나 미인대회등이 오디션형식으로 인재를 뽑는 프로그램이었지만 지금은 온갖 목적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생겼습니다.
특별히 오디션을 진행하면서 인기를 끄는 오디션 방식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서바이벌식 오디션입니다. 여러 명이 똑같은 미션을 수행하고 그 미션에 따른 결과에 따라 한 명씩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시청자들은 그런 오디션프로그램을 보면서 피를 말리는 경쟁에 오히려 박진감을 느끼고 흥미진진한 기분을 느끼곤 합니다.
기업채용을 하면서도 이런 오디션방식이 유행이 되기도 하고 어떤 TV프로그램에서는 창업비용을 지원해주는 시상을 하면서 아이디어오디션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심지어 결혼상대자를 뽑는 오디션방식의 TV프로그램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요즘은 케이블방송에서 이런 오디션을 많이 진행하다보니 가장 박진감이 넘치고 시청자들이나 출연자들이 애간장을 태우는 시간에 꼭 들어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광고입니다. 그래서 사회자, MC들은 꼭 이 멘트를 하죠.
“광고보고 오겠습니다” 혹은“결과는 1분뒤에 알려드리겠습니다”
선택을 받을 지, 선택을 받지 못할 지... 초조한 그 시간에 사람들은 잠시 허무함을 느끼며 시간을 기다립니다.
저는 이런 오디션프로그램을 보면서 하나님의 선택에 대해 종종 생각하곤 합니다. ‘내가 이 땅에서 삶을 마쳤을 때 나는 선택을 받을 것인가, 선택을 받지 못할 것인가?’‘나는 구원받은 사람인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인가?’
성경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주님이 오실 때에 한 자리에서 두 사람이 자던 중에 한 사람은 천국으로 데려 가고 한 사람은 택함을 받지 못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또 함께 맷돌을 가는 사람들중에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지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함께 있던 사람중에 누가 택함받은 사람인 지 누가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인 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나오는 수 많은 사람들중에도 지금 이 시간에도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내가 택함을 받은 것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말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분란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면서 말씀을 어렵다고 합니다. 결국 이 일을 계기로 어떤 제자들은 예수님을 떠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60절 말씀을 먼저 보십시오. 함께 읽겠습니다.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 대”
오늘 본문은 아니지만 66절도 함께 읽어보시겠습니다.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결국 오늘 본문을 계기로 선택받은 사람과 선택받지 못한 사람이 갈라지는 계기가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수많은 사람이 교회를 찾아와 교인으로 살아가지만 어떤 계기로 어떤 사람은 완전히 교회를 떠나게 되는 경우를 보게 되고 어떤 사람들은 신앙없이 살다가 어느 한 순간에 신앙인으로 거듭나 완전히 변화된 예수님의 제자로 살게 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으로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 즉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과 선택을 받지 못한 사람을 구별해낼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구원에 대해서 우리가 이렇다저렇다 판단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을 자세히 살피다보면 최소한 다른 사람의 구원에 대해 우리가 뭐라고 할 수 없지만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구원에 대한 확신, 혹은 새롭게 구원을기대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열정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오늘 말씀을 잘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것을 확신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선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첫째, 말씀에 대한 거부감이 있습니다.
60절과 61절을 보시겠습니다.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 대 /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이르시되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중 여러 명이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반감이 일어났습니다. 말씀을 이해하기 힘이 든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도 살펴보았듯이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의미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너무나 인간으로서는 해서 안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의미가 식인행위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인간을 위해서 내어주시는 자신의 육신을 믿어야하고 인간을 위해 한 방울의 피까지 인간의 죄를 위해 흘리시는 것을 깨달야한다는 의미라는 것을 우리는 분명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랐던 많은 사람들중에 로마군인들이 오해를 하고 기독교를 탄압했던 것처럼 기독교가 인간의 살과 피를 먹는 식인행위를 한다는 오해를 했다는 사실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는 말씀을 받아들이는 신앙인의 모습에 대한 비유가 나옵니다.
말씀의 씨를 뿌렸는데 더러는 길가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고 더러는 흙이 조금 밖에 없는 돌밭에 떨어져 싹이 났지만 금방 뿌리가 말라서 죽었습니다. 더러는 가시떨기 위해 떨여져서 가시가 자라는 것을 방해했기 때문에 제대로 자라지 못했습니다.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함께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말씀을 받고 더 믿음이 굳건해졌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 말씀을 믿지 못하고 예수님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그 아래 로마서 10장 17절 말씀도 찾아서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을 통해 믿음으로 자라나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도 믿음으로 자라지 못한다면 우리는 택함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온전히 자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 있도록 우리 속의 성령님께서 우리의 영적인 귀를 열어달라고 기도해야하니다.
요한계시록 2장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함께 읽겠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은 아시아의 7교회에 대한 예언을 주면서 항상 끝부분에 '귀 있는 자들은 성령님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명령했습니다.
이 세상에 귀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물론 청각장애인, 육신적인 장애가 있는 분들은 귀가 없을 수 있겠죠?? 하지만 그런 분들이라도 다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적인 귀입니다. 세상의 소리는 간혹 듣지 못하더라도 영적으로 깨어있으면 들을 수 있는 영적인 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리를 듣지 못하더라도 영적인 음성은 분명히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그 영적인 소리를 듣기 위해 영적인 귀를 열어주시는 분은 바로 우리 성령님이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성령님께서 들려주시는 영적인 소리에 민감하고 그 소리를 듣고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일반대학교를 나오고 신학대학원을 들어갔습니다. 제가 대학교를 다닐 때 제가 전공한 학문은 독어독문학이였습니다. 독일이 얼마나 신학이 발달했습니까? 이미 천6~7백년전에 기독교가 들어갔고 카톨릭의 중심이 되기도 했고 종교개혁이 꽃펴서 개신교의 대표적인 국가의 하나가 된 곳이 바로 독일입니다. 그러기에 독일문학속에는 성경의 내용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독일문학을 공부하면서 성경을 모르고는 독일문학의 깊은 내용을 연구할 수가 없습니다.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아온 교수님들과 성경에 대해 수업시간에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들은 믿음이 없고 성경에 대해 비판하기에 바빴습니다. 성경을 10번 읽었다는 교수님도 보았고 못해도 5번이상은 읽었다고 다들 이야기했는데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도 없었고 성경말씀에 대한 신뢰도 없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속에 성령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깨달을 귀를 열어주실 성령님이 그들속에 계셔야하는데 그들은 신앙이 없었기에 성령님에 대한 기도도 하지 않았으니 말씀이 이해될래야 이해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와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믿음이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성령님이 계십니다. 성령님으로 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에 대한 거부감이 아닌 말씀에 대한 기대와 기쁨이 넘쳐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선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둘째,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63절과 6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중에 믿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참 놀라운 말씀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오면 다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본적으로 예수님을 따르면 다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교회에 다니는 사람중에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오늘 본문 요한복음 6장을 통해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고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 완전한 믿음의 완성은 천국에서 예수님앞에 가봐야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내면의 믿음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우리의 영혼구원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천국에 갈 수 있다, 나는 천국에 갈 수 없을 것같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확실하게 천국에 갈 수 있는 지, 없는 지 결정짓는 귀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요한복음 1:12~13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우리는 어떻게 천국에 갑니까? 내가 선한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천국에 갈까요? 내가 새벽기도 열심히 다니고 교회에서 드려지는 모든 예배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나왔기 때문에 천국에 갈까요? 성경책을 많이 읽어 성경구절을 많이 암송했기 때문에 천국에 갈까요?
참 귀한 일을 하셨습니다. 이런 일을 했다면 나중에 예수님께서 천국에서 칭찬을 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런 일이 천국에 갈 수 있는 티켓, 천국문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티켓, 천국문을 여는 열쇠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하나님의 구별을 받고 천국으로 인도함을 받을 사람으로 거듭나야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5절을 보십시오.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거듭남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성령으로 거듭나고 그에 대한 확신으로 물로 세례를 받은 자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택함을 받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전도를 해도 전도가 먹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배우는 전도훈련들속에 이런 오류가 있습니다. 물론, 전도의 열심을 강조하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의미속에서 어떻게든 사람들을 데려오려는 열정을 가지는 것은 축복받아야 마땅하고 저도 박수를 쳐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전도하다보면 다 되게 되어 있다. 언젠가는 다 돌아오게 되어 있다"는 말은 신학적으로, 성경적으로 맞지 않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들은 전도를 할 때 반응을 하고 언젠가는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택하지 않은 사람들은 전도를 아무리 해도 반응이 있을 수 없고 하나님앞에 나아올 수 없습니다.
그럼 왜 전도하느냐? 우리는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는 지 알 수 없고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이 어떤 계기로 하나님앞에 나올 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전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전도의 열매를 허락하시고 택함받은 사람이 전도되는 축복을 나를 통해서 계획하셨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전도하여 돌아오도록 택하여 놓은 사람이 있는데 그 상황속에서 내가 전도를 하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들이나 아니면 돌을 들어서라도 전도가 되도록 하실 것입니다. 즉 나에게 돌아올 전도의 축복이 다른 사람이나 심지어 돌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 택하여놓은 사람에게는 믿음이 생기고 하나님께서 택하여놓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거부하게 되어 있습니다. 전도를 하시되 너무 낙담하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을 깊이 깨달아 선택받은 사람을 잘 찾아내시고 전도의 결실을 얻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선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셋째, 주님앞에 나오지 못합니다.
65절 말씀을 보십시오.
“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오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누구도 예수님께 올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잠시 폐쇄조치가 이뤄져 있지만 북한의 개성시에 위치한 남북한 합작공업지역인 개성공단이 있습니다. 남한의 근로자들은 남북 출입사무소에서 통행증과 출입증과 통행증을 받으면 개성공단까지 뻗은 고속도로로 개성공단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어느 누구도 출입증과 통행증없이 개성공단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또한 다른 방법으로 들어가다가 잡히면 죽음의 위협을 당할 수밖에 없었고 오로지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서 들어가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통행증,출입증을 가지고 출입사무소를 통해서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통행증과 출입증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라고 시인하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바탕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을 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을 수 있는 통행증, 출입증, 예수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을 발급해줄 수 있는 유일한 분은 바로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예레미야서 29장 14절을 찾아보십시오. 함께 읽겠습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셔야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가 죄의 포로를 된 것을 풀어주셔서 영원한 죄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의 모든 참혹함에서 우리를 건져내어 우리의 본향인 천국으로 우리를 인도하셔야 우리가 천국에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2장 1절에서 14절을 보면 천국잔치비유가 등장합니다.
천국잔치를 결혼식초대에 비유했습니다.
어느 날 한 왕이 백성들에게 결혼식이 있으니 와서 마음껏 즐기며 축하해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오지 않았습니다.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밭으로 가서 일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자기들의 사업에 바쁘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결혼식 잔치에 와달라고 부탁하러온 왕의 신하를 잡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결국에는 왕이 화가 나서 그 마을의 모든 사람들을 죽이고 불태웠습니다. 그리고 다른 마을로 사람들을 보내어 조건없이 오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모두 데려다가 혼인잔치를 치르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데려오다보니 결혼식에 초대되어 온 사람이 결혼식에 합당한 예복도 입지 않고 결혼식에 있으니 이건 결혼식 분위기가 말도 아닙니다. 그래서 왕은 결혼식에 왔지만 합당한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쫓아내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22장 14절에 이렇게 비유에 대해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은 결국 하나님께서 불러주심과 그것에 합당한 응답이 있을 때 이뤄지는 것입니다. 선택에 합당하지 않은 자는 교회에 나오고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좋은 환경에 놓여진다고 해도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앞에 나와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인도하신 사람들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신앙을 가지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확신하십니까? 우리가 우리 스스로 교회를 선택했고 내가 나오고 싶어서 나왔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보다 우리의 선택을 강조하는 바벨탑을쌓게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구별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이 아니고서야 우리는 하나님앞에 나올 수 없고 예수님을 구주라고 시인할 수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여 더 큰 은혜가운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내가 말씀을 읽으면서 말씀에 대한 이해가 되고 있는가? 내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 내가 교회나오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내 의지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하고 있는가? 라는 이 세가지 항목을 점검해야하겠습니다.
우리가 이 세 가지 항목에 아멘이라고 답할 수 있으면 우리는 분명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아직도 어느 부분은 확신이 들지 않고 뭔가 부족함을 느낀다면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땅에서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의 택함에 대한 묵상을 깊이 있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택하셨다는 확신이 내 속에 들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구체적인 음성을 듣고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